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이야기, 설교의 예화로 적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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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7-05-22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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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탈봇신학교의 도널드 스누키안 교수는 설교의 예화로 사용하는 경우는 설교의 내용과 흐름을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뉴스미션
교 인들이 목사의 설교에 불만을 갖는 요인 중 하나로 예화를 자주 거론한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설교에서 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가령 설교를 마친 후 교인들은 종종 설교 내용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인상적인 예화는 또렷하게 되살려내 설교의 내용을 재구성하는 기둥이 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를 사장(死藏)시키기도 하는 반면 생생하게 재현시키는 역할을 한다.
설교학 교수로 명성을 얻고 있는 美탈봇신학교의 도널드 스누키안(Donald Sunukjian) 교수는 최근 저서 <성경적 설교에로의 초대 Invitation to Biblical Preaching>를 통해 성경 속의 이야기(Narrative)를 설교의 예화로 사용하는 경우는 설교의 내용과 흐름을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설교를 통해 성경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예화가 필요하다 싶을 때면 설교자들은 언제나 성경에서 나타난 이야기, 가령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하게 역사하신 요셉의 이야기나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사람들을 위한 엘리야의 이야기 등 성경 속의 이야기에 쉽게 집중하게 된다. 스누키안 교수는 이 책에서 설교에서 이러한 습관이 정말 유효한 것인지, 그러한 성경 속의 예화가 진정으로 설교에서 효과적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성경의 이야기, 예화가 아니다?
하나의 성경 속의 이야기를 가르치는 것이 적절하려면 바로 그 이야기가 설교에서 1차적이고 근본적인 메시지가 되어야 하며 단순히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끼워넣는 식의 부차적인 예화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 시리즈 설교에서 다뤄야지 로마서 8장 28절, 다시 말해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를 설교하면서 거기에 대한 예화로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 속의 예화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교인들의 일상의 삶을 그려내는 데 그렇게 도움이 되거나 효과적이지 못하며 따라서 이러한 방식으로 예화를 사용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스누키안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우선 성경 속의 사건이나 상황은 일반적으로 교인들의 경험과 동떨어진 것이며 교인들은 이러한 성경 속의 이야기가 하나님이 어쩌면 그렇게 하셨을 지도 모를 다른 시대, 우리와 맞지 않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들은 오늘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리얼한 삶real life’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청중들이 자신의 삶과 관계를 맺기에는 힘든 경험들이라고 강조한다.
이야기는 문맥에서
두 번째로, 설교자들은 종종 성경의 이야기가 다른 별개의 메시지에 적합하거나 예화가 될 수 있다고 속단함으로써 심지어는 본래 성경 저자의 신학적 의도와는 정반대의 본문에 끼워 맞추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는 실제로 로마서 8장 28절의 가르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스누키안 교수는 설명한다.
창세기 50장 20절의 요점은 하나님이 요셉의 형제들이 가진 악의(惡意)를 요셉의 삶에 있어서 가장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데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서 8장 28~30절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하나님이 우리의 고난과 연약함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은 선한 인격을 만들어내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로마서 8장 28절의 가르침은 당신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하나님이 그것을 초월해 당신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선한 일을 행하시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 아들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스누키안 교수의 설명이다.
세 번째로, 성경 속의 예화를 사용하는 것이 설교자로 하여금 자신이 진리를 적용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 구절을 동시대에 적용하기 위해 시대를 초월한 진리로 정확하게 옮기는 대신 성경 구절에서 시대를 초월한 진리로 그리고 다시 성경의 또 다른 구절로 나가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골로새서 3장 5절에서 6절을 설교하면서 그 설교의 요지를 “탐욕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다”로 가정하고 설교자가 열왕기상 21장을 인용해 나봇의 땅을 빼앗으려 했던 아합 왕의 탐욕이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했는지를 거론했다면 이 설교는 아직까지 성경의 진리를 적용한 것이 아니며 단순히 같은 내용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설교가 시대를 초월한 진리를 교인들의 삶에 적용하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오게 된다는 의미한다.
이야기가 설교의 내용
이 책은 성경의 내러티브가 설교에 있어 1차적이고 본질적인 구절이 되는 것이 그 성경의 이야기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최상의 기회이자 방법이 되며 여기서 성경의 이야기는 설교의 예화라기보다 진리의 원천이 된다고 강조한다. 1차적이고 본질적인 성경의 구절은 우리를 영원한 진리로 인도한다. 그 같은 성경의 이야기가 예화로만 다루어질 때 우리가 그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먼 고대(古代)에 있었던 한 사례에 불과하게 된다.
도널드 스누키안 교수는 성경적인 설교자는 반드시 성경 텍스트의 정확하고 참된 의미를 설명하고 지금 설교를 듣는 청중에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경의 이야기를 문맥의 흐름에서 이해하고 설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신문이나 예화집에서 손쉽게 떼어내 설교에 활용하는 것에 익숙한 설교자들에게는 스누키안 교수의 지적이 고언(苦言)임에 틀림없다.
이해동 기자 ⓒ뉴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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