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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목사 "가정의 독점적 이상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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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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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하나님께서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지켜야 할 의무 중에 가장 먼저 명한 것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식의 의무요 책임일 뿐 아니라 하나님 공경하는 것이고 모든 인간관계 질서의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인간 상호 관계에 없어서는 안 될 질서입니다.

사람이 위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인간 상호 간의 질서를 잘 지킨다면 안녕과 복지의 기틀을 든든히 세운 것입니다. 그 기초 위에 바른 교육을 하고 바른 정치를 하고 정직과 성실로 정의로운 경제를 부흥시킨다면 그야말로 복지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질서 안에서 평안과 행복과 생명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이 되는 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깨뜨리는 치명적인 몇 가지를 금하셨는데 첫째는 살인이고 둘째는 간음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바로 뒤에 온다는 사실은 십계명이 가치 질서를 따라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가치 질서에 의하면 살인 다음으로 인간에게 치명적인 것이 간음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단순히 살인만을 금한 것이 아니고 인간 생명의 존엄함을 보존하려는 계명입니다. 따라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은 단순히 살인만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잘 지킨 것이 아닙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함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도 그러한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제7계명은 실제로 간음하는 것을 금하는 계명입니다.

간음은 음행과 다릅니다. 음행은 단순히 음란한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간음은 결혼한 남녀가 다른 여자나 다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간음이나 음행을 하나님께서 금하셨다는 면에서는 모두 무서운 죄가 되지만 구약 성경은 간음을 더 엄한 벌로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즉 결혼하지 않은 남자가 처녀를 범했다면 벌금을 내고 그녀를 아내로 맞아 평생 버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신 22:28-29). 그러나 남자가 유부녀와 간통하면 그 둘을 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신 22:22). 결혼한 합법적 부부 사이를 벗어난 성적 관계는 사형으로 다스리도록 하여 살인과 같이 무서운 죄로 취급하였습니다.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역사가 몰락한 원인에는 반드시 성적인 타락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고, 이스라엘이 그랬고, 로마 제국이 그러하였습니다. 성적 범죄는 거룩한 혼인을 통해 세워진 가정의 전제에서 규정되고 정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국가가 건강해지려면 성적으로 건전해야 하고 성적으로 건전해야 한다는 것은 가정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강한 가정은 부부가 성적으로 순결하고 건전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라를 지키고 가정을 지키는 것은 성적 질서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살인이 죄가 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살인을 금하신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살인을 금하셨습니다. 같은 전제에서 간음이 죄가 되는 이유는 혼인제도 때문입니다. 혼인제도가 없다면 간음이 죄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혼인제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신성한 제도입니다(마 19:4-6). 혼인의 원칙은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는 것입니다. 셋이 아니고 넷도 아니고 둘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일부일처의 신성한 혼인제도를 말합니다(말 2:14-15). 이러한 일부일처의 신성한 혼인제도는 일부다처제로만 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간음을 하는 것으로 깨어집니다. 사람 중에 일부다처의 혼인제도를 비웃는 이들이 있지만 간음이 바로 일부일처의 신성한 혼인의 질서를 깨는 것입니다.

자연 질서가 깨어지는 것을 재난이라고 합니다. 지진, 홍수, 허리케인, 쓰나미, 가뭄 등이 모두가 재난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한 세상에는 이런 것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이런 것들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연재해를 두려워합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연재해를 막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람들은 자연 질서가 깨어지는 것은 두려워하면서도 혼인 질서가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 어느 나라보다 많은 미국에서도 혼인 질서가 형편없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간음죄가 사라졌습니다. 간음이 이혼 사유는 되지만 간음 자체를 죄로 규정하지 않고 처벌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음한 자를 죽이라고 하셨는데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더 너그러워서 죽이기는커녕 아무런 벌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인한 자는 죽이라고 하셨는데 현대인들은 하나님보다 사랑이 많아서 사형제도도 폐지합니다.

오늘날 인류의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너그러운 체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보다 너그러운 체하는 것은 치명적 실수이고 범죄입니다. 성적 범죄의 진행이 처음에는 간음이고 그다음은 동성애 그리고 그다음은 혼음이고 그다음은 근친상간이고 그다음은 수간입니다. 혼인 질서가 무너지자 인간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져 곤두박질쳐버렸습니다. 인간 성범죄는 오늘날 특별히 나빠진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레 18:22, 출 22:19, 레 18장). 죄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악합니다. 간음, 동성애, 혼음, 근친상간, 수간이 이미 옛날부터 행해져 왔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그런 것이 있었고, 노아 시대에도 있었고, 바벨론 제국 안에도, 애굽에도, 헬라 제국 안에도, 로마 제국 안에도, 지금 미국 안에도, 한국에도 있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교회 안에도 간음이 있고 동성애가 있고 혼음이 있습니다.

성적인 범죄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사회에서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어떤 경우든 성경이 명하는 순결하고 합법적인 관계를 떠난 성적 관계는 간음에 해당하고 간음에 해당하는 벌은 사형입니다. 바울 사도는 간음이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죄라고 가르칩니다(고전 6:1820).

성경은 동성애를 분명하게 금하는데 사람들은 그러한 성경을 비틀어 억지 해석을 하며 정당화합니다. 미국의 경우 세상보다 교회가 동성애를 먼저 합법화하였습니다. 이제는 동성애나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것을 시대에 뒤떨어진 태도라고 취급합니다. 남자와 남자가 혼인하는 것이나 여자가 여자와 혼인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일 뿐 아니라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해괴한 짓입니다. 그것은 결혼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혼인제도를 세우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지라고 하셨는데 남자끼리 여자끼리 만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수가 없습니다. 동성애자들에 의해 확산하는 에이즈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언론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정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테러와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에이즈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동성결혼 자체만으로도 인구가 줄어드는데 에이즈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 명령에 명백하게 반하는 결과입니다. 인구가 줄어들게 하는 것이 창조 명령에 반하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동성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혼인제도에 반하는 죄악이기 때문에 마땅히 금지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 가운데 가장 강력한 두 가지 본능이 있습니다. 첫째는 식욕이고 둘째는 성욕입니다. 식욕은 대체할 수 없지만, 성욕은 대체할 수 있습니다. 식욕이 충족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거나, 심지어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준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욕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욕을 금한다고 해서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욕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사마천이 생식기를 잘리는 궁형을 받고 오히려 사기라는 불후의 역작을 썼습니다. 성욕은 승화가 가능하고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욕은 성적으로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은 성에 대한 무지이고 성에 대한 미신(sexual superstition)입니다. 성적인 문제가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임은 틀림없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바로 뒤에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나오는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다윗 같은 믿음의 사람도 이 문제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성은 생육과 번성과 즐거움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을 사용함에는 엄격한 규칙이 주어졌습니다. 그 규칙은 부부 침실의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규칙을 어겼을 때는 사형을 시키도록 하였습니다. 성적인 욕구가 너무나 강력하므로 그것을 통제하는 법 또한 그렇게 강력한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은 정조를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성의 순결과 정조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기본입니다. 자신의 정조를 지킬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정조도 보호해야 합니다. 요리문답 71문은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자기 자신과 이웃의 정조를 보존하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7:1-27, 5:1-6에 정조에 대한 자세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과 말과 행동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자신과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요리문답 71문은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정조를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리문답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설명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 5:28절에“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래 구약에서는 유부녀와 불륜의 관계를 맺는 것을 간음이라고 규정하였지만 예수님은 유부녀가 아니라 모든 여자에게 적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조는 육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도 있습니다. 따라서 생각으로도 정조를 잃을 수가 있습니다. 변태성욕자들은 여자 상담원에게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성의 문제를 자기가 경험한 것처럼 이야기하기를 즐기기도 합니다. 음란한 이야기를 즐기는 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정조에 해를 끼치고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에게는 더욱 치명적입니다. 선정적인 옷차림이나 행동으로 이성을 유혹하는 것도 성경은 금합니다.

성경에서 성범죄의 경우 여자에게도 무거운 책임을 묻습니다. 그것은 여자의 무책임한 태도가 성범죄를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2:23-27에 그러한 경우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성읍에서는 일방적인 강간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여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가르칩니다. 오늘날 신문이나 방송이 성범죄를 다룰 때 거의 일방적으로 남자를 비난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서 여자에게 더 무거운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따라서 생각과 말과 행동을 삼가 자신의 정조와 다른 사람의 정조도 보호해야 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여러 직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직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매춘'(賣春)입니다. 왜‘매춘’이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수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몸을 판다는 것은 몸을 사는 인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사가 잘된다는 것은 수요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성적인 수요는 의식주의 수요만큼이나 강력하고 확실합니다. 그래서 한때 포르노 산업이 불황을 모르는 호황을 누렸던 것입니다. 요즘은 포르노 산업이 불황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인터넷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음성적으로 거래되던 성의 상품이 이제는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성적인 무질서가 만연해진 것입니다.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음난 싸이트와 무차별적으로 전달되는 음란 메일들과 음란한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해 온 세계는 급속도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음란물들과 음란 행위들은 결혼 전 혹은 결혼 외의 성관계, 성인과 미성년자 성매매의 확산, 성인과 미성년자 혹은 심지어 유아 성폭력, 감금과 인신매매, 각종 성병, 가정 파탄, 기형아 출산 등의 수많은 사회악을 낳고 있습니다. 인터넷 음란물들은 기독교인 성인들을 포함하여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큰 시험 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의 욕구가 끝나야 정욕(情慾)도 그친다고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생의 끝이 오든지 역사적으로 종말이 오든지 해야 정욕도 그친다고 하였습니다. 그전에는 정욕이 그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전 12:1-5).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정조를 보호함으로써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금지법으로만 생각하면 소극적으로 됩니다. 이 금지법의 적극적인 면을 지켜 순종해야 합니다. 한 아내를 사랑하고 한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곧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적극적으로 지켜 순종하는 것입니다. (롬 13:12-14).

우리가 육체의 정조를 보존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육체가 성령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뿐 아니라 육체까지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롬 12:1). 바울은 마음이 아니라 몸을 드리라고 명시적으로 명령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은 가치 중립적입니다.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면 선한 도구가 되고 악한 일에 사용하면 악한 도구가 됩니다(롬 6:13). 성경은 우리가 우리 몸을 죄에게 드려 불의의 병기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라고 가르칩니다. 음란이란 어두운 데서 행하여지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라고 했을 때 밤은 무지와 불신앙의 때를 가리킵니다. 당시 로마 제국 안에는 이런 음란과 방종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음란과 방종이 만연해 있습니다. 성이 정치계와 재계에서도 상품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대기업 중역들의 술자리에나 고급공무원들의 술자리나 심지어 교수들의 술자리에도 미모의 여자가 시중을 드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불신자에게 주신 계명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주신 계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7계명의 적극적인 뜻을 잘 순종하여 혼인의 신성함과 가정의 화목을 통하여 가정의 독점적 이상을 실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가정들이 많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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