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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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96.♡.♡.163)ㆍ2017-01-07 11:2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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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한 권하는 권고의 말씀이 아니고
분부이며 명령인 계명이다.
왜 우리에게 꼭 지켜야할 계명으로 주셨을까.
우리를 간절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사랑의 힘이 나타나시길 바라시기에
능력을 주시기를 원하시기에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를 향한 계명이면서
우리를 향한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증(確證)이며 근거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조롱을 당하시고 채찍을 맞으시고
악독한 죄인의 형틀인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난을 받으시며 돌아가시기 까지 한
고귀하고 간절한 사랑 ‘charity’ 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 가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치시고 새 생명을 얻는 소망을 주셨기에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를 간직한 사랑이 우리의 생명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생명인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안에 함께 거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알게 하시는
믿음으로 믿음을 확정케 하시는 믿음을 더 하시려고 능력을 더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분부인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
증인된 자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내신다는 말씀은,
성령님께서 계셔서 권능의 힘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복음 14:21]
그리스도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면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이 성령님의 권능으로 나타나서 원수까지 사랑하는
능력을 주신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교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땅에 완성케 하는
복음의 의(義)가 됨은 이것이 경건의 모습이고
우리 모두가 완벽한 믿음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였더라도
하나님 뜻대로 공의를 행하려는
진리로 진실 되고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려는 형제자매의 몸부림의 모습에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으려 하는 간절한 모습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실천하는 경건을 바라보아
서로가 서로에게 말씀이 능력이 되는 힘이 되어 지치고 힘든 삶과
곤 한 환경에 다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라보아 힘을 얻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알게 되어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을 받게 되며
사랑하는 교제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는
전도가 되기에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은혜라
우리의 노력과 행위의 공로(功勞)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 ‘charity’ 의 사랑으로 거저 받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인 복음을 전한 사람과 받은 사람을 통하여
교통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기에 그러기에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Godliness)한 선택(은혜)에 부르심에
부르심의 합당한 응답의 태도와 실천하는 생활이 경건이며
경건은 권능을 받은 자의 능력이고 더 경건하여 더 큰 능력을 받는,
더 큰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역사가 세상의 역사를 만들어 왔기에
세상의 역사는 복음의 위대한 역사이다.
그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우리의 영혼을 감찰하신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27-28]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시라는 말씀인가.
우리를 조금 해코지하는 사람을 용서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시라
하시는가.
그러니 일상의 교제에서도 상대를 경쟁자 내지 무조건 지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잘못을 지적해 주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으로 단정하여 본인은 선한데 질투와
시기 때문에 고통을 준다고 피해의식에 절은 사람들이 직분을 갖고 있으니
공동체가 조용한 날이 있겠는가.
외관으로는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의외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장로 때문에, 목사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음모 때문에, 신천지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병이다.
그런 사람들은 뼈아픈 회개의 기도를 해야 성령님께서 치료해 주신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다음절에 예수님께서 설명하셨다.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3-36]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자신의 독생자를 주셔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으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하시며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 진정한 축복을 받았기에
이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받은 우리의 은혜라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의 죄인 된 원수를 사랑함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자녀로서
우리의 작고 보잘 것 없는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지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극진한 사랑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닮고 행하려는 경건으로
그 경건으로 주시는 성령님의 권능으로 서로 사랑함으로 더 큰 능력을 받음으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을 체험하고 실천케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감화 하심으로 우리의 심령을 인도하시기에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앙망(仰望)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자매가 서로 사랑하는 교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된
자의 생활로 마음이 넓어져서,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6:11-12]
속 좁아진 마음에,
진리의 말씀으로
성령의 감화로 지식이 되어
깨끗함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고린도후서 6-7]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는
하나님의 공의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서로 사랑하는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이라 힘(power)이며 경건이고
경건한 자에게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으로
원수를 능히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의 능력을 가진 자가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평안을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안을 누린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But the Comforter, which is the Holy Ghos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he shall teach you all things,
and bring all things to your remembrance,
whatsoever I have said unto you.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unto you:
not as the world giveth, give I unto you.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neither let it be afraid. 요한복음 14:26-27]
그리스도 예수님 이름으로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가르침이 가슴에 박혀 잊어버리지 않게 생각나게 하시고 모든 일을 도우시며
세상의 근심과 염려의 순간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가르치시고 이를 위해 다시 오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여
천국의 평안(Peace)을 너희에게 끼치기 위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그 평안을 권능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평안을 누리는 권능
(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을 주시기에 흔히 말하는 성령 충만 이며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평안 인 히브리어의 ‘샬롬’ 은 성령님이 함께 하시며
주시는 평강이며 평화라서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
누리는 참 평안이라 사랑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안식이며
이 기쁜 소식이 복음이라 평안의 복음이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And your feet shod with the preparation of the gospel of peace 에베소서 6:15]
다시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자.
우상의 도시 데살로니가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의 관습과 사회 윤리에서 살아왔던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 디모데가 전한 복음을 받아드렸을 때
얼마나 많은 억압과 괴로움을 당하였겠는가.
그리고도 하나님께서 선택한 선민이라는 유대인의 핍박을 받았을 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핍박받는 자들에게 대항하여 싸웠는가.
아니면 그들에게 굴복하였는가.
아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14]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동족에서 고난을 받았지만
그 고난이 복음을 위한 고난이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쁨이 되었음은
성령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소망의 확신으로 평안을 주셔서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권능을 주셨기 때문에 신약교회의 모범적이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종교지도자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왜 사랑해야 하는지 말씀하신 중에 이 한 구절을 뽑아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축도라 한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이 어떻게 축도를 가르치신 말씀인가.
오늘날 사이비들의 설교를 자세히 들어보라
말 머리 마다 ‘사랑’ 과 ‘축복’을 반복하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은 단지 무조건 적인 복종의 조건이며 분별을 희석(稀釋)시켜 비판을
차단하는 구실이라서
축복, 축복을 반복 말하지만 그 축복도 종교지도자를 향한 무조건 적인 순종이
축복의 조건이라 축복이 아니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의(공의)로
예수님의 사랑인 복음을 알게 하시고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의와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선택하신 은혜가 축복이라
이미 받은 구원보다 큰 축복은 없다.
데살로니가 교회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한 권하는 권고의 말씀이 아니고
분부이며 명령인 계명이다.
왜 우리에게 꼭 지켜야할 계명으로 주셨을까.
우리를 간절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사랑의 힘이 나타나시길 바라시기에
능력을 주시기를 원하시기에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를 향한 계명이면서
우리를 향한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증(確證)이며 근거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조롱을 당하시고 채찍을 맞으시고
악독한 죄인의 형틀인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난을 받으시며 돌아가시기 까지 한
고귀하고 간절한 사랑 ‘charity’ 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 가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치시고 새 생명을 얻는 소망을 주셨기에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를 간직한 사랑이 우리의 생명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생명인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안에 함께 거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알게 하시는
믿음으로 믿음을 확정케 하시는 믿음을 더 하시려고 능력을 더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분부인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
증인된 자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내신다는 말씀은,
성령님께서 계셔서 권능의 힘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복음 14:21]
그리스도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면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이 성령님의 권능으로 나타나서 원수까지 사랑하는
능력을 주신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교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땅에 완성케 하는
복음의 의(義)가 됨은 이것이 경건의 모습이고
우리 모두가 완벽한 믿음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였더라도
하나님 뜻대로 공의를 행하려는
진리로 진실 되고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려는 형제자매의 몸부림의 모습에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으려 하는 간절한 모습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실천하는 경건을 바라보아
서로가 서로에게 말씀이 능력이 되는 힘이 되어 지치고 힘든 삶과
곤 한 환경에 다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라보아 힘을 얻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알게 되어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을 받게 되며
사랑하는 교제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는
전도가 되기에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은혜라
우리의 노력과 행위의 공로(功勞)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 ‘charity’ 의 사랑으로 거저 받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인 복음을 전한 사람과 받은 사람을 통하여
교통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기에 그러기에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Godliness)한 선택(은혜)에 부르심에
부르심의 합당한 응답의 태도와 실천하는 생활이 경건이며
경건은 권능을 받은 자의 능력이고 더 경건하여 더 큰 능력을 받는,
더 큰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역사가 세상의 역사를 만들어 왔기에
세상의 역사는 복음의 위대한 역사이다.
그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우리의 영혼을 감찰하신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27-28]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시라는 말씀인가.
우리를 조금 해코지하는 사람을 용서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시라
하시는가.
그러니 일상의 교제에서도 상대를 경쟁자 내지 무조건 지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잘못을 지적해 주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으로 단정하여 본인은 선한데 질투와
시기 때문에 고통을 준다고 피해의식에 절은 사람들이 직분을 갖고 있으니
공동체가 조용한 날이 있겠는가.
외관으로는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의외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장로 때문에, 목사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음모 때문에, 신천지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병이다.
그런 사람들은 뼈아픈 회개의 기도를 해야 성령님께서 치료해 주신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다음절에 예수님께서 설명하셨다.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3-36]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자신의 독생자를 주셔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으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하시며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 진정한 축복을 받았기에
이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받은 우리의 은혜라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의 죄인 된 원수를 사랑함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자녀로서
우리의 작고 보잘 것 없는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지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극진한 사랑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닮고 행하려는 경건으로
그 경건으로 주시는 성령님의 권능으로 서로 사랑함으로 더 큰 능력을 받음으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을 체험하고 실천케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감화 하심으로 우리의 심령을 인도하시기에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앙망(仰望)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자매가 서로 사랑하는 교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된
자의 생활로 마음이 넓어져서,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6:11-12]
속 좁아진 마음에,
진리의 말씀으로
성령의 감화로 지식이 되어
깨끗함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고린도후서 6-7]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는
하나님의 공의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서로 사랑하는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이라 힘(power)이며 경건이고
경건한 자에게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으로
원수를 능히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의 능력을 가진 자가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평안을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안을 누린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But the Comforter, which is the Holy Ghos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he shall teach you all things,
and bring all things to your remembrance,
whatsoever I have said unto you.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unto you:
not as the world giveth, give I unto you.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neither let it be afraid. 요한복음 14:26-27]
그리스도 예수님 이름으로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가르침이 가슴에 박혀 잊어버리지 않게 생각나게 하시고 모든 일을 도우시며
세상의 근심과 염려의 순간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가르치시고 이를 위해 다시 오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여
천국의 평안(Peace)을 너희에게 끼치기 위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그 평안을 권능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평안을 누리는 권능
(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을 주시기에 흔히 말하는 성령 충만 이며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평안 인 히브리어의 ‘샬롬’ 은 성령님이 함께 하시며
주시는 평강이며 평화라서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
누리는 참 평안이라 사랑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안식이며
이 기쁜 소식이 복음이라 평안의 복음이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And your feet shod with the preparation of the gospel of peace 에베소서 6:15]
다시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자.
우상의 도시 데살로니가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의 관습과 사회 윤리에서 살아왔던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 디모데가 전한 복음을 받아드렸을 때
얼마나 많은 억압과 괴로움을 당하였겠는가.
그리고도 하나님께서 선택한 선민이라는 유대인의 핍박을 받았을 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핍박받는 자들에게 대항하여 싸웠는가.
아니면 그들에게 굴복하였는가.
아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14]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동족에서 고난을 받았지만
그 고난이 복음을 위한 고난이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쁨이 되었음은
성령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소망의 확신으로 평안을 주셔서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권능을 주셨기 때문에 신약교회의 모범적이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종교지도자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왜 사랑해야 하는지 말씀하신 중에 이 한 구절을 뽑아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축도라 한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이 어떻게 축도를 가르치신 말씀인가.
오늘날 사이비들의 설교를 자세히 들어보라
말 머리 마다 ‘사랑’ 과 ‘축복’을 반복하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은 단지 무조건 적인 복종의 조건이며 분별을 희석(稀釋)시켜 비판을
차단하는 구실이라서
축복, 축복을 반복 말하지만 그 축복도 종교지도자를 향한 무조건 적인 순종이
축복의 조건이라 축복이 아니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의(공의)로
예수님의 사랑인 복음을 알게 하시고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의와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선택하신 은혜가 축복이라
이미 받은 구원보다 큰 축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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