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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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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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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니다
(주님의 종이라는 자세가 절실하다)

40여 년 전 목사 안수를 받을 때 나의 결심은 비장했다. 물론 목사안수를 받을 때에 비장한 결심을 안 하는 분들이 몇이나 있겠느냐 만은 나의 결심은 좀 남달랐다. 그것은 20년 가까이 몸에 익힌 직장을 그만두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받았던 상패와 상장들을 모두 버리는 일 등 외적인 것들을 청산하는 일도 비장했지만, 이제부터 난 주의 종이라는 종의 자세가 좀 유별났다고 생각된다.

유별난 나름대로의 기준은 첫째 목사는 부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였다. 가난하게 살아도 주의 일이라면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결심,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 부모님을 등지게 된다 하더라도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는 결심들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나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목사로서의 결심은 나의 내면 안에 잠들어 있었고 가지고 있던 돈으로 누릴 것 누렸고, 먹고 싶은 것 먹었고, 가고 싶은 곳 찾아다녔다. 그렇게 누리고 먹고 다니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내가 번 돈 내가 쓰니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게 10여년을 지내면서 목사도 가정이 있는 것 당연한 것이고, 목사이기에 성지 순례 가보는 것 당연한 것이고. 미국에 왔으니 외제차 타는 것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뿐 아니라 화장실 2개 있는 넓은 집에서 사는 것도 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교회 부흥이 안 되면서 교회가 점점 축소되고 경제적 어려움이 엄습하자 견딜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목사는 가난해야 한다는 각오는 어디로 갔는지... 왜 나는 10년 된 고물차를 타야하고, 집 렌트비가 없어 돈을 빌리러 다녀야 하고, 목사라면 당연히 갈 수 있는 단기선교 한번 못 가고, 남들에게 밥 한번 제대로 못 사주는 그런 신세가 되자 서서히 좌절감이 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가지고 누려야 할 목사로서의 기본적인 삶이 무너지자 ‘목사란 뭘 하는 사람인가, 왜 목사가 되었나, 하루 밥 3끼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목사가 되었나?’라는 좌절감이 앞서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처음 목사가 될 그 때의 초심으로 나를 인도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렇다.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좋은 식당에서 귀한 음식 먹고, 해외여행 갔던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누리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목사로써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도록 인도하셨다면 난 그분의 인도하심 따라 그 길을 가야했을 종이었다. 먹지 못한 곳으로 인도하셨다면 난 먹지 못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했었고, 차가 없는 지역에서 주의 일을 하라고 인도하셨다면 난 차 없이 목회를 해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일까?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 내려지고 있다는 말이다.

은혜를 모르면 목사는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목회를 20-30년 했으니 당연히 좋은 차를 타야하고, 교회도 건축했으니 당연히 좋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목사가 되어야 하고, 이제 목회 할 만큼 했으니까 좋은 집에서 편안을 누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면 그것은 은혜를 모르는 어리석은 종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내 것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대로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종 된 자세가 아닐까? 주신 것 자체가 감사한 것이다. 누리고 있는 자체가 감사한 것이다. 이유는 누릴 자격이 없는 종으로 부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누가 차 없이 목회한다면 얼마나 어렵겠는가? 집 없이 단칸 지하방에서 6-7식구가 살면서 목회를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예배드릴 장소가 없어 이 교회 저 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드린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힘들고 어렵기에 우리는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당연히 좋은 차를 타야 하고, 좋은 예배당이 있어야 당연하고, 방 3개짜리 좋은 집에서 살면서 목회해야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결국 아닐 것이다.

주께서 아무리 작은 것을 주셨어도 그 주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라고 여기는 그 자세! 목사는 그 자세부터 출발해야 지금 누리는 것에 감격할 수 있는 목사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목사가 좋은 음식 먹을 수 있고, 좋은 차 탈 수 있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 심지어 TV 드라마도 볼 수 있고, 골프도 칠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큰 은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그런 종의 자세, 그 자세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지금 누리는 은혜가 은혜 된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나되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 15:10)

한준희 목사(뉴욕성원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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