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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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96.♡.♡.163)ㆍ2017-01-06 12:0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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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권능은 복음의 능력이고
[이는 우리의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5]
복음의 능력이 권능이라
복음은 그리스도의 고난뿐 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삯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서 말씀하시고 본을 보여주신 삶이
우리를 위한 거룩한 사랑 ‘charity’ 이며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의인 공의가
이 땅에 이룬 성취이며
이를 우리와 함께 계시며 증거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라
성령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이라 사랑이시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베푸시는 전능자시라.
성경을 읽으면서 왜 말씀이 운동력을 잃어 영혼의 은총이 못되어
육체를 움직이는 힘이 못되어 무기력한 삶이 되었고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는 구구한 변명이 일상화 되어 복음의 능력을
감하고 이도 모자라 어그러진 길로 향해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가.
이는 그리스도의 고귀하고 순결하고 위대한 사랑을
가슴의 중심, 영혼의 한 가운데 온전히 간직하지 못한 순수함을 잃었기
때문이라 성령님의 권능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받았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멀어진 까닭일진데
조금이라도 신앙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자신에게 물어보라.
거짓을 일삼고 거짓 증언하고 비방과 욕설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의 믿음을 믿음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사람을 방관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성령님께 사로잡힌 사람이라 착각한다면
당신은 맹신자 거나 광신자 아니면 사이비 다.
어찌 진리가 거짓과 함께 하고
그리스도와 바알이 함께 할 수 있단 말인가?
믿는 자 라면서, 지도자라면서 자신의 의로 보여주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을 보고 들어야 하는 일상의 이 시대
눈과 귀를 막고 싶다.
단언하건데 그런 그리스도교는 없다!
설령 실수가 있고 잠시 눈이 욕심에 가리고 귀가 얇아졌던들
다시 그리스도의 자리로 오면 될 것을 무수한 말은 변명거리 일 뿐이다.
돌아가자.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으로.
다시 권능을 되새겨 보면
하나님은
창조주(Creator)이시며
제한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Almighty God)이시며
하나님은 권능 자(權能 者, Mighty One)이시다.
그분은 이제 성령님으로 오셔서
매일 매일, 순간마다 우리의 영혼을 노크하시고 우리가 진실로 진리의
길에서 다시 순수한 믿음을 잊지 않게 잃지 않게 말씀 하신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 이다.
God hath spoken once; twice have I heard this;
that power belongeth unto God.
Also unto thee, O Lord, belongeth mercy; for thou renderest 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work 시편 62:11-12]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전능자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리스도는 부활의 권능이시라 우리의 부활이신 권능 자 시라
권능을 주시려고 성령님을 보내셨고 이제 우리와 함께 영원히 거 하신다.
이제 우리의 죄를 돌이키고 죄악에 젖었던 흔적을 지우게
정직한 성령님을 따라서 구원의 즐거움에 동참하고 죄에서 자유를 갖자.
권능은 그리스도의 고귀하고 깨끗한 사랑, 복음에 동참한 우리에게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이고 구약으로 돌아가서 권능에 대하여 알아보면
구약에서 성령의 표현은 ‘하나님의 영’ ‘거룩한 영’ 등 수없이 많으나
성령 ‘holy Spirit’의 표현은
시편 51:11 과 이사야 63:10-11 뿐이다.
이 두 군데에서 성령의 뜻하심을 살펴보면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좇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 이다.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Cast me not away from thy presence;
and take not thy holy spirit from me.
Restore unto me the joy of thy salvation;
and uphold me with thy free spirit.
Then will I teach transgressors thy ways;
and sinners shall be converted unto thee 시편 51:9-13]
우리가 온전하지 못하여 일상의 생활에서 죄를 지어 죄의 흔적이
남아있더라도 회개하고 다시 주의 길로 돌아온다면,
우리의 죄를 흰 눈처럼 흰 양털처럼 깨 끗게 하시는 죄 사함을 받으려면,
정직한 진실한 진리의 성령님의 인도함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고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잘못을 용서하기를 구하고
다시 죄를 짓지 않는다는 의지의 결정이,
Create in me a clean heart,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그러한 굳은 의지의 결정으로 회개를,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성령님은 우리를 정직한 진실한 진리의 길로 안내하시고
Restore unto me the joy of thy salvation;
구원의 즐거움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죄를 짓고 죄를 죄로 시인하지 못한 회개 없는 버릇과 일상의 습관은 이미 성령님의 능력이 떠나간 상태라
take not thy holy spirit from me,
그 길은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했고
종당에는 어둠의 길이라 이미 심판이 임했다.
그래서 다시 복음의 길, 주의 길로 돌아온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이미 알고
있기에 죄 사함의 경험으로 단련된 시험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믿음이 굳어져서 주의 도,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를 가르치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알아도 잘못된 어그러진 길로 간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게 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이 능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이
권능(power of charity)이다.
이사야 63:10-11를 보면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But they rebelled, and vexed his holy Spirit;
therefore he was turned to be their enemy and he fought against them.
Then he remembered the days of old, Moses, and his people, saying,
Where is he that brought them up out of the sea with the shepherd of his flock?
where is he that put his holy Spirit within him?]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rebelled)하여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고
그가, 하나님이 돌이켜 그들의 대적으로 그들을 치셨더니
이스라엘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며 말하길
백성과 목자의 양을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어디계시냐?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백성 가운데 거룩한 하나님의 영을 넣어주신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이를 이 시대로 바꾸면,
너희가 복음의 어그러진 길(against light)로 가서
너희가 반역(against God)하여 성령님을 염려하게 하였으므로
너희의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고
너희가 예전에 받은 구원을 기쁨을 잊었고
너희에게 성령님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을 잃고
너희가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하는 도다.
무엇이 성령님의 권능을 제한하는가?
이 시대, 우리가 왜 이렇게 무력할까?
성령 ‘holy Spirit’의 표현을
시편 51:11 과 이사야 63:10-11에서 성령의 뜻하심을 살펴보았다.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한마디로 성령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거짓과 불법에 거하시지
아니하시고 그 길에서 돌아오길 바라시기에 반 복음적인 어그러진 복음의 길에서 역사하지 않으시는데 어느 이들은 이 간단한 사실도 모르고
자신의 능력을 얄팍한 성경의 지식으로 포장하여
무지한 선동을 하는 자 들이 많다.
자신의 허탈한 신학을 진리인양 무장하고 도취하여 허풍을 친다.
어느 이는 성령의 불을 받으라 한다.
어느 이는 성령을 받으라 하고,
도대체 성령님을 명령하는 부흥사와 목사들은 누구인가?
그런 자들에게 믿음마저 세뇌되어 혼미한 정신에 무엇을 구한단 말인가?
그러니 세상의 음모론이 사실인양 이리 저리 흔들리고
극단적인 종말론과 신비론과 음모론에 영혼을 빼앗겨 버리고
조급한 믿음에 평안까지 빼앗겨 버리면
자신이 만든 자신의 허황된 믿음의 벽에 갇혀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신비주의, 세대주의 등에 멍들은 사이비들과 휩싸이거나 동조하고
예루살렘까지 전도가 되어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자는,
무리들이나 그런 주장에 동조하는 자들은
늘 666, 베리 칩, 가톨릭의 종교통합, 음녀론, 후리 메이슨 등 음모론과
극단적인 종말론을 겸하여 천국 간증,
바울도 꺼리였던 천국의 간증까지 곁들여 증명하려 하고
혼미한 흑암의 길이 진리의 길로 둔갑하여
자신들의 믿음의 무지를 이단과 사이비등 배교를 핑계로,
툭하면 신천지 탓이고 이단 탓이고 온갖 마귀, 귀신 탓으로
이제는 정치 사회의 사상적인 이데오르기 탓으로
자신들의 몽롱한 믿음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거짓과 탐욕을 진리로 빙자하여
스스로 사이비임을 증명한다.
왜 그럴까?
두려워 말고 염려 말고 조급해 하지 말자.
하나님은 전능자 시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이고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였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위대한 사랑 ‘charity’ 을 주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요
성령님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예수님의 사랑을 증명하시는 권능 자 이시며
권능을 우리에게 주시고, 주시길 간절히 바라시고 학수고대(鶴首苦待)하시며
진리로 인도하신다.
이제 무엇을 걱정하는가?
귀신인가 사탄인가?
믿음은 분별력이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분별력은 믿음에서 역사하시기에
혼미한 사이비들의 주장에 물든 영혼의 소유자들이 무슨 분별력이 있겠는가.
그 때는, 재림의 때는 만들어진 때,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때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다.
그 때는 하나님 이외는 아무도 모른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무지함을 주장하여 자신들의 혼미한 영혼을 자랑하는 자들
그런 자들은 뭔 신기한 진리의 길을 발견한 듯하나 그런 자들의 이면에는
자기 자랑의 진리의 독점, 욕심이 둔갑한 진리를 사실인양 퍼트리고 주장하고 강요하여 겁을 주는 일은 복음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사이비들이기에
사악한 마음에 구하여도 악한 마음에 함께 하실 성령님이 아니시거늘
성령님을 명령하는 패악하고 사악한 자들은
자기의 악에 걸리어 그 죄의 줄에 매여서
미련해져서 성경의 훈계를 혼미하게 주장하여 사이비가 되었다.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어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 잠언 5:22-23]
하나님이시면서 낮고 낮아지셔서 인간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고귀하고 순결한 사랑 ‘charity’를 간직한 믿음으로,
감사와 찬양으로,
인도 하시는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우고 본이 되었듯,
이 시대 이 곳에서도 성령님은 똑같이 원하셔서
우리의 영혼을 흔드신다.
너희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where is he that put his holy Spirit within him?
하나님이 이제 어디계시냐?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데살로니가 후서 2:13]
데살로니가 교회
권능은 복음의 능력이고
[이는 우리의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5]
복음의 능력이 권능이라
복음은 그리스도의 고난뿐 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삯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서 말씀하시고 본을 보여주신 삶이
우리를 위한 거룩한 사랑 ‘charity’ 이며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의인 공의가
이 땅에 이룬 성취이며
이를 우리와 함께 계시며 증거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라
성령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이라 사랑이시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베푸시는 전능자시라.
성경을 읽으면서 왜 말씀이 운동력을 잃어 영혼의 은총이 못되어
육체를 움직이는 힘이 못되어 무기력한 삶이 되었고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는 구구한 변명이 일상화 되어 복음의 능력을
감하고 이도 모자라 어그러진 길로 향해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가.
이는 그리스도의 고귀하고 순결하고 위대한 사랑을
가슴의 중심, 영혼의 한 가운데 온전히 간직하지 못한 순수함을 잃었기
때문이라 성령님의 권능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받았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멀어진 까닭일진데
조금이라도 신앙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자신에게 물어보라.
거짓을 일삼고 거짓 증언하고 비방과 욕설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의 믿음을 믿음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사람을 방관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성령님께 사로잡힌 사람이라 착각한다면
당신은 맹신자 거나 광신자 아니면 사이비 다.
어찌 진리가 거짓과 함께 하고
그리스도와 바알이 함께 할 수 있단 말인가?
믿는 자 라면서, 지도자라면서 자신의 의로 보여주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을 보고 들어야 하는 일상의 이 시대
눈과 귀를 막고 싶다.
단언하건데 그런 그리스도교는 없다!
설령 실수가 있고 잠시 눈이 욕심에 가리고 귀가 얇아졌던들
다시 그리스도의 자리로 오면 될 것을 무수한 말은 변명거리 일 뿐이다.
돌아가자.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으로.
다시 권능을 되새겨 보면
하나님은
창조주(Creator)이시며
제한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Almighty God)이시며
하나님은 권능 자(權能 者, Mighty One)이시다.
그분은 이제 성령님으로 오셔서
매일 매일, 순간마다 우리의 영혼을 노크하시고 우리가 진실로 진리의
길에서 다시 순수한 믿음을 잊지 않게 잃지 않게 말씀 하신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 이다.
God hath spoken once; twice have I heard this;
that power belongeth unto God.
Also unto thee, O Lord, belongeth mercy; for thou renderest 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work 시편 62:11-12]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전능자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리스도는 부활의 권능이시라 우리의 부활이신 권능 자 시라
권능을 주시려고 성령님을 보내셨고 이제 우리와 함께 영원히 거 하신다.
이제 우리의 죄를 돌이키고 죄악에 젖었던 흔적을 지우게
정직한 성령님을 따라서 구원의 즐거움에 동참하고 죄에서 자유를 갖자.
권능은 그리스도의 고귀하고 깨끗한 사랑, 복음에 동참한 우리에게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이고 구약으로 돌아가서 권능에 대하여 알아보면
구약에서 성령의 표현은 ‘하나님의 영’ ‘거룩한 영’ 등 수없이 많으나
성령 ‘holy Spirit’의 표현은
시편 51:11 과 이사야 63:10-11 뿐이다.
이 두 군데에서 성령의 뜻하심을 살펴보면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좇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 이다.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Cast me not away from thy presence;
and take not thy holy spirit from me.
Restore unto me the joy of thy salvation;
and uphold me with thy free spirit.
Then will I teach transgressors thy ways;
and sinners shall be converted unto thee 시편 51:9-13]
우리가 온전하지 못하여 일상의 생활에서 죄를 지어 죄의 흔적이
남아있더라도 회개하고 다시 주의 길로 돌아온다면,
우리의 죄를 흰 눈처럼 흰 양털처럼 깨 끗게 하시는 죄 사함을 받으려면,
정직한 진실한 진리의 성령님의 인도함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고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잘못을 용서하기를 구하고
다시 죄를 짓지 않는다는 의지의 결정이,
Create in me a clean heart,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그러한 굳은 의지의 결정으로 회개를,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성령님은 우리를 정직한 진실한 진리의 길로 안내하시고
Restore unto me the joy of thy salvation;
구원의 즐거움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죄를 짓고 죄를 죄로 시인하지 못한 회개 없는 버릇과 일상의 습관은 이미 성령님의 능력이 떠나간 상태라
take not thy holy spirit from me,
그 길은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했고
종당에는 어둠의 길이라 이미 심판이 임했다.
그래서 다시 복음의 길, 주의 길로 돌아온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이미 알고
있기에 죄 사함의 경험으로 단련된 시험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믿음이 굳어져서 주의 도,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를 가르치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알아도 잘못된 어그러진 길로 간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게 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이 능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이
권능(power of charity)이다.
이사야 63:10-11를 보면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But they rebelled, and vexed his holy Spirit;
therefore he was turned to be their enemy and he fought against them.
Then he remembered the days of old, Moses, and his people, saying,
Where is he that brought them up out of the sea with the shepherd of his flock?
where is he that put his holy Spirit within him?]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rebelled)하여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고
그가, 하나님이 돌이켜 그들의 대적으로 그들을 치셨더니
이스라엘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며 말하길
백성과 목자의 양을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어디계시냐?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백성 가운데 거룩한 하나님의 영을 넣어주신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이를 이 시대로 바꾸면,
너희가 복음의 어그러진 길(against light)로 가서
너희가 반역(against God)하여 성령님을 염려하게 하였으므로
너희의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고
너희가 예전에 받은 구원을 기쁨을 잊었고
너희에게 성령님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을 잃고
너희가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하는 도다.
무엇이 성령님의 권능을 제한하는가?
이 시대, 우리가 왜 이렇게 무력할까?
성령 ‘holy Spirit’의 표현을
시편 51:11 과 이사야 63:10-11에서 성령의 뜻하심을 살펴보았다.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한마디로 성령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거짓과 불법에 거하시지
아니하시고 그 길에서 돌아오길 바라시기에 반 복음적인 어그러진 복음의 길에서 역사하지 않으시는데 어느 이들은 이 간단한 사실도 모르고
자신의 능력을 얄팍한 성경의 지식으로 포장하여
무지한 선동을 하는 자 들이 많다.
자신의 허탈한 신학을 진리인양 무장하고 도취하여 허풍을 친다.
어느 이는 성령의 불을 받으라 한다.
어느 이는 성령을 받으라 하고,
도대체 성령님을 명령하는 부흥사와 목사들은 누구인가?
그런 자들에게 믿음마저 세뇌되어 혼미한 정신에 무엇을 구한단 말인가?
그러니 세상의 음모론이 사실인양 이리 저리 흔들리고
극단적인 종말론과 신비론과 음모론에 영혼을 빼앗겨 버리고
조급한 믿음에 평안까지 빼앗겨 버리면
자신이 만든 자신의 허황된 믿음의 벽에 갇혀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신비주의, 세대주의 등에 멍들은 사이비들과 휩싸이거나 동조하고
예루살렘까지 전도가 되어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자는,
무리들이나 그런 주장에 동조하는 자들은
늘 666, 베리 칩, 가톨릭의 종교통합, 음녀론, 후리 메이슨 등 음모론과
극단적인 종말론을 겸하여 천국 간증,
바울도 꺼리였던 천국의 간증까지 곁들여 증명하려 하고
혼미한 흑암의 길이 진리의 길로 둔갑하여
자신들의 믿음의 무지를 이단과 사이비등 배교를 핑계로,
툭하면 신천지 탓이고 이단 탓이고 온갖 마귀, 귀신 탓으로
이제는 정치 사회의 사상적인 이데오르기 탓으로
자신들의 몽롱한 믿음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거짓과 탐욕을 진리로 빙자하여
스스로 사이비임을 증명한다.
왜 그럴까?
두려워 말고 염려 말고 조급해 하지 말자.
하나님은 전능자 시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이고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였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위대한 사랑 ‘charity’ 을 주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요
성령님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예수님의 사랑을 증명하시는 권능 자 이시며
권능을 우리에게 주시고, 주시길 간절히 바라시고 학수고대(鶴首苦待)하시며
진리로 인도하신다.
이제 무엇을 걱정하는가?
귀신인가 사탄인가?
믿음은 분별력이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분별력은 믿음에서 역사하시기에
혼미한 사이비들의 주장에 물든 영혼의 소유자들이 무슨 분별력이 있겠는가.
그 때는, 재림의 때는 만들어진 때,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때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다.
그 때는 하나님 이외는 아무도 모른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무지함을 주장하여 자신들의 혼미한 영혼을 자랑하는 자들
그런 자들은 뭔 신기한 진리의 길을 발견한 듯하나 그런 자들의 이면에는
자기 자랑의 진리의 독점, 욕심이 둔갑한 진리를 사실인양 퍼트리고 주장하고 강요하여 겁을 주는 일은 복음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사이비들이기에
사악한 마음에 구하여도 악한 마음에 함께 하실 성령님이 아니시거늘
성령님을 명령하는 패악하고 사악한 자들은
자기의 악에 걸리어 그 죄의 줄에 매여서
미련해져서 성경의 훈계를 혼미하게 주장하여 사이비가 되었다.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어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 잠언 5:22-23]
하나님이시면서 낮고 낮아지셔서 인간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고귀하고 순결한 사랑 ‘charity’를 간직한 믿음으로,
감사와 찬양으로,
인도 하시는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우고 본이 되었듯,
이 시대 이 곳에서도 성령님은 똑같이 원하셔서
우리의 영혼을 흔드신다.
너희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where is he that put his holy Spirit within him?
하나님이 이제 어디계시냐?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데살로니가 후서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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