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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신앙, 韓복음화 구심점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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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ㆍ2022-10-07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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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운동, 韓오순절운동 토대

성령 체험으로 급격한 부흥

오순절 신앙 아시아 허브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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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대부흥운동이 시작한 장대현교회. 

 

20세기 기독교 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오순절운동이다. 한국교회 성장은 오순절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의 존립이 위협받던 상황 속, 우리민족은 오순절정신으로 암 울한 시대를 이겨냈다. 위기를 딛고 한국교회 도약 의 발판이 되어준 오순절 운동의 족적을 돌아봤다.

 

오순절운동은 국가의 고비를 넘기고, 민족복음화를 이끌어낸 구심점이었다. 위태로운 오늘 날 한국교회 상황 속 오순절운동에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교계에서는 12일 열리는 세계오순절 대회(PWC)가 한국교회 부흥의 역사에 다시금 한 획을 긋길 기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오순절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120 여 년 전으로 올라간다. 정통 오순절 교회가 국내에 상륙하기 전부터 이미 한반도 곳곳에는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었다. 20세기 초 미국에 아주사 부흥운동이 일어날 무렵, 국내서는 원산 부흥운동과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

 

회개하며 성령 역사 체험

 

국내 회개운동의 시초가 된 원산부흥운동은 1903년 원산지역 주재 선교사들이 모인 기도회에서 시작됐다. 의료 선교사 로버트 하디(Robert Hardie)가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통회한 것. 이는 한국교회 성도들에게까지 확산돼 많은 이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면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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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대부흥운동이 시작한 장대현교회.

 

그로부터 4년 후 발생한 평양 대부흥운동은 한 단계 규모가 커졌다. 길선주 장로가 시작한 회 개운동의 불씨는 서울과 목포를 비롯한 전국 각 지로 퍼져나갔다. 성령의 역사가 전국을 달군 이후 장로교단은 1906년 5만4,987명에서 1907년 7만3,844명으로 교인 수가 급증했으며, 감리교단도 1만8,108명에서 3만9,613명으로 두배 넘게 증 가했다.

 

자생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난 1900년대 초반은 국내 선교가 정체되던 시기와 맞물렸다. 국가 적으로도 신축년 대기근 여파로 경제적 파탄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러일전쟁(1904년)으로 정치적 불안도 가중되던 상황이었다. 국가의 존립이 풍전등화에 놓인 상황, 두 부흥운동은 한국 교회의 분열을 봉합하고 연합케 하는 역할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도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오순절 다락방의 역사가 재현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교수는 “부흥운 동은 한국 오순절 운동의 토대이자 배경”이라며 “부흥운동이 선행하지 않았다면 오순절운동의 발전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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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오순절 교회인 서빙고교회와 동교회인 일동

 

럼시 선교사, 첫 오순절교회 설립

 

부흥운동이 휩쓸고 간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오순절운동이 전파된 것은 메리 럼시(Mary C. Rumesey) 선교사에 의해서다. 1928년에 조선 땅을 밟은 럼시 선교사는 한국 최초의 오순절교회인 서빙고교회를 설립하고 박성산 목사를 추대했다.

 

특정한 교단배경 없이 활동했던 럼시 선교사 는 방언과 신유를 강조한다는 이유로 기존 목회자들로부터 배척 받았지만 묵묵히 성령사역을 확장해나갔다. 서빙고교회는 일 년 만에 성도 수 가 장년 70여 명, 주일학교는 200명에 달했다. 이 후 1933년에는 수창동교회가 세워졌으며, 5년 뒤 조선오순절교회 최초의 목사 안수식이 열렸다. 이때 허홍·박성산·배부근이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중일전쟁으로 일제의 기독교 박해가 심해졌고 럼시 선교사를 포함한 선교사들이 추방당했다. 서빙고교회를 비롯한 수많은 교회들 이 문을 닫았으며 성도들은 흩어졌다. 오순절 정신 전파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배 교수는 “비록 교회의 공적인 활동은 축소 됐지만 길선주·김익두·이용도 등 부흥사들이 전 국에 흩어져 성령사역을 계속해나갔다”며 “그 과정에서 순교자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해방 이후 교회는 비로소 암흑기를 벗어났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오순절운동이 확산될 수 있게 됐다. 박성산·허홍·배부근 목사가 목회자들을 모으고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해방 후 5 년이 지났을 때 순복음오순절교회에서 ‘제1회 대한기독교오순절대회’가 열렸고 오순절 신앙은 다시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하나님의성회, 오순절 신앙 전수

 

1914년 미국에서 설립된 하나님의성회는 1952년 체스넛 선교사(A. B. Chesnut)를 한국에 파송했다. 이듬해 체스넛 선교사는 조선오순절 교회 멤버인 허홍·박성산·배부근 목사 등과 교단 출범을 결의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가 창립한 순간이었다.

 

류동희 한세대학교 교수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친 한반도에 체스넛 선교사가 왔다”며 “체스넛 선교사는 허홍 목사를 비롯해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목회자, 교회 지도자들과 모여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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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교회 시절 조용기 목사.  (사진제공=여의도순복음교회)

 

교단 출범으로 오순절 정신이 다시 기지개를 켤 무렵 조용기 목사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청년 시절, 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기도로 치유 되면서 목회에 일생을 바치게 된 조용기 목사는 1958년 대조동 달동네에 천막교회를 개척했다.

 

이후 소외된 지역주민들을 위해 축사와 신유 등 성령사역을 펼쳤다. 기적이 이어지자 마을 전체가 개종하는 일도 있었다. 매년 교인 수가 폭증하자 천막교회는 순복음 중앙교회로 이름으로 바꾼 후 서대문으로 이전했다. 교회를 옮긴 지 6년 만에 성도수가 8000명 을 넘으면서 국내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됐다.

 

이후 1982년에 성도수가 20만 명에 달했고, 1984년에 는 40만 명을 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여의도순 복음교회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 끊임없이 성장을 거듭하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92년 교인 수 70만 명을 넘어섰고, 이듬해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단순히 교인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다. 순복음교회의 열정적인 예배와 찬양, 통성기도는 한국 교회의 예배 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성령운동은 부흥회, 기도원, 집회 등으로 형태가 다양해졌다. 특히 기도원은 오순절 운동의 발전에 중요한 토대가 됐다. 한얼산기도원과 오산리기도원은 한국 오순절 운동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곳으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조용기 목사는 생전 한 포럼에서 “지난 세월 동안 우리 교단은 강력한 성령운동과 기도운동을 통해 한국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큰 역할을 감당해왔다”며 “민족복음화를 위해 헌신했을 뿐 아니라 세계선교를 위해 힘써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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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인 조용기 목사. (사진제공=여의도순복음교회)

 

한국, 오순절 신앙을 대표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과 함께 대한민국 은 오순절 신앙의 아시아 허브로 우뚝 섰다. 서울에서 1973년과 1998년에 두 차례에 걸쳐 세계오 순절대회를 유치한 것이다. 특히 1973년에 열린 제10차 세계오순절대회는 비서구권에서 최초로 열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조용기 목사는 한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제10회 대회의 한국 개최는 세계 기독교계에서 한국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아시아 태평양을 중심으로 세계로 뻗어나갈 발판으로 한국인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눈부신 도약을 이뤘지만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몸집이 커지고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사역자들이 많아지면서 오순절운동에 이단 시비를 거는 일도 잦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령의 역사에 대한 갈망은 때때로 극단적 신비주의와 열광주의로 이어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신비주의와 이단적 교리를 주장해 기존 교단에서 이탈하는 교회도 생겼다.

 

배덕만 교수는 “가짜방언과 쓰러짐 현상, 거룩한 웃음 등은 신학적 논쟁과 비난의 단골메뉴 였다”며 “이와 함께 일부 성령 사역자들의 반신학적이고 반지성주의적 태도는 성령운동 평판을 훼손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양한 오순절적 현상에 대한 기성 교단의 경계와 비판이 지속되는 것은 이 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라며 “오순절 운동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단호한 결단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비록 수많은 논란과 난관이 있었지만 오순절 정신과 신앙은 민족의 복음화를 이끈 구심점이 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지난 120년의 세월 속 기적과도 같았던 오순절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12일 개최되는 제26회 세계오순절대회는 ‘다음세대의 오순절 부흥’이라는 주제로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대회장인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는 “코로나19 시대를 지나가면서 제2의 부흥의 역 사를 일으킬 때”라며 “성령충만이라는 오순절 전통의 모습을 회복해서 사도행전적 교회의 부흥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목사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한국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를 뒤덮게 될 것을 확신한다”며 “이번 대회가 단순한 행사로 끝나지 않고 다시 한 번 성령의 불이 타오르고 오순절 운동이 일어나 부흥의 시대를 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고 기대했다.

 

이새은 기자 ⓒ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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