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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혔지만 중요했던 인물: 로버트 슐러 목사의 유산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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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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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수정교회와 '능력의 시간(Hour of Power)' TV 방송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렸던 로버트 슐러 목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유리 교회는 그의 성공 상징이었다. 하지만 2010년 교회 파산 후 그의 이름은 점차 잊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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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 교회 파산 후 그의 이름은 점차 잊혀 갔다.(AI 생성사진)
 

최근 사회학자 제라르도 마르티 교수는 그를 '지난 세기 가장 중요했던 잊힌 종교 인물'이라 평가하며 재조명했다. 그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잊힌 종교 지도자”라 말하며, 동료 마크 멀더와 함께 슐러 전기를 출간했다는 소식이 저자가 교수로 있는 대학의 뉴스란에 올라왔다. 

 

제목은 “The Church Must Grow or Perish”, 말 그대로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슐러의 목회 철학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교회 확장 전략이 아니라, 급변하는 시대에 대한 대응이었다.

 

슐러 목사가 남긴 현대 목회 사역의 틀은 오늘날 많은 교회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매력적인 설교가이자 이야기꾼이었지만, 단순히 설교만 잘하는 목회자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행정가, 모금가, 전략 기획가였으며, 교회라는 기업 전체의 얼굴 역할을 했다. 사역의 마케팅과 브랜딩 감각이 뛰어났고, 조직 운영과 재정 관리 능력도 탁월했다.

 

그의 교회는 성장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그는 "교회는 성장하지 않으면 소멸한다"고 믿으며,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발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맞춰 재정을 공격적으로 운영하며 대출과 건축을 감행했다. 이제 대출, 기부금 잔액과 관련하여 자본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것은 거의 모든 목회 사역 경력에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그의 현대성은 그가 지은 예배당에도 반영되었다. 남부 캘리포니아에 처음 지은 교회는 차 안에 있는 교인과 좌석에 앉은 교인 모두를 수용했다. 버튼 하나로 큰 유리 패널을 열어 두 회중에게 동시에 설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성과는 단연 수정교회였다. 건축가 필립 존슨과 함께 설계한 이 건물은 건축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구조물 중 하나로 꼽힌다.

 

수정교회 건축 자금 마련 방식 또한 혁신적이었다. 그는 1만 개가 넘는 유리창 하나하나에 500달러를 후원하고 이름을 새기도록 제안했다. 이는 평신도들이 이 엄청난 사업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또 한 번은 공사 중 자금 압박에 시달리자, 안전모를 쓰고 손수레를 동원해 "오늘 백만 달러를 모으는 것이 목표"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그날 목표액을 훌쩍 넘는 헌금을 모았다.

 

그는 최초이자 가장 성공적인 TV 복음 전도자 중 한 명이었다. '능력의 시간' 방송은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도달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명성을 얻었던 다른 유명 TV 설교자들과 달리, 그는 큰 성적이거나 재정적인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았다. 자신의 이미지와 글로벌 플랫폼 구축에 매우 신경 썼으며, 명성과 영향력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가 잊힌 이유는 무엇일까? 

 

로버트 슐러 목사를 향한 신학적인 비판은 주로 그의 메시지 내용에 집중되었다. 많은 비평가들은 슐러 목사가 설파한 '적극적 사고방식(Possibility Thinking)'이나 '자존감 신학'이 성경의 핵심 진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긍정적인 면과 잠재력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죄의 심각성, 회개의 절박함, 십자가의 대속과 같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가 상대적으로 경시되거나 왜곡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이로 인해 그의 메시지가 세속적인 성공주의나 심리적 위안에 치우쳐, 복음의 깊고 본질적인 변화의 능력을 간과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그의 목회 방식과 그로 인한 결과 역시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교회의 양적 성장과 외형적인 성공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듯한 모습, 그리고 이를 위해 마케팅, 브랜딩, 대규모 건축 및 모금 활동 등 세속적인 기업 경영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이 '비성경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상징적인 건축물인 수정교회는 그의 성공 신화의 정점이었지만, 동시에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겨주었다.

 

결국 교회가 파산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면서, 그의 성장 중심적이고 때로는 과시적으로 보였던 목회 방식이 단지 재정 운용의 실패를 넘어, 그가 추구했던 목회 철학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라는 강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마르티 교수는 그의 사역 동기와 방식을 이해하면, 그가 만든 틀이 오늘날 교회 지도력에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름은 잊혔을지 몰라도, 그의 방식은 현대 교회의 일상적인 사역 속에 깊숙이 '흡수되어' 살아 숨 쉬고 있는 셈이다. 미국교회에 미친 그의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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