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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96.♡.♡.163)2017-01-07 11:18

본문

17.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그의 동역 자들을 본받아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받은 자들이 되었고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And ye became followers of us, and of the Lord,
having received the word in much affliction,
with joy of the Holy Ghost.
So that ye were ensamples to all that believe
in Macedonia and Achaia. 데살로니가 전서:6-7]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비웃음과 놀림을 당하며
그들의 비난과 고통 중에서도 그리스도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어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예수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어
기쁨이 넘치는 능력을 받아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지만 바울과 그의 동역 자들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는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그들이 더 큰 권능을 받아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더 온전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증인의 생활이 되기를 간절히 원해서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And we beseech you’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애원하노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간절히 기도하노니
‘we beseech you, brethren, that ye increase more and more’
믿음이 더 성장하여 더 큼 기쁨을 누리고 더 큰 능력을 받기를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간청했기에
복음을 전한 자들이나 받은 자들에게 나타나신 성령님의 권능이 그들을 통하여
기쁜 소식인 복음이 세상에 알려지는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서 기쁨으로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이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Finally, brethren, farewell.
Be perfect, be of good comfort, be of one mind, live in peace;
and the God of love and peace shall be with you.
Greet one another with an holy kiss.
All the saints salute you.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Amen.
고린도후서 13:11-13]
사도바울의 작별인사는 마음을 움직인다.
그의 가슴에 간직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저서
가슴을 울리고 흔든다.
‘Finally, brethren, farewell.
끝으로 형제여 잘 지내길’
farewell, Fare you well,
잠시 떨어져 있을지라도 형제여 잘 있기를.
Be perfect, (성령님으로) 온전하며
be of good comfort, (성령님의)위로를 받으며
be of one mind,(한 성령님 같이) 한 마음으로
live in peace (성령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and the God of love and peace shall be with you,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형제들과 함께 하리니.
Greet one another with an holy kiss,
서로 거룩한 성령님 안에 한 가족으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
All the saints salute you,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성령님과 교제로 모든 성도의 문안이, 모두 같은 형제들과 함께
성령님께서 형제들과 함께 하길.
이를 작별의 인사를 한 사도바울에게는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성령님과
함께 함으로 받은 권능으로 말씀을 받은 기쁨이 있었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인 되어 위로를 받으며 평안을 누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나타난
증인의 삶이기에 그의 작별인사는
세상에서 형제로 또 하늘나라에서 형제로 만날 것을 믿기에
이 세상에서의 죽음마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맺어진 형제의 사랑이
끊어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 할 수 있었다.
‘Finally, brethren, farewell’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그러나 많은 목사들은 이 구절은 암기하고 연습하여 축도(축복기도)로
사용한다.
축도는 목사가 예배시간에 회중을 위하여 드리는 축복기도로 이 축도 때
회중은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며 축복을 받는 예배의 순서가 된 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으로 성직자는 하나님과 성도의 중보자가 되어
구약의 제사장과 같은 예복을 입고 축복을 선언하는
개신교에서는 이런 축도가 시작된 것은 중세 이후로 추정하고 있으며
많은 개신교에서는 민수기 6:24-26 과 같이 축도로 사용한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러나 이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인 제사장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하라는 말씀이었기에
현대의 목사는 제사장도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과 성도들의 중보자가 아니기에
이 성경구절들을 사용한다면 중보자 이신 예수님의 복음을 부인하는 이단이 되기에
어느 자들은 고린도후서 13:11-13절을 신약의 유일한
축도의 본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임은,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했고 그 작별의 인사가 세상에서 마지막
인사라 그의 바람의 기도였고 믿음의 확신 이였지 예배를 마치는 축도는 아니었다.
설령 축도라 치더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있을지어다” 라는  명령인지 분부인지 오만한 말투의 기도를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드리는 자들의 기도를 성령님께서 허락하시겠는가.
더 건방진 자들은 “~있기를 원하노라” 라는 당부의 표현을 쓰고도
그 뜻은 당부가 아니라 기원이라 하니 교만도 이런 교만이 없고
이를 듣는 자들마저 ‘아멘’ 이라 화답할 때에는 귀를 막고 싶다.
그러니 가톨릭의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별한 신분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중보기도’ 와 ‘영성’이라는 가톨릭 냄새가 펄펄 나는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무당이 복채를 받고 복을 빌어주는 샤머니즘을 교권주의에 접붙인
이 불경하다 못해 도무지 경건을 모양도 없으며 거룩한 체를 하는 종교 지도자와
선생이 넘치고 이를 추종하는 맹신과 광신자들에게
성경은 단지 그들의 복의 욕구를 채워주는 부적(符籍)같이 장식이라
자동차의 사고를 면해주는 신물(神物)과 같이 자동차에 보관하는 책이 아니라면
책꽂이를 채우는 책이 아니라면 어찌 읽지 않고
읽고도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여 그 뜻과 의미를 자신의 믿음의 고백으로 시인하고
성경으로 이를 확정하는 믿음의 확신이 없으니 이리저리 흔들리고 모임의 분위기에
휩싸여 감성적이 된 대중을 따라 기분의 높낮이가 믿음인양 신앙의 기준이 되면 
사치한 감정을 따라 허울뿐인 신자가 되기에
복음을 뒤로 한 채 구약으로 돌아간 사이비들과 터무니없는 교권(敎權)을
잡은 자들에게 맹종하여 그들과 같이 기복신앙이 되어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하여
교회를 오래 다녀 직분을 받았더라도 교회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를 내리지도 못하는
허식만 남아 겉모양만 직분자인 맥없는 교인으로 남아 부질없는 열심히 있어
경건을 모양은 있는 것 같으나 능력이 없는 교인으로 머문 교인으로 넘치는 교회가
된 오늘날의 현실은 축복에 목멘 공동체가 되어 베풀 움이 사라진
구걸(求乞)의 축복과 자기 자랑만 남은 분수(分數)를 잃어 분별없는
복음이 어그러진 시대라
올바른 복음의 길로 가는 자들이 구박(驅迫)을 받는 시대
이 시대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을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12: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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