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개신교 문 앞에 선 '사순절'이라는 낯선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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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2025-04-0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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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사순절에 대한 미국의 복음주의 진영의 다양한 의견 “사순절은 비성경적 주장 vs 미국 복음주의 의견들”을 소개한 바 있다. 비슷한 흐름의 기사가 눈길을 끈다.
사순절(Lent)은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까지 40일 동안 이어지는 기독교 절기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성공회, 루터교 등에서는 이 기간 금식과 절제,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부활절을 준비했다.
▲사순절을 지키지 않았던 미국의 일부 보수 개신교인들 사이에서 이를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AI생성사진)
그런데 최근 성경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역사적으로 사순절을 지키지 않았던 미국의 일부 보수 개신교인들 사이에서 이를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고 한 매체가 소개했다. 이는 교단 내에서 흥미로운 논의를 촉발했다.
역사적으로 1620년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사순절을 지키지 않았다. 이후 다양한 교파가 유입되며 사순절의 영향력도 생겨났지만, 보수 개신교, 특히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예배의 규정적 원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성경이 명시적으로 명령하거나 규정한 것만 예배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성경에 직접 언급되지 않은 사순절 준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복잡한 교회력보다는 '주일' 중심의 단순성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정통장로교회(OPC) 등은 이러한 신학적, 역사적 이유로 가톨릭교회의 교회력을 따르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사순절 자체가 성경에 직접 등장하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사건이나 성경 전체에 흐르는 회개, 자기 성찰, 경건 훈련이라는 주제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일부 보수 개신교인들이 사순절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더 깊은 영적 훈련을 통해 신앙의 성장을 추구하고, 수천 년간 이어져 온 기독교의 역사적 실천과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이 작용한 것이다. 실제로 일부 PCA(미국장로교) 교회에서는 공동으로 재의 수요일 예배를 드리고 이마에 재를 바르는 예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이 아직 미국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라이프웨이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사순절을 어떤 형태로든 지킨다고 답한 미국인은 전체의 26%에 불과했다. 이는 갤럽 조사에서 매주 또는 거의 매주 종교 예배에 참석한다고 답한 미국인 비율(2023년 기준 31%)보다도 낮은 수치다. 즉, 사순절은 여전히 다수의 미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거나 '관심 밖의' 절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사순절이 과거보다 더 많이 회자되고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선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을 꼽는다. 유명인들이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바른 사진을 올리거나 자신의 신앙 여정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졌다.
또한, 교파를 넘어 많은 그리스도인이 사용하는 신앙 앱 'Hallow'나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인기 드라마 'The Chosen' 같은 미디어 콘텐츠 역시 사순절 전통과 그 의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보수 교단 내 목회자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한 목회자는 사순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상처 입은 세상을 위한 애통의 공간을 열어주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겠다는 우리의 헌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하는 연례 피정과 같은 선물"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목회자는 "단지 전통을 행함으로써 죄책감을 덜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하며, 모든 신앙의 실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며, 형식적인 전통 준수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결국 현실에서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흐름을 소화하고 있다. 교회 차원에서 사순절 준수를 강제하거나 공식적으로 장려하지는 않더라도, 교회력에 맞춰 설교 본문이나 찬양을 선택하는 식으로 느슨하게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교인 개개인이 영적 성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금식하거나 무언가를 절제하는 개인적인 경건 훈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자랑하거나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한 대체로 용인되는 분위기다. 이는 오랜 신학적 원칙과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신앙의 의미를 찾아가는 개인들의 고민과 선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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