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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따릅시다

페이지 정보

필그림 (114.♡.♡.146)2017-05-20 03:48

본문

성령을 따르라  살전 5:16-25

할렐루야, 지난 시간에는 성령님은 우리들의 생각 속에 끼어들어 좋은 생각이 나게 하는 방법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도와주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꼭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세 가지 것을 생각나게 함으로 도와주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돕는다고 했습니까? 생각이 잘 안 나죠. 생각이 나 제가 곤란해질까 봐 그런다면 고맙지요. 허지만 여러분을 돕는 분을 무시하면 어려울 때 도움받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중요한 것은 적거나 기억해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잘못된 생각에 따르지 않도록 마음에 신호를 보내심으로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세 가지 것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첫째는 육신 둘째는 악령 셋째는 성령인데 육신의 생각과 마귀의 생각은 나를 망하게 하는 생각을 주는 것이고 성령님만이 우리를 위해 올바른 생각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어논 것이 19절 말씀입니다. 읽어볼까요. ‘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육신의 생각은 금방 알아차리기 쉽지만 악한 영들이 주는 생각은 차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단마귀로부터 오는 생각은 내게 즐거움을 주고 나를 위한 것처럼 포장하면서 찾아오기 때문에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하와에게 찾아와 유혹할 때도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하면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이라며 먹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달콤한 유혹을 했기에 넘어간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렇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네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1)"이 정도의 것은 괜찮지 않느냐." 2)"딱 한 번만”3)" 아직 젊잖아 너 어떻게 그렇게만 살래”4)"누구나 다 그러는데 왜 너만 그렇게 특별하게 살려고 하냐!" 그러면서 유혹한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이런 못된 생각 우리를 망칠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란 것을 생각나게 해 줌으로 우리를 ‘잘못된 길’ ‘망하는 길’로 가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령님이 우리들을 돕는데 어려움을 당할 때 힘들고 곤고한 날이 올 때도 그때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곤고한 날에는 ‘주님, 저에게 왜 이런 문제가 왔나요? 제가 뭘 알기를 바라고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서 이런 문제가 왔나요? 라고 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곰곰이 생각할 때 천재 변호사보다 몇 배나 뛰어난 보혜사 성령님이 돈 한 푼 받지 않고도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고집부리며 살았던 자기 생각, 자기주장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정말 겸손한 마음으로 가르쳐 달라고 간청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맘대로 살았던 잘못을 깨우치게 해서 돕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듣도록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찾게 하고 설교를 듣게 합니다. 설교를 듣는 시간에 ‘목사 하는 말을 들어봐라 너 지금까지 나 없이 네 맘대로 살아왔지 않았느냐 나를 떠나서 문제가 생긴 거니 내게로 오라’고 생각을 주시는 방법으로 도와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되찾은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들이 많지요. 그 중에 나 주를 멀리 떠났단 곡도 그중에 하나지요. ♪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세 번째는 성령님은 믿는 자들에게 할 일이 생각나게 해서 복 받게 하심으로 도와주시다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이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 성령님께서 하나님이 왜 우리를 구원했는지 그 이유와 어떻게 해야 상과 복을 받는지를 알게 하는 방법으로 믿는 자를 돕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은 설교시간 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전하며 행한 대로 심은 대로 일한 대로 하나님은 갚아주실 것이라고 설교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이 나에게도 역사하고 있는 지를 확인하려면 1) 내 생각이 잘못될 때 아음에서 ‘그것은 안 돼’라는 경고음이 울리는가? 2) 설교를 들을 때마다 지금의 설교는 너 들으란 설교다.’고 받아드린다면 그런 분에게는 성령님이 역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성령을 따르라’ 라고 정했습니다. 한 번 따라 해보겠습니다. ‘성령을 따르라’

저와 여러분이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을 따라 살면 당연하게 따라오는 열매가 있지 않겠습니까? 밥을 먹으면 배 부르듯이요.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라고 한 19절 말씀처럼 성령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살면 그때부터 나타나는 것이 22절부터 말하는 성령의 열매 라는 것이 되겠습니다. 읽읍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성령이 주는 생각을 따라 살면 바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 등등의 열매를 맺는 인격의 소유자가 될 것이란 말입니다.

요즘 우리가 힘든 것 중에 하나는 우선 나부터 오해를 잘 풀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 사납다. 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거칠어지고 맘을 떠놓고 이야기할 만한 친구들이 적어지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사랑한다는 것 힘들어가고 있지요? 희락 기쁘고 즐거움 대신 짜증나고 화나는 일이 더 많고, 화평하기 보단 적을 만들기가 더 쉽고, 오래 참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조급해지지요? 자비와 양선 그런 것은 책에서나 있는 말이고, 충성 이런 말 옛날 사람들에게나 있는 말이고, 온유와 절제를 한다는 것 이런 것들은 성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아는 것이 바로 우리들 아니냐. 그런 말이지요?

사람들이 이런 성령의 열매보다 남들보다 뽐내고 뻐기고 사는 것이 소원이 아니냐? 그런 말이지요. 그것은 우리들이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 육신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그만큼 세속화된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신 것은 우리를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 예수님처럼 사는 자들이 되게 해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예수님을 닮게 하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도 사나운 사람, 자기만을 앞세우는 사람, 억울한 일을 당하였다고 평생 원수처럼 화를 풀지 않고 사는 사람, 자기들끼리만 앞세우는 사람,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년수를 자랑하는 직분 자가 될수록 더욱 강퍅한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이 현실이지 않냐? 는 겁니다.

이런 분들이 상급을 받을 수 있을까요? 상급은 고사하고 주님께서 쫓아내지 않을까를 걱정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예수 이름으로 뭣을 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불법 자들이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창조했는가? 예수님께서 왜 우리를 위해서 죽어가면서까지 구원하려했는가 그리고 성령님이 왜 우리 심령 속에 찾아왔는지를 생각해 봐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 삼위 하나님께서 왜 나를 부르셨는지를 생각해 가면서 살아야 되는 것이지 내 맘대로 살고 내 뜻을 주장하며 살면 불법 자가 되는 것이고 버림당하는 자가 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다스릴 영광의 존재로 창조하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저와 여러분이 사단의 유혹으로 죄악 된 추한 인생이 되어버린 것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죄악으로 이지러지고 쭈그러지고 형편없이 망가진 우리들은 고치고 회복시키는 작업을 하러 오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생각을 따른 사람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 자비와 양선과 충성, 온유와 절제와 인내의 사람이 되도록 하신다 그 말인 것입니다.

24절을 읽읍시다. 시작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여러분들 육체의 생각들 정욕과 탐심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살려고 하십니까?

제가 지난 시간에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복된 자를 만들기에 앞서 우리들을 망치는 육신과 마귀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도록 경고를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정말로 심각하게 받아들였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지난주일 설교를 듣고 한 주간을 얼마나 성령이 주는 생각을 따라 살려고 기도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적용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년 초에 하자고 했던 코람데오 일기를 다시 써보자고 하고 싶습니다. 매일 쓸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매일 쓸 것이 없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날이거나 주일날 교회에 와서 아니면 주일날 하루 중에 써 보자는 것입니다. 컴퓨터에 쓰던지 대학노트에 쓰던지 아니면 주보 빈틈에 쓰는지... 하여튼 시작해보잔 것입니다.

한 주간 7일 동안 하나님께 뭔가를 구했더니 이런 생각이 나더라 하고 써보자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생각이 내 생각인지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이렇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써 보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성령님이 도와주시도록 기도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성령님을 따라 살려고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다 보면 여러분과 저에게 성령님께서 평안을 주시며 도와주고 이끌고 간다고 하는 생각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여러분들이 남들에게 내 놓기는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훌륭한 간증이 될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중에 몇 분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전에 들었지만 우리교회에서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도 실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지나간 일주일 동안 많은 생각 속에 살았겠지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니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교회와 성도들이 평안할 것인가에 대해서 성령님의 인도와 지혜를 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지금 세상과 우리나라만 해도 여러 가지 굵직굵직하면서도 혼란스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니까 곧 휴거가 있는 것 아니겠냐는 생각을 하는 분도 있고 우리나라도 좋은 쪽으로 간다는 분도 계시고 또 한쪽으로 대통령과 같은 생각들 가진 분들 세상이 되어간다고 걱정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도 역시 궁금하기에 주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특히 왜 북한이 삼대에 걸쳐 독재하며 폭정을 하는데 핵까지를 가지게 했습니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제 생각엔 한국교회만 바르게 되면 북한의 핵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나 한국교회가 깨어나지 않으면 예레미아가 봤던 북쪽의 끓는 가마처럼 큰 재앙이 되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우리교단을 이끌어가는 분들 2500명 총대들에게 우리교단이 언제까지 WCC, NCC에 이끌려가려고 하느냐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자기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경과 다른 것이면 그것은 잘못 받은 것입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잘못된 예언을 한다면 그 사람에게 말하는 영은 속이는 영인 것입니다만 자기 생각으로 성경과 세상을 보면서 예상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말할 때는 분명히 자기 예측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려면 먼저 이것은 성령이 주신 것인지 아니면 내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생각대로 해봤더니 좋은 결과가 있더라 하고 하면서 자기 생각과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을 분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말씀처럼 사랑과 희락과 화평 등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되어갈 것이고 성령님이 함께하니 악령들이 틈타지 못할 것이기에 좋은 일들도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자기 생각을 훈련하는 코람데오 일지를 써 보는 일을 하시기를 권하며 말씀을 맺겠습니다.

댓글목록

바나바님의 댓글

바나바 108.♡.♡.88

필그림님께서 또한 가장 좋은 말씀의 타픽을 고르셨군요  "성령님!!!"
아무리 불러도 아무리 많이 찾아도 좋은 아버지와 같으신 성령님!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가 신학교때는 좀 이론적으로 성령론을 배웠지만 지금은 실제로 우리 삶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 지 모르겠습니다(우리 잠긴동산님이랑 나랑도 제일 좋아하는 분이십니다) 계속해서 틈만 나면 가르쳐 주셔서 주께 영광!이 주께 영광이 되는 삶(열매) 되게 하세요 할렐루야! 주께영광! 오직예수! 성령충만!

김정한님의 댓글

김정한 댓글의 댓글 39.♡.♡.24

성경에 나오는
바나바님처럼
격려해주심
고맙습니다.

잠긴동산님의 댓글

잠긴동산 댓글의 댓글 73.♡.♡.91

제가 본격적으로 아멘넷에 접촉한지가 2010년경 입니다.
별똥별님의 칼럼란 "방언이란 무엇인가?"에 뛰어들며 여러 네티즌들이 합세하여 그야말로 방언 논쟁을 극렬히 벌이게 됩니다.
김정한 목사님, 바나바 목사님은 그때에는 어디에 계셨었는지요?^^

토론이 한물 주춤하며 느슨할 때에도 허참님과의 Tom & Jerry식 논쟁으로 네티즌들을 즐겁게 하는 연출을 최근 얼마 전까지 이어 왔었습니다.
Tom님이 밤낮으로 주어터지며 반 강산을 보내었으니 혹 속병이 곪지는 않았는지 한쪽으로는 염려도 되었습니다. 원래 Tom & Jerry 다툼에서는 의례히 Tom이 당하게 설정되어 있던 오락물이 아니던가요? ㅎ ㅎ 그 오랜 시간동안을 성령론에 살고 성령론으로 울고 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Tom님이 의연한 척은 하여도 그 좋은 성령론을 거저로 개인 교수를 받았으니 도사급으로 물이 많이 들었을 겁니다!^^ 아닙니까? ㅎ ㅎ

천방지축으로 미친 척 같이 뛰어 놀던 잠긴동산에게는 참으로 유익한 시간들이었음을 이 시간 여러 네티즌들께 밝힘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보혜사 성령의 사역을 이해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시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감당하시는 사역을 각각으로 나누어 제시하며 구약으로부터 예수님의 승천 이전까지의 성령의 사역과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보혜사 성령 이후의 성령의 사역으로 분류하여 제시함으로서 형제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으로 성령님께서 도우신 결과로 정리되었다고 믿습니다 본인 나름대로 한층 업그레드 된 성령론으로 정립하여 무장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이만하게 성령론으로 정립하기 까지 이곳 칼빈교단 형제들로부터 배우게 된 삼위일체의 이해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솔직히 하성에서 성령론을 받아 들이는데 삼위일체 교리의 이해가 요구되거나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령론에 앞서 삼위일체론을 먼저 제시하게 된 동기는 이곳의 형제들에게 보혜사 성령의 하시는 일(사역)을 성경적으로 제시하고 이해 시키기 위한 한 방편이었습니다. 제시된 성령론에 특별하게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다만 기록된 말씀을 간과하여 놓친 부분을 발견하게 된 것뿐 입니다. 지금까지 공간을 허용하신 아멘넷님께 더욱 감사를 드려야겠지요!^^

이와 같은 제가 관여하기 수년 전에도 성령론에 대한 토론이 아멘넷에서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만. 계속 지속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구 게시판의 기록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별이 사모님의 방언 칼럼에서 진행된 방언 논쟁으로 인하여 방언(성령론) 토론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게 되며 웹상에서 널리 전파 된 공로가 아멘넷에 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Tom & Jerry 의 연출로 인하여 방언 열풍이 멀리 전파되도록 크게 기여하였음을 믿고 있습니다.

김정한 목사님의 긍정적인 성령론 설교에 힘을 얻어 두서없이 정리를 하였습니다.

어부님의 댓글

어부 69.♡.♡.180

성령을 따르라!?  살전 5:16-25 본문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기쁨이 그의 환경이나 육신의 조건 때문이라면, 항상 기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이 우리의 기쁨의 이유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건강할 때뿐 아니라 아플 때도, 물질적 여유가 있을 때뿐 아니라 가난할 때도, 또 평안할 때뿐 아니라 환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겠는가?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의지할 때 가능하다. 성도의 믿음은 어려운 처지에서도 낙망치 않고 간구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믿음이 있는 자는 낙심하지 않고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에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성도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주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이 세상과 온 우주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평안하고 형통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환난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다. 고난은 성도로 하여금 죄악된 일을 다 버리고 거룩하게 하고 높은 마음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고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게 하는 유익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그렇게 감사해야 한다.

이런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큰 복과 특권이다.  - 김효성 목사

어부님의 댓글

어부 69.♡.♡.180

"중생을 통하여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뜻은 좋고 은혜로우시다(God's will is good and gracious).
「칼빈주의 5대교리」가운데 불가항력적 은혜 혹은 유효한 부르심(Irresistible Grace or the Efficacious call of the Sprit)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며 인간은 이것을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의 중생사역은 하나님이 부르신 죄인은 틀림없이 구원받게 하시는 것이다. 이같은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으로 나타나신 것이며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모든 죄인에게 불가항력적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궁극적인 구원이다(God's will is the security of Believers).
「칼빈주의 5대교리」가운데 성도의 견인 혹은 궁극적인 구원(The Preserverance of the Saints or the Security of Believers)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을 받고 성령에 의해서 중생을 입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신앙을 지키게 된다는 것이다. 중생을 통하여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허용적인 뜻"이 있다.
불순종하는 인간의 의지와, 사단의 방해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게 될 때 이 부분에는 이 "허용적인 뜻"을 적용시킬 수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허용적인 뜻"을 이루시는 일에 있어서는 인간 편에서의 협조가 없이는, 또 책임 있는 웅담이 없이는 이 뜻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허용적인 뜻"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그래서 우리들이 사는 것이 로보트처럼 기계적으로 살지 아니한다. 여기에는 죄도 지을 수 있고, 생각, 판단, 결정을 인간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계처럼 살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허용적인 뜻"만으로 역사를 움직이시지는 않는다. 가령 모든 결정을 우리에게 다 맡겼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어떤 역사의, 인생의 삶의 방향을, 그의 절대 주권의 뜻으로 결정하시지 않으신다면 역사와 인생의 삶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불순종하는 인간의 의지와, 사단의 방해 때문에 혼란과 무질서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는 얼마간의 자유를 허용하신 것이다. 우리가 이 자유의 영역을 어떻게 관리하며, 이 속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결정을 하면 서 내 삶을 하나님의 계획과 마음에 합하도록 형성해 갈 것인가가 중요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허용적인 뜻"을 이해하고 이루어 가는 데 도움을 주는 로레인 뵈트 너(Loraine Boettner)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그는 "이것은 마치 어항 속에 있는 고기들이 그 안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고기의 자유는 어항 속에서 제한된 자유이다."라고 했다. 어항 속의 고기는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역사와 개인의 삶에는 하나님의 테두리가 분명히 결정되어 있다. - 김석원 목사

잠긴동산님의 댓글

잠긴동산 댓글의 댓글 73.♡.♡.91

태고의 태초부터 영원에서 영원으로 영원 안에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제한 됩니다. 인간에게 자유라는 의지를 허락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허락된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나 내려다 보고 계시지요.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줄을 미리 알고 계십니다. 그러함에도 선하신 하나님께서 로보트와 같이 컨트롤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스스로 선악간에 선택하도록 가만히 두고 보십니다.

“저희”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저주를 받은 자들아”(마25:41a),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세상은 선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선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양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고 그 무서운 죽음의 밤을 통과하며 죄악의 애굽 땅을 탈출한 중생의 경험이 있습니까?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한 자의 숫자가 몇 명이나 됩니까? 왕, 왕, 소리가 들려 옵니다.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정녕 구원받을 사람들은 2-3%에 불과하다지요? 애굽을 탈출한 백성들 중에 전투할만한 장정이 60만입니다. 애굽 땅을 탈출한 장정 중에서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진정으로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60만명 중에서 단 2명만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애굽을 탈출한 백성 중에서 가나안 땅에 입성한 구원받은 자의 퍼센테지가 0.00033% 입니다. 믿는다는 자들 100명 중에서 2-3명이 아니라, 만명 중에 2-3명이라는 통계가 진정으로 구원받을 자를 퍼센테지로 산출하고 있습니다. 만명 중에 2명이면 5000명 중에 한명 꼴이 성경적인 구원받을 자의 숫자입니다.

어부님!^^ "중생을 통하여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이 옳지 않게 보입니다. 성경에서 중생한 기준이 애굽에서의 탈출입니까? 가나안 땅에 입성 입니까? 한번구원받은 애굽에서 탈출한 경험을 구원으로 알고 계시다면 그 받은 가르침은 아주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구원도 구원 나름이라? 구원의 수준을 따져 보아야 할 때입니다. 십자가상에서 강도가 받은 구원의 퍼센테지는 현재까지 (1)/70억명 중의 한사람 입니다. 물론 병원에서 환자가 복음을 받자마자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자들 중에서 믿게 되자마자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중생하자 마자 영원한 구원이다". 살아 있는채로 낙원으로 들어가는 일을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휴거로 들림받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5000명 중에 한명이라는 0.00033%의 구원받을 숫자를 생각하면 과연 내가 구원받는 자 안에 들어가 있는가? 마음이 울렁울렁하며 메스꺼워 옵니다. 그러나 나는 2-3%를 믿습니다. 2-3%는 비성경적인 통계일지라도. 그렇더라도 나는 믿습니다. 비록 교리적으로 비성경적인 계시로 규정되었더라도 그러한 통계적인 천국 계시의 숫자가 인간의 역사에서 제시되어 통용되어 내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2-3%가 너무 박하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20-30%로 올려서 믿으십시요^^ 자유 의지입니다.^^ 20-30% 안에는 들어 갈 자신은 있으십니까? 이제 겨우 구원의 시작 입니다.

성령님을 따르며 순복하며 천국을 침노하여 입성하고야 마는(섭리+자유의지) 진정으로 구원받고 성도로 불림을 받을 자들의 숫자가 겨우 2-3%라는 통계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구원받을 성도될 사람들이 겨우 2-3% 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보혜사의 성령의 사역을 외면하는 분들이시여! 자신이 있으십니까?
어부님!^^ 참으로 간도 크십니다?^^

민주주의 위에 백성이, 모든 백성, 모든 민족, 모든 나라 위에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통치하십니다.

막15:23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중에 회개하고 주를 영접한 강도를 오른 편에 달린 강도라 비성경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 사상입니다.

“저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아멘!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어부님의 댓글

어부 69.♡.♡.180

하늘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 벅벅 긁어서 빡빡 긁어서 잠동님은 한그릇 나는 두그릇 아이고 맛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니 그 말을 오두방정(성령론) 떠는 것으로 생각하는 잠동님이 아닐까요? 자신의 작은 재주만을 믿고 날뛰다가는 큰 일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ㅎㅎㅎ

자게판을 커다란 가마솥에 비유한다면, Tom & Jerry는 부싯돌과 같다. 두 사람이 부딪히면 크고 작은 불꽃들이 튀게 마련이다. 하지만 불을 떼지 않으면 누룽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불길을 제대로 다스려 맛있는 누룽지를 만들지, 아니면 집 전체를 태워버릴지는 온전히 '바나바'님의 손에 달렸다.

사랑하는 데 왜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만남이 지속될수록 헤어지는 것이 아쉽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숟가락 위에 얹어주고 싶으며,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가장 못생긴 얼굴로 울어도 떠나지 않을 '내사람' 말이다. 정말 Tom & Jerry 가 이런 사랑하는 사이일까? ㅋㅋㅋ

결론부터 말하면 ‘사랑’과 ‘싸움’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싸우지 않는 '고양이와 쥐'는 없습니다. 다만 싸우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싸우는 우리’보다 ‘무관심한 목사’가 더욱 위험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잠긴동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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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님!
구 게시판을 태우던 concept은 구수함의 누릉지가 아니고 좌판을 벌리던 소문나기로 유명한 불난 호떡집이었거든요^^ 주인공은 토별교와 t&j였구요^^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새로운 누릉지 정신으로 가자하시면 아무렴 어떻습니까?

한층 업그레이드 된 높은 단계의 신 성령론에 큰 감화감동을 받으시는가 봅니다^^
아우님이 원하시면 “낮은단계 성령론”에서 결론에 이르지 못한 칼빈 성령론의 실체를 벅벅 긁어서 아우님에게 곱빼기로 두 그릇 대령할께요?^^ 게시판을 태우던지 말던지 오두방정을 떨든지 해야 누룽지를 긁지 않겠는지요.

툭하면 사라지는 아우님을 찾아나서게 해서야 어느 세월에 높은단계에 올라설 수는 있겠는지요. 이제는 방랑보따리 달아메고 아우님 찾으러 다닐 기운도 없소이다. 제자리 좀 지키이소^^

Preseverance라고요? 보혜사도 모르는 고아출신들이 그런게 있을리가 만무하지요. 고아들은 불가항력적인 부모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을 알 도리가 없지요. 솔직합시다. 견인과 허용적인 뜻이 고아들에게 언감생심 어울리는 조화인지요? 불가항력적인 뜻을 섭리라는 항아리 속의 물고기와 같이 스스로 가두어 놓으시는 하나님이시라?  ㅎ ㅎ 도대체 한 고개만 넘으면 들통이 날 거짓 선생이란 사람들의 가르침을 믿지 말라 하지 않았는지요

“싸우는 우리’보다 ‘무관심한 목사’가 더욱 위험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래 이 말에는 동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ㅎ ㅎ

어부님의 댓글

어부 69.♡.♡.180

먼저 성령을 따르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일서 4:1-3 본문에는 영들을 시험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영들을 다 믿지 말아야 한다. 영은 정신이다. 그것은 사상이다. 그것은 신앙 사상, 교리 사상이다. 그것은 그의 말과 교훈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사람들의 사상과 가르침들을 다 믿지 말고 그것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야 한다. '하나님께 속하였나'라는 원어는 '하나님께로서 나왔는가'라는 뜻이다. 즉 어떤 사상, 어떤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나온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교훈인지 아닌지를 시험하고 분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많은 거짓 선지자들, 거짓 목사들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 사상과 아무 교훈이나 따라간다면 우리는 사탄에게 속아넘어가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들, 정신들, 사상들, 말과 교훈들을 시험하고 분별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히 모든 정신을 믿지 말라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가르침들이 우리에게옵니다. 종교적인 이야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닌 영적인 근원으로부터 말합니다. 성령은 성경에 계시 된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에 따라 항상 그리스도의 고백을 동기를 부여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으면 성령 님이 그러한 종교적 상황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설교자는 메시지를 바꾸고 세상이 그들에게 귀 기울이도록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또한 단순히 종교 예배를 반복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고백을 대신하는 유효한 대체물이 아닙니다.

오늘날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적그리스도의 영 즉 이단과 거짓된 사상들은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안식교, 통일교 등 수많은 사이비 종파들과 천주교회와 자유주의 등이며, 교회연합운동(에큐메니칼운동)과 신복음주의와 은사주의 등도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부패시키고 혼란시키는 거짓된 사상들이다.

잠긴동산님의 댓글

잠긴동산 댓글의 댓글 73.♡.♡.91

오직 혼적인 사람 주제에 무슨 능력이 있어서 영적 존재인 사단이의 졸짜를 시험하라 하시는지?  저 밑에서 영분별의 은사에는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다른 은사들이 우선한다.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는 혼적인 자들은 영들을 시험 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하지 않았는지요^^ 그렇게 당해오면서도 도대체 깨달아지지가 아니하십니까? ㅉ ㅉ

겨우 애굽을 탈출한 자 = 아직 혼적인 자
가나안에 넉넉히 들어간 자 = 영적인 자
아직 가나안에 입성해 본 경험이 없으시지요? ㅎ ㅎ

맹하신 아우님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서, 한 예를 더 첨가하겠습니다^^

성막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 신분에 따라서 제한 됩니다^^ 이방인의 뜰을 지나, 여인의 뜰을 지나, 이스라엘인의 뜰을 지나, 제사장의 뜰을 지나, 대 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들어갈 수있는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아우님은 스스로 어느 뜰에 속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의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지성소에 들어 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 성령하면 옮을 생각하는 자들은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인의 뜰에 들어갈 자격조차 언감생심으로 갖추지 못하고 있지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겨우 구원 "이방인의 뜰" 에 들어갈만한 자격은 갖추었겠지요?^^ ㅎ ㅎ

인간을 이분법으로 나누어서는 영을 설명할 수가 없지요
3분법에 의한 영 분별을 다시 공부하고 오세욧

(살전 5:23)”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어부님의 댓글

어부 댓글의 댓글 69.♡.♡.180

웬 자격은 무슨!?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지가 언젠데 아직도 구약의 성막에 못 들어가서 안달을 하십니까? ㅉㅉㅉ 만인 제사장의 시대입니다. 좀 담대히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기시기를 축복합니다.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잠긴동산님의 댓글

잠긴동산 댓글의 댓글 73.♡.♡.91

공유님은 구원에 대한 혼동이 너무 심합니다^^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의미는 "하나님 쪽에서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라는 의미입니다. 휘장이 위아래로 쭉 찢어졌으니 온 인류의 모든 인간이 저절로 단체로 구원받는 게 아니구요^^ 공유님 스스로가 자각하고 십자가의 구원의 도를 받아 들일 때 누구나 휘장안으로 들어 가 직접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요!^^
그 정도의 수준이면 이방인의 뜰에는 들 자격이 있겠지요^^ ㅎ ㅎ

어부님의 댓글

어부 69.♡.♡.180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줄을 미리 아신는데, 인간이 선악간에 선택하도록 가만히 두고 보신다. 그리고 인간의 결정에 따라 갑은 지옥에 을은 천국에 간다. ㅎㅎㅎ Foreknowledge of God 에 대한 잠동님의 해석 참 웃기는 짬뽕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불완전하게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만들어 인간을 시험하셨는데 그 선악과를 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다 는 식의 잠동님의 말씀 이해가 안됩니다. ㅋㅋㅋ

여기서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네가 죄를 지으면 내가(하나님이) 너를(인간을) 가만히 두지 않고 꼭 죽이겠다는 협박조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아셨죠?^^

우리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이 진실이라면 (복음 주의자 모두가 동의 함), 사람 A가 믿을 것이며 사람 B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합니다. 자신의 삶이 이것과 다르게 바뀔 수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운명을 달리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운명이 결정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일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면 궁극적으로 신앙에 대한 예지에 기초한 선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달려있다. 그러나 만일이 운명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면, 누가 그것을 결정할 것인가? 또는 결정할 것인가? 확실히 기독교인은 사람들의 운명을 통제하는 하나님 외에 다른 강력한 존재가 없다고 말할 수있다. 어떤 비인격적인 힘, 어떤 종류의 운명, 우주에서 작용하는 것, 그들이하는 것처럼 일들을 만들어내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면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우리는 인격적인 하나님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비 인격적인 힘에 의한 일종의 결정론에 희생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의 구원에 대한 최고의 신용을 부여받지 못하실 것입니다. - 웨인 그루뎀

잠긴동산님의 댓글

잠긴동산 댓글의 댓글 73.♡.♡.91

"일종의 결정론"?에 희생.
신용을 부여받지" 못하실 것이라.?
하나님은 신용의 대상, 신용불량이시네요? ㅋ ㅋ
모라카는 건지?
코메디도 아니고 ㅋ ㅋ

어부님의 댓글

어부 댓글의 댓글 69.♡.♡.180

캪,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구글 번역기가 시원찮아서 그런기라예! ㅎㅎㅎ Foreknowledge of God/ Theopedia 영어 원문을 올리면 할베들이 기겁할 것이고, 나도 바빠서, 그리고 골빠게지는 일은 죽어도 하기 싫어서, 성도의 유익을 위한 표절은 괜찮다는 분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

어부님의 댓글

어부 69.♡.♡.180

민수기의 히브리어 성경 명칭은 베미드바르(‘광야에서’)이다. 민수기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간의 역사이다. ‘민수기’라는 명칭은 고대 헬라어 70인역(ajriqmoiv, ‘수(數)들’)과 영어성경의 명칭('Numbers')을 따른 것이다. 그것은 본서에 나오는 두 번의 인구조사 때문에(민 1, 26장)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민수기의 특징적 진리는 ‘인간의 전적 부패성’이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간의 역사는 불신앙, 원망, 불평, 불순종의 반복된 역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벌하셨고 그들은 광야에서 유리하며 방황하였다. - 옛신앙

민수기의 원래 이름은 "광야에서"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광야에서 성공한 사례가 아니라 실패한 사례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이 신약의 교회에 교훈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구약에서도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이신칭의의 교리가 아닌 천방지축 성령론, 오두방정 예정론, 웟치만 니의 삼분법 등 이런 것들이 다 잠동님이 영지주의나 신비주의에 잠겨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

궁극적 현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agnostic, 즉, 불가지론자라 하고, 반대로 이를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앎”이란 뜻의 gnostic, 즉, 영지주의자라 한다. 그러나 그노시스는 이성적 지식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관찰 혹은 경힘을 통해 터득한 지식을 이야기 한다. 즉, “통찰”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노시스는 자기 자신을 알면 곧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생각으로 도우시는 성령님!? 성령님은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을 깨우쳐 주는 정도의 선생님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아예 잠동님을 뒤집어 엎어 버리는 하나님이십니다. ㅎㅎㅎ 신앙은 관찰 혹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식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 그리스도, 천국, 지옥, 구원, 사랑 모두 개념으로 만들었습니다. 현대인에게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은 하나의 전설입니다. 현대인에게 실체가 없는 허상이 하나님입니다. 실체가 있다면 그건 금송아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잠동님은 현대방언에 메달리는 것입니다. ㅋㅋㅋ

잠동님이 구원받았다는 것도 자신의 신념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열매를 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드러나게 됩니다. 글을 삭제 할 수도 없고, 삭제 당하면 쪽팔리고 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잠긴동산님의 댓글

잠긴동산 댓글의 댓글 73.♡.♡.91

공유님의 구원은 신념이라? 스스로 고해성사를 하는 것을 보니 과연 그 말이 진실이고 맞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하시니 "구원에 관계된 성령세례"의 보증하심에는 맹탕이며, 구원의 확신에 관한 토론에서 긴장할 뿐 아니라 격해지는 것이 아닙니까? ㅎ ㅎ
ㅎ ㅎ 사역에 관계된 성령세례라?-- "성령과 사역"을 논할 정도니 [들은풍월]의 효과가 나타나는가 봅니다^^ Way to Go 공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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