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둥지를 만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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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42.♡.♡.150)ㆍ2021-10-29 23:4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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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잘 되고 오래 살기 원하십니까?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하나님은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22장 6-7절을 보면 거기에도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는 약속이 나오는데,
희한하게도 새둥지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새둥지가 무엇이길래 하나님께서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시며,
새끼는 잡아먹어도 좋은데 어미새는 반드시 놓아주라 하시면서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는 약속까지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생각엔 어미새가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아예 손도 대지 말라 하시든지,
잡아먹으려면 어미새는 먹을 것도 있고 또 살만큼 살았으니까 잡아먹고
애처로운 새끼들은 살려주라 하셔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 말씀은 생명을 낳은 자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존귀하게 여김 받아야 할 것은 새끼들이 아니라 어미새입니다.
어미새의 수고를 생각해 보십시오. 풀잎, 지푸라기, 나뭇가지를 물어다 둥지를 짓고 그 안에 알을 낳고 그 알을 품어 새끼가 나게 하고 먹이를 부지런히 잡아와 짹짹 입벌리는 새끼들을 먹이는 그 눈물겨운 싸움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잉태의 고통과 희생, 인내의 아픔을 겪으면서 생명을 탄생시키고 길러내는 자는 존귀하게 여기시고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즈음엔 어미가 되지 않고 새끼로 남아 있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결혼해 자녀를 낳더라도 최대한 적게 하나만 낳겠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부모세대가 전쟁의 폐허와 가난의 보릿고개를 넘으면서도 다섯 남매, 일곱 남매씩 주렁주렁 낳아서 길러 주셨는데도 말입니다.
오늘날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미루고 심지어 독신을 고수하려는 이기적인 세대는
개인의 자유와 풍요는 누릴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통로를 막아버림으로써
후손을 단절시켜 부모에 불효하고 민족과 인류의 멸종에 기여하는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그들을 존귀하게 여기실까요?
또한 새둥지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도들과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도 합니다.
어떤 신부가 좋은 신부입니까? 순결? 사랑? 순종?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낳는 것’입니다.
출산을 못 하는 석녀(石女)가 어찌 좋은 신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당연히 복음으로 자녀를 낳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낳으십시오, 많이 나으십시오, 육신의 자녀도, 복음의 자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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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공경하십시오.
하나님은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22장 6-7절을 보면 거기에도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는 약속이 나오는데,
희한하게도 새둥지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새둥지가 무엇이길래 하나님께서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시며,
새끼는 잡아먹어도 좋은데 어미새는 반드시 놓아주라 하시면서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는 약속까지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생각엔 어미새가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아예 손도 대지 말라 하시든지,
잡아먹으려면 어미새는 먹을 것도 있고 또 살만큼 살았으니까 잡아먹고
애처로운 새끼들은 살려주라 하셔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 말씀은 생명을 낳은 자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존귀하게 여김 받아야 할 것은 새끼들이 아니라 어미새입니다.
어미새의 수고를 생각해 보십시오. 풀잎, 지푸라기, 나뭇가지를 물어다 둥지를 짓고 그 안에 알을 낳고 그 알을 품어 새끼가 나게 하고 먹이를 부지런히 잡아와 짹짹 입벌리는 새끼들을 먹이는 그 눈물겨운 싸움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잉태의 고통과 희생, 인내의 아픔을 겪으면서 생명을 탄생시키고 길러내는 자는 존귀하게 여기시고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즈음엔 어미가 되지 않고 새끼로 남아 있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결혼해 자녀를 낳더라도 최대한 적게 하나만 낳겠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부모세대가 전쟁의 폐허와 가난의 보릿고개를 넘으면서도 다섯 남매, 일곱 남매씩 주렁주렁 낳아서 길러 주셨는데도 말입니다.
오늘날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미루고 심지어 독신을 고수하려는 이기적인 세대는
개인의 자유와 풍요는 누릴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통로를 막아버림으로써
후손을 단절시켜 부모에 불효하고 민족과 인류의 멸종에 기여하는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그들을 존귀하게 여기실까요?
또한 새둥지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도들과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도 합니다.
어떤 신부가 좋은 신부입니까? 순결? 사랑? 순종?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낳는 것’입니다.
출산을 못 하는 석녀(石女)가 어찌 좋은 신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당연히 복음으로 자녀를 낳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낳으십시오, 많이 나으십시오, 육신의 자녀도, 복음의 자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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