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가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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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21-04-1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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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유럽'이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 신화 에우로페(Εὐρώπη)에서 왔습니다. 에우로페는 페니키아 공주로, 제우스가 흰 황소로 둔갑하여 그녀를 크레타섬으로 유괴 동침하여 자녀를 낳았고,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에우로페는 크레테 신화에 여왕으로 등장합니다. 후대에 에우로페는 그리스 중북부의 명칭이 되었으며 기원전 500년 경에는 그 의미가 북쪽 지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15세기 이후부터 유럽은 세계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펼쳐 식민주의를 시작하였습니다. 유럽은 16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점령 통치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발상지가 되어 철학 분야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델레스, 역사 분야에서는 헤르도토스, 투키디데스, 서사시 분야에서는 호메로스, 희극 분야에서는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의학 분야에서는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 과학 분야에서는 피타고라스, 에우클레이데스, 아르키메데스가 유럽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폴리스라고 부르는 도시 국가가 세워져 아테네는 세계에서 최초로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뒤를 이어 등장한 고대 로마는 법률, 정치, 언어, 기술, 건축 분야에서 유럽에 영향을 끼쳤고, 로마 제국이 수립된 기원전 27년에서 주후 180년까지 팍스 로마나를 통해 유럽의 정치적 안정과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였습니다. 주후 313년에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공인 했으며, 330년에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름을 바꿈)으로 옮겼고, 392년에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으며, 395년에는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었고, 476년에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였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는 수많은 민족이 옛 서로마 제국의 영역을 분할 지배하였으며, 962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이 등장합니다.
중세에 이르러 1054년에 동서 교회의 분열이 일어나 기독교는 비잔티움 제국의 동방 정교회. 옛 서로마 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로 분열되었습니다. 1095년에는 교황 우르바노 2세의 명령에 따라 이슬람 세력이 장악한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었습니다. 13세기와 14세기에는 몽골 제국이 동유럽을 침공하여 파괴하였고, 14세기에는 극심한 대기근과 흑사병의 확산으로 인해 유럽의 인구가 많이 감소하였습니다. 봉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서유럽의 몇몇 국가들에서는 왕권 강화를 위한 차원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습니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서는 백년 전쟁이 일어났고 1378년부터 1417년까지 로마 교황과 아비뇽 교황 사이에서는 서방 교회의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의 문화 분야에서는 고전 문화의 부흥을 의미하는 르네상스가 등장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예술가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있고, 종교 분야에서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전개하면서 교회의 힘이 약화 되었고, 루터의 종교 개혁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15세기에는 포르투갈, 스페인이 신대륙을 탐험하면서 신항로 개척에 나섰고, 1492년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1498년에는 바스쿠 다 가마가 동양으로 가는 해양 항로를 발견했습니다. 이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 네덜란드, 잉글랜드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과정에 나서게 됩니다. 16세기와 17세기 유럽의 과학 분야에서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이 등장합니다.
이어 18세기 유럽의 지식인 사회는 계몽주의 사상의 등장을 계기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귀족정, 성직자들의 권력 독점에 반감을 보이던 국민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데, 프랑스 혁명은 일반적으로 절대주의의 종식과 자유주의의 등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또한 지독하게 반기독교적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유럽 내에서 프랑스의 세력을 확장하고 프랑스 혁명의 사상을 전파했지만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전하면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1815년에는 유럽의 5대 강대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빈 회의를 개최하였고 이 회의는 유럽 내에서의 세력 균형을 형성하는 한편 유럽의 정치 질서를 반동주의, 보수주의 체제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였고, 유럽 내에서 반동주의, 보수주의에 대한 반감은 1848년 혁명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유럽 내에서 국민 국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였으며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도시의 빠른 성장, 생산량 증가, 인구 증가, 일자리 증가, 경제, 사회 분야의 개혁으로 이어졌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세 나라인 프랑스, 러시아, 영국과 유럽의 동맹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불가리아 왕국,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 진영이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차르 체제가 종식되었고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되었습니다. 1919년에는 독일에 중대한 제재를 부과하는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이 붕괴하면서 새로 독립한 국가들이 형성되어 유럽 국가 간의 경계선이 새로 확립되어 큰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1919년 독일에서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고 1922년 이탈리아에서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즘 정권이 수립되었습니다. 1929년에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을 계기로 유럽이 경제 위기를 겪던 중 1933년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게 되고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제2차 세계 대전은 전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에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 간의 냉전이 시작되어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여 냉전 시대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출발하여 현대까지의 서양 역사를 개괄하여 본 것은 서양인들의 가치관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일까를 짐작이라도 해보기 위함입니다. 유럽인들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친 철학과 사상과 문화와 정치와 역사적 사건들은 매우 복잡하여 뭐라고 규정 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는 거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와 법과 철학과 정치와 문학과 예술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그 후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왔지만 국가와 민족마다 법과 윤리와 금지와 허용 그리고 가치관이 서로 다르게 형성되었습니다. 그 국가들의 법과 윤리와 가치관은 비슷하기도 하지만 또한 서로 다른 것도 많습니다.
한 때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세속적인 것을 멀리하고 하나님 나라 가치관으로 유럽 역사와 서양 문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주도적으로 담당했던 나라들이 지금은 반기독교 문화를 주도적으로 받아들이고 허용하였습니다. 종교 개혁의 나라였던 독일은 히틀러 독재와 제국주의적 야망으로 전 세계에 엄청난 해악을 끼쳤고 신학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용납하여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전락시켰으며 신학을 교양 과목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이 국가 발전의 인프라가 되어 정치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입었던 네덜란드는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선도적(?)으로 동성결혼과 매춘을 합법화하였습니다. 어느 역사학자는 유럽 나라들의 법률과 윤리에 대한 그 나라들의 접근 태도의 차이점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지적하였습니다. <독일에서는 허용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금지되어있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허용되는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금지되어있는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나라 중 어느 나라도 성경과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금지와 허용을 적용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유럽을 비롯한 서양인들은 성경과 하나님을 그들의 마음과 삶에서 아주 멀리 밀어내 버렸고 하나님의 자리에 이성과 감성을 앉혀 놓았습니다. 이보다 훨씬 전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나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나 상황 윤리의 지배적 원리인 사랑도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상황 윤리의 사랑은 좀더 포스트 모던적인 옷을 입으면서 '다른 누구도 다치지 않는다면 그대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상관없다.'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법이나 윤리가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차원에서 원리가 설정되는 경우 감당할 수 없는 가치 질서의 혼란을 초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개인과 집단과 국가 간의 이익은 같을 수가 없고 상호 충돌하기 때문에 인간이나 국가의 이익보다 초월하는 절대 권위가 없는 상태에서는 결국 각자 좋은 것을 선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혼란과 무질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가치 질서의 혼란을 현대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너무나 심각하게 겪고 있습니다. 같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라도 개인에 따라 또는 정당에 따라 해석이 다릅니다. 경제 문제, 환경 문제, 복지 문제, 계발 문제, 인권 문제, 정의 문제, 외교 문제, 문화, 예술, 학문 등을 통제할 기준과 원리가 없어서 개인과 집단과 정당과 국가들의 설명과 정의가 다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당면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접근하도록 가르칩니다. 인간이 직면하는 문제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신학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전제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규정하고 원리와 규범을 찾습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활동과 그분의 목적에 무엇이든지 연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곧바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고 선한가를 알려주어 하나님의 뜻을 지향하게 하여 바른 가치 질서를 세워주고 바른 가치관을 갖게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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