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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탄절에 생각해 보는 말씀

페이지 정보

대장쟁이 (142.♡.♡.150)2021-12-11 13:04

본문

<이 성탄절에 생각해보는 말씀>
이 성탄절에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에 관하여 말입니다.

1. 요셉과 마리아

우리 한글성경 마태복음 1장 첫머리는 아래와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마 1:1-3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잘 아시는 대로 “낳고”, “낳고”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남자가 어떻게 낳습니까? 이는 명심보감과 또 조선시대의 학자 주세붕 선생의 시조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실 제.....”의 영향을 받은 번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의 원본, 즉 헬라어 원어성경도 '낳고'로 되어 있을까요? 아닙니다.
헬라어 성경 원전에는 “아브라함 에겐네덴 톤 이삭, 이삭 데 에겐네덴 톤 야곱....”,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버지가 되었고, 이삭은 야곱의 아버지가 되었고....”로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를 비교적 정확히 번역하고 있는 NIV 영어성경을 볼까요?
“A record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Abraham was the father of Isaac, Isaac the father of Jacob, Jacob the father of Judah and his brothers......“
역시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버지였고, 이삭은 야곱의 아버지,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의 아버지.....“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성령님의 역사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습니다(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육신으로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예수님과 아버지 요셉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관습과 율법에 따라 요셉은 예수님의 아버지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예언과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통하여 오셨다는 말씀이 과연 옳으냐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마리아의 계보를 거꾸로 위로 올라가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3: 23-25 =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아모스요 그 이상은 나훔이요 그 이상은 에슬리요 그 이상은 낙개요.....
누가복음 우리말 성경번역도 좀 이상합니다. 왜 “이상은, 이상은...”으로 번역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헬라어 원어성경을 볼까요? 헬라어 성경은 “온 휘오스, 호스 에노믹섹토, 요셉, 투 헬리, 투 맛닷, 투 레위, 투 멜치.....” 즉 예수님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 요셉의 아들이요, (그는) 헬리(의 아들), (그는 맛닷(의 아들), (그는) 레위(의 아들이요).......로 주욱 올라가서 다윗에 이르러 아버지 요셉의 족보와 만나게 되고, 계속 올라가서 아브라함으로 이어지고, 아담으로 이어지고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NIV 영어성경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Now Jesus himself was about thirty years old when he began his ministry. He was the son, so it was thought, of Joseph, the son of Heli, the son of Matthat, the son of Levi, the son of Melki, the son of Jannai, the son of Joseph.........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된 대로, 요셉의 아들이었고, (요셉은) 헬리의 아들, (헬리는) 맛닷의 아들, (맛닷은) 레위의 아들..........
그러므로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님은 족보로는 요셉을 통하여, 혈통으로는 마리아를 통하여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아들”로, 그리고 “여자의 후손(창세기 3:15)”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신 다음 가나안 땅(두 지파 반은 요단강 동편)을 열두 지파에 분배하게 하시고 그 땅이 혼인으로 인하여 이리저리 섞이지 않도록 같은 지파끼리만 혼인하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유다지파의 혈통이 온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같은 유다지파에 속한 요셉과 마리아가 혼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아, 조상과 후손 말인데요. 우리말 성경에는 있지만 원어성경에는 조상이나 후손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여자의 후손(창 3:15)”이라고 되어 있으나 원어성경은 “여자의 씨”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우리말 성경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도 원어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아들“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할아버지도 없고 조상도 없으며 아버지와 아들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도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셨을 때 자신들은 아버지 아브라함 속에 들어있었다고 믿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므로 그들은 그 때 아브라함(의 허리) 속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택함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는 것은  또 성경의 중요한 핵심사상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아버지와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것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실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2. 아버지가 되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자가 시집을 가도 성(姓)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하여 서양에서는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의 성(姓), 아니 Family Name, 가족이름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성(姓)의 의미와 서양의 Family Name의 의미 또한 같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지 못 하면 내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여자는 시집가서 그 집의 가족이 아니라 아들(씨)을 낳아 대를 이어주는 일종의 생산도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죽어서도 자신의 이름조차 없이 처녀 때의 성씨로 묘비에 기록됩니다.
이스라엘 풍습, 성경의 역사에 의하면 여자가 결혼하면 남자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율법, 곧 하나님의 법(Law)에 따라 그 집의 가족이 되고 아버지의 딸(Daughter in Law)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맺어주셨으니 아무도 나눌 수 없고 아들을 못 낳아도 내쫓거나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아들을 낳지 못 하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내가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만들든지 주워오든지 남편에게 주어서 아버지가 되게 하였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아브람은 75세였고 사라는 65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약속하셨지만 사라는 이미 폐경을 지난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하인이던 다메섹 엘리에셀을 후사로 생각하기도 하였으며(창15:2), 사라는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남편의 품에 안겨서 이스마엘을 낳게도 하였습니다.
몸종은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사라가 자신의 몸 대신 몸종의 몸을 사용하여 씨(아들)를 얻는 것은 정당한 권리행사였습니다. 아내가 자신이 강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후사를 만들어서 남편에게 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이것이요, 이 아이의 아버지가 되시오.” 하면 남편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낳고”가 아니라 “아버지가 되었고”인 것입니다.

아들과 후사에 관한 한 모든 권한이 여자에게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가 두 번이나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요구하였고 아브라함이 이로 인하여 번민할 때 하나님은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레아와 라헬은 아들 낳기 경쟁을 하면서 자신의 몸종들인 빌하와 실바를 남편 야곱에게 안겨서 아들을 낳게 하였으며 그렇게 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첩의 자식이니 서자(庶子)니 하며 차별하였겠지만 성경 어디를 봐도 열 두 지파가 차별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 똑같은 아들들이요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되었습니다. 아들과 후사에 관한 전적인 여자의 권한은 또한 다윗에게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도록 한 밧세바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후사를 정하는 권한이 아내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사람들이 다 아는 대로,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대로”, 즉 성경과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요셉과 마리아의 맏아들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알다시피 구세주는 절대로 남자의 씨로 잉태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원죄가 이어져 내려온 남자의 씨를 통하여 잉태되면 모든 인류의 죄를 지고 죽으실 메시아가 절대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성령으로 잉태되게 하여 여자의 몸을 통하여 보낼 수 없다면 어찌 죄의 대속이 가능하고 구원이 가능하겠습니까? 과학에 묶여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실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창조주 하나님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여자의 후손”과 “처녀가 낳을 것”을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와 같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너에게서 나리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가 5:2)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오신 날을 기뻐합니다. 아들을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아들로, 또 여자의 씨로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구원의 역사를 인하여 찬양합니다.
이 성탄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이 모두에게 임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의 죄를 대속하신 구세주이십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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