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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과 평등의 문제5-그리스 로마의 노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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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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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이상국가론에서 교육적 구상을 이상적 국가 모델로 구체화하였습니다. 그의 이상적 국가는 인간 개개인의 영혼과 국가 공동체 생활의 질서가 동일한 법칙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조직되고 유지되는 국가입니다. 그러한 국가에는 세 계급의 인간이 존재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계급은 통치자 계급으로 통치자에게 요구되는 덕은 지혜이고, 제2계급은 군인으로 용기의 덕이 요구되며, 제3계급은 생산계급으로 절제의 덕이 요구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의 이상 국가에서 정의란 모든 사람이 각각 자기의 일을 하고 분주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자유인과 노예로 구분하였습니다. 노예들은 기본적으로 가사 일이나 농사일이나 수공업 작업장에서 종사하였고 때로는 힘든 노동이 필요한 어디서든지 일하였습니다. 광산이나 군사 작전을 위한 도로 건설이나 무기를 생산하거나 배에서 노를 젓는 일에 많은 노예가 사용되었습니다. 100미터가 넘는 지하 광산에서 노예들의 유골과 족쇄 등이 발견된 것을 보아 노예들의 노동 조건이 어떠했을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예들은 거의 전쟁 포로들이었습니다. 전쟁 포로가 많을 때는 한꺼번에 2만여 명의 포로들이 노예가 되어 그리스 각지로 팔려나갔습니다. 노예의 숫자가 많을 때는 10만여 명의 노예들이 존재하였고 그리스의 거의 모든 가정은 한두 명의 노예를 소유하였다고 합니다. 물건처럼 팔고 사는 노예가 주인으로부터 인격적인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주인은 합법적으로 노예를 때릴 수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는 '살아있는 도구'로서 주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법정은 노예에게 고문을 가해서 얻은 증거를 합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스에서 노예들이 받은 대우는 주인에 따라 천태만상이었습니다. 성품이 좋은 주인의 노예는 오늘날의 고용인처럼 대우를 받기도 하였고 특별한 경우는 가족처럼 대우받는 노예도 있었습니다. 초기의 노예는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할 수 없었으나 후에는 자유인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전공에 따른 보상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인을 위해 힘든 노동만을 하던 노예가 자유인과 함께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전리품을 나누어 갖는 보상까지 받게 된 것은 노예의 사회적 대우가 향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예들은 자유인이 될 수 있었고 심지어 노예의 신분으로 고위직에 종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노예는 자유인은 아니었습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노예제는 인간 차별과 불평등을 상징적으로 제도입니다. 그리스의 아테네는 사람들에게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학문적으로는 철학의 도시로 관심의 대상이 되어 노예제와 같은 어두운 면은 무시되었습니다. 동서양의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그리스의 노예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회피하였습니다. 어느 나라의 지도자나 기득권자들도 노예제 노동의 이득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노예 노동이 경제 발전에 무시할 수 없는 인프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학자나 종교인들까지 노예 소유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로마도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았습니다. 노예제는 1세기 로마 제국에 널리 퍼져 있는 사회 구조였습니다. 사실, 그 당시 노예제는 너무나 당연하여서 아무도 노예제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노예들은 로마가 정복한 나라에서 포로로 잡아 온 이들이기 때문에 나이, 성, 인종, 학문,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계층 출신으로 구성된 노예들은 고대 로마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 경제적 계층을 구성했습니다. 로마 제국 인구의 대략 5분의 1이 노예였습니다. 주후 2세기 초반에는 로마의 노예가 1,200만명에 달했습니다. 당연히 로마 제국의 경제는, 숙련된 노예노동력과 비숙련 노예노동력을 포함하여 상당히 풍부한 인적자원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 초기에는 그리 많지 않은 노예가 군사 정복을 통하여 공급되었으나 제국의 경제가 확장해 감에 따라 노예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책적으로 더 많은 전쟁 포로들을 잡아와서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러다가 주후 1세기쯤에는 노예들 대다수가 노예로 태어난 노예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유를 경험해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유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노예가 광산이나 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하였고 주인이 세운 십장이나 감독관들의 관리를 받았습니다. 시골이나 광산 노예들보다 도시 노예들의 일일은 비교적 더 수월했습니다. 노예들은 자신이 훈련받은 분야나 또는 주인의 요구에 따라 가정 안팎에서 수많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교사, 요리사, 상인, 의사에 이르기까지, 노예들은 다양하고 광범위한 직업에 종사하였습니다. 옷이나 외모를 보아 노예인지 자유인인지 판단할 수 없는 노예들이 많았습니다.

노예들이 감당하는 책무만으로는 노예라는 신분을 판단할 수 없을만큼 중요한 직책을 맏은 노예가 많았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자유인보다 뛰어난 능력과 실력을 갖춘 노예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가정에서 섬기는 노예들은 주인과 좀 더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노예들에 비해 더 존중받았습니다. 그들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주인의 자녀들을 돌보는 일에서부터 주인의 집을 관리하거나 주인이 운영하는 사업의 이익을 관리하는 것까지 가족들의 삶의 모든 부분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정직하지 않거나 성실하지 않은 노예는 주인의 복지에 심각한 손해를 끼칠 수도 있어서 아주 큰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교활한 주인은 노예의 성실한 노동과 순종을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으로 자유를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노예는 주인의 훌륭한 자산이었고 그러한 노예는 언젠가는 그 보상으로 자유를 얻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친절하고 존경받는 주인을 둔 노예들은, 상당한 수준의 사회 경제적인 보호를 받기도 했고 자식으로 입양되어 유산을 물러받기도 하였습니다. 노예들은 의식주를 걱정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주인은 노예들의 필요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또한, 주인이 정부와 공무원과 같이 지역사회에서 명망이 있거나 능력 있는 사람인 경우, 그의 노예들도 존중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세기 노예제도를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합니다. 노예가 된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주인에게 전적으로 예속된 소유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칙적으로 노예는 아무런 권리도, 어떤 법적 자격도 없었고 주인이 소유한 움직이는 재산이었습니다. 따라서 노예의 복지는 전적으로 주인의 자비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까다롭고 몰인정한 주인이 소유한 노예들은 비참한 삶을 견뎌야 했고, 합리적이고 자비로운 주인의 노예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았습니다. 한 노예의 삶의 질은 전적으로 주인 가족의 관습과 주인이 운영하는 사업과 주인이 속해 있는 독특한 사회 계층과 주인의 인격에 달려 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제국 안에서 노예의 삶은 노예들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했습니다. 노예들이 들판에서 일하든 도시에서 일하든 간에, 노예들이 농부가 되든지 가정 총무가 되든지 다른 어떤 임무를 수행하든지 간에, 언젠가 자유를 얻게 되든지 얻지 못하든지 간에, 매일의 삶의 질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모든 것은 주인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모든 노예의 주인은 자기가 소유한 노예들의 삶을 규정했습니다. 노예들의 존재 목적은,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순종함으로써 모든 면에서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약에서 노예제를 언급하는 경우는 그리스와 로마의 관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노예가 히브리 노예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공통점도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와 로마와 이스라엘은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았습니다. 전쟁 포로로 노예가 되었거나 가난으로 노예가 되었거나 노예의 자녀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들 중에는 상당한 지성을 소유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음악가, 정부 관리, 철학자, 시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주인들은 종종 자신들의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노예는 자신의 자유를 살 수도 있고 다른 이가 그를 위해서 대신 값을 지불해 줄 수도 있었습니다. 혹은 노예가 특별한 봉사를 했을 때 그 보상으로서 자유롭게 해 줄 수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노예들에게 진심으로 주인들에게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엡 6:5-9; 참고 골 3:22-4:1). 베드로는 이에 더해서“선하고 관용하는 자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벧전 2:18)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불의하게 당하는 고난의 유익을 강조한 것입니다. 고난의 유익과 복종을 연결하며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보기로 제시합니다(벧전 2:21-25). 여기서 베드로와 바울은 노예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반역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7:21에서 비록“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상태에서 자족할 것을 권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주인들에게도 명령하고 있습니다. 친구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친구의 도망친 노예이며 최근에 기독교인이 된 오네시모를 받아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진 빚은 무엇이는 자기가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몬 16 절)받아 주라고 권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기독교인들의 형제 사랑이 노예제를 초월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상전들을 꾸짖은 것은 노예제도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9에서 그는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법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엡 6:9; 참고 골 4:1)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와 같이”란 에베소서 6:7에서 말한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섬기는 지도자의 원칙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섬기는 자이고 주인 역시 섬기는 자입니다. 그 모범이 바로 주님 자신입니다. 따라서 노예의 주인은 노예를 위협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의 이러한 가르침은 노예제 자체를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위협이 없는 노예제는 노예제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임금을 받고 고용된 종과 노예를 구분하는 특징 중의 하나는 주인이 노예를 때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그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때릴 수 있다는 지속적인 위협입니다. 섬기는 지도자라는 개념을 노예제에 적용 해 보면 주인과 노예의 역할은 거의 뒤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신약 전체의 가르침은 그리스와 로마 노예제의 폐지를 항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 가운데도 노예를 섬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노예를 자식처럼 대하는 이들은 노예제 폐지를 지향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노예제 폐지를 위해 정치력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할 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노예제를 폐지한 것은 어떤 철학이나 사상이나 세속적 평등주의가 아니라 복음이었습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엡6:9).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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