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 스스로 택하여 자기 입에서 나온 말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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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72.♡.♡.24)ㆍ2025-06-22 00:0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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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 스스로 택하여 자기 입에서 나온 말에 따라
열왕기상 2장에서는 다윗왕이 나이 들고 병들어 그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양위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다윗은 그의 생전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너는 군인이라, 손에 피를 많이 묻혔다. 네 아들이 나를 위하여 전을 건축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다윗은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영광은 아들 솔로몬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 골로새서 1장 13-16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주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였습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창조의 목적에 관하여는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위하여 지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선지자 나단과 제사장 사독은 다윗의 노새를 끌고 가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선지자, 제사장, 왕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기혼’은 솟아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솟아나는 생수의 근원을 의미하는 기혼 샘에서 선지자와 제사장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것은 생수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말이 아닌 노새를 탄 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양각을 불고 ‘솔로몬 왕 만세!’를 불렀습니다. 백성들이 노새에 예수님을 태우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는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배척당하고 사람들에게 버린바 되어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솔로몬은 불순종하였고 주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왕국은 오래 가지 못 하였고 주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기면서 요압과 시므온을 처단하고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혜를 베풀도록 부탁했습니다. 요압과 시므온에게 어지간히도 원한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 대목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다는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오래 참으시고 가라지도 뽑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친히 심판하지 않으시고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을 보면 주님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심판을 맡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2장 46절을 보면 주님은 주님도 심판을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에 주님의 하신 말씀이 각 사람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받든지 배척하든지, 지키든지 아니 지키든지를 통하여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여 받는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아도니야와 요압, 그리고 시므이를 처단하는 과정을 보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스스로의 말과 행동’이 스스로를 심판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궁녀 아비삭을 달라고 청한 것 때문에 죽임을 당합니다. 요압은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고 있다가 나오라는 말을 듣지 않고 ‘나는 여기서 죽겠노라.’고 말하자 이를 들은 솔로몬은 ‘그 말대로 그 자리에서 죽게 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모습입니다. 시므이의 경우에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겠다는 맹세를 어김으로써 결국 죽임을 당합니다. 역시 자신의 말과 행위로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의 등극과 이어지는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 아들을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보내셨고 또 그 아들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 날에 그들은 심판을 받되 그들이 배척한 주님의 말씀, 그들 스스로 택하여 자신들의 입에서 나온 말에 따라 스스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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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장에서는 다윗왕이 나이 들고 병들어 그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양위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다윗은 그의 생전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너는 군인이라, 손에 피를 많이 묻혔다. 네 아들이 나를 위하여 전을 건축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다윗은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영광은 아들 솔로몬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 골로새서 1장 13-16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주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였습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창조의 목적에 관하여는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위하여 지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선지자 나단과 제사장 사독은 다윗의 노새를 끌고 가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선지자, 제사장, 왕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기혼’은 솟아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솟아나는 생수의 근원을 의미하는 기혼 샘에서 선지자와 제사장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것은 생수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말이 아닌 노새를 탄 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양각을 불고 ‘솔로몬 왕 만세!’를 불렀습니다. 백성들이 노새에 예수님을 태우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는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배척당하고 사람들에게 버린바 되어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솔로몬은 불순종하였고 주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왕국은 오래 가지 못 하였고 주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기면서 요압과 시므온을 처단하고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혜를 베풀도록 부탁했습니다. 요압과 시므온에게 어지간히도 원한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 대목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다는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오래 참으시고 가라지도 뽑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친히 심판하지 않으시고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을 보면 주님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심판을 맡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2장 46절을 보면 주님은 주님도 심판을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에 주님의 하신 말씀이 각 사람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받든지 배척하든지, 지키든지 아니 지키든지를 통하여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여 받는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아도니야와 요압, 그리고 시므이를 처단하는 과정을 보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스스로의 말과 행동’이 스스로를 심판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궁녀 아비삭을 달라고 청한 것 때문에 죽임을 당합니다. 요압은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고 있다가 나오라는 말을 듣지 않고 ‘나는 여기서 죽겠노라.’고 말하자 이를 들은 솔로몬은 ‘그 말대로 그 자리에서 죽게 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모습입니다. 시므이의 경우에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겠다는 맹세를 어김으로써 결국 죽임을 당합니다. 역시 자신의 말과 행위로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의 등극과 이어지는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 아들을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보내셨고 또 그 아들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 날에 그들은 심판을 받되 그들이 배척한 주님의 말씀, 그들 스스로 택하여 자신들의 입에서 나온 말에 따라 스스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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