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 나눔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페이스 상패 제이미 제이미혜택


 

현재 이 게시판은 스팸때문에 본 글을 쓰기 위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처음으로 자유게시판에 본문이나 댓글을 올리시는 분은 반드시 글등록 버튼을 누르기 전에 아래 게시물 관리방침을 확인하여 주세요. 댓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스팸방지 숫자를 입력해야 합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자유게시판 논객님들은 회원등록을 통해 자유로운 수정과 글쓰기를 이용하세요. 사이트 맨 위 오른쪽에 회원등록 링크가 있으며, 바른 이메일만 요구하며 익명을 유지하실 수 있습니다.

 

나눔게시판

7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6)2018-02-07 10:31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자신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며
너희 지체를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닮아
자신을 부인하고
너희 몸과 마음을 다하여, 너희 지체가 의를 행하기 위하여,
의의 무기가 되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삶을 위하여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날마다 매일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라.
그리하면
성령님께서 권능을 주셔서
능히 의를 이룰 수 있는 의의 무기를 주신다.
의의 무기(the armour of righteousness)를 전편에 이어서 보면,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By pureness, by knowledge, by longsuffering,
by kindness, by the Holy Ghost,
by love unfeigned,
By the word of truth, by the power of God,
by the armour of righteousness on the right hand and on the left,
고린도 후서 6:6-7]

성령의 감화와(by the Holy Ghost),
우리가 연약한 자가 되었을 때
우리가 경건하지 않았을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연약하여 경건하지 않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음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셔서(shed abroad in our hearts by the Holy Ghost)
우리의 가슴의 중심에 가득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신 성령님은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언약의 소망을 마음의 중심에 부으셔서
환난 중에서도 고난 중에서도
소망이 부끄럽지 아니하게 찬양하며 즐거워함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이는, 그리스도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리스도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리스도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기에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And not only so, but we glory in tribulations also:
knowing that tribulation worketh patience;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And patience, experience; and experience, hope: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니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And hope maketh not ashamed;
because the love of God is shed abroad in our hearts by the Holy Ghost
which is given unto us.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For when we were yet without strength,
in due time Christ died for the ungodly. 로마서 5:3-6]
이 땅의 삶에서도 평안을 누림은 ‘평안’ 은
하나님 나라의 자녀만이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평안이라
이 평안은 이 땅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 같이
하나님 나라를 체감(體感)함이 평안이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림자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이 나의 고난이 되어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를 누림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이라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이루어
평안을 맛보며 소망과 함께 살아가다가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러 소망이 이루어짐으로 종당에 평안이 되기에
‘평안’ 은 성령님과 함께 동행 하는 증거라
평안은 성령의 감화(by the Holy Ghost)의 증거라
평안은 성령 충만(being full of the Holy Ghost)이라
평안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거짓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의 행세를 하는 자들이라
성령 충만을,
자신의 알량한 믿음으로 스스로 도취(陶醉)되어
이리저리 감정에 치우친 높낮이의 기분에 취하여 감정에 충실하고도
의(義)가 사라진 겉치레로 정직을 외면하고도
성령님을 자신의 사적인 종교 외식의 만족을 채워주시는 분으로 알아,
사적인 욕심을 채우시는 분으로 대하는 자들과
그런 자들 따르는 자들의 변명은,
자신의 잘못이 노출되었을 때는
큰일을 할 하나님의 사람은 마귀가 방해를 한다며 변명하고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져서 죄가 드러나면 말 뿐인 회개를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한다.
이런 영광이 진정 영광이 될까?
이런 용서가 성령님의 역사일까?
속지마라.
회개를 하면 용서해 주시지만 회개는 말 뿐만이 아니라
잘못된 행위를 뉘우치고 죄지은 당사자에게 잘못을 빌고 보상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다시 같은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반성으로 자숙하고 근신해야 하거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니,
그런 자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이라니...
그런 사람들이 성령님의 사람일까.
‘영광’ 의 의미도 모르는 자들에게 성령님께서 함께 하실까.
옳은, 의(義)를 행하다 고통을 겪음이 고난이라 하지만
자기 자신의 욕심 때문에 저지른 죄로 말미암은 고통은 고난이 아니라
고난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그런 자들은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성경의 한 문장을 끄집어 내여
자신을 용서했다 변명하고 설교도 ‘한 구절’ 의 ‘한 단어’ 을 골라
자신의 의견과 짜깁기를 하지만 성경의 진리는 한 단어, 한 구절로 정의할
수 없어 설교할 수도 없을 뿐더러 진리는 한결같은 일관성으로
변치 않기에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는 성령님의 신실(信實)한 감화에서
믿음의 분량만큼 생각하고 행하기에
믿음이란 성령님의 도움 없이 소유할 수 없기에
믿는 만큼 보이고 행하기에 성경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후서 1:20-21]
여기서의 예언은 말씀을 해석하는 예언도 포함하지만
베드로의 요지(要旨)는 예언의 기원(origin)으로
선지자들이 예언의 말씀(성경)을 기록하면서 사사로이 자신의 의견이나
혹은 자신들의 결론을 내리지 않았고 그 기록인 인간의 언어, 어휘(語彙)는
오직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그대로 기록했기에
성경에는 저자의 견해가 들어가 있지 않기에
성경의 저자인 베드로의 견해, 바울의 견해, 또는 다윗 등의 주장이라 하면
성경의 권위(authority)인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성령의 감화(by the Holy Ghost)를 무시하는 결과임은
성경(예언)은 하나님의 감동으로(by inspiration of God)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given by inspiration of God) 단지 받아썼기에
예언도 성경을 초과(超過)한 또는 덜하거나 추가함이 없기에
이미 계시로 된 성경은 완성되었는데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이 구절을 자신들의 권위와 욕망으로 자의(自意)적으로 해석했던
어둡던 시대 교회 역사의 오류(誤謬)가 ‘외식’ 이었고
아직도 그 앙금이 남아 외식이 전통같이 이어진다.
성경의 해석하는 권리는 교회에 만 속해있어
개인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거나 연구해서는 안 된다는 해석을
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야합하면서 오래 동안 교회가 이런 해석을 하여
종교개혁 이전까지 이런 주장이 교회의 권위가 되었고
그 후에도 이런 주장은 끝이지 않아
아직도 어리석은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은 이런 주장을 하여
교인을 맹신자로 만든다.
그러나 성경의 해석은 성령님의 조명이 없으면 불가함은
성경은 성령님의 감화(by the Holy Ghost)로 된 책이기 때문이라
성령님께서 필요를 주시기를 원하는 가운데 기도하고 묵상하며
성경을 읽으며 모든 성경의 구절과 문맥을 다른 성경과 대조하여
변화 없는 일관성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해석해야 하며
한 단어, 한 구절을 가지고 해석하면
연말연시에 새해의 성경구절이라며 제비뽑기 식으로 한 절 주는 목사는
성경을 언급하지만 이는 선생이 아니라 무당이 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 누구나 읽고 알아야 함을 성령님께서 아시기에
하나님은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를 원하셨고 지금도 원하시기에
인간의 가장 평범한 언어로 써졌고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많은 세대에 걸쳐 사본이 경전이 되었고
가장 오래된 사해 사본도 B .C 3-2세기에 기록되었을 거라 성경학자들은
추정하고 히브리인들이 자음으로 기록된 마소라 사본이 모음의 부호를
만들어 정확히 보존하기를 원했던 맛소라는 7-10세기의 기록으로
성경의 기록과 보존에 성령님의 개입하셨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성령님의 감화(by the Holy Ghost)로
인도하심으로 성경을 읽게 함은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며 그리스도인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라
성경은 학자나 신학생에게만 주어진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모두 알아야 할 인간의 언어로 쓰인 책으로
성령님의 감화로 쓰인 책이기에
성령님의 감화 없이 이해되는 책이 아니며
성령님의 인도하심도 성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기에
성령님의 감화는 오직 진리로 인도하시기에
성령님의 감화로 하나님의 의를 알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기에
성령님의 감화로 믿음이 성장하기에
성령님의 감화는 그리스도인의 의의 무기가 된다.

거짓이 없는 사랑과(by love unfeigned),
거짓이 없는 사랑은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온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Now the end of the commandment is charity out of a pure heart,
and of a good conscience, and of faith unfeigned: 디모데전서 1:5]
교훈의 목적, 계명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그 사랑은 하나님의 선한 의에서 비롯된
그리스도의 순결한 사랑(charity)을 도장을 새기듯 인 쳐주시며
그 사랑으로 보호하시며
그 사랑을 일깨워 주시는 성령님의 인도함 심이라
순수하고 순결한 믿음(faith unfeigned)에서 거짓 없는 사랑(love unfeigned)을 실천하여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 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하라” 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고 느껴서 그 사랑을 가슴에 담은
베드로는 이렇게 외쳤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가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21-22]
형제자매 사랑하기를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ye love one another with a pure heart fervently)” 은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by love unfeigned)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열렬이 서로 사랑하라는 의미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창조에 의한 것도, 섭리에 의한 것도 아니며
율법에 의한 것도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며
그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이라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으니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함이
그리스도를 사랑함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의 도리라
이 도리를 행함이 거짓이 없는 사랑(by love unfeigned)이라
그리스도께서 주신 순결한 믿음(faith unfeigned)에서 시작되었기에
거짓이 없는 사랑은
그리스도를 닮고 자 하는 자들에게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의의 무기가 된다.

진리의 말씀과(By the word of truth),
말씀이 하나님이시며 말씀은 진리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한복음 1:1]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로 시작된다.
그러데 말씀이 하나님이시라니...
어떻게 납득(納得)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인간이 어떻게
높고 높으신 존엄(尊嚴)하신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고
두려움과 영광이시며 빛이신 하나님을 감히 정의 할 수 있을까.
성경을 보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시작하고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세례로 시작되지만
요한복음은 천지창조 이전에서 시작되어
복음서 전체에 걸쳐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공관복음은 이 진리를 나중에 드러낸다.
요한복음은 전도의 목적을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1]
이 또한 성경의 목적과 같다.
그러나 전도의 대상자는 유대인과 이방인 및
초기 영지주의자들(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분리주의자들)을 위해
요한복음의 목적으로 이 구절을 사용하기도 하나 역사적 사실에 공감하며
또한 요한복음은 구원을 설명하기 위하여
현재 시제로 일관성 있게 쓰여 있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예수님의 탄생과 고난 그리고 부활과 행하신 모든 일들이
내 삶의 나날에 일어난 일상의 사건으로 받아드려 보면
성경을 이해하기 쉽고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주시는 성령님과 동행함의 손길을, 온정을, 사랑을
같이 함께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성경의 시제(時制)와 비유는 문학적이라 할 수 있음은
인간의 한계선을 넘는 성경의 의미와 뜻과 진실성을
인간의 일상적인 표현으로는 구사하기가
또 전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시제는 과거가 현재이며 현재가 미래인,
‘내’ 일생에 일어나는, ‘내’ 일생의 시간의 범위에 적응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의(義)가 내 사건이 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사건이 되고
이렇게 이끄시는 성령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이 모든 일들이 내 사건이 되어 신앙의 고백이 되면
눈이 떠져 옹색한 자신의 믿음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넓고 깊은 그리스도의 세계를 뚜렷이 보여
그 세계를 향해 인도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항해(航海)하며
거친 세상의 파도와 어려움과 고통의 풍랑(風浪)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기에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로
자신을 사용하신 계시의 말씀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씀’ 은 헬라어의 logos 로 단순히 한 단어를 기리 킴이 아니라
메시지를 말하며 문맥에서 호칭으로 인격체의 ‘이성’ 을 나타내고
히브리인들의 히브리어는 ‘지혜’ 의 의미로 표현했기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 이 ‘인격’ 이시면서 동시에 ‘지혜의 메시지’ 라는
헬라와 히브리를 같이 엮어 복음의 대상자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체(實體)와 의(義)로 표현하였으리라.
그러기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안에 거하셨으며,
말씀이 인격이 되어 인간을 사랑하심을 나타내셨으며,
그 말씀이 진리로 지혜의 말씀이 되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더라.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받는 자에게는 은혜며 또 진리라
시편 33:4-6 은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은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와 은혜의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기에
하나님께서 행하는 일은 다 신실(信實)하시기에 진실하시며 정직하시기에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으로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가득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진리의 말씀이 의를 이루는 무기가 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by the power of God),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인가.
왜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는가.
그것은 영생이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As thou hast given him power over all flesh,
that he should give eternal life to as many as thou hast given him.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And this is life eternal, that they might know thee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thou hast sent.
요한복음 17:2-3]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려고
영생을 주시려고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 받아 오셨기에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진리의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지식 곧 믿는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심과 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믿음이라
그리스도를 본 받음이 믿음이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여 되었기에
믿음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능력이며 선물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For though he was crucified through weakness,
yet he liveth by the power of God. For we also are weak in him,
but we shall live with him by the power of God toward you.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Examine yourselves, whether ye be in the faith; prove your own selves. Know ye not your own selves, how that Jesus Christ is in you,
except ye be reprobates? 고린도후서 13:4-5]
그래서 믿음 안에 있는가?
어떻게 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가?
그리스도의 정의가 너희 안에 있는가?
그리스도인으로 충실한 믿음으로 정의로워 신실하며 정직한지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라.
그래서 생활 속에 그리스도를 확증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믿음에 타락한 자이다.
다시 보면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For though he was crucified through weakness,”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지만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약함을 택하심은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나타나시길 원하셔서
스스로 약함을 선택하셨고 이는 약함이 강함으로 나가게 하는 그리스도의 복종은 자신까지 포기하는 약함이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약함을 통해 부활하시고 살아계시듯이
그리스도의 약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we shall live with him by the power of God toward you.”
썩어질 육체에서 새 생명, 영생을 얻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바라,
너,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너, 너희 삶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종(順從)이 없다면
너, 너희의 생활에서 정의롭지 않다면
너, 너희는 믿음에 타락한 자라 버림받은 자 이다.
그래서 복음은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으로 나타나
일상생활의 능력인 의의 무기가 된다.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by the armour of righteousness on the right hand and on the left),
하나님의 의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 의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세상에서 의의 무기가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정의를 본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이 의의 무기가 되기에
이는 이제까지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님의 권능으로 이 모든 능력이 의의 무기가 되어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하나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함이라
그래서 고린도 후서 6:6-7의 의의 무기와 에베소서 6:13-18 은
같은 의의 무기로 서로 조화를 이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Wherefore take unto you the whole armour of God,
that ye may be able to withstand in the evil day,
and having done all, to stand.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Stand therefore, having your loins girt about with truth,
and having on 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And your feet shod with the preparation of the gospel of peace;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Above all, taking the shield of faith,
wherewith ye shall be able to quench all the fiery darts of the wicked.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And take the helmet of salvation, and 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Praying always with all prayer and supplication in the Spirit,
and watching thereunto with all perseverance and supplication for all saints;]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전신 갑주(the whole armour of God)가 무엇일까.
전신 갑주는
구원의 투구(the helmet of salvation)와
성령의 검(the sword of the Spirit)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은 우리의 믿음이 되어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행하는 살아있는 믿음이 된다.

그러기에 태초에 계셨던 말씀이 구원의 말씀이 되셨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는 구원자로 오셨고
그리스도를 친히 증명하시는 성령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심은,
우리를 얼마나 끝임 없이 사랑하시는지
성경에 기록되었고,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과 그리스도 성령님이 한 분이시듯
우리를 하나 되는 복음으로,
하나 되는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기에
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정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 정의가 사라져서
진리를 믿는 다는 자들이 온갖 욕심으로 편을 가르고
직분으로 편을 가르고 솔직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아 또 편을 갈라서
정의가 희미해진 오늘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면,
의의 무기가 사라지는 오늘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면,
그래서 악한 날에 바로 서지 못한 다면,
(may be able to withstand in the evil day)
그리스도 앞에 똑바로 서 있지 못한 다면,
성경의 공동체와 동떨어진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교인들 안에서, 군중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도 진리를 외쳐서
말씀과 현실이 동떨어져서 말 따로 행위 따로 인 위선이 되면
이 위선이 믿음이라 여긴 신앙이 자신의 종교가 되면
종교적인 겉치레 인 ‘외식’이 되어
의(義)가 불의(不義)가 되어도 외면하고 눈감으면,
그리스도의 정의와 멀어져 현대판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된다.
그래서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20]
...못하면...결코...못하리라.
(no case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No case enter into...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나눔게시판 목록

Total 554건 22 페이지
나눔게시판 목록
제목 날짜
짐보 ㆍ 1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1-07
짐보 ㆍ 1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1-06
짐보 ㆍ 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1) 2017-01-06
짐보 ㆍ 8.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1-06
짐보 ㆍ 7.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1-06
짐보 ㆍ 6.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1-06
짐보 ㆍ 5.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1-06
짐보 ㆍ 4.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1-06
짐보 ㆍ 3.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1-06
짐보 ㆍ 2.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1-06
짐보 ㆍ 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1-06
해처럼달처럼 ㆍ 새해의 기도 2017-01-05
대장쟁이 ㆍ (창세기 41장) 땅에 생명을 주는 자 2017-01-05
해처럼달처럼 ㆍ 사랑이게 하소서 댓글(1) 2017-01-02
별똥별 ㆍ 새해 새 아침의 내 기도 2017-01-02
누지문서 ㆍ 한 해의 마지막 날의 생각 2017-01-02
김정한 ㆍ 2017년에 힘써 구해야 할 세 가지 2017-01-02
짐보 ㆍ 2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1-02
해처럼달처럼 ㆍ 너무 낙담하지마 2017-01-02
대장쟁이 ㆍ (창세기 41장) 관원장들의 꿈, 바로의 꿈 2016-12-28
해처럼달처럼 ㆍ 닭이 울기 전에-정유년 새해를 앞두고 2016-12-26
해처럼달처럼 ㆍ 추억은 그리움으로 새겨두도록 해 2016-12-26
별똥별 ㆍ 성탄의 주 2016-12-24
별똥별 ㆍ 주의 율례와 계명 2016-12-23
김정한 ㆍ 초림 예수님을 만난 자들과 재림 예수님을 만날 자들 2016-12-22
게시물 검색



아멘넷의 시각게시물관리광고안내후원/연락ㆍ Copyright © USAamen.net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아멘넷(USAamen.net) - Since 2003 - 미주 한인이민교회를 미래를 위한
Flushing, New York, USA
카톡 아이디 : usaamen / USAamen@gmail.com / (917) 684-0562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