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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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42.♡.♡.150)ㆍ2021-10-25 23:3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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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제물>
[시편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
성경 시편 51편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찾아온 때에”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상한 심령”은 어떤 심령일까요? “상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말로는 부패하고 썩어서 상한 것도 “상했다,” 다치고 부서진 것도 “상했다,” 하는데, 여기에서는 다치고 부서져서(broken) 상한 것을 말합니다. 깨끗하고 싱싱한 과일이나 향내 나는 고기를 칼로 자르고 저민 것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심령은 깨끗하고 싱싱하고 향내 나는 “상한 심령”이 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부패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야바 대제사장 집에서부터 빌라도 법정과 골고다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고소와 주먹질과 침뱉음과 매질과 집단폭행 등, 말할 수 없는 부당한 학대와 곤욕을 당하십니다.
그러나 한 마디 항변이나 반항도 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을 보면 빌라도가 심히 기이히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자기들의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인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참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인내라는 것, 참는다는 것은 화나고 속상하고, 복수심과 증오심, 악과 독이 치밀어 오르는데도 꾹 눌러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참으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러셨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받으실 희생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희생제물이 되려면 악과 독이 아예 없어야 합니다.
사과나 복숭아를 찔러도 “아얏, 왜 찔러!” 독과 악이 아니라 달콤한 사과즙, 복숭아 즙이 나오고, 싱싱한 횟감 물고기를 회칼로 저며 놓아도 향긋한 맛이 나듯이 말입니다.
개나 호랑이 같은 동물이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은 정결하지 못 한 탓도 있지만, 잡아 보십시오, 반항하고 악을 쓰며 “나를 때려? 나를 죽여? 두고 보자, 지옥에 가서라도 원수를 갚을 거다.”는 듯 으르렁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양이나 소 같은 동물은 목을 찌르고 매달아 죽여도 고통으로 버둥거리고 울며 피를 흘릴 뿐 악독과 원망은 아예 할 줄을 모릅니다.
제물은 칼로 상하고 죽임당해야 드려질 수 있습니다.
심령도 상함 받고 죽임당해야 하나님께 제사로 드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악하고 죄인의 심령은 부패하여 상함 받을 때 악과 독과 원망이 터져 나오고 악취의 죄가 풍겨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인간들의 악한 취급에 마음이 상하였는데도 참으셨다면,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데 누르고 인내하셨다면,
그런 식으로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셨다면,
예수님의 이 속죄제사는 무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제물을 받으셨을 리 없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대속물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도 없고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그 심령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여 만민을 구하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어린양 예수님의 심령은 악한 인간들의 배반과 욕설과 조롱과 침 뱉음과 채찍질과 못 박음을 당하며 부서지고 찢기고 저며져서 향기로운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으실 수 없었으며 그 제사를 받고서 온 인류의 죄를 사해주지 않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단 한 번의 완전한 제사’였습니다.
그 단 한 번의 제사로 구약의 모든 희생제사는 종결되었으며 인류의 모든 죄는 사해졌으며 더 이상 다른 속죄제사가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의 이 완전한 제사에 참예하십시오.
십자가 앞에 엎드려 당신의 죄를 내어놓고 사함 받으십시오. 구원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삶은 주님께 드리십시오.
주님의 제사로 속죄함 받은 우리는 이제 우리를 거룩한 산 제사로 주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나의 성김과 봉사와 희생이 힘들고 고달프고 아플지라도, 내가 환난 가운데 부서질지라도 주님의 희생과 죽으심 만 하겠습니까? 나의 섬김과 희생과 예배가 결코 억지로 참으며 드리는 것이 아니게 하십시오. 오직 감사와 기쁨과 자원으로 나의 삶과 생명이 주님께 드려지게 하십시오.
또 주의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결코 우리의 수고와 섬김과 공로를 앞세우지 않도록 하십시오. 오직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보혈, 그 향기로운 제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주의 이름으로 나아가십시오.
[시편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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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51편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찾아온 때에”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상한 심령”은 어떤 심령일까요? “상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말로는 부패하고 썩어서 상한 것도 “상했다,” 다치고 부서진 것도 “상했다,” 하는데, 여기에서는 다치고 부서져서(broken) 상한 것을 말합니다. 깨끗하고 싱싱한 과일이나 향내 나는 고기를 칼로 자르고 저민 것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심령은 깨끗하고 싱싱하고 향내 나는 “상한 심령”이 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부패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야바 대제사장 집에서부터 빌라도 법정과 골고다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고소와 주먹질과 침뱉음과 매질과 집단폭행 등, 말할 수 없는 부당한 학대와 곤욕을 당하십니다.
그러나 한 마디 항변이나 반항도 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을 보면 빌라도가 심히 기이히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자기들의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인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참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인내라는 것, 참는다는 것은 화나고 속상하고, 복수심과 증오심, 악과 독이 치밀어 오르는데도 꾹 눌러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참으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러셨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받으실 희생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희생제물이 되려면 악과 독이 아예 없어야 합니다.
사과나 복숭아를 찔러도 “아얏, 왜 찔러!” 독과 악이 아니라 달콤한 사과즙, 복숭아 즙이 나오고, 싱싱한 횟감 물고기를 회칼로 저며 놓아도 향긋한 맛이 나듯이 말입니다.
개나 호랑이 같은 동물이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은 정결하지 못 한 탓도 있지만, 잡아 보십시오, 반항하고 악을 쓰며 “나를 때려? 나를 죽여? 두고 보자, 지옥에 가서라도 원수를 갚을 거다.”는 듯 으르렁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양이나 소 같은 동물은 목을 찌르고 매달아 죽여도 고통으로 버둥거리고 울며 피를 흘릴 뿐 악독과 원망은 아예 할 줄을 모릅니다.
제물은 칼로 상하고 죽임당해야 드려질 수 있습니다.
심령도 상함 받고 죽임당해야 하나님께 제사로 드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악하고 죄인의 심령은 부패하여 상함 받을 때 악과 독과 원망이 터져 나오고 악취의 죄가 풍겨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인간들의 악한 취급에 마음이 상하였는데도 참으셨다면,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데 누르고 인내하셨다면,
그런 식으로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셨다면,
예수님의 이 속죄제사는 무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제물을 받으셨을 리 없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대속물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도 없고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그 심령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여 만민을 구하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어린양 예수님의 심령은 악한 인간들의 배반과 욕설과 조롱과 침 뱉음과 채찍질과 못 박음을 당하며 부서지고 찢기고 저며져서 향기로운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으실 수 없었으며 그 제사를 받고서 온 인류의 죄를 사해주지 않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단 한 번의 완전한 제사’였습니다.
그 단 한 번의 제사로 구약의 모든 희생제사는 종결되었으며 인류의 모든 죄는 사해졌으며 더 이상 다른 속죄제사가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의 이 완전한 제사에 참예하십시오.
십자가 앞에 엎드려 당신의 죄를 내어놓고 사함 받으십시오. 구원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삶은 주님께 드리십시오.
주님의 제사로 속죄함 받은 우리는 이제 우리를 거룩한 산 제사로 주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나의 성김과 봉사와 희생이 힘들고 고달프고 아플지라도, 내가 환난 가운데 부서질지라도 주님의 희생과 죽으심 만 하겠습니까? 나의 섬김과 희생과 예배가 결코 억지로 참으며 드리는 것이 아니게 하십시오. 오직 감사와 기쁨과 자원으로 나의 삶과 생명이 주님께 드려지게 하십시오.
또 주의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결코 우리의 수고와 섬김과 공로를 앞세우지 않도록 하십시오. 오직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보혈, 그 향기로운 제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주의 이름으로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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