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지우기는 기독교 지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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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21-03-2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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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교 사회는 다른 신이나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합니다. 고대 로마 제국도 제국 안에서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교를 허용하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기독교의 포교 활동이 비교적 쉬웠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스스로 다른 신이나 다른 종교를 용납할 수 없으므로 인하여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이나 통치자들에게 미움과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때로는 국가 정책을 반대하는 집단으로 오해를 받으며 그로 인하여 모함과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나쁜 지도자들은 기독교인들이 유일신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믿고 주인으로 섬기는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으로 몰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실정이나 실패를 만회하는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데, 로마 제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도 국가적 재난이나 전쟁의 실패나 심지어 지도자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렸습니다. 나쁜 독재자일수록 국론이 분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국가에 반역하는 집단으로 오해를 받거나 모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기독교는 황제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집단이었습니다. 강력한 로마 제국이 점점 쇠락해지자 황제는 그 책임을 기독교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데키우스(Decius Valerianus 249-251) 황제는 250년에 기독교를 지워버리려는 법령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법령은 제국 안의 모든 시민은 제국이 허락하는 신만을 섬기도록 하였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을 말살하려는 의도적인 법령이었습니다. 당연히 기독교인들은 이에 반발하였지만, 기독교인들은 행정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마의 신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수많은 기독교인이 이방 제사를 거부하다가 순교하였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수많은 배교자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의 지도자였던 키프리아누스의 지적에 의하면 당시 기독교인들은 오랜 평화로 인하여 신앙생활의 기강이 해이해졌고 부와 사치와 쾌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영적 타락에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는 꼴이었습니다. 이는 어쩌면 현대 교회들의 부정적 모습과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로마 제국의 여러 황제는 같은 이유로 기독교를 박해하고 지워버리려 했던 것을 우리는 역사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 지우기보다 훨씬 앞서 기독교를 지우려 했던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유대인들입니다. 예수님의 권위와 인기를 시기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서기관들과 공회원들은 잠깐 예수님께 관심을 보이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외식과 교만을 지적받자 경계하고 비판하며 미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에게서 시작된 예수님께 대한 반감과 박해는 예수님 사후 극성 유대교도들에 의해 사도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것으로 집요하게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하도록 모함을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천하에서 없애버려야 할 염병이라고 규정하고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고 율법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실행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근대에 이르러서 기독교를 지우러 한 사상과 집단은 칼 마르크스와 공산주의 그리고 그 사상의 아류인 좌파 사상가들과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 입니다. 마르크스의 사상의 계보는 복잡하지만, 그 사상의 출발점은 무신론과 유물사관입니다. 마르크스 사상과 공산주의는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이 아니라 하나님과 기독교를 극도로 싫어하고 증오하는 무신론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최대의 적이 기독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실제로 공산주의 혁명이 실패하자 그 원인이 기독교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려면 우선 기독교를 철저하게 지워버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판단은 어떤 면에서 정확하였습니다. 기독교가 살아 있고는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무신론과 유물사관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에 생각 없는 순진한 기독교인 중에 무신론과 유물사관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는 그러한 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습니다.
최근 진보 주의권 내에서 "woke"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용어를 깨어있는, "내가 너보다 더 깨어있다.", "내가 도덕적으로 더 깨어 있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이 용어는 좌파 정부의 정책과 진보주의 운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인종 평등화, LGBT의 권리, 페미니즘, 환경보호 같은 것에서 자신들이 더 포용적이고 도덕적으로 깨어있다고 주장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이 이러한 주장에 쉽게 넘어가는데, 이러한 현실을 프랑스의 작가 레이몽 아롱이 "정직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은 절대로 좌파가 될 수 없다. 모순투성이인 사회주의 본질을 모른다면 머리가 나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하면 거짓말쟁이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도덕적으로 더 깨어 있다"는 "woke"는 어설픈 지식인과 젊은이들의 영혼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woke"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woke-culture이고 이 운동의 연장 선상에 문화 지우기(Cancel Culture)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4일 미 하원 개회 때 감리교 목사인 임마누엘 클리버 의원이 기도할 때 "Amen, Awomen"라고 기도를 마쳤습니다. 아멘의 멘이 남자를 가리키기 때문에 성 불평등을 조장하는 용어라고 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어서 하원 의장 펠로시는 하원 규칙 개정안에서 성별을 나타내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성 중립적 용어를 사용할 것을 촉구하며 이는 역사상 가장 포용적인 의회 제안과 관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캘리포니아 교육부 새 커리큘럼에 고대 맥시코의 신 아스테카에게 기도하는 내용을 포함할 것을 제안하였고, 뉴욕 맨하탄에 있는 성공회 계통의 그레이스 처치 스쿨(Grace Church School)에서는 학생과 교사, 교직원 및 부모를 대상으로 발간한 언어 사용 지침에서 교내에서 성 정체성을 포함하는 ‘엄마(mom)’, ‘아빠(dad)’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말도록 권장하였습니다. 이 지침서는 ‘포용적인 언어’라는 제목하에 사람들이 대화할 때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일반적인 가족상을 제거해야 할 ‘유해한 가정(假定·assumptions)’으로 규정했습니다. 지금 미국의 엘리트 사립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이 학교 교장 조지 데이비슨은 성명을 내고 “우리 학교는 입학 첫날부터 학생들에게 언어를 사려 깊게 사용하라고 교육해왔다.”라며 “학교의 모든 학생이 살아 있는 두 부모(parents)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소위 woke-culture이고 Cancel Culture입니다. 깨어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전통문화를 지우는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들이 지워야 한다는 문화는 거의 기독교 문화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포용적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인종 평등화, 소수자 권리, 패미니즘 등이 모두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질서를 거부하는 것들입니다. 좀 더 과격한 문화 지우기를 들여다보면 남자와 백인과 기독교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하고 있고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문화 지우기는 모든 보수주의와 우익 성향까지 지워야 할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사시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가 대동단결해 유럽을 순식간에 혁명화할 것이라는 예측이 1914년 1차 세계대전에서 빗나가자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계급이익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서구 문명을 파괴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습니다.
신마르크스주의자 루카치와 그람시는 문화혁명을 위해 각각 급진적 성 혁명과 진지전을 주장하였는데, 헝가리 볼셰비키 정부 문화담당관이 된 루카치는 부모와 학교의 권위, 가족에 대한 애정과 국가에 대한 충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급진적 인성교육을 시행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학생인권조례도 루카치의 성 해방 작업과 일맥상통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람시는 부르주아가 거머쥔 헤게모니를 빼앗기 위해 정치, 사회, 학계, 문화계 등 각 사회 영역에 침투해 사회주의 사상으로 대중을 계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같은 신마르크스주의자이며 프랑크푸르트 학파인 마르쿠제는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한 후 콜롬비아 대학에 둥지를 틀고 본격적으로 미국을 파괴하는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소위 정치적 올바름이라 불리는 PC의 정서를 미국에 퍼뜨리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이 바로 마르쿠제의 억압적 관용(repress toleranc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압적 관용이란, 표현의 자유는 그 자체로 선이 아니며, 좌익의 진실을 확산시키고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우익의 오류와 주장을 적극적으로 억압해야 한다는 것이 마르쿠제의 억압적 관용입니다. 마르쿠제의 논리에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 강단이 점령되다시피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그의 제자들이 지금의 미국 정치계, 언론계, 법조계, 예술계, 영화계, 학계로 널리 진출하여 포진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움직이고 있는 에너지는 객관적 사실과 진리를 위하려는 데서 발산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를 미워하고 무신론을 확산시키려는 사악한 욕망으로부터 솟아나기 때문에 자기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거짓말과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들은 억압적 관용으로 무장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문화 지우기는 아직 "woke"라는 이름으로 감성과 논리를 이용하여 대중을 설득하는 것처럼 하고 있지만, 이는 모두 위선이며 속임수입니다. 이미 마르쿠제의 억압적 관용이 적용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전통 가치와 보편 가치 그리고 기독교의 가치를 주장하거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상 또는 "woke" 운동이나 문화 지우기를 비판하는 사람이나 집단에게는 폭력도 불사하는 사건들이 이곳 미국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에 언론이 앞장서고 있어서 대중들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의 복음을 전염병이라고 하여 지워버리려 하였듯이 로마 제국의 기독교 말살 정책에서부터 지금의 문화 지우기 운동까지 모든 무신론을 토대로 하는 이론과 활동은 결국 하나님을 부정하고 기독교를 지우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행 17:7, 24:5, 5:33)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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