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터가 흔들리고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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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22-11-1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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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연설은 이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범위를 넘어 서방과 문명의 전쟁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논조였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르 피가로가 10월 19일 자에서 푸틴 대통령의 연설을 비판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서방의 퇴폐 사조를 비난하는 저의가 따로 있다는 식으로 비판하였습니다. LGBT, Woke등 유럽과 미국의 사조를 사탄주의로 가정하고 공격했으며 그 목적을 숨기고 과격한 비방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르 피가로의 평론을 접한 독자들의 반응은 거의 푸틴 대통령을 옹호했으며 가족, 종교, 애국심에 관한 푸틴의 전통적인 견해에 적극적인 지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르 피가로는 푸틴 대통령이 그런 연설로 서구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려 시도했으며 그 영향력을 유럽,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에 확장하려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르 피가로의 논조에 동조하지 않는 독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실 미국이나 서구의 퇴폐는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이며 이로 인한 서구의 쇠락이 위협적이라는 지적이 여러 곳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푸틴이 어떤 불온한 의도를 가지고 그런 연설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그가 연설할 때마다 서구에 의해서 인류의 보편 가치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음을 보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푸틴은 서구의 지도자들이 자기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는데, 이는 소름이 돋는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나는 푸틴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가 바리새인들처럼 위선자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마 23:3)고 하셨으니 우리는 서구의 지도자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없는 가르침을 푸틴의 연설을 통해서라도 받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의 대통령에게 들어야 할 교훈적 연설을 러시아 대통령에게 듣는다는 것이 슬프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실 푸틴은 러-우 전쟁이 일어나기 오래전인 2013년 발다이 포럼((Valdai Discussion Club)에서도 많은 유럽 대서양 국가들이 서구 문명의 기초를 형성하는 기독교적 가치를 포함해 그들의 뿌리를 버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존의 도덕 원칙, 그들의 민족적, 전통적, 문화적, 종교적 심지어 성적 정체성까지 모두 내다 버리고 있다고 심각하게 지적하였습니다. 2019년에도 푸틴 대통령은 LGBT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에게 "강제"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유럽을 비난했습니다. 특히 그는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자유주의 사상의 대표자들은 학교에서 특정 유형의 성교육을 강요한다고 말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2021년 발다이 포럼에서 서구가 애국심과 가족을 파괴하든 말든 그것은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러시아에 수출하려 하지는 말라고 경고하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푸틴의 이러한 연설이나 주장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나는 느낍니다. 목사님들에게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기독교 가치에 대한 예리한 지적과 교훈을 서방 언론이 악마로 취급하는 러시아 대통령에게서 듣는다는 것이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합니다.
정말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처럼 푸틴의 주장은 받되 그의 행위는 본받지 말아야 하는지 아니면 그의 행위도 본받아야 하는지 확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러-우 전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민스크 협정은 알아야 합니다. 민스크 협정은 2014년 9월 5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도네츠크 공화국, 루간스크 공화국 사이에 서명한 돈바스 전쟁의 정전 협정입니다. 이 협정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 아래 벨라루스의 민스크에서 체결되었습니다. 이 협정은 기타 돈바스 전쟁의 여러 협정과 마찬가지로 즉시 정전이 발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협정은 돈바스 전쟁을 완전히 멈추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돈바스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돈바스 분리독립을 바라는 반정부군 간의 전쟁입니다.
2014년 3월 초 우크라이나 혁명과 유로마이단 운동의 여파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등 동부 지역에서 친 러시아 시민들이 시위를 일으키고 반정부 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시위는 러시아의 크림 공화국 합병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남동부 지역의 대규모 친 러시아 시위로 발전했으며, 이후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간스크 공화국이 분리독립을 제창하며 독립함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와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동부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계속되다가 2014년 9월 5일에 민스크 협정을 통해 휴전하였으나 산발적인 충돌이 계속되다가 2015년 2월 15일에 2차 민스크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협정 규정은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14년 1차 민스크 협정이 있고 난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에 경제적 제재와 폭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차 민스크 협정이 있는 이후 지난 8년간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의 러시아계 민간인 1만 4천여 명이 신나치주의를 표방하는 아조프대대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독일 파시스트들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실패한 원인을 배후중상설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독일 제국이 무너진 것은 독일군이 연합국에 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독일 내부에서 사보타지를 일삼던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를 내세우며 지도부에 유대인이 많은 소련에 대해 유달리 적대적이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전쟁 목적에는 인종주의적 우월감이 작용한 것입니다. 히틀러의 독일 나치는 인종적으로 우수한 게르만족만이 살 가치가 있고 유대인을 비롯한 슬라브족은 열등한 인종이기 때문에 청소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독일 나치군은 이러한 확신으로 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에 군인과 민간인 그리고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고 인종청소를 하였기 때문에 비록 소련에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치군들이 지나간 모스크바 서쪽에서 400만 명 이상의 러시아인들이 죽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400만 명 이상의 러시안들이 증발했다고 표현되었습니다. 이러한 나치의 인종주의적 광기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고 이어가는 신나치주의자들이 바로 그 악명 높은 아조프대대입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했을 때 반러시아 적대감과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우크라이나 신나치주의자들이 재결집하여 정당을 세웠는데 그 정당이 우크라이나 사회민족당(Social-National Party of Ukraine)입니다. 이 신나치주의 정당은 1995년에 전 우크라이나 연합 ‘자유’(ALL-Ukrainian Union Freedom)로 당의 간판을 바꿔 달았는데 이를 '자유당'이라는 약칭으로 부릅니다. 대표적인 신나치주의 인물로는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 최고 의회 라다 의장이었던 안드리 파루비, 검찰총장 대행이었던 올레 막니츠키, 자유당 의장인 올레 티아니복, 파시스트 정당인 우익진영 대표였던 드미트로 야로시 등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신나치주의 세력은 2014년 5월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 안에 아조프 특수작전대(일명‘아조프대대’)라는 명칭의 신나치주의 민병대를 창설합니다. 주목되는 것은 미 국방성이 우크라이나에 특수전사령부 소속 장교들을 비밀리에 파견하여 신나치주의 민병대인 아조프 대대의 군사훈련을 지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으로부터 군사훈련을 받는 신나치주의 민병대 즉 아조프대대가 2014년 민스크 협정 이후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간스크 공화국을 침공해 두 공화국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주민을 지속해서 집단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이호르 테뉴크와 미하일로 코발도 신나치주의자였습니다. 그러다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아조프 대대원들과 지지자들에 대한 통제가 안 되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살인, 강간을 저지른 이들을 감옥에 가두었는데, 젤렌스키 정부가 2022년 2월 27일 군부대 경력이 있는 죄수들을 석방해 군대에 투입하기로 하면서 이들이 풀려났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처럼 미국과 나토를 등에 업고 아조프대대를 우크라이나군으로 인정하며 러시아를 도발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도네츠크 공화국, 루간스크 공화국, 프랑스, 독일과 맺은 평화 협정인 민스크 협정을 무시하고 그 두 지역에서 러시아계 민간인들을 대규모로 학살하였고, 러-우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는 대규모 군대를 돈바스 지역에 집결시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민간인들을 공공연히 차별하며 폭력과 강간과 살인을 일삼았습니다. 신나치주의자들로 구성된 아조프대대를 정규 군으로 받아들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에 의해 금방이라도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간스크 공화국이 무력으로 점령될 것 같은 위기감이 고조되자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특별 군사작전을 결심하게 되어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도록 신나치주의자들과 젤렌스키를 뒤에서 부추긴 것은 미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우크라이나는 미국을 대신하여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전쟁을 일으킨 것인지는 확정하기가 간단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역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끝내려고 노력하지 않고 있습니다. 끝낼 수 있는 전쟁을 끝내지 않고 계속하여 단기간에 이렇게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을 미국과 전 세계에 끼친 적이 과거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정체성을 해체하여 가치 질서를 허물고 경제를 망가뜨려 세계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정책들과 전쟁에 대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모든 합법적 방법을 통해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1-13).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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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ㅂㄷㄱ두번째 깨달음: 우리는 종종 무엇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잘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뭔가 얻고 싶은 것이 있을때 기도합니다. 저도 기도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혹은 바라는 것이 있을때 했습니다. (사실 그나마 안했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만일 "기도"자체가 목적이라면요? 기도를 잘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기도를 잘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경건한 생활을 해야한다면요? 그게 저희 목사님의 가르침이자 저의 두번째 깨달음입니다. 목사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설교를 듣고 깜짝 놀랐고 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쓴 "첫번째 깨달음"에서 저는 예수님과 이 땅에서 친밀하게 교제하지 않고 어떻게 죽어서 갑자기 예수님께 친한척 할수 있냐고 썼었지요. 근데 이 땅에서의 친밀한 교제가 무엇입니까? 더 자주 이야기 나누지 않고 어떻게 친할 수 있나요? 하나님과 이야기 나누는 것, 이게 기도 아닌가요? 즉 기도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고 기도가 막힐까봐 나쁜 유혹을 뿌리치고 기도를 잘 하기 위해 더 성경공부하고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소통하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물론 어떤 목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 자식이 나와 시간보내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용돈을 받기 위해 "할 수 없이" 대화하고 곤란하거나 급한 일이 있을때만 저에게 연락하거나 "아버지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대화법"같은 책만 읽는다면 아버지로서 제 마음이 어떨까요? 사랑해서 다 채워주긴 해도 그 이상의 기쁨이나 교제의 친밀함은 덜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물론 매일의 양식을 위해 기도하고 감사하고 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기도 자체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또한 알고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두번째 깨달음이었습니다. (다른 곳에 썼던 댓글을 이곳에 옮겼습니다. 양해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