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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는 교회의 본질 회복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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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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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예배당 문이 닫히는 사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경험이고 앞으로 예배당 문이 열린다고 해도 여러면에서 교회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전쟁이 있어도 교회는 필수적인 곳이고, 고난과 환란의 때 일수록 교회 만큼은 열려져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얻어야 하는 곳이고 세상 그 어느것 보다 필수적인 곳인데, 화창한 봄날씨가 시작되는 계절에 뉴욕에 있는 교회들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교회의 ‘필수적인 것’(essential)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유대교를 보면 예루살렘 성전제사 중심에서 디아스포라 2,000년 온 세계로 흩어지는 역사를 통해 회당중심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리고 회당은 가정이 신앙의 중심이 되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가정 신앙의 핵심은 안식일 기도로 시작하는 식사와 14살이 되면 모세 오경을 암송함으로 ‘말씀의 아들, 딸’이 되는 신앙의 성인식 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스데반 순교 이후 성도들은 예루살렘에서 머무를 수가 없어 사마리아와 이방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렇게 흩어진 역사, 이방 땅 안디옥에서 사도바울이 제자를 훈련하는 가운데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역사에서도 개혁을 위해 내세운 구호가 ‘Ad Fontes’(Back to the Sources) ‘근원으로 돌아가자’ 즉,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고 여기에서 ‘Sola Scriptura’(오직 성경)이 나온 것입니다.

교회 본질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교인들이 어디에 있어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하고 언제 어디서나 전도와 선교적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지켜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지금처럼 가정에서 예배드려야 하는 때를 생각하면서 목회실은 성경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필수 성경구절 50개와 찬송가 50개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도 성도들이 성경말씀을 나누고 찬송을 부를 수 있게 위해서 입니다. 지금처럼 집에 갖혀 있어야 하는 상황을 오히려 자녀들과 함께 성경구절을 외우고 찬송을 배우는 시간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예배당이 다시 열렸을 때 찬송가가 없어도 PPT 자막을 올리지 않아도 찬송을 외워서 부를 수 있고, 성경도 암송으로 외칠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감리교는 평신도 신앙운동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연회나 총회 회의 때 투표를 평신도와 목사 한 표씩 동등하게 하는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포함한 신앙생활 전반의 리더쉽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교회의 ’일’을 신학공부를 한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평신도 신앙운동으로 시작된 교단의 목사들이 가톨릭 사제들이 입는 것 같은 옷을 입는 것으로 ’성직’을 구별하려는 문화가 팽배합니다. 그리고 교단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교인들의 삶의 자리가 너무 거리가 멉니다. 그러다 보니 회의 전문가들이 교단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일의 기득권을 독점합니다. 이렇게 현장 중심이 아니라 행정중심 제도적 교회로서는 교회의 본질을 지켜내기 어렵습니다.

초대교회는 흩어져서 제자훈련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 인정받게 되었고, 초대 감리교 운동 ‘순회사역자’(circuit rider)들은 ‘홀로 해내는 개척정신’(independent frontier mentality)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성경을 암송하듯 신앙의 핵심을 암송하고 영적전투 현장에 투입해낼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단순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말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전도하여 감리교운동이 불일듯 부흥했던 원동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중에 교인들은 자기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예배를 생활화 하다가 주일이 되면 세상에서 살면서 경험한 십자가 보혈의 은혜와 부활의 승리 이야기들을 하나님께 축제로 올려드리는 교회 공동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와 같은 전문사역자들의 역할은 세상에 나가 영적전투에 임해야 할 교인들에게 최고의 영적무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 회복의 기간이 짧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복은 그냥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도 변하겠지만, 교회도 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변화의 목표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고 감리교운동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김정호 목사(후러싱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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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Kate님의 댓글

Kate

"회당은 가정이 신앙의 중심이 되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라는 말씀이 크게 와닿습니다.  집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성경과 찬송가를 열심히 외워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김정호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지난번에 타임스퀘어에서 회개를 촉구하고 복음을 전하던 다른 목사님을 가리켜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또 뺨을 때리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기자가 인터뷰했을때 그 목사님에 대한 사과 대신에 “내 목회칼럼의 목표는 그 영상 비판은 아니라, 지금 아프고 두려움에 찬 도시에 필요한 것은 예수님 십자가 은혜 부활의 소망이 우선이라는 말 하려는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까지가 팩트입니다. 그렇지요?

그 이후에 또 글을 쓰셨지만 제가 아무 말 안했습니다만 지금 "교회 본질"에 대한 글을 쓰시니까 제가 말씀을 안드릴 수가 없네요.
회개보다 은혜가 먼저입니까? 회개를 촉구하는 목사님을 글로 모욕하시고서 십자가 은혜 부활의 소망이 우선이라고 주장하셨는데... 회개 없는 은혜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회개의 의미는 아십니까?

물론 큰 은혜를 받고 회심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분명 회개이고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들은 다 그렇게 가르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니님 안에 있는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고 감옥에서도 찬송을 합니다. 저는 그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무슨 교리를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여기 쓰신 글들 다 맞는 말씀들입니다. 그런데 회개를 촉구하는 목사님의 뺨을 때리고 싶다고까지 하신 목사님께서 그리고 거기에 대해 별 반성도 미안함도 표시하지 않으신 목사님께서 지금 "교회의 본질"에 대해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십니다. 저는 그것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Kate님의 댓글

Kate 댓글의 댓글

선생님,  예를 들어 어느가정에 아픈사람이 생겨나고 
죽어가는 큰재난 가운데서
모두가 혼란속에서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 있을때,
그 집 문앞에 어떤목사님이 와서  위로와 기도는 못해줄망정
" 너희 가족들의  죄가 한량없이 추악하여  , 하나님으로부터 이런벌을 받게되었으니 회개부터 빨리 해라 " 라고 외치면
그 논리의 타당성을 떠나서 선생님은 기분 좋겠는지요? 

그냥 우리 보통사람들도  남의 고통과 아픔을 볼때
그 원인과 잘못을 지적해서 낱낱히 알려주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건  상황을 해결하는데에 있어서 어떠한 도움도 되지않으며
오히려 그사람을 더 처참하게 짓찧는 가혹한 행위가 됩니다.

고통에 처해있는 사람을 보면  그가 마약을했건 무슨 나쁜짓을 했건간에  우선은 아픈상처부터 어루만져주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며  손을 잡아줍니다. 그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사랑이 아닐런지요?

저는 의료현장에 있다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호용구를 겹겹히 쓰고 ,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환자들을 치료하다보면 
하루종일 물만 겨우 마시고 버텨야할때가 종종있는데요.  말없이 아침에 베이글과 커피를 보내주는 이웃 가게들의 따사로움에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저 또한 그 환자들이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무슨집회에 갔다가 바이러스에 걸렸다해도 그런것 안따지고 열심히 치료해줍니다.

우리는 지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든시기에 있습니다. "뉴욕주는 회개하라"는 길거리설교 퍼포먼스로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자극하기보다는 , 누군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보살펴주는 작은감동이 더 필요한 시기라고 여겨집니다.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댓글의 댓글

Kate님, 전에도 말했지만 따뜻한 마음씨는 잘 이해하고 또 공감 많이 합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가서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면 참 잘못하는 것이겠지요. 목사님들도 안믿는 분이 죽은 장례식장 같은데 가서 곤란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예로 들겠습니다. 목사가 어느 성도에게 가서 댁은 왜 십일조를 안하냐고 말한다면 그 성도는 십중 팔구 시험에 들고 그 영혼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강단에 서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서 기독교인으로서 바른 헌금 생활과 말씀에 의거하여 십일조를 왜 내는 것이 바른지 전한다면 그것은 문제될 것이 하나 없습니다. 물론 십일조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교인들도 세상에는 많지만 목사는 자기가 해석한 성경말씀을 강단에서 전할 권리와 의무가 있고 여기에 그 목사가 (교인들을 포함해서) 세상 사람들의 생각에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동영상을 보셨는지요? 그 미국 목사님이 대체 누구에게 가서 당신이 죄를 지었다고 말했습니까? 그는 특정한 사람을 상처준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설교를 했을 뿐입니다. 제가 들어보았을때 그 내용은 바른 것이었습니다. 케이트님은 그 내용에서 문제가 될 것을 보셨는지요? 물론 모든 설교는 누군가를 상처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선지자들을 미워하고 "부담되는 하나님 말씀"이라 하면서 배척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본인 마음에 안드는 설교나 화나는 설교를 들으면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사람은 아프지만 겸손하게 말씀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고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교회를 조용히 떠나거나 참습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드러내고 내며 심지어 사람들을 선동하여 교회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실까요? 스스로 겸비하여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조용히 참으면 그래도 중간은 갑니다.

누군가의 뺨을 치고 싶다거나 입을 다물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 인간이 얼마나 교만해야 그런 말이 나올까요? 평소에 말을 함부로 하거나 아니면 아주 교만하거나 적어도 경솔한 사람이 아닐까요? 아니, 사람이 잠시 실수할 수도 있고 큰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제 아내는 제가 천국 못갈까봐 걱정할 정도로 저는 삶에 실수도 많고 스스로 볼때 큰 죄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런 저런 말 할 자격은 사실 없습니다.

그러나 케이트님, 김정호 목사님이 그래도 자신이 말을 함부로 한 것은 시인하고 비록 그 미국목사님은 못들으셨어도 하나님 앞에서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케이트님이 이렇게 감싸는 것이 진정 이 목사님께 좋은 일이라 생각하십니까? 저도 이렇게 집요하게 글 쓰는게 마음이 안좋습니다. 김정호 목사님이 별 말씀이 없으신다면 저도 끝까지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김정호 목사님을 옹호하면 거리에서 용기있게 외치던 그 목사님께는 죄송한 상황이 되는 것이라 저는 그분을 이렇게 옹호하는 것입니다. 김정호 목사님께서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마시고 제발 생각 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Kate님의 댓글

Kate 댓글의 댓글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한참 코로나 바이러스로 뉴욕이 큰 타격을 입고있고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너무나 안타깝고  놀랍고 슬픈시기에 
그 동영상을 보았었는데요,

타주 목사님께서
상처로 범벅된 뉴욕에와서 " 죄악으로 가득찬 뉴욕시여 .
하나님은 너희들에게 진노하셨다, 회개하라" 하며
Street Sermon Performance 하시는게
오히려 제맘을 아프게했어요. 그리고 제맘속에 " 정말 저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사람들을 벌주려고 코로나바이러스를 세상에 그것도 뉴욕에 집중적으로 퍼뜨리셨단 말인가?"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당시의 상황에서는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보다는  뉴욕시를 아픔에서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로 간구하는 기도를 해주셨으면 얼마나 위로가 되고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요.

평상시같았으면 매우좋았을 내용도
시기, 장소, 그리고 절박한 상황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는것 같습니다.

bosco님의 댓글

bosco

그들은 물리적이고 촉각적인 조각이며 조각이 제자리에 들어갈 때 엔돌핀이 급하게 나타납니다.  https://bubbleshoote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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