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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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108.♡.♡.226)ㆍ2019-01-18 10:25관련링크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교회가 무엇인가?
이 근본적인 물음에
그리스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의 개념(槪念)을
성경으로 신학으로 확신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교회의 정의(定義)를 주님의 말씀으로
성령님께서 교회에 말씀하시는 의미로 정립한 사람은 많지 않았음은
교회사가 이를 증명하였고 오늘날도 마찬가지라
성경의 교회로 개혁하려는 자들이 있었고 있으나 소수라
교회라는 건물과 조직과 모임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와
멀고도 먼 거리에 존재하기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동력을 잃어 세상에서 힘을 잃었음은
자기들 스스로가 복음의 의에서 멀어진 원인은 종교화한 외식이라
행위를 믿음에서 제외한 가식된 믿음이라
이미 그리스도 주님의 사랑의 진리에서 떠난 믿음이라
믿음, 믿음을 외치나 그런 믿음은 성령님의 가르치심이 아니라
자기들 자신이 합리화한 자신들의 자부(自負)라
확신하고 자랑하여 수많은 부흥 프로그램과 부흥운동을 한 들
이미 하나님의 공의에서 떠난 오빌의 금을 구하기라
부자라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세계적인 규모의 대형교회가 있더라도
수많은 교회가 대형교회의 규모를 따라 본보기를 삼더라도
라오디게아 교회를 닮은 교회는
부유와 부흥을 지향하나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잃고도
한 세대도 못 버티고 소멸할 사데 교회 같아
이 시대의 슬픔을 넘은 애통이라
성령님께서 교회를 향한 말씀을 듣지 못한 까닭이라
이제라도 듣지 못한다면
믿고 믿었던 소망이란 믿음은 신기루 같아
현세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믿음으로 천국만을 바라보는 소망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허상의 믿음이라
믿음에 하나님의 의(義)가 소멸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義)가 사라진 믿음으로
열심히 열렬한 마음으로 열의(熱意)를 다한 신앙의 생활이라 자부 했다 하더라도
그런 믿음은 그리스도 주님을 닮으려는 근본적인 행위가 아니라서
신앙인이 아닌 종교인으로 남아 힘을 잃고
종당에 허무한 날이 닥쳐올 것이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And I say also unto thee, That thou art Peter,
and up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마태복음 16:18]
주님의 16:18 절의 말씀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신 말씀은
후대에 이 절보다 논란의 논쟁을 일으킨 구절이 없다.
이 구절로 교회의 정당성과 전통성을 찾은 가톨릭이나
교회의 개념을 취한 개신교나
교회의 의미를 퇴색시켜 건물과 조직과 유지로 삼았기에
교회라는 성스러운 건물과 성스러운 조직의 기초는
그리스도 주님의 복음에서 멀어진 복음의 의가 되어
현세에 머문 거짓된 믿음으로 자기 의가 되었으면서 내세(來世)를 파는
소망을 파는 종교가 되어
소망을 말하나 현실에 매인 종교관으로 자가당착(自家撞着)의 신념이
진정한 믿음이 될 수도 없기에
그런 자들의 모임을 교회라 한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었던 것은
복음의 의에 벗어난 탈선이라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교회가 무엇이기에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커녕 세상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이제 수많은 교회들이 사라질 것을 천하태평(天下泰平)으로 바라보고
교인수가 적어지고 교회의 재정이 부족하다 하면서
왜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가.
주님께서 외부 탓을 하셨는가.
환경을 탓하셨는가.
복음의 의의(意義)가 퇴색한 시대와 세대 그리고 오늘 날
진정 교회는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진정한 신앙인은 누구인가?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다시 교회를 말씀하셨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For where two or three are gathered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in the midst of them. 18:20]
“내 이름으로 모인 곳”
그리스도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 그 이름으로 모인 두세 사람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말씀하시면 주님도 그들 중에 계신다 하셨다.
무엇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는 주님의 복음으로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모인 모임이라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복음의 의로
주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주님의 지체들이라
지체들이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명예를 구할 것이며
지체들이 직분에 억매여 직분을 자랑할 것이며
지체들이 그리스도 주님의 지체들이라 하면서 어찌 사랑하지 못하면서
그리스도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가.
형제의 아픔을 외면하고
자매의 고통에 눈감고도 신성한 교회건물에서 거룩한 예배를 드렸다 하는가.
그리고도 주님을 영접하였다 할 수 있는가.
또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이름’을 말씀하셨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I am come in my Father's name, and ye receive me not:
if another shall come in his own name, him ye will receive. 요한복음 5:43]
주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 으로 오신 진리의 그리스도 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
그 ‘이름’ 이 진리며 진실이라 복음이기에
‘이름’ 인 복음의 증인이 되셨으며
‘이름’ 인 진리를 증거 하시는 성령님을
하나님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보내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6]
주님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님은 복음의 증인이시기에
주님은 교회를 향한 성령님의 말씀을 들어라 하셨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주님 그리고 성령님께서 한 분 이듯이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복음 안에 하나가 되어
모두가 성도가 되어 하나가 되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계시하셨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그러기에 믿음이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순종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말씀을 순종하는 행위라
이 ‘행위’ 가 순종이 됨은
순종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시인하는 행위라
순종은 그리스도 주님의 사랑을 시인하여 살아계신 주님의 계명으로 살겠다는 행위라
이 땅의 삶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이 되신 주님을 본받으면 삶이 예배이며 교제라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짐이 하나님의 은혜 인 것은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스스로 배우거나 깨달음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인도하신 결과라
행함이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행함이 없이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기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이라
성령님과 동행함이 아니다.
그러기에 어찌 교만 된 마음으로 명예를 좇고 거룩한 교회의 직분을 탐할 것이며
거짓됨으로 교제할 것이며
진리를 사유화 하여 자신의 안일(安逸)로 삼았으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그리스도 주님을 영접하였다 하는가.
그러기에 이를 아신 주님은
만일 다름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하셨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주님은 거짓 선지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면
유대인들이 그를 영접할 것을 예언하셨으며
후에 사람들의 영광을 구하게 될 수많은 거짓 선생을 말씀하셨고
예수님 이후 자신이 그리스도라 하는 이단의 지도자를 말씀하셨기에
주님의 제자들은 초대교회로부터 배교하게 하는 거짓 선생과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를 수없이 경고하였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데살로니가 후서 2:3-4]
거짓 선생들의 배교, 그리고 동조 세력,
오늘날 거짓 선생은 누구인가?
사람들의 영광을 구하는 거짓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영광과 성령님의 능력을 말하나
실은 그 위에 자신을 높이려고 교회를 성전이라 하며
성전에 앉아 하나님의 종으로, 예수님의 대리자로 중보자로
자신을 위하여 성령님을 팔아먹는 자들이라
이런 거짓된 자들의 미혹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 그리스도 주님의 이름
그리고 성령님의 이름을 빙자하기에
이름에 합당하지 못한 믿음을 믿음이라 하는 자들은
거짓된 믿음이 자신들의 올무가 되어 자신을 파탄하는 배교로 이루어지기에
요한복음은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을 믿는 것에 대한 믿음의 실제는 신학적인 신조가 아니라
주님과 개인적인 만남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닮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하기에,
교리적인 생활이 외식이 되었던 유태인의 율법을 왜 주님께서 그토록 화를 내셨으며
저주까지 하셨는가.
오늘날 정통신학이라고 정통교회라 주장하는 자들을 보라.
무엇이 정통이란 말인가?
전통이 정통인가?
베드로의 전통위에 세워진 정통처럼
변절된 오늘날의 교회의 책임은
그리스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은 책임이라
책임을 회피한 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를 알 수 없음은
성령님께서 교회를 향한 말씀을 듣지 못함이라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그리스도 주님께서 영광을 받고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을 자들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이루고
종당에 하나님 나라에 참여 하는
그리스도 성도들의 모임이라
바울은 이를 위하여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하였음은
믿음이 행위로 나타난 그리스도 사랑의 실천이라
믿음의 역사라 능력이라
그가 기도함은 이미 성령님의 교회를 향한 말씀을 들었기에
그 실천이며 성령님의 능력이라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루어지는 역사의 능력을 보았고
또 온전히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으로 바라보았기에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행위로 실천하였음은
실천이 행위라, 행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증하는 삶이라
살아계신 그리스도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이라
그는 그의 행위가 예배가 된 삶의 본을 보였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 후서 1:11-12]
교회가 무엇인가?
이 근본적인 물음에
그리스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의 개념(槪念)을
성경으로 신학으로 확신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교회의 정의(定義)를 주님의 말씀으로
성령님께서 교회에 말씀하시는 의미로 정립한 사람은 많지 않았음은
교회사가 이를 증명하였고 오늘날도 마찬가지라
성경의 교회로 개혁하려는 자들이 있었고 있으나 소수라
교회라는 건물과 조직과 모임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와
멀고도 먼 거리에 존재하기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동력을 잃어 세상에서 힘을 잃었음은
자기들 스스로가 복음의 의에서 멀어진 원인은 종교화한 외식이라
행위를 믿음에서 제외한 가식된 믿음이라
이미 그리스도 주님의 사랑의 진리에서 떠난 믿음이라
믿음, 믿음을 외치나 그런 믿음은 성령님의 가르치심이 아니라
자기들 자신이 합리화한 자신들의 자부(自負)라
확신하고 자랑하여 수많은 부흥 프로그램과 부흥운동을 한 들
이미 하나님의 공의에서 떠난 오빌의 금을 구하기라
부자라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세계적인 규모의 대형교회가 있더라도
수많은 교회가 대형교회의 규모를 따라 본보기를 삼더라도
라오디게아 교회를 닮은 교회는
부유와 부흥을 지향하나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잃고도
한 세대도 못 버티고 소멸할 사데 교회 같아
이 시대의 슬픔을 넘은 애통이라
성령님께서 교회를 향한 말씀을 듣지 못한 까닭이라
이제라도 듣지 못한다면
믿고 믿었던 소망이란 믿음은 신기루 같아
현세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믿음으로 천국만을 바라보는 소망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허상의 믿음이라
믿음에 하나님의 의(義)가 소멸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義)가 사라진 믿음으로
열심히 열렬한 마음으로 열의(熱意)를 다한 신앙의 생활이라 자부 했다 하더라도
그런 믿음은 그리스도 주님을 닮으려는 근본적인 행위가 아니라서
신앙인이 아닌 종교인으로 남아 힘을 잃고
종당에 허무한 날이 닥쳐올 것이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And I say also unto thee, That thou art Peter,
and up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마태복음 16:18]
주님의 16:18 절의 말씀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신 말씀은
후대에 이 절보다 논란의 논쟁을 일으킨 구절이 없다.
이 구절로 교회의 정당성과 전통성을 찾은 가톨릭이나
교회의 개념을 취한 개신교나
교회의 의미를 퇴색시켜 건물과 조직과 유지로 삼았기에
교회라는 성스러운 건물과 성스러운 조직의 기초는
그리스도 주님의 복음에서 멀어진 복음의 의가 되어
현세에 머문 거짓된 믿음으로 자기 의가 되었으면서 내세(來世)를 파는
소망을 파는 종교가 되어
소망을 말하나 현실에 매인 종교관으로 자가당착(自家撞着)의 신념이
진정한 믿음이 될 수도 없기에
그런 자들의 모임을 교회라 한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었던 것은
복음의 의에 벗어난 탈선이라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교회가 무엇이기에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커녕 세상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이제 수많은 교회들이 사라질 것을 천하태평(天下泰平)으로 바라보고
교인수가 적어지고 교회의 재정이 부족하다 하면서
왜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가.
주님께서 외부 탓을 하셨는가.
환경을 탓하셨는가.
복음의 의의(意義)가 퇴색한 시대와 세대 그리고 오늘 날
진정 교회는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진정한 신앙인은 누구인가?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다시 교회를 말씀하셨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For where two or three are gathered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in the midst of them. 18:20]
“내 이름으로 모인 곳”
그리스도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 그 이름으로 모인 두세 사람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말씀하시면 주님도 그들 중에 계신다 하셨다.
무엇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는 주님의 복음으로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모인 모임이라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복음의 의로
주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주님의 지체들이라
지체들이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명예를 구할 것이며
지체들이 직분에 억매여 직분을 자랑할 것이며
지체들이 그리스도 주님의 지체들이라 하면서 어찌 사랑하지 못하면서
그리스도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가.
형제의 아픔을 외면하고
자매의 고통에 눈감고도 신성한 교회건물에서 거룩한 예배를 드렸다 하는가.
그리고도 주님을 영접하였다 할 수 있는가.
또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이름’을 말씀하셨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I am come in my Father's name, and ye receive me not:
if another shall come in his own name, him ye will receive. 요한복음 5:43]
주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 으로 오신 진리의 그리스도 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
그 ‘이름’ 이 진리며 진실이라 복음이기에
‘이름’ 인 복음의 증인이 되셨으며
‘이름’ 인 진리를 증거 하시는 성령님을
하나님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보내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6]
주님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님은 복음의 증인이시기에
주님은 교회를 향한 성령님의 말씀을 들어라 하셨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주님 그리고 성령님께서 한 분 이듯이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복음 안에 하나가 되어
모두가 성도가 되어 하나가 되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계시하셨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그러기에 믿음이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순종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말씀을 순종하는 행위라
이 ‘행위’ 가 순종이 됨은
순종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시인하는 행위라
순종은 그리스도 주님의 사랑을 시인하여 살아계신 주님의 계명으로 살겠다는 행위라
이 땅의 삶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이 되신 주님을 본받으면 삶이 예배이며 교제라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짐이 하나님의 은혜 인 것은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스스로 배우거나 깨달음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인도하신 결과라
행함이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행함이 없이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기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이라
성령님과 동행함이 아니다.
그러기에 어찌 교만 된 마음으로 명예를 좇고 거룩한 교회의 직분을 탐할 것이며
거짓됨으로 교제할 것이며
진리를 사유화 하여 자신의 안일(安逸)로 삼았으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그리스도 주님을 영접하였다 하는가.
그러기에 이를 아신 주님은
만일 다름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하셨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주님은 거짓 선지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면
유대인들이 그를 영접할 것을 예언하셨으며
후에 사람들의 영광을 구하게 될 수많은 거짓 선생을 말씀하셨고
예수님 이후 자신이 그리스도라 하는 이단의 지도자를 말씀하셨기에
주님의 제자들은 초대교회로부터 배교하게 하는 거짓 선생과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를 수없이 경고하였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데살로니가 후서 2:3-4]
거짓 선생들의 배교, 그리고 동조 세력,
오늘날 거짓 선생은 누구인가?
사람들의 영광을 구하는 거짓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영광과 성령님의 능력을 말하나
실은 그 위에 자신을 높이려고 교회를 성전이라 하며
성전에 앉아 하나님의 종으로, 예수님의 대리자로 중보자로
자신을 위하여 성령님을 팔아먹는 자들이라
이런 거짓된 자들의 미혹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 그리스도 주님의 이름
그리고 성령님의 이름을 빙자하기에
이름에 합당하지 못한 믿음을 믿음이라 하는 자들은
거짓된 믿음이 자신들의 올무가 되어 자신을 파탄하는 배교로 이루어지기에
요한복음은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을 믿는 것에 대한 믿음의 실제는 신학적인 신조가 아니라
주님과 개인적인 만남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닮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하기에,
교리적인 생활이 외식이 되었던 유태인의 율법을 왜 주님께서 그토록 화를 내셨으며
저주까지 하셨는가.
오늘날 정통신학이라고 정통교회라 주장하는 자들을 보라.
무엇이 정통이란 말인가?
전통이 정통인가?
베드로의 전통위에 세워진 정통처럼
변절된 오늘날의 교회의 책임은
그리스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은 책임이라
책임을 회피한 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를 알 수 없음은
성령님께서 교회를 향한 말씀을 듣지 못함이라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그리스도 주님께서 영광을 받고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을 자들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이루고
종당에 하나님 나라에 참여 하는
그리스도 성도들의 모임이라
바울은 이를 위하여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하였음은
믿음이 행위로 나타난 그리스도 사랑의 실천이라
믿음의 역사라 능력이라
그가 기도함은 이미 성령님의 교회를 향한 말씀을 들었기에
그 실천이며 성령님의 능력이라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루어지는 역사의 능력을 보았고
또 온전히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으로 바라보았기에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행위로 실천하였음은
실천이 행위라, 행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증하는 삶이라
살아계신 그리스도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이라
그는 그의 행위가 예배가 된 삶의 본을 보였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 후서 1:11-12]
댓글목록
대장쟁이님의 댓글
대장쟁이 72.♡.♡.208
드디어 100회를 돌파하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이제 어그러진 길이 곧은 길, 평탄한 길, 하나님의 대로로 바뀌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화이팅!
짐보님의 댓글
짐보 108.♡.♡.226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날이 얼마전 같은데
벌써 3년이 흘렀습니다.
올릴 예정인 글도 여러편 있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데살오니가 교회를 맺음을 하여야 하는데
갈길이 멉니다.
같이 힘 내셔서 남은 자로 남아서
주님의 증인으로 남아서
신앙의 길을 제시 하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험한 주말 날씨,건강 유의 하시고
기쁨이 넘치는 시간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