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자손 예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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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42.♡.♡.150)ㆍ2025-04-09 01:5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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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손 예수여
[누가복음 18장 35-43절]
35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
38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신약성경 복음서는 4권이 있는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같이 보았다”는 뜻에서 이 3권을 “공관복음(共觀福音)”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 아니고 특별한 복음서입니다. 오늘 말씀 소경의 이야기도 공관복음서 3권에 각각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다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고 이적을 행하시고 여태 들어보지 못 했던 말씀으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여리고는 요단강을 건너 서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몰려드는 가운데 길에 앉아 구걸하던 소경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크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그는 더욱 크게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우리 한글성경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써져 있지만 영어성경은 ‘다윗의 아들(Son of David)’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헬라어(Greek) 원어성경을 보면 ‘다윗의 아들’이 맞습니다. 이스라엘어(히브리어)에는 ‘자손’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조상이라는 단어도 없습니다. 아버지(아브)와 아들(벤)이라는 단어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사상과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모든 후손들, 이스라엘 민족이 다 아브라함의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브라함의 허리 속에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모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선민사상이라고 합니다.
또 아들은 아버지와 똑같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믿기로는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과 하나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뭐야? 이런 참람한 놈을 봤나. 네가 하나님과 하나라고?’ 하면서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천년 넘는 세월을 두고 인자(人子, Son of Man), 곧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신다는 예언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중 사무엘서를 보면 기원전 1000념 무렵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의 왕위가 영원하리라.” 또 이사야서는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서 9장 6-7절): 성경을 직접 찾아 읽어보십시오. 어떻게 한 아기가 났는데 그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까?
다윗왕과 솔로몬왕 후 기원전 932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그 후 기원전 721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멸망당하고, 기원전 586년엔 남유다왕국마져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예루살렘성은 완전히 훼파되고 얼마 남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포로생활을 하고, 그런 다음 70년 뒤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 뒤에 또 마게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쳐들어와 점령하고 또 그다음엔 또 로마제국이 통치하고..... 그렇게 나라를 빼앗기고 풍비박산 난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윗의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경이 외친 “다윗의 아들 예수여.‘라는 외침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이스라엘을 건져내실 구세주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소경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속을 다 아시는 예수님이 그 외침이 소경의 그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소경은 눈만 뜬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자는 단지 이스라엘 백성만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해내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소경입니다. 암흑 속에 갇혀 있습니다. 죽음과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망도 없습니다. 그렇게 삶이 끝나고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들려 왔습니다. “구세주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세주가 오셨다.”
당신은 가만히 길가에 앉아서 동냥이나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일어나 죽기 살기로 예수님을 부르시겠습니까? “다윗의 아들 예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를 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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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장 35-43절]
35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
38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신약성경 복음서는 4권이 있는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같이 보았다”는 뜻에서 이 3권을 “공관복음(共觀福音)”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 아니고 특별한 복음서입니다. 오늘 말씀 소경의 이야기도 공관복음서 3권에 각각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다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고 이적을 행하시고 여태 들어보지 못 했던 말씀으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여리고는 요단강을 건너 서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몰려드는 가운데 길에 앉아 구걸하던 소경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크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그는 더욱 크게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우리 한글성경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써져 있지만 영어성경은 ‘다윗의 아들(Son of David)’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헬라어(Greek) 원어성경을 보면 ‘다윗의 아들’이 맞습니다. 이스라엘어(히브리어)에는 ‘자손’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조상이라는 단어도 없습니다. 아버지(아브)와 아들(벤)이라는 단어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사상과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모든 후손들, 이스라엘 민족이 다 아브라함의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브라함의 허리 속에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모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선민사상이라고 합니다.
또 아들은 아버지와 똑같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믿기로는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과 하나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뭐야? 이런 참람한 놈을 봤나. 네가 하나님과 하나라고?’ 하면서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천년 넘는 세월을 두고 인자(人子, Son of Man), 곧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신다는 예언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중 사무엘서를 보면 기원전 1000념 무렵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의 왕위가 영원하리라.” 또 이사야서는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서 9장 6-7절): 성경을 직접 찾아 읽어보십시오. 어떻게 한 아기가 났는데 그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까?
다윗왕과 솔로몬왕 후 기원전 932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그 후 기원전 721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멸망당하고, 기원전 586년엔 남유다왕국마져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예루살렘성은 완전히 훼파되고 얼마 남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포로생활을 하고, 그런 다음 70년 뒤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 뒤에 또 마게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쳐들어와 점령하고 또 그다음엔 또 로마제국이 통치하고..... 그렇게 나라를 빼앗기고 풍비박산 난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윗의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경이 외친 “다윗의 아들 예수여.‘라는 외침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이스라엘을 건져내실 구세주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소경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속을 다 아시는 예수님이 그 외침이 소경의 그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소경은 눈만 뜬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자는 단지 이스라엘 백성만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해내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소경입니다. 암흑 속에 갇혀 있습니다. 죽음과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망도 없습니다. 그렇게 삶이 끝나고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들려 왔습니다. “구세주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세주가 오셨다.”
당신은 가만히 길가에 앉아서 동냥이나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일어나 죽기 살기로 예수님을 부르시겠습니까? “다윗의 아들 예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를 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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