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목사 "한국교회, 이대로 가면 버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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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신ㆍ2012-12-28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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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진보와 닫힌 보수가 문제입니다. 기득권 문제를 연합을 위해 내려놓고 대의 앞에 숙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여러 계파로 나눠지니 공교회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대로 가서는 민족사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어요.”
김원배 목사(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전 상임총무, 목포예원교회)는 분열된 한국교회를 가장 큰 문제로 보고 하나의 연합기구를 통한 일치를 이루는 것이 한국교회의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故 옥한흠 목사와 함께 한국교회 사상 첫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에큐메니칼 운동기구인 한목협을 만들며 한국교회의 연합을 통한 일치를 이루는 일에 진력해왔다. 그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육원장, 한목협 상임회장 및 사무총장 역할을 맡으며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왔던 그가 교회를 개척한지 5년이 지났다.
그는 “내 생애를 돌아보니 사도의 전통을 위해 부름을 받았는데 너무 비본질적인 일에 인생을 낭비했더라. 총회 교육원장을 그만두고 실천신대 석좌교수, 한신대 총장 후보에 오르는 등 여러 길을 열어 주셨는데 결국 여기로 왔다”고 회고했다.
故 옥한흠 목사와의 만남은 그에게 있어 의미가 깊다. 기장 교단에 있으면서 사회참여에는 관심이 높았지만, 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는 이들의 모습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우리 기장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기도 전에 사회 의식화만 시켜놓고 보니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잊어버린다는 데 있어요. 같이 시대를 아파하고 함께 울고 슬퍼했던 이들이 있었으나 이후에 보니 이들이 한명도 교회에 남지 않았더라.”
그런 그에게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 모델은 큰 도전이자 대안이었다. 그는 “옥 목사도 평신도를 제자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진보진영의 정체성이 없어졌다고 했는데 나도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여겼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를 신앙으로 세우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한목협을 통해 한국교회의 연합을 이루고 진보와 보수의 양진영이 가지는 극단성과 문제점을 타파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거의 다 된 것이나 다름없던 한국교회 기구들의 연합이 막판에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그에게 거룩한 분노가 느껴졌다.
“한국교회를 연합하는 일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만약, 교단장협의회가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면 한기총의 위기도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옥 목사와 생명을 걸고 했는데 카이로스의 때를 놓친 것이 너무 아쉽고 분노까지 일어납니다.”
자신의 여생의 남은 과제와 로드맵 중 하나를 한국교회의 연합을 통한 일치를 꼽는 그가 이토록 이 운동에 주력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교회에 산재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먼저 한국교회가 연합을 통한 일치를 이룰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질 못하니 공교회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정부와 사회로부터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특히 내년은 세계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주도해온 WCC가 열리는 해다. 김 목사는 이 때가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한 하나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WCC 총회가 열리는 이 시기를 계기로 전후로 다시 한국교회 연합의 불씨를 일으켜야 할 것”이라며 “하나의 신앙과 직제를 가진 일치된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세 개로 나눠진 연합기구들을 하나의 연합체로 재편하자는 것은 신학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교회에 있어 옥한흠 목사와 강원용 목사의 모델 통전하는 한편, 이를 거꾸로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제자로 세워진 이들을 사회 속으로 내보내는 패러다임을 만들려고 한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그런 교회를 통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기장을 향한 시대적 요청입니다. 사회 변혁만 부르짖다 보니 교회가 바로 세워 지지 못한 부분에 있어 회개하며, 이제는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할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바쁘게 교계 연합운동을 하다가 교회를 개척하게 된 배경이 있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교회 개척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내 생애를 돌아보니 사도의 전통을 위해 부름을 받았는데 너무 비본질적인 일에 인생을 낭비했더라. 총회 교육원장을 그만두고 실천신대 석좌교수, 한신대 총장 후보에 오르는 등 여러 길을 열어 주셨는데 결국 여기로 왔다. 대교회가 예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인 것을 봤고 그것을 교리 할 만한 목회의 경험이 없다는데 안타까움이 들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를 만들고 싶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주권을 못 세우고 물러나는 것이 회개가 됐다. 날이 저물 때 저 편으로 건너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개척이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교회를 개척할 당시 여러 곳에서 헌금이 들어오는 등 하나님의 사인을 경험했다. 6명이 모여 개척한 교회가 금년 5주년이 됐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자는 것을 목표로 참된 신앙고백이 있는 교회, 21세기 일꾼을 키우는 교회,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교회라는 비전을 잡은 결과 현재는 75명으로 성도가 늘었다. 지금은 내년 중으로 교회를 건축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갈렙처럼 헤브론 산지로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교회를 개척한 지 3주년이 됐을 때부터 건축계획위원회를 만들어 진행해왔다.
기장 교단 내에서는 세 부류의 흐름이 있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자는 것은 공통점이나 먼저는, 사회 구조를 바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자는 흐름이 있고 여기에 대한 안티티저로 성풍(성령의바람)의 운동으로 나가자는 흐름과 교회의 활성화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자는 흐름이 있다. 저는 세 번째 흐름에 속한다.
그 간 주력해온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운동에 대해 설명해달라.
한번은 옥한흠 목사님을 한 세미나에서 주제강사로 초청했는데 WCC에 대한 비판을 하더라. 그 내용으로는 WCC가 평신도를 선교의 주체로 본 것은 대단했으나 이들을 제자로 만들지는 않았기 때문에 진보진영의 위기가 왔다고 분석한 것이었다. 그러나 옥한흠 목사님은 저와 진지한 대화의 자리를 가지면서 기장 교단 교회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다.
이후 ‘교회갱신협의회(교갱협)’을 만들었으며 이것이 ‘장로교목회자협의회’로 이어졌다. 그 다음 한국 기독교 역사 처음으로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자 진영이 모여 성립된 것이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다. 한국교회의 전진을 가로막는 것은 닫힌 진보와 보수다. 한국교회가 살려면 열린 진보와 보수가 만나야 한다. 한목협은 이를 바탕으로 처음으로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 목회자가 속한 최초의 교회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의 일치와 갱신, 섬김 운동을 해왔다.
한국교회에 일치와 갱신이 필요하다고 느낀 배경이 있나?
한국교회의 문제성은 그리스도인은 두 번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 속으로 가야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 기장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기도 전에 사회 의식화만 시켜놓고 보니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1970~80년대에 경동교회에서 대학부를 지도하면서 같이 시대를 아파하고 함께 울고 슬퍼했던 이들이 있었으나 이후에 보니 이들이 한명도 교회에 남지 않았더라. 그런 뼈저린 경험을 하며 기장 교회의 연약함을 어떻게 보충해갈까 고민하는 가운데 옥한음 목사를 만나게 됐다.
보수진영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으로 나가는 두 번째 회심을 제시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을 옥 목사와 함께 보완해 나가려고 했다. 한목협을 통해 한국교회의 일치와 갱신을 통해 사회를 섬기는 운동을 하고자 한 것이다. 옥한음 목사도 평신도를 제자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진보진영의 정체성이 없어졌다고 했는데 나도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여겼다.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운동에 주력해왔고 큰 성과를 이뤘다. 연합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과 과정은?
에큐메니칼 역사를 보면, 교회도 카톨릭처럼 하나의 교회와 직제를 이루려고 했는데 결국 교파가 수십 개로 나눠져 한 교회와 직제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방연합 모델로서 WCC는 349개 교단의 협의체로 한 지붕 밑에서 각 교회의 정체성과 역사를 인정하면서 모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방 연합의 모델에 따라 우리나라의 연합 기구인 교회협과 한기총도 만들어졌다.
한국교회의 연합을 통한 일치를 지향하는 한목협은 남북정상이 만나는 것을 보면서 교회협과 한기총으로 나누어진 두 연방을 하나로 이루자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0년 동안 이를 위한 전략으로 교단장협의회를 만들자고 했다. 교단장협의회를 통한 연합을 이루는데 있어 기준으로는 △이단 시비가 없는 교단 △정관에 따라 총회와 지방회를 가진 교단 △교육인적자원부의 인가를 들어간 신학대를 가진 교단 △교단장의 주소와 교단의 주소가 다를 것 등을 삼았다.
이 지평에 들어오는 교단은 조사를 해보니 29개 교단이더라. 이 기준을 만들어놓고 교단을 선정해 초청했는데 29개 교단이 참여했다. 결국 26개 교단이 참여해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를 구성했다. 옥한음 목사는 뒤에서 나서지 않고 겸손히 일을 한데 성과가 컸다. 교단장협의회가 만들어 지고 난 후 한목협에서 6년 동안 사무총장 직을 맡아 했다. 각 26개 교단에 공문을 보내서 교회협과 한기총을 하나의 연방기구로 만들어 명실공이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연합기구를 창립하는 것을 허락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는데 25개가 통과됐다.
이를 기초로 두 번째 단계로 한기총과 교회협에 공문을 보내 이 연합을 책임 있게 논할 대표자를 파송해달라고 요청했다. 교단장협의회, 한기총, 교회협에서 각각 6人을 파송해서 18인 위원회를 구성하고 연합을 논의했다. 2007년, 한국 평양 대부흥을 맞는 100주년에 한국교회를 연합한다는 로드맵까지 결성했고 각 교단들이 참여하는 로드맵을 만들고 일치와 연합을 위한 공동 정관까지 만들어 각 기구가 연합하자는 방향까지 왔는데 이것이 정체되고 말았다. 교회협 안에 있는 젊은 닫힌 진보 세대들의 반발로 멈춰지게 된 것이다. 일치가 아닌 연합으로 신학적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일을 하면서 공교회를 중심으로 개혁을 해야겠다는 과제를 받았다. 조성기 목사가 당시 한목협 초대 상임총무였는데 그에게 교단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인계를 하고 나왔다. 이렇게 한국교회를 연합하는 일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태에서 교단협의회의 흐름이 활성화 되지 않았다. 만약, 교단장협의회가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면 한기총의 위기도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당시를 생각하면) 옥 목사와 생명을 걸고 했는데 카이로스의 때를 놓친 것이 너무 아쉽고 분노까지 일어난다.
현재 한국교회의 분열이 극심하다. 한기총에서 한교연이 분열됐고 이번 해 총회에서 교단들이 한기총에서 대거 탈퇴했다. 다시 연합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한목협은 WCC가 끝나고 한국교회 연합을 이루는 일을 다시 제3의 깃발을 내걸고 이 일을 해야 한다. WCC는 연방 연합이고 동방정교회에까지 이르는 초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고 있다. 이를 모델로 삼아 한국교회가 하나로 이루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서 WCC가 열리는 것에 대한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서명도 받고 이를 다시 살려 한국교회의 연합을 이뤄야 한다.
먼저, 다시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단장협의회를 복원시켜서 이러한 의식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에큐메니칼 진영인 NCCK가 중심이 돼서 이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에 앞서 무엇보다 NCCK가 더욱 넓어지고 겸손해 져서야 할 것이다. 지금의 리더십과 비전만으로는 이 일을 해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나는 죽기 전에 예원교회를 세우고 이를 통한 비전을 이루는 것과 함께 한국교회 연합을 이루는 일을 다 마쳐야겠다는 일생의 로드맵이 있다. 이것이 남은 인생에 있어 반드시 이뤄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장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닫힌 진보와 닫힌 보수가 문제다 기득권 문제를 연합을 위해 내려놓고 대의 앞에 숙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상태로 가서는 민족사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 기독교가 한 목소리로 연합하지 않는 한, 현재의 한국 사회에 교회는 더 이상 신뢰를 얻을 수가 없다. 교회가 여러 계파로 나눠지니 공교회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합기구를 만들어 하나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교회를 정비해야 한다. 모든 기득권과 관련한 마음들은 내려놔야 한다. 모든 교회의 문제를 함께 다루지 않는 이상 한국교회가 대사회적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2013년은 WCC 총회가 열리는 해다. 이를 통해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WCC 총회가 열리는 이 시기를 계기로 전후로 다시 한국교회 연합의 불씨를 일으켜야 할 것이다. WCC가 지향해왔던 교회일치운동에서 교훈과 지혜를 얻어 한국교회를 명실공이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연합기구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하나의 신앙과 직제를 가진 일치된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현재 세 개로 나눠진 연합기구들을 하나의 연합체로 재편하자는 것은 신학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이번 WCC 총회를 통해 세계의 연방연합이 하나가 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WCC 총회가 끝난 후 우리가 얻을 것은 한국교회 연합기구를 창설해 교회 정부를 세우는 일이다. 독일교회의 같은 경우 카톨릭교회나 개신교회가 각각 한 목소리를 내므로 정부와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 313개 신학교에서 목회자들이 1년에 1만 5천 명씩 배출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문제를 공교회들이 목회자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과 수준을 합의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 내에는 분열뿐만이 아니라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한국교회에 산재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먼저 한국교회가 연합을 통한 일치를 이룰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종의 교회정부처럼 운영해서 교회가 완전히 정부가 돼서 함께 하나로 힘을 모아 문제에 있어 해결하기 위한 공통된 기준점을 세우고 이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급선무다.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에 앞서 1차적으로 분열된 한국교회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무엇보다 추구해야 할 시대적 소명이자 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목포는 기장의 발상지라고 한다. 이제 민주화된 지금 기장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기장에 교회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는 비전이 없더라. 기장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 세상을 의식화시켜서 무조건 세상 속으로 파송시키는데 있다고 보았다. 제자로서 훈련이 되지 않은 평신도들을 무작정 세상 속으로 내보냄으로서 본질적인 성도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기장과 예장 교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기장은 예수의 제자로 만들어 철저히 준비되기 전 사회의식만을 앞세웠다는 점이다. 그런 점이 오늘날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를 신앙으로 세우고 그 신앙으로 세워진 이들이 사회 속으로 나가는 것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장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가기위해 내가 먼저 그런 비전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화의 때인 민주화시대에는 교회가 중요하게 됐으므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교회를 개척한지 5년여 됐다고 들었다. 현재 교회에서는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 말해 달라.
단순히 숫자가 많은 교회가 아닌, 믿음이 좋은 교회가 큰 교회라는 비전을 잡았다. 예원교회의 뜻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라는 뜻이다. 참된 신앙고백이 있어 날로 부흥되는 교회라는 비전을 내걸고 있다. 특히 먼저 제자훈련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이를 기초로 정치, 사회, 경제의 현실을 보고 그 속에 파송하는 것 목표로 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문제가 있다면, 먼저 성도를 예수님의 제자로 제대로 키우지 않아 사회에 동화되도록 해버렸다는데 있다. 그러니 사회운동에 동참했지만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목회는 옥한흠 목사님과 강원용 목사님의 목회를 통전하는 교회를 만들 것을 계획했다. 나는 옥한흠 목사와 강원용 목사의 모델 통전하는 한편, 이를 거꾸로 제자를 만들어 사회 속으로 내보내는 패러다임을 만들려고 생각한다. 그런 교회를 통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기장을 향한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목표다. 사회 변혁만 부르짖다 보니 교회가 바로 세워 지지 못한 부분에 있어 회개하고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할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부이자 나의 스승인 강원용 목사에 대한 책을 준비 중에 있다. 강원용 목사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최초로 시작하시는 분이므로 그 뿌리를 찾아 에큐 역사와 신학 그분의 글을 모으고 편집해서 내년 9월 열리는 총회까지 편찬을 완성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농어촌 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시골 교회들이 많이 어려울 것 같다. 실상과 대안은?
교단 내에서 젊은 목회 시절, 큰 교회와 작은교회의 차이를 보면서 봉급 평준화가 있는 줄도 모르고 봉급 최저안을 헌의안으로 올렸다. 앞으로 교단적 영역에서 교단 내 목사가 되기는 어려워도 봉급 보장제를 통해 목회자들이 사역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소신껏 시골에서도 목회 할 수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이 어려운 목회 여건에도 생존할 수 있는 노후보장 등을 마련해 주는 것과 한국교회가 전체가 공교회가 되므로 목사가 되는 기준을 통일시켜서 교회가 크건 작던, 봉급도 같은 기준으로 하는 등 함께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여러 군소 교단에서 목회자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 부분을 교단연합기구에서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목사가 되는 길을 통일시켜서 1~2년 만에 목사가 되는데 이런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교회정부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교단 내에서도 노력을 해 나가야 한국교회가 활성화 돼야 할 것이다. 봉급 보장제에 있어서도 이를 교단과 전 총회적으로 확대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적자생존의 방식의 사고로 인해 나눔 구조가 많이 실천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도제목이 있다면.
작지만 강한 교회로 수가 많아서가 아닌, 믿음이 좋아서 강한 교회로 가길 바란다. 또한,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많이 양육해내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내가 사역하는 것 속에 십자가, 복음의 부활의 역사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목사가 판단 받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정하라 ⓒ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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