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성 목사 웨일즈 방문기 (3) 모리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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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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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1904년 웨일스 대부흥 진원지 모리야교회. 이반 로버츠의 간절한 기도로 시작된 부흥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계로 확장됐다. CRC 목회자들은 과거 영광과 현재 침체를 보며, 기도를 통한 새 부흥의 역사를 소망했다.
39회 CRC 한인목회자협의회(Korean Ministers Association: KMA) 총회/컨퍼런스가 2025년 4월 28일부터 5월 3일까지, 영국 웨일즈에서 열렸다.
꺼지지 않는 부흥의 기억을 찾아
모리야교회. 1904년 웨일스 대부흥의 심장과도 같은 이곳은 방문하는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최근 정주성 목사 등 CRC 한인 목회자들이 이곳을 찾아 그 시절 뜨거웠던 성령의 역사를 되짚었다. 교회 입구에 선명한 "1904년 웨일스 부흥 발상지(Birth Place of The 1904 Welsh Revival)"라는 문구는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전달했다.
정주성 목사는 교회의 독특한 이름, "칼빈주의 감리교 예배당(웨일스 장로교회 소속)"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이는 신학적으로는 칼빈주의를 따르면서도, 감리교도와 같은 뜨거운 신앙생활을 추구하며, 교단적으로는 장로교에 속해 있었던 당시 웨일스 교회의 신앙적 역동성과 포용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교회에는 부흥의 주역 이반 로버츠 기념비와 그가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며 부흥의 불씨를 지폈던 예배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백의흠 목사는 영국 하노버교회에서 스완지 시에 위치한 모리야교회까지 한 시간 남짓 이동했던 여정을 전했다. 평지가 많은 잉글랜드와 달리 산이 많은 웨일스의 지형은 마치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포코노 산맥을 연상시켰다고 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모리야교회에서 일행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부흥의 산증인, 그날의 기억을 전하다
교회에 도착한 방문객들을 맞이한 이는 백발의 한 할머니였다. 자신을 조부 세대부터 3대에 걸쳐 100년 넘게 모리야교회를 섬겨왔다고 소개한 그녀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이반 로버츠로부터 시작된 영적 부흥운동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녀의 열정적인 설명은 한 시간가량 이어졌으며, 특히 광부들이 어떻게 변화되고 영적 부흥을 경험했는지에 대한 증언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반 로버츠는 웨일스의 작은 탄광 마을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경건한 신앙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그는 "삶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싶다"는 뜨거운 소망을 품고 있었다. 당시 웨일스는 뛰어난 복음 전도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깊은 침체에 빠져 있었는데, 로버츠는 이를 안타까워하며 10년 이상 간절히 부흥을 위해 기도했다.
1904년 봄, 어느 금요일 밤 로버츠는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 그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굴복했으며,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평강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이 체험 이후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믿지 않는 영혼들을 향한 깊은 긍휼을 느끼기 시작했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리기로 결단했다.
"주여, 나를 굴복시키소서!"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다
캐서린 조 CRC 목사는 부흥의 도화선이 되었던 특별한 순간을 언급했다. 1904년 9월, 한 집회에 참석한 26세의 청년 로버츠는 "주여, 나를 굴복시키소서(Bend me, O Lord)!"라고 간절히 부르짖었다. 이후 그는 고향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고, 그가 소수의 청년들과 함께 기도하던 중 한 자매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자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을 사로잡았다. 그날 밤 기도는 밤새도록 이어졌고, 이것이 웨일스 전역을 뒤흔든 대부흥의 시작이었다.
이반 로버츠의 심령에서 시작된 부흥의 불길은 삽시간에 웨일스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불과 30일 만에 3만 7천 명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으며, 단 5개월 만에 10만 명의 웨일스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경이로운 역사가 펼쳐졌다. 온 웨일스 땅이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을 경험하며 변화의 물결에 휩싸였다.
교회마다 예배당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고, 기도 모임은 교회뿐 아니라 탄광, 공장 등 삶의 현장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열렸다. 술집의 매상은 급감했고, 사람들의 언어와 생활 태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일터에서 욕설이 사라지고 고운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축구 선수들마저 경기 대신 기도 모임에 참석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세계를 뒤흔든 웨일스의 영적 각성
웨일스에서 타오른 부흥의 불꽃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반 로버츠의 기도처럼, 이 영적 각성의 소식은 인도,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1907년 한국의 평양 대부흥을 비롯한 세계적인 부흥 운동을 촉발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작은 탄광촌에서 시작된 한 청년의 기도가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위대한 역사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모리야교회 앞에는 이반 로버츠의 얼굴 부조가 새겨져, 그 시절의 뜨거웠던 부흥을 기억하고 사모하는 교회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러나 한때 거대한 영적 부흥이 일어났던 이 땅은 이제 그 영광의 시기를 기억하는 소수의 노인들과 텅 빈 교회 건물들만이 남아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방문한 목회자들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백의흠 목사는 "지금 웨일스의 신앙 상태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재의 영적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드러냈다.
이번 CRC 목회자들의 모리야교회 방문은 단순한 역사적 장소 탐방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절실함을 깨닫게 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반 로버츠라는 한 청년의 진실된 헌신과 "주여, 나를 굴복시키소서"라는 간절한 기도가 한 시대를 변화시켰듯, 지금 이 시대에도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성도들의 기도와 순종을 통해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쓰여질 수 있음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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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성 목사 웨일즈 방문 시리즈
정주성 목사 웨일즈 방문기 (2) 하노버교회(토마스 선교사)
정주성 목사 웨일즈 방문기 (7)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
정주성 목사 웨일즈 방문기 (8)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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