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이방 종교와 기독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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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23-03-2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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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교회는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 주후 3세기 이전까지 무려 3백여년 동안 교회가 가정에서 모였고 때로는 무덤 위에 모여 예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콘스탄틴 황제가 교회 건물을 짓도록 명령하여 수많은 교회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콘스탄틴 황제는 이교 신전과 로마의 건축 양식을 교회 건물에 도입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자 3세기 이전의 기독교 신앙 전통은 신화와 이교와 구약 유대교의 전통을 혼합한 새로운 전통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가정집에서 모여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했던 기독교가 일요일마다 신화와 그리스 로마 종교와 철학에 기초한 교회 건물에 모여 신화와 그리스 로마 종교와 구약 유대교의 규범들이 혼합된 형식과 상징과 제도를 따라 하나님께 예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콘스탄틴 황제의 명령을 따라 지어진 교회 건물에는 그 어떤 성경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 건물이 세워지자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벽돌과 돌과 교회 건물의 장식물들을 세우고 정결하게 관리하기 위해 매년 더 많은 돈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교회 건물을 짓고 장식하고 새롭게 도입된 감독제와 사제와 성가대 등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헌금을 요구하게 된 것은 교회를 헐어 교회 건물을 세우는 일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전통을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대 교회가 교회 건물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헐어 교회 건물을 짓기 시작한 콘스탄틴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콘스탄틴도 처음에는 교회를 위해 교회 건물을 지으려고 했겠지만, 교회를 인위적으로 위하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교회를 허무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현대 교회들도 교회를 위해 건물을 짓는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교회 건물을 위해 교회가 필요한 결과적 상황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위한다는 열심이 교회를 헐어 교회 건물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 건물을 세웠다는 명예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욕심낼 명예가 아니고 콘스탄틴의 후예들이 집착하는 명예입니다. 현대 교회 건물을 짓느라 출혈적으로 헌신한 멤버들의 교회 건물에 대한 집착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분쟁 대부분은 교회 건물에 대한 그릇된 집착 때문입니다. 교회 건물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을 주도권 다툼이나 그릇된 집착이나 갈등이 해결할 수 없는 양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가 완전할 수는 없지만, 분쟁이나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 법정에 가는 경우는 건물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건물을 지키기 위해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으로 한 편이 다른 편을 사회 법정 싸움에서 이긴다 해도 그 싸움은 이긴 것이 아니라 진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각자가 받은 은사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 법정에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분쟁 때문에 사회 법정에 가는 것은 교회 건물이나 기타 재산이나 돈 때문입니다. 교회가 사회 법정에 가서 싸우는 것 자체가 그런 문제가 영적인 것이 아니고 세속적 문제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가 분쟁으로 인하여 사회 법정에 가지 않더라도 그 원인이 교회 재산 때문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도 교회는 건물을 세우고 지키기 위해 교회를 허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교회 건물과 관련하여 현실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교회 건물은 예배를 위해 많은 사람이 함께 모일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그 많은 성도가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 한 가정집이 아닌 여러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행2:46, 20:20; 롬16:3, 5; 고전16:19; 골4:15; 몬 1:2). 1세기 집들의 크기를 따져볼 때, 초기 교회들은 오늘날의 표준에 비해 비교적 작았습니다. 신약학자 로버트 뱅크스(Robert Banks)는 그의 책 「바울의 공동체 사상-Paul’s Idea of Comunity, IP)에서 당시 교회의 평균 크기가 30~ 35명 정도였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세기 교회 중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는 훨씬 더 많이 모였을 것입니다. 누가는 많은 성도가 예루살렘 도성의 전역에 걸쳐 가정집에서 모였다고 하였습니다(행 2:46). 하지만, 각 가정집 모임은 자신을 스스로 분리된 교회로 보지 않았고 그 도성에 있는 한 교회의 일부분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이유로, 누가는 언제나 이 교회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들” 이라 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행8:1, 11:22, 15:4). 교회 전체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다 함께 모였을 때는 사도행전 15장의 경우처럼, 모든 지체를 수용할 수 있는 큰 장소를 사용했습니다. 그런 때에는 성전 외곽의 솔로몬 행각이 사용되었습니다(행 5:12). 오늘날 교회가 초대교회의 그 유기적 본을 따른다면 가정집에서 모일 수 없을 정도로 커질 때 유기적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초대교회처럼 그 대안을 간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현대 교회 건물을 무조건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건물의 유래가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고 교회 건물에 대한 집착과 강조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올바른 이해를 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건물은 신약 성경의 원리에 맞지 않는 많은 영향을 성도들에게 끼치고 있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일수록 성도의 교통과 교제를 제한시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심을 상기시켜주기보다는 하나님과 거리를 두게 만듭니다. 윈스턴 처칠이 말한 “먼저는 우리가 건물의 틀을 잡았는데, 이제는 건물이 우리의 틀을 잡고 있다.”는 주장은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교회 건물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개념과 그것이 끊임없이 교회라고 불리는 것이야말로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의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에 대한 이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콘스탄틴 시대 이전 3세기까지 교회가 그런 건물들을 세우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교회사가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의 “너무나도 오랫동안 역사가들은 콘스탄틴 황제(285-387)의 회심이 기독교의 승리를 가져왔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와는 정반대로, 그는 교회의 가장 매력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파괴했다. 즉, 초강도의 원초적인 운동을 종종 잔혹하게 또는 흐리멍덩하게 처리하는 엘리트 한 명에 의해 좌우되는 오만한 기관으로 전락시켰다... 콘스탄턴의 ‘호의’는 이교 신전들이 항상 의존해왔던 엄청난 국가보조금을 그리스도인들에게로 돌리게 한 그의 결정이었다. 하루아침에 기독교는 황실의 특혜로 자원의 공급을 거의 무한정으로 받는 최고의 수혜자' 가 되었다. 초라한 구조물에서 모임을 하던 신앙이 졸지에 웅장한 공공건물들로 옮겨갔다. 로마의 새 교회인 성 베드로 대성당은 황실의 보좌가 있는 건물에 사용된 바실리카 형식의 모델을 따랐다.”라는 진술은 교회 건물의 유래를 잘 설명해 줍니다.
플라톤은 신전 건물에 대해 “소리와 빛과 색상이 분위기에 영향을 주고 신비감과 두려움과 예배 분위기를 자아낸다.”라고 하였는데, 콘스탄틴이 교회 건물을 짓도록 하자 교회들이 건물을 설계할 때 이런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습니다. 신전 건물에 대한 플라톤의 이해는 심리적 감성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 건물에도 이러한 전통은 최대한 활용되고 있고 목회자 성도들이 분별없이 그와 같은 건물을 선호하며 강단 메시지에서조차 심리적 감동을 만들어 내어 그것이 마치 영적 경험인 것으로 혼동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대 교회 건물과 메시지 안에 인식하지 못하는 이교 철학의 손길이 닿아 있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교회는 이와 같은 전통을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대 교회가 교회 건물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헐어 교회 건물을 짓기 시작한 콘스탄틴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콘스탄틴도 처음에는 교회를 위해 교회 건물을 지으려고 했겠지만, 교회를 인위적으로 위하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교회를 허무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현대 교회들도 교회를 위해 건물을 짓는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교회 건물을 위해 교회가 필요한 결과적 상황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위한다는 열심이 교회를 헐어 교회 건물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 건물을 세웠다는 명예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욕심낼 명예가 아니고 콘스탄틴의 후예들이 집착하는 명예입니다. 현대 교회 건물을 짓느라 출혈적으로 헌신한 멤버들의 교회 건물에 대한 집착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분쟁 대부분은 교회 건물에 대한 그릇된 집착 때문입니다. 교회 건물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을 주도권 다툼이나 그릇된 집착이나 갈등이 해결할 수 없는 양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가 완전할 수는 없지만, 분쟁이나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 법정에 가는 경우는 건물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건물을 지키기 위해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으로 한 편이 다른 편을 사회 법정 싸움에서 이긴다 해도 그 싸움은 이긴 것이 아니라 진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각자가 받은 은사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 법정에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분쟁 때문에 사회 법정에 가는 것은 교회 건물이나 기타 재산이나 돈 때문입니다. 교회가 사회 법정에 가서 싸우는 것 자체가 그런 문제가 영적인 것이 아니고 세속적 문제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가 분쟁으로 인하여 사회 법정에 가지 않더라도 그 원인이 교회 재산 때문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도 교회는 건물을 세우고 지키기 위해 교회를 허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교회 건물과 관련하여 현실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교회 건물은 예배를 위해 많은 사람이 함께 모일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그 많은 성도가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 한 가정집이 아닌 여러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행2:46, 20:20; 롬16:3, 5; 고전16:19; 골4:15; 몬 1:2). 1세기 집들의 크기를 따져볼 때, 초기 교회들은 오늘날의 표준에 비해 비교적 작았습니다. 신약학자 로버트 뱅크스(Robert Banks)는 그의 책 「바울의 공동체 사상-Paul’s Idea of Comunity, IP)에서 당시 교회의 평균 크기가 30~ 35명 정도였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세기 교회 중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는 훨씬 더 많이 모였을 것입니다. 누가는 많은 성도가 예루살렘 도성의 전역에 걸쳐 가정집에서 모였다고 하였습니다(행 2:46). 하지만, 각 가정집 모임은 자신을 스스로 분리된 교회로 보지 않았고 그 도성에 있는 한 교회의 일부분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이유로, 누가는 언제나 이 교회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들” 이라 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행8:1, 11:22, 15:4). 교회 전체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다 함께 모였을 때는 사도행전 15장의 경우처럼, 모든 지체를 수용할 수 있는 큰 장소를 사용했습니다. 그런 때에는 성전 외곽의 솔로몬 행각이 사용되었습니다(행 5:12). 오늘날 교회가 초대교회의 그 유기적 본을 따른다면 가정집에서 모일 수 없을 정도로 커질 때 유기적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초대교회처럼 그 대안을 간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현대 교회 건물을 무조건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건물의 유래가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고 교회 건물에 대한 집착과 강조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올바른 이해를 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건물은 신약 성경의 원리에 맞지 않는 많은 영향을 성도들에게 끼치고 있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일수록 성도의 교통과 교제를 제한시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심을 상기시켜주기보다는 하나님과 거리를 두게 만듭니다. 윈스턴 처칠이 말한 “먼저는 우리가 건물의 틀을 잡았는데, 이제는 건물이 우리의 틀을 잡고 있다.”는 주장은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교회 건물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개념과 그것이 끊임없이 교회라고 불리는 것이야말로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의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에 대한 이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콘스탄틴 시대 이전 3세기까지 교회가 그런 건물들을 세우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교회사가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의 “너무나도 오랫동안 역사가들은 콘스탄틴 황제(285-387)의 회심이 기독교의 승리를 가져왔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와는 정반대로, 그는 교회의 가장 매력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파괴했다. 즉, 초강도의 원초적인 운동을 종종 잔혹하게 또는 흐리멍덩하게 처리하는 엘리트 한 명에 의해 좌우되는 오만한 기관으로 전락시켰다... 콘스탄턴의 ‘호의’는 이교 신전들이 항상 의존해왔던 엄청난 국가보조금을 그리스도인들에게로 돌리게 한 그의 결정이었다. 하루아침에 기독교는 황실의 특혜로 자원의 공급을 거의 무한정으로 받는 최고의 수혜자' 가 되었다. 초라한 구조물에서 모임을 하던 신앙이 졸지에 웅장한 공공건물들로 옮겨갔다. 로마의 새 교회인 성 베드로 대성당은 황실의 보좌가 있는 건물에 사용된 바실리카 형식의 모델을 따랐다.”라는 진술은 교회 건물의 유래를 잘 설명해 줍니다.
플라톤은 신전 건물에 대해 “소리와 빛과 색상이 분위기에 영향을 주고 신비감과 두려움과 예배 분위기를 자아낸다.”라고 하였는데, 콘스탄틴이 교회 건물을 짓도록 하자 교회들이 건물을 설계할 때 이런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습니다. 신전 건물에 대한 플라톤의 이해는 심리적 감성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 건물에도 이러한 전통은 최대한 활용되고 있고 목회자 성도들이 분별없이 그와 같은 건물을 선호하며 강단 메시지에서조차 심리적 감동을 만들어 내어 그것이 마치 영적 경험인 것으로 혼동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대 교회 건물과 메시지 안에 인식하지 못하는 이교 철학의 손길이 닿아 있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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