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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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ㆍ2021-01-1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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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서울에서만 살았던 나는 난생 처음 전주라는 곳에 사는 친구의 집을 방문 한 적이 있었다. 시골 정서를 경험해 본 일이 없었던 나는 전주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1시간정도를 간 것으로 기억이 된다. 지금은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윤 씨 마을이라는 친구의 집을 어렵게 찾아 간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동네 누군가가 돌아가셨는지 마을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고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 음식 만드는 냄새가 심하게 났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 장례를 치루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었고, 우리들도 그곳에 도착해서 저녁을 건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장례식을 구경하게 되면서 동네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일사분란하게 일들을 하는지 뭐 손발이 척척 맞는 것은 예사이고 시신을 관에 넣는 일, 그리고 제사 드리는 일, 장지까지 가면서 구슬픈 우리네 장례 음악 “어~~이 어~~이 이제가면 언제 오나 어~이 어~이” 처음 보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부엌과 앞마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여인들이 수십 명은 되지 않았을까 기억된다. 전을 부치는 아줌마들, 큰 가마솥에 뭘 끓이는 지 김이 솟아올랐던 것, 고기를 썰어내는 아줌마, 흰쌀밥을 한 그릇씩 담아냈던 분... 여기저기 모여 앉아 술을 먹는 남자들, 그런 모습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린 시절 이런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을에 다리나 길이 무너지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다리를 고치고, 길을 복구시키고 또 모내기 때나 추수 때나 겨울을 앞두고 김장을 할 때나 동네 분들이 똘똘 뭉쳐 우리 마을은 우리가 지키고 우리가 아름답게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는 그런 목적이 있지 않았었나 생각된다.
지금은 이런 공통체가 안 보인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모든 것을 다 해 준다. 염을 할 이유도 없고 밤새워 같이 시신을 지켜줄 이유도 없다. 우리는 부조금이나 내고, 관 위에 꽃 한 송이 올려주면 된다. 다 돈만 주면 해결되는 것들이다.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예식에 필요한 물품들조차 갖출 필요가 없다. 다 음식점이나 대행사가 해준다, 돈으로 해결할 일일뿐이다. 다리가 무너지고 도로가 유실되면 나라에서 다 알아서 해준다. 우리는 세금만 내면 된다.
모든 게 돈으로 해결되다 보니 옛 공동체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가 있고 교회들이 모인 교회협의회 공동체도 있다. 그럼 우리가 살아왔던 옛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는 뭐가 다를까? 교회 공동체의 특징은 예배라는 종교적 의식이 중심이 되어 모인 집단이다. 목적이 분명하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그런데 예배라는 의식 자체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예배가 이 세상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소금으로써, 빛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느냐에 따라 올바른 예배야, 형식적 예배냐로 분별된다는 것이다.
즉 올바른 예배는 우리가 살아왔던 옛 마을 공동체와 같이 서로 돕고, 남의 일을 내 일같이 여기고, 서로 협동하고 함께 하는 그런 공동체가 예배 안에 함축되어 있다는 것은 교회 공동체도 어쩌면 옛 마을 공동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도 예배드리는 것 외에 서로 협동하는 일에는 인색하다. 다 돈으로 때우려 한다, 교회 건물 수리는 성도들의 몫이 아니라 돈으로 전문가를 부르면 되고, 교회 청소는 청소하는 집사님을 따로 두어 맡기면 되고, 교회 음식은 돈으로 사면된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한 교회 공동체도 이미 무너진 것 아닌가 보인다.
교회 협의회라는 공동체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 협의회란 교회(성도들)공동체다. 목사와 성도들이 협력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작은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함께 힘을 모아 작은 교회도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함께 선교도, 함께 치유도, 함께 위로도 하는 한 몸으로써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한 몸의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약하다 보니 다 돈으로 처리하려 한다. 교회마다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아주 미흡한 몇 푼의 돈으로 지원하면 끝이다,
이런 공동체 의식이 없다보니 공동체로써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은 행사나 집회뿐이다. 집회를 통해 함께 모였다는데 의미를 두다 보니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가에 행사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모순을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공동체는 물질로 다 무너져버렸다. 교회도 교회협의회도 공동체 의식이 사라져버린 이 현실 속에서 진정한 주님의 공동체는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로 기도하고 연구해서 무너진 한 몸 된 공동체를 올바르게 세워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린 시절 교회 건축에 한몫 해 보겠다고 흙벽돌을 나르고, 바닥에 깔 쌀가마니 포대를 등에 지고 언덕을 올라갔던 그때가 그립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그 교회가 내 교회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2)
한준희 목사(뉴욕성원장로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동네 누군가가 돌아가셨는지 마을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고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 음식 만드는 냄새가 심하게 났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 장례를 치루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었고, 우리들도 그곳에 도착해서 저녁을 건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장례식을 구경하게 되면서 동네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일사분란하게 일들을 하는지 뭐 손발이 척척 맞는 것은 예사이고 시신을 관에 넣는 일, 그리고 제사 드리는 일, 장지까지 가면서 구슬픈 우리네 장례 음악 “어~~이 어~~이 이제가면 언제 오나 어~이 어~이” 처음 보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부엌과 앞마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여인들이 수십 명은 되지 않았을까 기억된다. 전을 부치는 아줌마들, 큰 가마솥에 뭘 끓이는 지 김이 솟아올랐던 것, 고기를 썰어내는 아줌마, 흰쌀밥을 한 그릇씩 담아냈던 분... 여기저기 모여 앉아 술을 먹는 남자들, 그런 모습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린 시절 이런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을에 다리나 길이 무너지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다리를 고치고, 길을 복구시키고 또 모내기 때나 추수 때나 겨울을 앞두고 김장을 할 때나 동네 분들이 똘똘 뭉쳐 우리 마을은 우리가 지키고 우리가 아름답게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는 그런 목적이 있지 않았었나 생각된다.
지금은 이런 공통체가 안 보인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모든 것을 다 해 준다. 염을 할 이유도 없고 밤새워 같이 시신을 지켜줄 이유도 없다. 우리는 부조금이나 내고, 관 위에 꽃 한 송이 올려주면 된다. 다 돈만 주면 해결되는 것들이다.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예식에 필요한 물품들조차 갖출 필요가 없다. 다 음식점이나 대행사가 해준다, 돈으로 해결할 일일뿐이다. 다리가 무너지고 도로가 유실되면 나라에서 다 알아서 해준다. 우리는 세금만 내면 된다.
모든 게 돈으로 해결되다 보니 옛 공동체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가 있고 교회들이 모인 교회협의회 공동체도 있다. 그럼 우리가 살아왔던 옛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는 뭐가 다를까? 교회 공동체의 특징은 예배라는 종교적 의식이 중심이 되어 모인 집단이다. 목적이 분명하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그런데 예배라는 의식 자체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예배가 이 세상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소금으로써, 빛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느냐에 따라 올바른 예배야, 형식적 예배냐로 분별된다는 것이다.
즉 올바른 예배는 우리가 살아왔던 옛 마을 공동체와 같이 서로 돕고, 남의 일을 내 일같이 여기고, 서로 협동하고 함께 하는 그런 공동체가 예배 안에 함축되어 있다는 것은 교회 공동체도 어쩌면 옛 마을 공동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도 예배드리는 것 외에 서로 협동하는 일에는 인색하다. 다 돈으로 때우려 한다, 교회 건물 수리는 성도들의 몫이 아니라 돈으로 전문가를 부르면 되고, 교회 청소는 청소하는 집사님을 따로 두어 맡기면 되고, 교회 음식은 돈으로 사면된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한 교회 공동체도 이미 무너진 것 아닌가 보인다.
교회 협의회라는 공동체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 협의회란 교회(성도들)공동체다. 목사와 성도들이 협력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작은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함께 힘을 모아 작은 교회도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함께 선교도, 함께 치유도, 함께 위로도 하는 한 몸으로써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한 몸의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약하다 보니 다 돈으로 처리하려 한다. 교회마다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아주 미흡한 몇 푼의 돈으로 지원하면 끝이다,
이런 공동체 의식이 없다보니 공동체로써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은 행사나 집회뿐이다. 집회를 통해 함께 모였다는데 의미를 두다 보니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가에 행사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모순을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공동체는 물질로 다 무너져버렸다. 교회도 교회협의회도 공동체 의식이 사라져버린 이 현실 속에서 진정한 주님의 공동체는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로 기도하고 연구해서 무너진 한 몸 된 공동체를 올바르게 세워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린 시절 교회 건축에 한몫 해 보겠다고 흙벽돌을 나르고, 바닥에 깔 쌀가마니 포대를 등에 지고 언덕을 올라갔던 그때가 그립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그 교회가 내 교회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2)
한준희 목사(뉴욕성원장로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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