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 나눔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페이스 상패 제이미 제이미혜택


 

현재 이 게시판은 스팸때문에 본 글을 쓰기 위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처음으로 자유게시판에 본문이나 댓글을 올리시는 분은 반드시 글등록 버튼을 누르기 전에 아래 게시물 관리방침을 확인하여 주세요. 댓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스팸방지 숫자를 입력해야 합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자유게시판 논객님들은 회원등록을 통해 자유로운 수정과 글쓰기를 이용하세요. 사이트 맨 위 오른쪽에 회원등록 링크가 있으며, 바른 이메일만 요구하며 익명을 유지하실 수 있습니다.

 

나눔게시판

5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96.♡.♡.163)2017-09-11 10:42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세상은 법이 곧 정의를 상징함은 오래된 전통으로
그리스신화의 법의 여신 디케(Dike)로 칼을 든 여신으로 정의,
정도를 뜻하였고 로마시대에 이르러 유스티치아(Justitia)로 변화하여
영어의 정의(Justice)로 형평성의 의미로 한손에 칼, 다른 손에 저울을
들었고 눈을 가리고 있어 평등, 공평을 의미하며
법으로 정의를 지키려는 시도는 고대의 그리스의 철학자들로부터
현재까지 논의의 대상으로 실정법과 불문법 중 어느 법이 더 우월하냐는
논쟁은 계속되지만 인간이 만든 법으로 정의를 지킬 수 있을까.
최소한의 정의를 유지 할 수 있기에 강제적인 구속력으로 법을 만들어
유지하고 있지만 인간이 만든 법은 진리가 아니며
진리까지 추구할 수도 없고 진리는 시대와 상관없이 늘 변함이 없지만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을 포함한 모든 규칙은 늘 변하여 왔고
완벽한 법도 없으며 법을 완벽하게 집행할 완전한 사람도 없는
불안정한 정의를 이루려는 인간의 노력이라
성경의 ‘정의’를 보아 진리의 빛을 다시 아둔한 자가 풀어 보려한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정의가 없다 한탄하고
그리스도인들도 정의가 사라진 공동체를 탄식하며
도무지 진리를 아는 자들이라 하기에 불의에 적당히 타협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득세하여 유명인 이 되지만
이런 자들은 종교지도자들이라 잠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만
한 시대가 가면 사라질 사람들이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신앙의 문화라는
대세는 한 시대의 신앙의 사조로 영향력이 있을 지라도
진정한 신앙인들에게 영향력은 무시할 정도 이며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다수를 인도하여 군중의 환호 속에 진리를
퇴색시키며 넓은 문으로 인도하여 정의가 사라진 종교 활동에
매진(邁進)하기에 그럴수록 진리와 멀어지는 종교가 되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에 비난을 받는 한국의 대형교회와 대형 한인교회가
그러하며 그런 대형교회를 부흥의 룰로 숫한 프로그램과 운동에
영향을 받은 작은 교회들이 그러하다.
생각해 보자.
교회에서 ‘정의’ 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는가.
어찌 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정직하지 못하며 불의에 눈을 감고
차별에 익숙하며 직분을 신분으로 생각하고
그런 자들을 지도자로 모시고 부정에 관대하며 비리에 대변인 노릇을
하는 자들이 넘치는가.
신앙의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형편없이 적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 믿음으로 헤아려 보자.
세상에도 나름의 정의가 있는데
진리를 따른다는 자들이 정의가 없다면 맹신이거나 광신이지
어떻게 믿는 자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진리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 공의(Righteousness)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함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로마서 1:17]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이 능력으로, 이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자녀의 능력으로,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인 치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의(공의)로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복음에는 이미 ‘정의’ 녹아있어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루는
복음을 받은 자의 합당한 언행은
이미 정의를 행하여 의인이 되며
그러기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은
신명기 6:24-25에 잘 나타나 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And the LORD commanded us to do all these statutes,
to fear the LORD our God, for our good always,
that he might preserve us alive, as it is at this day.
And it shall be our righteousness,
if we observe to do all these commandments before the LORD our God,
as he hath commanded us.]

명령하신 모든 명령을 지킴이
(if we observe to do all these commandments
before the LORD our God)
우리의 의로움 이고
(And it shall be our righteousness)
우리의 의로움, 즉 의인은 명령하는 모든 것을 지키는 사람으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며
믿음은,
말씀을 지킴이 경외가 되어 복이 되어 복을 주심은
여호와께서 오늘 같이 함께하시기 위함이다.
(he might preserve us alive, as it is at this day)

그래서 이 의미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Whosoever shall seek to save his life shall lose it;
and whosoever shall lose his life shall preserve it. 누가복음 17:33]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바리새인에게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육적인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살면서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면 목숨을 잃고
하나님의 명령 곧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려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사는 자는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다가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에 산다는 말씀이시다.

그러기에 오늘날의 혼란과 무질서는 진리를 떠난 결과이며
모두가 옳다고 주장하는 말과 글은 많으나
정의의 부재(不在)는
성령님의 부재로 성경은 정확히 쓰여 있으며
순수한 신앙을 잃은 결과라서
신앙인으로서 부끄러움 없는 신앙은
이미 수치를 수치로 여기지 못하는 열매 없는 신앙이기에
믿음의 근본인 정의(Righteousness)가 사라진 거짓 진리에 취하여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해
정의의 정의(正意)를 오래전에 망각하였으니 복음의 길을 잃고
정도(正道)를 잃어 난파한 오늘날의 현실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버릇처럼 외친 듯
자신의 변명을 합리화한 도취(陶醉)를 믿음으로 착각하고
감성의 높낮이에 널 춤추는, 자기감정에 충실한 변질을 믿음이라
단정한 개인과 공동체의 타락이 원인이기에
현대교회는 ‘정의’에 대하여 전혀 언급도 없으며 오히려 회피하여
세상의 정의보다도 못한 불의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은폐하고 비호하여
복음의 능력에 무지하고 능력을 무시하고 사랑을 노래하나
진리를 떠난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며
정의를 떠난 진리는 진리가 아니듯
정직을 잃은 정의는 맛을 잃은 소금이며
맛을 잃은 소금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진리의 올바른 빛의 의미를 잃은 무늬만 공동체인 모임이
정의에 대하여 무지하기에 공동체의 의미가 탈색되어가고
색깔만 공동체인 모임은 종교 활동이며 끼리의 모임이라
자기들끼리도 위안도 못되어 빛이 못되어
갈라지고 분열하는데 어떻게 정의가 사라진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으며 어그러진 복음의 의무감으로 무장하나
자체가 허황된 종교인의 몽상이라
말들이 바위 위에서 달리겠다는 허황된 말이며
소가 바위 위에서 밭을 갈겠다는 몽상이다.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도다.
Shall horses run upon the rock?
will one plow there with oxen?
for ye have turned judgment into gall,
and the fruit of righteousness into hemlock:
Ye which rejoice in a thing of nought, which say,
Have we not taken to us horns by our own strength? 아모스 6:12-13]

진리를 떠난 정의로,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ye have turned judgment into gall)
세상을 변화시킬 정의를 쓸개처럼 쓴 불의의 세상을 만들고 타협하고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꾼 자들이
(the fruit of righteousness into hemlock)
열매가 없는 쓴 쑥으로
의(공의)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공의의 열매인 안식과 희락과 화평과 평강을 쓴 쑥으로
불의를 정의로 바꾼 자들이
저울의 추를 바꾼 자들이
똑같은 자를 쓰지 않는 불의한 자들이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아무것도 아닌 소득도 없고 허망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자신에게 공동체에게 아무 유익이 없는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Have we not taken to us horns by our own strength?
우리의 힘으로 뿔(horns 권력, 영광)을 취하지 않고
자기 영광의 우상과 세상의 종교 권세를 자신의 힘으로
세력으로 삼은 자들의 변명처럼
불의한 정의,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But let judgment run down as waters,
and righteousness as a mighty stream. 아모스 :24]
정의가 물같이
(let judgment run down as waters)
정직과 공평과 평등이 물같이 맑고 맑게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and righteousness as a mighty stream)
공의가 마치 물결같이 끊임없이 흐르게
세대와 세대를 잇고 시대를 잇아
하나님의 의(공의)를 물같이 맑고 끊임없이 행하는 개인이,
공동체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아모스 5:21-23]

너희의 헌금과 헌신인 예배를 받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이며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Take thou away from me the noise of thy songs)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for I will not hear the melody of thy viols)
너희의 찬양도 시끄러운 노래라 듣지 아니하시며 비파소리의 멜로디도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의 예배와 찬양이
너희의 슬픈 애가(哀歌)가 되기 전에
너희의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기 전에
아모스는 여호와를 찾으라 했고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Seek ye me, and ye shall live”

이사야는 가까이 계실 때에 찾으라 했으며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Seek ye the LORD while he may be found,
call ye upon him while he is near: 이사야 55:6]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Ask, and it shall be given you; seek,
and ye shall find; knock, and it shall be opened unto you: 마태복음 7:7]

그리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를 위해
성령님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며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인내하기를 기도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And the Lord direct your hearts into the love of God,
and into the patient waiting for Christ. 데살로니가후서 3: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나눔게시판 목록

Total 554건 24 페이지
나눔게시판 목록
제목 날짜
게시물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아멘넷의 시각게시물관리광고안내후원/연락ㆍ Copyright © USAamen.net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아멘넷(USAamen.net) - Since 2003 - 미주 한인이민교회를 미래를 위한
Flushing, New York, USA
카톡 아이디 : usaamen / USAamen@gmail.com / (917) 684-0562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