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인가" 추수감사절의 본질과 '기억상실의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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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2025-11-2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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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추수감사절이 4600만 마리의 칠면조 소비와 쇼핑 시즌으로 전락했다. 네이선 핀 교수는 이를 '기억상실의 오만'이라 지적하며, 성경적 원형 회복을 강조한다. 1621년 청교도의 역사와 성경적 감사를 되새기는 '기독교적 기억자'가 되어야 할 때다. 상업주의 너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성숙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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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과 식욕에 밀려난 감사의 본질을 회복하고 성경적 기억자가 되어야 한다. (AI사진)
이번 주, 미국 전역에서 하루 동안 소비될 칠면조는 약 4,600만 마리에 달한다. 전체 미국인의 80%가 식탁에 칠면조를 올리는 이 거대한 축제는 일견 풍요로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공허한 질문이 남는다. 과연 우리는 칠면조와 풋볼, 그리고 이어지는 블랙 프라이데이의 쇼핑 광풍 외에 무엇을 기념하고 있는가. 단순한 미식의 향연으로 전락해버린 추수감사절의 풍경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영적 좌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스그린빌대학교 신앙과 문화 연구소장 네이선 핀(Nathan A. Finn) 교수는 최근 WNG 칼럼을 통해 추수감사절이 상업주의의 포로가 된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1939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쇼핑 시즌 확보를 위해 감사절 날짜를 앞당기려 했던 시도는 오늘날 11월 초부터 시작되는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로 완성되었다. 핀 교수는 "오늘날 추수감사절은 크리스마스 쇼핑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정도로 전락했다"며 현대 미국 사회가 감사의 본질보다 소비의 쾌락에 함몰되었음을 비판했다.
성경적 세계관이 스며든 역사
추수감사절은 교회 절기인 부활절이나 성탄절과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속적인 휴일로 치부할 수도 없다. 1621년 청교도들과 왐파노아그족이 함께했던 첫 추수감사절, 1789년 조지 워싱턴의 선포,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의 국경일 지정 등 역사의 변곡점마다 이 날은 성경적 세계관과 깊게 맞닿아 있었다.
핀 교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모두 정통 기독교인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들은 유대-기독교적 도덕 가치를 긍정했으며 시민들이 기독교적 미덕을 갖추는 것을 선한 일로 여겼다"고 설명했다. 즉, 추수감사절은 단순한 수확의 기쁨을 넘어 신적 존재에 대한 겸허한 인정을 바탕으로 세워진 날이다. 이는 골로새서와 시편 등 성경 곳곳에서 강조하는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명령과 맥을 같이한다.
'기억상실의 오만'을 넘어서
문제는 우리가 이 기원을 잊었을 때 발생한다. 핀 교수는 교회사학자 티모시 조지의 표현을 빌려 이를 '기억상실의 오만(arrogance of amnesia)'이라 명명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다른 누구보다 낫다고 가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감사의 대상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성취에 도취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진정한 추수감사절은 이 오만에 대한 저항이다.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닌 영적 성숙의 증거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약 1:17)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칠면조 요리를 즐기고 풋볼 경기를 시청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핵심은 그 모든 풍요 속에서 18세기 성공회 목사 앰브로스 설이 말한 '기독교적 기억자(Christian remembrancers)'가 되는 것이다.
핀 교수는 "기독교적 방식으로 추수감사절을 기념한다는 것은 쇼핑을 금지하거나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대신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 그리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의도적으로 기억해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거의 은혜에 감사하고, 현재의 은혜에 감탄하며, 미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 그것이 칠면조와 쇼핑백 사이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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