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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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108.♡.♡.226)ㆍ2019-04-25 11:02관련링크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제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마태복음 18:15-17]
[세상 법정에 송사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6장]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며
전에는 불의한 자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성령님의 역사로 씻음을 받아 세상에 새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세상에서 분별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다시 강조 한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11]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죄를 씻어 거룩함과 의로움을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되었기에
받은 은혜,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은혜를 받아 죄를 씻어 거룩함을 받았기에
의로우신 하나님과 주님의 이름의 의(義)를 부르는 자들로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자들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2]
그러기에 세상의 죄에서 씻음을 받은 자들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서 형제를 송사하고
의롭다 함을 그리스도 주님의 의로 받은 자들이,
다시 예전의 불의한 자로 돌아가서 주님의 말씀을 거역함이
다시 세상에 돌아감이라
어찌 교회의 작은 일을 감당하지 못하여 세상의 법정에 고발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다시 성령님의 말씀인 주님의 의를 일깨운다.
그러기에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고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6]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상속자라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7]
그리스도 주님과 함께 한 상속자라,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았듯이, 그리스도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함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 주님을 따라야 함은
하나님의 구원의 의를 위하여 주님께서 고난을 받았듯이
또한 의를 위하여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고난을, 바울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20]
그리스도 주님의 고난과 피 흘린 값으로 산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가가
너희 몸이며 생명이라, 교회라
세상의 일상생활에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하물며 교회에서 복음의 의를 위하여 억울한 일을 당하고 더 하여 원통하더라도
주님의 의를 위한 고난은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몸의 행위가 예배라,
주님은 ‘행위’ 로 판단하신다고 계시록에서 모든 교회에게 말씀하시며
교회를 향한 성령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모든 교회에게 명령하셨고
사도 바울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님이 친히 간구하신다 하였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For we are saved by hope: but hope that is seen is not hope:
for what a man seeth, why doth he yet hope for?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But if we hope for that we see not, then do we with patience wait for it.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Likewise the Spirit also helpeth our infirmities:
for we know not what we should pray for as we ought:
but the Spirit itself maketh intercession for us with groanings which cannot be uttered.
로마서 8:24-26]
소망은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소망이라
바라며 참음으로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이라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빗으심은
이미 영원히 함께 하시길 원하심이라 소망이라
영원히 교제하시길 원하심이라 소망이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창세기 2:7]
사람이 생령이 되니,
이를 고린도전서 15:45은 아담이 생령이 되었듯이
그리스도 주님께서 생령이 되셔서, 살려 주는 영이 되셨고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그리스도 주님의 오심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오셨고
주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오셔서 주님의 사랑을 증명함은
태초부터 구원의 역사를 하신 사랑의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이로 비롯되었기에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Paul, an apostle of Jesus Christ by the commandment of God our Saviour,
and Lord Jesus Christ, which is our hope; 디모데전서 1:1]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 사랑하신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
태초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신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 의(義) 라
이미 함께 하심을 약속하신 구주시라,
세상을 사랑하사 그리스도 주님을 보내신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로 소망이 되신 주님,
우리가 이 모든 역사를 보지 못했고 전해 들었지만, 이를 기록한 성경에 개입하셔서
증명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는 육체의 눈으로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것은 잠시 있다 사라질 안개 같고 바람 같은 것이라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리는 믿음이 소망이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For we are saved by hope: but hope that is seen is not hope:
for what a man seeth, why doth he yet hope for?”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며
보이는 것은 잠시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하찮은 것 같은 것이라,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구원을 계시하시고 역사하셨기에,
그러기에 주님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하셨고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무엇이 소망이기에 교회안의 사건을, 소망에 비하면 하찮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의 법정에서 판단을 받는 다면,
세상을 판단하는 자들이 오히려 세상의 판단을 받는 뚜렷한 허물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불의의 행위이며
그리스도 주님의 사랑에 대한 배반이라, 복음의 어그러진 길이라
보이는 소망은 참 소망이 아닌데
교회 안에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불의한 사건을
교단에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교단이며 교회며
무엇이 선생 된 자들이 가르치는 소망이란 말인가.
목사가 장로를 고발하고 장로가 목사를 고발하여
교회에 말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불의를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도 교회란 말인가?
무엇이 교회인가?
무엇이 믿음인가?
믿는 다면서 믿음에 순종이 사라지고
의(義)에 대한 고난이 없다면
무엇이 예배인가?
무엇이 밥 먹듯이 말하는 영광인가?
그리스도 주님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고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브리서 5:8-9]
주님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셔서, 온전하게 되셨기에
순종하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기에
주님의 고난과 순종을 일깨우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도우시며 때로는 불의에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타락하여 불의한 인간을 그리스도께로 이끄시고 인간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님께서 도우신다는 의미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26]
그 형상대로 붙드시는, 붙드심이 도움이라
주님의 닮아가는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7]
하나님께서 주님을 보내시고
주님은 성령님을 보내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불의에 탄식하시며 간구하심은
하나님과 주님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며
태초에 남자와 여자도 서로 돕는 관계로 창조하셨으며 한 몸을 이루듯
교회가 한 몸을 이루는 역사가
주님을 닮는 거룩함 이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죄 씻음을 받은 자들이 거룩히 여김을 받았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그렇지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성령님은 탄식을 하시며 친히 간구하신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께서 그 탄식이 하나님의 탄식이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세기 6:5-6]
성령님께서 친히 간구하심이 하나님의 의라, 차별이 없으시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2-24]
그래서 성경은 부분적으로 개인 인 성도를 언급하지만
대부분의 성경의 성도는 복수라, 개인이 아니라 교회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교회라,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
책망하실 세상은, 주님을 믿지 않음이 죄 라
이 세상 임금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셨고
그런 세상의 사상과 세상의 관습에, 세상의 법에 의지하려고 교회의 고발이라,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요한복음 16:8-11]
주님께서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은
성령님께서 진리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의를 알지 못함이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3-14]
성령님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장래 일을 알리시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심은 주님의 고난으로 비롯된 의의 영광이라
의에 고난이 없을 수 없으며
의에 기다림의 소망이 없을 수 없기에
믿음은 바라는 실상이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For by it the elders obtained a good report. 히브리서 11:1-2]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믿음은 분별로 핍박과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소망이라
성경은 믿는 자들이 이로써 보이지 않는 소망을 증거 하였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 기록했으나
보이는 세상의 소망이 불의가 된 오늘날의 교회
그런 교회가 교회인가?
주님은 고난을 당하셨고 피 흘리며 돌아가셨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는데,
우리의 소망이 되셨는데,
형제가 죄를 범하여 교회에 말해도 듣지 않고
세상 법정에 송사라...
의에 대한 고난이 없다면
교회가 무엇이며,
예배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리스도 주님의 보라.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사야 53:1-4]
[제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마태복음 18:15-17]
[세상 법정에 송사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6장]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며
전에는 불의한 자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성령님의 역사로 씻음을 받아 세상에 새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세상에서 분별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다시 강조 한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11]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죄를 씻어 거룩함과 의로움을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되었기에
받은 은혜,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은혜를 받아 죄를 씻어 거룩함을 받았기에
의로우신 하나님과 주님의 이름의 의(義)를 부르는 자들로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자들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2]
그러기에 세상의 죄에서 씻음을 받은 자들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서 형제를 송사하고
의롭다 함을 그리스도 주님의 의로 받은 자들이,
다시 예전의 불의한 자로 돌아가서 주님의 말씀을 거역함이
다시 세상에 돌아감이라
어찌 교회의 작은 일을 감당하지 못하여 세상의 법정에 고발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다시 성령님의 말씀인 주님의 의를 일깨운다.
그러기에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고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6]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상속자라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7]
그리스도 주님과 함께 한 상속자라,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았듯이, 그리스도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함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 주님을 따라야 함은
하나님의 구원의 의를 위하여 주님께서 고난을 받았듯이
또한 의를 위하여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고난을, 바울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20]
그리스도 주님의 고난과 피 흘린 값으로 산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가가
너희 몸이며 생명이라, 교회라
세상의 일상생활에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하물며 교회에서 복음의 의를 위하여 억울한 일을 당하고 더 하여 원통하더라도
주님의 의를 위한 고난은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몸의 행위가 예배라,
주님은 ‘행위’ 로 판단하신다고 계시록에서 모든 교회에게 말씀하시며
교회를 향한 성령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모든 교회에게 명령하셨고
사도 바울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님이 친히 간구하신다 하였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For we are saved by hope: but hope that is seen is not hope:
for what a man seeth, why doth he yet hope for?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But if we hope for that we see not, then do we with patience wait for it.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Likewise the Spirit also helpeth our infirmities:
for we know not what we should pray for as we ought:
but the Spirit itself maketh intercession for us with groanings which cannot be uttered.
로마서 8:24-26]
소망은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소망이라
바라며 참음으로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이라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빗으심은
이미 영원히 함께 하시길 원하심이라 소망이라
영원히 교제하시길 원하심이라 소망이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창세기 2:7]
사람이 생령이 되니,
이를 고린도전서 15:45은 아담이 생령이 되었듯이
그리스도 주님께서 생령이 되셔서, 살려 주는 영이 되셨고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그리스도 주님의 오심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오셨고
주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오셔서 주님의 사랑을 증명함은
태초부터 구원의 역사를 하신 사랑의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이로 비롯되었기에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Paul, an apostle of Jesus Christ by the commandment of God our Saviour,
and Lord Jesus Christ, which is our hope; 디모데전서 1:1]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 사랑하신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
태초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신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 의(義) 라
이미 함께 하심을 약속하신 구주시라,
세상을 사랑하사 그리스도 주님을 보내신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로 소망이 되신 주님,
우리가 이 모든 역사를 보지 못했고 전해 들었지만, 이를 기록한 성경에 개입하셔서
증명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는 육체의 눈으로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것은 잠시 있다 사라질 안개 같고 바람 같은 것이라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리는 믿음이 소망이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For we are saved by hope: but hope that is seen is not hope:
for what a man seeth, why doth he yet hope for?”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며
보이는 것은 잠시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하찮은 것 같은 것이라,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구원을 계시하시고 역사하셨기에,
그러기에 주님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하셨고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무엇이 소망이기에 교회안의 사건을, 소망에 비하면 하찮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의 법정에서 판단을 받는 다면,
세상을 판단하는 자들이 오히려 세상의 판단을 받는 뚜렷한 허물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불의의 행위이며
그리스도 주님의 사랑에 대한 배반이라, 복음의 어그러진 길이라
보이는 소망은 참 소망이 아닌데
교회 안에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불의한 사건을
교단에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교단이며 교회며
무엇이 선생 된 자들이 가르치는 소망이란 말인가.
목사가 장로를 고발하고 장로가 목사를 고발하여
교회에 말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불의를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도 교회란 말인가?
무엇이 교회인가?
무엇이 믿음인가?
믿는 다면서 믿음에 순종이 사라지고
의(義)에 대한 고난이 없다면
무엇이 예배인가?
무엇이 밥 먹듯이 말하는 영광인가?
그리스도 주님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고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브리서 5:8-9]
주님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셔서, 온전하게 되셨기에
순종하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기에
주님의 고난과 순종을 일깨우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도우시며 때로는 불의에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타락하여 불의한 인간을 그리스도께로 이끄시고 인간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님께서 도우신다는 의미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26]
그 형상대로 붙드시는, 붙드심이 도움이라
주님의 닮아가는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7]
하나님께서 주님을 보내시고
주님은 성령님을 보내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불의에 탄식하시며 간구하심은
하나님과 주님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며
태초에 남자와 여자도 서로 돕는 관계로 창조하셨으며 한 몸을 이루듯
교회가 한 몸을 이루는 역사가
주님을 닮는 거룩함 이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죄 씻음을 받은 자들이 거룩히 여김을 받았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그렇지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성령님은 탄식을 하시며 친히 간구하신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께서 그 탄식이 하나님의 탄식이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세기 6:5-6]
성령님께서 친히 간구하심이 하나님의 의라, 차별이 없으시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2-24]
그래서 성경은 부분적으로 개인 인 성도를 언급하지만
대부분의 성경의 성도는 복수라, 개인이 아니라 교회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교회라,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
책망하실 세상은, 주님을 믿지 않음이 죄 라
이 세상 임금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셨고
그런 세상의 사상과 세상의 관습에, 세상의 법에 의지하려고 교회의 고발이라,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요한복음 16:8-11]
주님께서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은
성령님께서 진리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의를 알지 못함이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3-14]
성령님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장래 일을 알리시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심은 주님의 고난으로 비롯된 의의 영광이라
의에 고난이 없을 수 없으며
의에 기다림의 소망이 없을 수 없기에
믿음은 바라는 실상이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For by it the elders obtained a good report. 히브리서 11:1-2]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믿음은 분별로 핍박과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소망이라
성경은 믿는 자들이 이로써 보이지 않는 소망을 증거 하였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 기록했으나
보이는 세상의 소망이 불의가 된 오늘날의 교회
그런 교회가 교회인가?
주님은 고난을 당하셨고 피 흘리며 돌아가셨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는데,
우리의 소망이 되셨는데,
형제가 죄를 범하여 교회에 말해도 듣지 않고
세상 법정에 송사라...
의에 대한 고난이 없다면
교회가 무엇이며,
예배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리스도 주님의 보라.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사야 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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