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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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42.♡.♡.150)ㆍ2022-12-06 03:0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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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성자 하나님>
앞서 말씀드린 대로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벌 받고 죽어주시려면 그 대속자(代贖者)는 세 가지 자격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둘째는 죄가 없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모든 인류보다 더 가치 있는 분이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공의(公義)는 대충 넘어가고 봐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고 죄인은 절대로 용서 받을 수 없으며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용서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죄를 봐주시거나 넘어가시지 못 합니다.
죄인들의 죄를 해결하는 데에도 적당히 넘어가는 계산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라고 봐주고 누구라고 안 봐준다면 그런 심판은 심판이 아닐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런 심판을 하신다면 그런 심판이 죄가 될 것이며 그런 엉터리 심판을 한다면 하나님이 거꾸로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죄는 해결되어야 하고 그 죄를 대신 지실 수 있는 분은 온 인류보다 더 귀하신 존재, 곧 하나님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대신 갚으신) 주님은 온 인류보다 고귀한 분, 곧 하나님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피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미가엘 천사가 아기 예수로 태어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 해 전 이 곳 기독교게시판에서 여호와의 증인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졌던 쟁론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esus란 자가 또 나타나서 이런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esus라는 자의 주장대로 예수님이 평범한 인간(피조물)이었다면 그 한 사람의 죽음이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의 증인들 말마따나 하나님께서 미가엘 같은 천사 한 마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서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천사 한 마리가 모든 인류의 값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피조물은 피조물일 뿐입니다. 피조물 중 어떠한 피조물도 다른 피조물보다 더 가치가 있어서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값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엉터리 같은 구원사역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런 엉터리 대속제사를 허락하시거나 받으셨을 리도 없습니다.
천하 모든 인간, 모든 피조물보다 귀하신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셔서 대신 죽어주시는 길 외에는 인류의 죄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란 하나님이 한 분이시면서 세 분이고 세 분이시면서 한 분이란 뜻입니다.
한 분 안에 세 분이 계시고, 세 분이 한 분을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동시에 세 분 하나님이시며, 세 분 하나님이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각각 세 분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 삼위일체는 아무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셈법으로는 말이 안 됩니다.
인간의 이해범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가 아니라면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방법이 없습니다.
삼위일체가 아니시라면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시는 것도 불가능하고, 죽으시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삼위일체가 아닌 유일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거나 죽으신다면 그 순간 우주만유는 사단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아들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오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 하나님은 동등한 하나님이시면서도 아버지께 순종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려 온 인류를 위한 대속제물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시고 온 인류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당신은 구세주를 알고 계십니까?>
만일 당신이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위에 서시거든 예수님이 당신 대신 죽으셔서 당신의 죄를 대신 갚으셨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예수님이 당신의 구세주라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 물으실 것입니다.
“아들아, 너 이 친구 아니? 이 친구 말이 네가 저 대신 죽어주었다는구나.”
그 때 예수님이 대답하실 것입니다.
“아, 그럼요, 제가 저 친구 압니다. 제가 저 친구 위해 십자가 졌지요.”
<양태론(樣態論)에 대하여>
다시 말씀드리지만 삼위일체는 인간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설명을 한다 해도 설명이 될 수 없는 것이 삼위일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기, 전깃불, 빛, 이런 식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삼각형이나 클로버잎 그림을 그려놓고 설명하기도 합니다만, 아무리 설명해도 삼위일체의 설명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인식과 이해와 지성으로 범접할 수 없는 절대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아니라면 그런 신은 아무 신이라도 따라 하고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하나님 아닌 그 어떤 신도 흉내 낼 수조차 없습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삼위일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한 가지 이단교리 중에 양태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으로 계셨다가 예수님이 되어 오셨다가 다시 성령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주장을 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자기가 내려와서 자기에게 제사를 드리고 자기가 용서하고 다시 성령으로 내려왔다는 양태론은 하나님께서 일인삼역(一人三役) 연극을 하셨다는 이야기이고 혼자서 사기극을 벌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삼위일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자들은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없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삼위일체라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들)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들”이라는 복수의 의미를 가지는 ‘엘로힘’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단수는 ‘엘’)
그리고 26절 등 여러 곳에서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세기 1:26)”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창세기 3:22)”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 하게 하자 하시고(창세기 11:7)”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이사야 6:8)”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성경을 기록하고 필사한 유대인들은 엄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한 자라도 틀리게 기록하면 진노와 재앙이 임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한 자도 틀리지 않게 기록하고 필사하였는데,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아니 하나님이 ‘우리’라니, 말도 안 돼. 이건 잘못 된 것일 거야.”하고 성경을 고쳐버리지 않은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면서 동시에 복수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신약성경에 이르러 예수님과 성령님에 의하여 비로소 삼위일체의 비밀로 드러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기록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다니 이 말씀이 누구입니까? 다름 아닌 아들하나님,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자신이 신적(하나님的)존재임을 암시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사하실 수 있는 죄를 사해 주십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하나라고 주장합니다.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표현합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현재형(現在型) “내가 있느니라”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인 “에고 에이미, I am."입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항상 존재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 놀라운 말을 듣고 유대인들이 ‘네가 하나님이란 말이냐?’ 하며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들 하나님이신고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도마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했을 때 “이 사람아, 아는 하나님이 아닐세, 큰 일 날 소리 말게.” 하지 않으시고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합쳐서 단수 명사인 “이름”으로 표현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신약성경들의 고백>
예수님이 승천하시 다음 기록된 신약성경들, 사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의 본체, 곧 본질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5절.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신, 세세토록 찬양 받으실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16.
“......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고.....”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다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디도서 2장 13절.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직접 자신을 하나님이라 말씀하신 예수님>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감히 하나님 아닌 자에게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만일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일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아무에게도 영광과 찬송을 주지(빼앗기지) 아니 하시겠다” 하신 하나님 아니신가요?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밝히 나타내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고.... 그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였음에도 그 엄위하신 모습과 영광 앞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됩니다. 그런 사도요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처음이요 나중”이라니요!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는 하나님의 다른 표현, 곧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죽었다가 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어린양이 일곱 뿔과 일곱 눈, 곧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신 것으로 나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예수님의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인간의 이해범위 안에 끌어다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해하는 개념으로는 절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삼위일체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는 피조물인 인간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본질인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래서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어리석은 시도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이 삼위일체가 아니시라면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성경말씀도, 하나님의 구원사역도, 십자가도, 우리의 소망도 다 거짓이요 헛일입니다.
하나님은 신비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대강절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여러해 전 썼던 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벌 받고 죽어주시려면 그 대속자(代贖者)는 세 가지 자격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둘째는 죄가 없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모든 인류보다 더 가치 있는 분이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공의(公義)는 대충 넘어가고 봐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고 죄인은 절대로 용서 받을 수 없으며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용서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죄를 봐주시거나 넘어가시지 못 합니다.
죄인들의 죄를 해결하는 데에도 적당히 넘어가는 계산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라고 봐주고 누구라고 안 봐준다면 그런 심판은 심판이 아닐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런 심판을 하신다면 그런 심판이 죄가 될 것이며 그런 엉터리 심판을 한다면 하나님이 거꾸로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죄는 해결되어야 하고 그 죄를 대신 지실 수 있는 분은 온 인류보다 더 귀하신 존재, 곧 하나님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대신 갚으신) 주님은 온 인류보다 고귀한 분, 곧 하나님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피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미가엘 천사가 아기 예수로 태어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 해 전 이 곳 기독교게시판에서 여호와의 증인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졌던 쟁론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esus란 자가 또 나타나서 이런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esus라는 자의 주장대로 예수님이 평범한 인간(피조물)이었다면 그 한 사람의 죽음이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의 증인들 말마따나 하나님께서 미가엘 같은 천사 한 마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서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천사 한 마리가 모든 인류의 값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피조물은 피조물일 뿐입니다. 피조물 중 어떠한 피조물도 다른 피조물보다 더 가치가 있어서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값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엉터리 같은 구원사역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런 엉터리 대속제사를 허락하시거나 받으셨을 리도 없습니다.
천하 모든 인간, 모든 피조물보다 귀하신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셔서 대신 죽어주시는 길 외에는 인류의 죄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란 하나님이 한 분이시면서 세 분이고 세 분이시면서 한 분이란 뜻입니다.
한 분 안에 세 분이 계시고, 세 분이 한 분을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동시에 세 분 하나님이시며, 세 분 하나님이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각각 세 분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 삼위일체는 아무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셈법으로는 말이 안 됩니다.
인간의 이해범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가 아니라면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방법이 없습니다.
삼위일체가 아니시라면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시는 것도 불가능하고, 죽으시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삼위일체가 아닌 유일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거나 죽으신다면 그 순간 우주만유는 사단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아들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오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 하나님은 동등한 하나님이시면서도 아버지께 순종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려 온 인류를 위한 대속제물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시고 온 인류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당신은 구세주를 알고 계십니까?>
만일 당신이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위에 서시거든 예수님이 당신 대신 죽으셔서 당신의 죄를 대신 갚으셨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예수님이 당신의 구세주라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 물으실 것입니다.
“아들아, 너 이 친구 아니? 이 친구 말이 네가 저 대신 죽어주었다는구나.”
그 때 예수님이 대답하실 것입니다.
“아, 그럼요, 제가 저 친구 압니다. 제가 저 친구 위해 십자가 졌지요.”
<양태론(樣態論)에 대하여>
다시 말씀드리지만 삼위일체는 인간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설명을 한다 해도 설명이 될 수 없는 것이 삼위일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기, 전깃불, 빛, 이런 식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삼각형이나 클로버잎 그림을 그려놓고 설명하기도 합니다만, 아무리 설명해도 삼위일체의 설명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인식과 이해와 지성으로 범접할 수 없는 절대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아니라면 그런 신은 아무 신이라도 따라 하고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하나님 아닌 그 어떤 신도 흉내 낼 수조차 없습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삼위일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한 가지 이단교리 중에 양태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으로 계셨다가 예수님이 되어 오셨다가 다시 성령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주장을 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자기가 내려와서 자기에게 제사를 드리고 자기가 용서하고 다시 성령으로 내려왔다는 양태론은 하나님께서 일인삼역(一人三役) 연극을 하셨다는 이야기이고 혼자서 사기극을 벌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삼위일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자들은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없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삼위일체라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들)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들”이라는 복수의 의미를 가지는 ‘엘로힘’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단수는 ‘엘’)
그리고 26절 등 여러 곳에서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세기 1:26)”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창세기 3:22)”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 하게 하자 하시고(창세기 11:7)”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이사야 6:8)”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성경을 기록하고 필사한 유대인들은 엄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한 자라도 틀리게 기록하면 진노와 재앙이 임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한 자도 틀리지 않게 기록하고 필사하였는데,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아니 하나님이 ‘우리’라니, 말도 안 돼. 이건 잘못 된 것일 거야.”하고 성경을 고쳐버리지 않은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면서 동시에 복수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신약성경에 이르러 예수님과 성령님에 의하여 비로소 삼위일체의 비밀로 드러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기록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다니 이 말씀이 누구입니까? 다름 아닌 아들하나님,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자신이 신적(하나님的)존재임을 암시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사하실 수 있는 죄를 사해 주십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하나라고 주장합니다.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표현합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현재형(現在型) “내가 있느니라”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인 “에고 에이미, I am."입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항상 존재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 놀라운 말을 듣고 유대인들이 ‘네가 하나님이란 말이냐?’ 하며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들 하나님이신고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도마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했을 때 “이 사람아, 아는 하나님이 아닐세, 큰 일 날 소리 말게.” 하지 않으시고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합쳐서 단수 명사인 “이름”으로 표현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신약성경들의 고백>
예수님이 승천하시 다음 기록된 신약성경들, 사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의 본체, 곧 본질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5절.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신, 세세토록 찬양 받으실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16.
“......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고.....”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다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디도서 2장 13절.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직접 자신을 하나님이라 말씀하신 예수님>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감히 하나님 아닌 자에게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만일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일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아무에게도 영광과 찬송을 주지(빼앗기지) 아니 하시겠다” 하신 하나님 아니신가요?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밝히 나타내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고.... 그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였음에도 그 엄위하신 모습과 영광 앞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됩니다. 그런 사도요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처음이요 나중”이라니요!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는 하나님의 다른 표현, 곧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죽었다가 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어린양이 일곱 뿔과 일곱 눈, 곧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신 것으로 나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예수님의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인간의 이해범위 안에 끌어다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해하는 개념으로는 절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삼위일체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는 피조물인 인간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본질인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래서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어리석은 시도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이 삼위일체가 아니시라면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성경말씀도, 하나님의 구원사역도, 십자가도, 우리의 소망도 다 거짓이요 헛일입니다.
하나님은 신비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대강절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여러해 전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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