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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6) 형통만이 축복일까요?

페이지 정보

대장쟁이 (100.♡.♡.223)2017-02-21 02:23

본문

[창 46: 1-4]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니,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

야곱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찾아 이제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 아들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다니, 이 극심한 기근에서 자신과 모든 식솔들을 건져낼 막강한 실력자가 되어 있다니 꿈만 같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모든 소유와 식솔들을 이끌고 출발하여 아브라함부터 살아왔던 브엘세바에 이르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립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는 이상중에 야곱에게 나타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애굽에 내려가시겠고 먼 훗날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너의 눈을 감길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야곱의 일생과 그 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야곱은 차자(次子)였습니다. 형 에서가 장자(長子)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샀고 염소고기와 털로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하여 외사촌 라반의 집에서 뼈 빠지는 고생을 하였고, 네 아내로부터 열 두 아들을 얻었으나 외삼촌과 외사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형 에서가 온다는 두려움에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하였으며, 세겜에 주저앉았다가 엄청난 일을 당하였고, 아버지의 집이 가까운 베들레헴 길가에서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었고, 다음에는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었고 지금까지 한탄과 아픔 속에 세월을 보내었으며 다시 극심한 기근을 당하였습니다. 어쩌면 130세가 된 지금까지 그의 일생은 고난과 아픔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열 두 방백을 낳았고 번성하였습니다. 그 동안 이삭은 에서와 야곱 둘만 얻었을 뿐입니다. 에서는 열 한 족장을 낳았고 유력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네 아내로부터 열 두 아들을 얻기는 했지만 7년의 수고를 수일처럼 여겼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었고 또 요셉을 잃은 아픔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과연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편이시고 자기를 지키시고 사랑하신다고 확실히 믿었을까요? 혹시 형이 허기진 틈을 타서 팥죽으로 장자권을 사고 염소고기와 염소털로 눈이 안 보이는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그 야비한 사기행위를 하나님이 과연 용서하셨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불안해하고 의심하지는 않았을까요? 어쩌면 자신이 일평생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던 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시거나 버리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택하시고 사랑하신다고 해서 형통과 번영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마엘이 번성하고 에서가 형통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도우시고 그들을 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미 야곱을 택하셨고 야곱의 일평생 야곱을 떠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일평생은 험한 세월, 나그네길이었습니다.

형통만 좋아하지 마십시오. 야곱의 일생을 보면 어쩌면 형통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저주요 고난이야말로 죽자 사자 하나님을 붙잡게 만든 축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신의 나그네길은 어떤가요? 고난 속에서 하나님만 붙잡는 축복을 누리고 계신가요?

.

댓글목록

별똥별님의 댓글

별똥별 24.♡.♡.100

언제나처럼...
오늘도 "아멘"입니다!

대장쟁이님의 댓글

대장쟁이 댓글의 댓글 100.♡.♡.223

언제나처럼...
오늘도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바나바님의 댓글

바나바 108.♡.♡.88

지나고 보면 고난도 형통보다 좋았고 앞을 보면 형통이 고난보다 훨씬 좋은 걸요  나도 하나님이 야곱처럼 축복해 주시니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께 맡길려고 하는데 잘 않되어서 성령님께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대장쟁이 목사님이 내마음을 또한번 충동시키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예수!  성령충만! 주께 영광!  할렐루야!  셀라 !

대장쟁이님의 댓글

대장쟁이 댓글의 댓글 100.♡.♡.223

솔직히 고난을 더 좋아하는 사람 어딨겠습니까?
한 때 사람들에 회자된 야베스의 기도처럼
하나님이 도우시고 형통한 삶이 젤 좋은 거지요.
지금까지 주만 바라보고 걸어오신 바나바 목사님의 남은 여정은
하나님이 도우사 순적한 형통이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김정한님의 댓글

김정한 댓글의 댓글 114.♡.♡.146

저도 바나바형님처럼
지나고 보니 고난이 형통보다 유익했지만
남은 인생길은 고난보다 형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동감합니다만
앞으로 남은 길이 어떨지는 모르는 것이 인생이거늘
흑암의 시절도 접어들어도
성춘향이같은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처럼
믿음 정절 잃기 않기를 소원해 봅니다.
바나바 형님
잘 계시지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이곳에서나마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재작년에 갔던 후배목사 교회가
성장중에 있어 정식으로 초청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있으나
그놈의 뱅기 따기 싫어서
미국에 다시 가기 싫더군요.

대장쟁이님의 댓글

대장쟁이 댓글의 댓글 100.♡.♡.223

오늘도 복음의 칼과 진리의 창을 잡고 말 달리시는 김정한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목사님의 길을 지켜오셨고 또 지키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승리하게 하실 것들 믿습니다.
뱅기 타기 싫어서 못 오신다고요?
허긴, 저도 뱅기 타기 어려워 고국으로 못 돌아가고 있네요.

짐보님의 댓글

짐보 96.♡.♡.163

‘형통만이 축복일까요? ’
을 읽으며 많은 상념에 잠시 잠겨 저와 주위를 돌아봅니다.
축복 = 만사형통 = 번영 = 부자, 권력 등이 된 현실
물론 전부를 부인하지 않지만 조금 성경을 조금씩 비틀은,
앞으로 제가 쓸 이야기 인데 대장쟁이님이 언급하시니
서로 나룰 수 있을 것 같아 복습삼아 써 봅니다.
저는 성경적인 축복을
축복 = 언약 =공동체 로 봅니다.
사설이 길어질 것 같아 짧게 쓴다면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축복을 받을 때
그 축복은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말씀하실 때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 열국의 아버지가 됨을 봅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As for me, behold, my covenant is with thee,
and thou shalt be a father of many nations.
Neither shall thy name any more be called Abram,
but thy name shall be Abraham;
for a father of many nations have I made thee. 창세기 17:4-5]
아브라함의 축복은 언약이 축복이 되어
여러 민족과 국가의 믿음의 아버지가 되지만
하나님의 의(공의)는 이미 아브라함을 통해 온 세상의 하나님이 되심을
언약으로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복(축복)을 주실 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 지라.
And I will make of thee a great nation, and I will bless thee,
and make thy name great; and thou shalt be a blessing:
And I will bless them that bless thee, and curse him that curseth thee: and in thee shall all families of the earth be blessed. 창세기 12:2-3]
그래서 믿음의 민족을 이루고 언약하신 대로 위대하게 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신 말씀은,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으로 인하여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모든 민족에 하나님의 언약이 알려지고 지켜지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축복을 받지만 언약을, 축복을
외면하거나 저주하는 자나 자들에게 이미 언약의 관계가 아닌
축복의 관계가 아닌 관계의 단절,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의 관계의 단절인
죄가 되어 저주가 된다는 말씀이라
율법은 언약의 관계이면서 언약을 알게 하는, 죄를 알게 하시는 법이며
이제 언약은 예수님의 말씀의 복음으로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공의)가 나타나서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의(義)의 자녀로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의 제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려는
삶이 예배가 된 언약의 실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 이어야 하거늘,
세상 사람들로 욕을 먹는
언약이 저주가 된 오늘날의 현실이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매는
성령을 소멸한, 언약을 소멸한, 명성과 조직의 크기가 자신들의 의(義)가 된
세속화는 세상에서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종교의 나락으로 떨어진 증거가,
축복 = 만사형통 = 번영 = 부자, 권력 등이 된
축복에 물든 개신교의 현실입니다.
다시, 축복 = 언약 =공동체이 되려면
하나님의 긍휼로
살을 오려내고 뼈아픈 회개의 몸부림이 없다면
한국교회는 언약의 단절, 세대의 단절, 정의의 단절, 단절 단절로
언약을 도외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처럼, 나라가 송두리째 사라졌던
역사의 되풀이를 할 수 밖에 없겠기에,
그것은 아픔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언약을 직시하지 못한 우매(愚昧)이며
축복에 물든 무지(無知)인데
요란을 떨며 ‘축복’ ‘사랑’ ‘영광’을 말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구체적인 실체가 없는 진리의 도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언약의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빛 같은, 빛 이 된,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신앙의 양심을 모르거나 잊었거나
신앙의 양심이 실종된 시대입니다.

어느 촛불은 든 자는
나무 십자가의 밑에 도래를 달고
커다란 십자가를 끌며 탄핵을 외칩니다.
그에게는 십자가는 자신의 의(義)의 상징이며
그는 거리의 의인이 되었습니다.

교통이 혼잡한 대 도시의 거리에서
십자가를 끌고 가는 무리들도 ‘회개’를 외칩니다.
자신들이 회개할 사람들 이면서.

최대민은 10만원이면 목사 안수를 시켜주는 교단에서 목사가 되고
교단의 장이 되어 백여 개가 넘는 교회의 교단으로 부흥(?)시켰고
유럽의 ‘십자군’을 모방하여 ‘한국 십자군’을 창군(?)하였고
그와 그의 목사들은 장군 복장에 별을 달아 국군의 장군으로 행세하다
이상한 복장 때문에 간첩으로 오인 받아 십자군의 복장을 벗게 됩니다.

어느 이들은 갑옷과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십자군의 모습으로
탄핵 반대를 외칩니다.
그들은 중세의 십자군이 이스라엘 성전을 점령하고
예수님을 살해한 유대인이라고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을 거의 죽인
역사적인 사실을 알겠습니까?
그리고도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라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
이스라엘 회복을 외치는
복음의 능력을 감소시킨 자들이 넘쳐납니다.

본의 아니게 글이 길어졌습니다.

한 문장이 이상합니다.
‘그 동안 이삭은 에서와 이삭 둘만 얻었을 뿐입니다.’
밤늦게 쓰셔서 피곤하시겠지요.
에그, 참견할 때가 아니라 제 글을 손봐야 하는데
어디서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나 가요 씨나 잘해”
(나 가요, 나 일하러 가요, 의 아침 인사의 준말,
어디서, 짐보 내 집에서)

건강 하십시오.

대장쟁이님의 댓글

대장쟁이 댓글의 댓글 100.♡.♡.223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은 나이 핑계 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삭이 이삭을 낳았다니,
거 참 젊은 날의 총기도 이제 유효기간이 다 됐나 봅니다.
형통이라 하니 짐보님께서 아브라함 할부지 한테 할 말이 많으신가 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 교회, 공동체를 거쳐 촛불에 최태민까지 등장하고, 다시 십자가전쟁으로 돌아가고... 막 끌고 다니시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아무튼 백가쟁명...., 참과 거짓이 안개 속에 뒤엉기고 선과 악이 오줌밭에 나뒹굴어 피아간 분간조차 힘드는 오늘날 고국의 사태를 바라보며 착잡함을 금할 수 없는데
오직 구하실 이는 주님밖에 없사오니 주님만 바라볼 뿐입니다.
주님, 가시밭길을 걸어온 조국과 겨레를 돌아보소서,
이제는 고난이 끝나고 형통한 길을 주소서, 기도할 뿐입니다.
아, 글고,
본글 보다 더 길고 나은 댓글 쓰기 없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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