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을 모두 죽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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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ㆍ2021-03-2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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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을 모두 죽이겠다고? 이게 아틀란타 총격사건의 범인이 한 말이라고 한다. “코로나로 열 받고 있는게 어디 백인 너 네들 뿐이냐? 우리 아시안은 더 열받고 있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지만 그들은 코로나가 ‘아시아수출품’이라고 분풀이를 하려 덤비는 것이다. 그게 최근 사회 저변에 깔리고 있는 아시안 혐오의 근원이라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PPP도 받고 실업수당도 챙기면서 오히려 ‘호황’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생활이 팍팍해 졌다. 갇혀 살다 보니 정신적으로는 사막처럼 메말라 붙었다. 그래서 분풀이 대상을 찾다보니 그게 아시안이 되고 있다니 걱정스럽다. 물론 코로나 진원지가 중국 우한으로 알려져 ‘우한 바이러스’라고 불러댄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백악관 브리핑에서 툭하면 ‘중국 바이러스’란 말을 즐기면서 중국을 범인취급하고 은근히 코로나 화풀이 대상으로 삼으려는 품격 없는 발언들을 쏟아낸 지도자는 누구인가?
아틀란타 살인사건이 핵폭탄이었다면 크고 작은 미사일 공격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마켓이나 공원에 나가면 무슨 망신을 당할지 몰라 외출을 꺼리는 분위기라면 샐러드볼이라 불리는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가 위태롭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아시안 혐오는 미국의 흑백 인종 갈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긴 역사를 갖고 있다. 1992년에 일어난 로드니 킹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비롯된 4.29 폭동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흑인들의 폭동이 한인비지니스에 불똥이 튀겼다. 인종혐오에서 비롯됐다.
중국인은 훨씬 그 역사가 깊다. 서부개척시대 철도 공사장으로 불려온 중국인들은 툭하면 혐오의 대상이었다. 1885년 와이오밍의 한 광산에서 백인 광부들이 28명의 중국인 동료 광부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국인들은 지저분하다며 저지른 혐오범행이었다. 1942년 2차 대전이 한창일 때 미국에 살던 일본계 미국인 12만 명이 강제수용소에 3년이나 갇힌 적이 있다. 1981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는 백인우월주의 ‘쿠 클럭스 클랜’이 텍사스의 베트남 난민촌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런 아시안 혐오 범죄가 코로나 국면에서 재연되고 있으니 하필 왜 우리 아시안이 화풀이 대상이란 말인가?
조오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체포과정에서 사망하자 미 전역에선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피켓을 들고 전국이 들썩였다. 흑인들은 당하면 모른 척 하지 않는다. 벌떼 같이 일어나서 단합하고 외친다. 그 결과 흑인의 민권역사는 어디까지 왔는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역사 속에 등장했고 지난해엔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는데 그것도 흑인 부통령 카말라 해리스가 등장하지 않았는가?
간단하다. 우리도 벌떼같이 일어나야 한다. 인종 혐오는 이 나라에서 중범죄에 해당한다. 어느 단일민족이 아니라 여러 인종이 모여 한 국가를 형성한 것이 아메리카 합중국이다. 그러니 백인이 아시안을 혐오 한다고 그냥 꾹꾹 참고 인내할 때는 지났다.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연방의회에 진출해 있는 한국계 의원만도 4명에 이른다. 앞으로 우리들의 2세들이 꽃피기 시작하면 어디 그뿐이랴? 우리도 당당하게 이 나라의 부지런한 시민들이요 열심히 일하고 세금 내며 투표권을 행사하며 국가 발전에 이바지 했다. 누가 감히 우리를 아시안이란 이유 때문에 미워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아틀란타 총격사건 현장을 방문하고 AAPI(Asian-American & Pacific Islander)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증오와 폭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방하원 영 김 의원은 지난주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거친 여자들이다, 타이거 맘이다, 우리를 화나게 하지 말라”고 한국인 혐오 범죄에 강하게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통쾌하다.
4.29 폭동이 끝날 무렵 LA 한인타운에서 벌어졌던 ‘평화의 행진’ 때 받은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한인들이 LA에 살고 있었다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린 손자들까지 올림픽가, 버몬트, 8가와 웨스턴을 잇는 거리에서 대규모 평화행진이 벌어졌다. 다시는 이런 폭동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우리 모두 인종의 벽을 넘어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가자고, 그것이 바로 코리언 아메리컨들의 소원이란 걸 만 천하에 알리는 시위였다.
이제 우리도 그때처럼 나설 때가 되었다. 흑인이나 백인 목숨이 소중한 것처럼 우리 아시안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외쳐야 한다. 피부색 때문에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깡다구를 이 사회에 보여주어야 된다. 그래야 우리 후손들도 기를 펴고 사는 세상이 온다.
백인우월주의가 덤빈다면 우린 아시안 우월주의, 코리안 우월주의로 맞짱을 떠야 한다. 이 나라에 이민 올 때 하나님 믿고 보따리를 쌌지 백인들에게 혐오대상이 되겠다고 보따리를 싼 줄 아냐고 소리 높여 외쳐보자. 자신들의 피부색에 우월감을 갖고 다른 피부색을 깔보고 미워하는 사람들은 아메리카 합중국에 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란 걸 깨닫게 하자. 대통령의 말대로 어떤 식이 되었던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옮겨보자. 아시안을 건드리지 말라고.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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