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 이수영, 헤셀링크 박사, 임성빈 총장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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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 2017-05-3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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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평화, 경건과 분리된 것 아니다"
제10회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 이수영, 헤셀링크 박사, 임성빈 총장 좌담
새문안교회는 지난 27∼28일 교회 언더우드교육관에서 '아드 폰테스(Ad Fontes), 근원에서 새롭게'를 주제로 제10회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하는 진실한 설교와 성례'를 주요 테마로 한 심포지엄의 둘째날(28일)에는 임성빈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의 통역과 사회로 이수영 새문안교회 은퇴 목사와 존 헤셀링크 미국 웨스턴 신학대학원 명예교수가 특별 좌담을 갖고 정의와 평화는 경건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개혁신학은 말씀과 영으로써 개혁되어야 된다고 하는 데 또 특별히 강조할 점은 세상과 교회와의 관계는 우리가 세상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된다."며 " 또한 우리가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영 목사는 "종교개혁은 ‘복음에서 멀어지는 교회를 다시금 순수한 복음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운동’이었다."며 "복음으로 되돌아가고, 바른 신앙의 공동체로 노력하기 위해 재차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또 " 오늘날 한국에서 예수그리스도 외에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복된 삶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은혜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며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삶은 세상의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 이것을 우리는 철저하게 버려야 된다."고 강조했다.
▲ 제10회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 특별좌담회-왼쪽부터 이수영 목사, 임성빈 총장, 헨실링크 박사 © 뉴스파워
다음은 좌담 전문.
●임성빈 총장(임): 어제에 이어 그레그 A. 마스트 뉴브런즈윅신학교 총장님의 두번째 강의(차재승 교수가 대독)을 들었습니다. 올해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인데, 저희는 특히, (제2의 종교개혁가인) 깔뱅의 전통을 이어 받은 만큼 개혁교인으로서 이야기 할 게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개혁신학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개혁신학의 석학이신 이수영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이 목사님은 ‘담임목사’가 아닌 ‘깔뱅 학자’ 자격으로 참석하셨습니다. 또, 세계적인 깔뱅 전문가인 헤셀링크 박사님을 모셨습니다.
먼저 헤셀링크 박사님께 여쭙겠습니다. 마스트 총장님 강의를 들으신 소감이 어떠하신지요?
●헤셀링크 박사(헤): 마스트 총장님이 성찬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저도 교수 시절 이 에 대한 강연을 계속 해왔지요. 매스트 총장님은 또 미국의 개혁교회에 대한 경험도 얘기해주셨어요. 이중 중요한 부분은 “성찬을 했을 때 기쁘지 않았다. 그리고 매년 4번 절기에 맞춰 했는데 이런 성찬 과정에 삶과 예배가 들어있지 않았던 것 같다”는 내용인데, 실제로 개혁교회 안에서도 성찬에 많은 변화가 있어왔다는 점에서 마스트 총장님 견해에 동의합니다. 미시간주의 교회들에도 그런 전통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성찬이 강조되는 교회들도 꽤 많이 있다고 합니다.
●임: 마스트총장님과 헤셀링크 박사님 모두 개혁교회 출신들이어서 서로 공감하시는 것 같습니다.
●헤: 사실 '주님의 만찬(성찬)' 관련 부분에는 신학적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은 ‘루터교 500주년’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 장로교회에서는 조금 전통이 다릅니다. 성찬을 얘기할 때 주로 루터교 쪽은 성찬의 요소를 이게 떡이 되었나, 피가 되었나.. 빵과 포도주가 변했나, 안 변했나 이런 데에 주로 관심이 있었습니다. 로마 가톨릭과의 차별성 때문에 그렇지요. 그런데 개신교에서는 그런 것 보다 ‘성령의 임재’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요. 또, 물질 자체를 보는 것보다 이것을 상징하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찬에 임재하는 것을 중시한 것이지요.
책에 보면 츠빙글리는 성찬을 그리스도의 “실재적 부재”를 기념하는 의식으로 보았는데 깔뱅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찬을 함께하신 것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렇다보니 깔뱅 자신도 이를 이론적으로, 신학적으로 명료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해 은혜를 받으면서 신비한 그리스도의 연합을 통한 즐거운 경험과 황홀한 체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성만찬을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지만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지요.
●임: 헤셀링크 박사님의 말씀에 대해 이수영 목사님께 확증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이 맞는 것이지요?(일동 웃음)
●이수영 은퇴목사(이): 맞습니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5개월 만에 이 자리에 다시 서게 된 소회를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교인 여러분을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고 기쁩니다.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에 제가 없다고 해서 자리가 많이 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일말의 염려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보다도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셔서 더욱 기쁘고 고맙습니다.
또 다른 소회가 있다면, 오래전부터 잘 알고 존경하는 헤셀링크 박사님과 같은 테이블에서 만나게 돼 감사합니다. 이것은 일생에 한 번 밖에 없을 기회로 생각합니다. 헤셀링크 박사님의 며느리 중에 한국 여성이 계신데 그래서 한국에 대한 애착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1994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제6회 세계깔뱅학술대회에서 제가 한 분야의 발제를 했는데 그 때 헤셀링크 박사님도 좌장으로 참석하셨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깔뱅 연구가이신 헤셀링크 박사님은 훗날 이 논문의 일부를 당신이 쓰신 책에 인용도 하신 적도 있어 제가 특별히 더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작년에 9회 행사를 끝나고 오늘 주강사로 수고하신 마스트 총장님하고 2017년 행사 계획을 논의할 때 주제 및 강사 선정에 대한 견해를 물으시길래 저는 주저하지 않고 “10회 때는 당신이(매스트 총장) 마지막이고 지금까지 같이 해오신만큼 주강사로 참여하면 좋겠다. 교단 총회장과 신학교 총장도 지냈으니 누구보다도 잘 하시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총장님은 처음엔 놀라셨지만 흔쾌히 수락하시고 잘 준비하셔서 이번에 발제를 잘 해주시니 더욱 기쁘고 감사합니다.
●임: 총장님의 발제 내용에 대한 소감도 말씀해주시죠.
●이: 마스트 총장님은 미국 개혁교회의 배경을 토대로 많은 설명을 해주셨는데 우선 ‘아드 폰테스’, 즉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자들의 구호를 주제로 내세운 건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와 신앙인의 삶에 있어서 핵심인 예배와 성찬, 성례(세례와 성찬), 예배적 삶에 가장 핵심인 내용을 갖고 근원에서부터 다시 새롭게 해보자는 그 발상이 너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찬론에 관한 츠빙글리와 깔뱅의 이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말씀과 세례와 성찬에 대한 본질적인 그리고 그 영감이 넘치는 통찰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생각 속에 대단히 의미 있게 원고를 읽고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 내용이 자료집에 나와 있는 만큼 이를 정독하며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에, 또 교회가 더 핵심적인 면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임: 저도 이 목사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기독교 윤리학 전공자 입장에서 예배드리는 것과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또 세례와 말씀을 듣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 즉 세례 받고 성찬 받는 것이 예배와 삶이 이분된 것이 아니고 연속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요새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주제인데요.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과 성화(?)를 이루는 것 사이가 어떻게 되는가’하는 문제인데 그게 다 연속적인 것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굉장히 섬세하게 잘 짚어주신 강연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두 분께 여쭙겠습니다.
전세계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데 여기에 대해 걱정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전에 깔뱅 탄생 500주년을 기념했는데 이 목사님과 같이 제네바에 갔다가 충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이 깔뱅 탄생을 신학적으로 기뻐하는 것인지, 아니면 깔뱅 초콜렛, 심지어 깔뱅 맥주 등 관광.소비 상품으로 활용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지요. 루터 500주년도 독일에서는 지금 국가적 행사가 한창입니다만, 이것이 독일지역을 새로 부흥시키려는 의도도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이유가 뭘까요?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준 도전과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우리가 이벤트를 넘어 이 행사를 하는 이유와 그 의미에 대해 짚어보고 싶습니다.
●헤: 이번 방한 목적 중 하나는 ‘500주년 개혁신학’의 평가입니다. 이것을 주제로 어제도 강연을 했습니다만, ‘종교개혁’하면 Sola Scriptura (오직 성경-말씀)와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 Sola Gratia(오직 은혜), Sola Fide (오직 믿음),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 등 ‘5대 솔라(Sola-오직)’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핵심 모토이기도 한데 이것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5가지가 다 나온 것은 아니고 17세기쯤에 여러 개혁자들이 의견을 모아 종합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5개 솔라 중 특별히 루터가 공헌한 부분은 ‘오직 은혜로’ 항목인데 이는 구원론과도 관련이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지, 인간의 업적이나 지위로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의에서부터 오는 것이고 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라는 말씀은 사실 구원론의 핵심입니다. 이를 루터의 공헌으로 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과정에서 기여한 그룹 중 하나는 인문주의자들입니다.
●임: 헤셀링크 박사님의 설명을 알기 쉽게 부연해보면, 당시 인문학 부흥의 시대에 마치 신학이 별개라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원래 종교개혁은 인문학과 같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출발은 했지만 나중에는 로마 가톨릭 쪽 철학자인 에라스무스와 루터는 끝까지 같이 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라스무스는 자유의지에 대해 “인간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라고 생각한 반면, 루터는 “우리가 선한 일을 내 힘만으로는 할 수 없다”라고 보았습니다. 깔뱅도 이 점에 대해서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했는데 이것은 인간이 타락함(죄론)을 증거로 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가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성령의 은혜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라고 보는 것이 구원론, Sola Gratia (오직 은혜)의 핵심이라는 것.. 이것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헤셀링크 박사님도 루터 종교개혁이 전체 개신교의 개혁에 공헌했다는 견해를 갖고 계십니다. 이 목사님의 견해는 어떠한지요.
●이: 먼저 종교개혁의 의미를 살펴보면 우리 장로교회가 속한 개혁교회 전통에서는 교회를 정의할 때, ‘개혁되었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개혁하는 교회’라는 점이 개혁교회에 대한 정의입니다. 제네바에서 총장님이 가지셨던 느낌을 저도 똑같이 받았고 분노하기까지 했어요. 깔뱅의 정신을 잃어버린 껍데기를 기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장로교회의 정신이 바로 한 두 번 개혁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에 대한 정의이기 때문에 500주년을 맞아 특별히 다시 한번 종교개혁의 정신이 무엇일까를 되새겨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단지 그것이 행사나 이벤트로만 끝나면 안되고 본질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다시 말하자면 ‘복음에서 멀어지는 교회를 다시금 순수한 복음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되돌아가고, 바른 신앙의 공동체로 노력하기 위해 재차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임: 종교개혁은 거품을 다 거둬내고 오염된 우리 신앙을 오직 말씀으로 정화시키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는 종교개혁의 영향력을 생각하면서 사회와 하나님 나라와 큰 변화를 모색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신학의 두 대가께서는 어떻게 이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개혁 중 어느 분야에 더 관심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헤셀링크 박사님께 묻겠습니다. 종교 개혁학자가 된 동기는 무엇이고, 관심 분야는 어떤 것이었나요?
●헤: 저는 깔뱅 쪽에 가까운 편인데 대학생 때 깔뱅의 ‘기독교 강요’를 처음 접했어요. 그때만해도 그렇게 은혜를 받지는 못했는데 50년대 말부터 일본에서 20년간 선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현장에서 이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당시 40명의 일본인 학생들과 성경공부를 일본어와 영어로 할 때 40명 중 5명이 세례를 받겠다고 찾아왔습니다. 5명에게 세례를 준후 양육을 하려는 데 무엇을 할까 준비하면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책이 깔뱅의 성경 주석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깔뱅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게 된 겁니다. 이것은 사실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을 굉장히 중요시 한 것과도 연관됩니다.
당시에도 설교를 잘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만, 향후 과제는 마스트 총장님도 강연에서 말씀했듯이 ‘말씀 선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 개혁교회들은 예배가 말씀만 선포되면 되는 줄로 아는 탓에 균형을 잃게 됐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제는 성만찬의 회복으로 균형을 맞춰가야 된다고 봅니다. 이제 이 목사님의 종교개혁 연구 동기를 여쭙겠습니다.
●이: 저는 장신대학원 입학 전에 대학에서 철학을 8년간 공부했습니다. 그 영향 때문이었는지 저는 근본과 본질을 캐는 궁금증이 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신대원 졸업 후에 는 염두에 두고 있던 장로교 목사가 되기 위해 장로교의 근본정신이 무엇인지, 신학이 무엇인지를 근본부터 먼저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동기에서 장로교의 신학적 시조인 깔뱅을 연관시키게 됐지요.
신대원 3학년 때 이종성 학장님이 ‘교회론’ 강의 후에 일본에서 유명한 깔뱅학자를 초청해 특강을 열었습니다. 그 때 깔뱅의 교회론을 들으면서 깔뱅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학장님이 어느날 향후 계획을 물으시길래 이런 말씀을 드리니 마침 깔뱅의 연구 본거지로 가서 공부할 사람이 필요한데 깔뱅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프랑스와 벙델(François WENDEL)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격려하셔서 스트라스부르크 대학교에 추천을 받아 들어가게 됐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계속 저의 건강을 생각하시고, 제 눈이 피로하지 않는 한 계속 깔뱅을 읽고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데 너무 모르는 게 많고 알아가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임: 제가 대학생 때 한 전도사님 댁에 갔다가 칸트 관련 서적들이 많아 누구 책인지 물어봤어요. 깔뱅을 공부하러 스트라스부르크로 유학가신 이수영 목사님의 책이라는 말씀을 듣고 “아, 칸트 위에 깔뱅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맞습니다.(청중 웃음)
●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오늘의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는 과연 이 종교개혁의 핵심적 사상에서 보았을 때 얼마나 개혁적인 교회이고 개혁적인 신앙인들인지, 또, 어떤 과제를 갖고 있을까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 목사님께서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을 텐데 우선 헤셀링크 박사님께 묻겠습니다. 한국교회가 가져야 할 과제와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과제들은 무엇일까요?
●헤: 이 목사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우리 개혁신학의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은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개혁되어야 하는데 무엇으로 개혁되어야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개혁신학은 말씀과 영으로써 개혁되어야 된다고 하는 데 또 특별히 강조할 점은 세상과 교회와의 관계는 우리가 세상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우리가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루터와 깔뱅과의 차이점은 루터는 ‘칭의’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는 게 굉장히 루터에게 있어서 강조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역시 그것이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깔뱅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은 칭의와 함께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성화입니다. 물론 칭의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구원을 받는 것과 연계가 되는 것이지요. 관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칭의라면 성화는 여기서 더 진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깔뱅의 개혁교도들은 더욱더 삶의 성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삶, 이것은 경건이라고 하는 것, 우리가 아주 깊은 경건을 요구하는데요, 요새는 경건이라고 하면 마치 삶과는 동떨어지고 거룩하게 보이는 것으로 자꾸 오해할 수 있는데 원래 우리 개혁신학에 있어서의 경건은 그것이 아니라 삶과 매우 관계가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 즉, 이 경건과 영성이 차이가 나는데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좀 자기가 개발하고 자기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경건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이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은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윤리적 차원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웃사랑,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의, 자유, 평화와 경건한 것이 분리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개혁신학에 있어서는 균형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 정의, 자유주의의 사회를 만드는 것 또한 그것을 위해 우리 교회가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도 중요하며, 또한 이것을 행동 주위가 사회주의자와 같이 사회적 행동으로 움직이는 것과 이론법과 사회론을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우리의 개혁신학은 그런 것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균형을 이루고 연계가 되는 것이다.. 하는 것이 이 개혁신학에 있어서는 중요합니다.
●임: 헤셀링크 박사님은 이것(‘경건’과 ‘영성’)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고, 이것을 우리가 균형을 잡고, 노력해야할 과제다라는 점도 지적해주셨습니다. 이제 세계적인 깔뱅 학자로 새문안교회에서 16년간 목회를 하신 경험을 가진 이 목사님의 고견을 듣겠습니다.
●이: 저는 한국교회가 개혁적인가라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말씀드리면서 정말 개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합니다. ‘비개혁적’이라는 점은 개혁신학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개혁신학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압니다. 문제는 실천입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야기 하시면서 ‘5가지 오직(Sola)’를 말씀하셨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은혜로(Sola Gratia) 등 ‘3가지의 오직(Sola)’이 존재했습니다. 그 사상을 연구하다보면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다(Soli Deo Gloria)라는 결론이 자연히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오직(Sola)이라는 것이 붙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구원을 얻는다는 ‘오직 그리스도로’라는 종교개혁자들 주장의 배경으로 ‘오직’이 아닌 ‘로마 천주교의 지칭’을 들 수 있습니다.
로마 천주교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마리아를 중점으로 성자들이 있습니다. 성자들도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고, 중보적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리아를 심지어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대속자라로 보는 것이 로마 가톨릭의 공식적인 교리인데 그것이 잘못됐습니다. 마리아가 우리의 경건의 본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경배와 기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로마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와 성자들이 기도와 예배의 대상이 되는 데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날 한국에서 예수그리스도 외에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복된 삶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은혜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삶은 세상의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 이것을 우리는 철저하게 버려야 됩니다.
●임: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다시 말씀드리면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라고 하는 것은 로마 천주교에서는 오직 믿음으로가 아닌 믿음과 행위로 얻는다며, 선행을 많이 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에 대해 반대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만큼 선행할 근본적인 능력이 없다. 따라서 구원은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얻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아, 그럼 이제 믿기만 하면, 행위는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는 소위 율법 폐기론이나 이것이 믿음으로써(以信)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稱義)는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인데, 잘못 빠지기 쉽습니다.
또, “오직 믿음으로라고 했으니, 이제는 자유롭게 살자”라는 오해도 있습니다. 구원받기 위해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 받은 자로서 감사와 감격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이것에 힘써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를 강조하다보면, ‘오직 은혜로’라고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결단, 노력만 가지고는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믿음까지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잘 믿어 구원’은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 내가 잘 믿어 구원받는다는 것은 이신칭의에 대한 또 다른 오해입니다. 믿음이 또 하나의 행위로 변하는 것이지요. 잘 믿는 나의 행위나 내가 결단을 잘 하고 의지적 노력으로 잘 믿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또 다른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대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우리의 고백이 있어야 됩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삶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순간 교회는 붕괴할 수밖에 없고 우리 그리스도의 삶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삶으로 변질됩니다. 이 은혜를 망각하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열심히 목회해 교회가 성장, 부흥하는 것이 결국 자기 노력과 수고, 헌신의 결과라고 생각하니깐 교회를 내 소유물로 여기게 됩니다. 이것을 아들에게 줘야지, 이러면서 세습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고백할 줄 아는 그런 믿음의 회복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야 되니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밖에 없잖아요. 로마 천주교에서는 성경과 전통,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신학자들이 모여서 집단적으로 모여 내린 성찰을 교황의 입으로 공포하면 변경할 수도 없고 철회할 수도 없는 만국의 진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통으로 쌓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집단적으로 모여 내린 성찰이라고 하지만 사실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인데 사람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과 똑같은 권리를 가질 수 없다. 구원의 진리의 유일한 출처는 오직 성경이다.
또한 세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는 정신입니다. 이를 우리가 잊었거나 이론적으로는 알면서도 실천이 부족한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야 되고 예수 그리스도 외 세상적인이고 인간적인, 또 물직적인 것에 의지함을 버리고 믿음과 더불어 믿음에 걸맞는 실천적인 삶을 사는 것,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겸손해 지는 것, 하나님의 은혜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임: 이 좌담회는 행사 참석자들이 종교개혁에 대한 한 학기의 내용을 다 듣고 가시는 것 과 같을 겁니다.(웃음) 아드 폰테스의 핵심적인 본질에 대한 요약된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종교개혁은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인간들이 제대로 파악 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진리를 바뀌어 가는 세상 안에서 깨닫게 해주시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 접어든 후 제게 가장 큰 충격적인 사건은 알파고와 인간간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이세돌 씨를 4:1로 이긴 것입니다. 중국의 바둑기사 커제는 알파고에 3:0으로 패한 뒤 무력감을 느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향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흘러가고 교회들은 어떤 과제를 갖고 있을까요? 또, 종교개혁 신앙인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헤: 종교개혁 시대와 오늘날은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세대에는 로마 가톨릭이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것이 앞에 이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근본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가 개혁을 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지금은 그 때보다 더 위협적인 세계로 바뀌었습니다.
어찌 보면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와 개신교회들이 따로 공존해왔고 서로 차이점들을 서로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 이 전체 교회보다 세상이 너무 강해져 있고 세속화가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끼리 서로 분쟁하고 다투고 있는 것보다 이제는 세상과 맞서서 복음의 영역을 넓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넓힐 수 있도록 서로의 공통점을 가지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어렵지만 공동 사역은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임: 헤셀링크 박사님이 아주 도전적인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제 이 목사님의 말씀을 듣기 앞서 우리가 오늘날 실천해야 할 과제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가 등에도 의문이 듭니다. 전국에 기독교인들이 19.7%에 달하지만 갈등지수가 OECD국가 중 우리보다 심한 나라는 터키, 그리스, 칠레, 이탈리아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는 내부적으로 갈등이 심하고 제일 많이 싸우는 나라 같습니다. 게다가 한국에는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라는 물신숭배가 기승을 부립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우리 시대가 직면한 강력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목사님 의견은 어떠신가요?
●이: 저는 오래전부터 근본적으로 한국이 잘 되려면 교회가 잘 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해왔고 늘 이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교회가 한국에서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고 교회가 튼튼히 바로서면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사회와 국민들로부터 모두 신뢰와 사랑을 상실했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그것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제 주된 관심사입니다.
앞서 임 총장께서 알파고를 예로 드셨는데 저도 알파고와 관련해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승부에서 처음 3판을 이기자, “이제 우리가 기계와 인공지능에게 다스려지는 세상이 온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인간의 무력감을 느끼고 당황했는데, 이세돌 9단이 한번 이겼습니다. 그걸 보니깐 인공지능도 완전하지 않다. 인공지능도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섣불리 판단했습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파고를 만든 과학자들의 설명도 있었습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은 마지막 점검을 위해서였다는 겁니다. 이 9단과의 대결을 통해 더 완벽한 알파고를 만들기 위해서 한 것인데 결국 그 이후 알파고는 더 강해지고 커제도 몇번 이겼습니다. 이제는 인간 바둑기사는 인공바둑기사를 이길 수 없게 됐다는 결론도 난 셈이지요. 당시 9단이 이기자마자 ‘인류의 대표’ 등 찬사가 쏟아졌는데 11살이던 이 기사의 딸이 ‘우리 아빠가 고수라고요? 나한테는 맨날 지는데”라며 의아해 했다는 얘기를 듣었습니다. 이같은 번뜩이는 답변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바로 이거다!”라면서 ‘번뜩이는 답’을 얻은 때문이죠. 11살 딸이 무슨 재주로 이세돌 9단을 이기겠습니까. 바로 사랑하는 아버지가 딸을 즐겁게 하기 위해 져준 것인데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사람을 사람되게 만든다.
AI 시대의 교회와 교인들, 사랑 회복 나설 때
사랑이 사람과 인공지능을 차별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위대하고 만들고, 사랑은 사람을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만들어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목회자와 우리 교인들이 무엇보다도 회복해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더 많이 사랑을 베풀고 실천하면 사회로부터 잃어버린 신뢰와 존경과 사랑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년 전에 서울노회 회장을 지냈는데 당시 총회장 선거에서 수십억원의 돈을 쓴다는 그런 부패상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다음 해에 금권선거 추방운동을 벌였습니다. 늘 서울노회에서 진행하고 실천하면서 얼마나 많은 저항에 부딪쳤는지 모릅니다. 서울노회 안에서까지 저항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장자 노회로써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스스로 자생했습니다. 그 1년간 우리는 총장도 파송하지 않고 자생의 길을 갖자고 했는데 내부에서도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총장이 파송 되어야 총회에서 임원도 하고 여러 모임을 가질 텐데 그 기회를 다 놓친다는 불만이었습니다. 개혁을 하는 것이 혁명보다 힘들다는 것을 그 때 실감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가 좀 더 겸손해지고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또 한국교회가 물신주의에 빠졌다고 하는데 우리가 물질적으로 더욱 검소한 삶을 살자. 이런 삶의 실천운동을 벌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 젊은 목회자들을 상대로 그런 정신을 기르고 각자 그 목회정신으로 설교를 하고 그래서 교인들이 점점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면 언젠가는 교회를 보는 사회의 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교만해졌는데 그리고 성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법, 불법을 일삼으면서 교회성장을 도모하다 보니까 정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물신주의에 빠지게 되면서 돈 자랑하는 교회가 되면서 이것이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겸손(Humility)하고 정직(Integrity), 검소(Simplicity)한 삶을 사는 ‘그의 백성운동’을 펼치려고 합니다. 영어로 하면 ‘HIS’라는 ‘그의 백성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의장으로 있을 때 로잔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신이 계속될 때 교회를 보는 세상의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임: 오랜 시간 동안, 또 귀한 말씀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다은 ⓒ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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