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삶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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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 (114.♡.♡.146)ㆍ2017-01-14 03:0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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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삶 살펴보기 창 25:19-26
지난 주일에는 임마누엘, 마라나타, 코람데오란 세 가지 각도에서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을 아브라함을 살펴봤던 세 가지 각도에서 살펴보도록 하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적인 관점으로 사람을 평가하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생을 평가합니다. 여러분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육신적으로 평가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평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을 얼마나 확실하게 믿느냐에 따라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영원한 결과가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영웅호걸들, 뛰어난 재주와 보통사람들이 살지 못한 특별하게 살아 이름을 남긴 사람을 위인이라 생각하고 자기 자녀들이 그런 위인을 닮도록 하려고 수십만 원도 넘는 위인전을 사서 읽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성경을 읽고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며 살았는지를 살펴서 배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위인전을 읽어도 그 위인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거부한 위인들은 사람들은 위인이라고 할지라도 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란 것을 자녀들에게 알려줘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아담의 10대손까지 역사를 기록하면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에녹이란 사람에 대하여 에녹이 므두셀라는 낳은 후 300년을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이 있지 않더라. 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6장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는데 오직 노아 가족만이 홍수심판에서 살아남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수백만 수천만 명이 등장하는데 단 한 가지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관계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았는지 그게 평가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계획 때문에 나를 창조했고, 내가 얼마나 하나님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았느냐를 평가하시고 그들에게 걸 맞는 기업을 주시며 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인생 길에서 나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형편없이 사는 나에게 영생의 나라에서 살도록 하기 나를 용서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구나. 라는 사실이 믿어지며 이제부터는 내 마음 내 기분 내 감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구나.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삭이란 사람을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삭이란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성경 읽으란 숙제를 했으면 오늘 내 이야기가 뭔 말인 줄 쉽게 알아들을 것이나 하지 않은 사람은 이삭이 뭐여? 벼이삭이여 보리이삭이여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삭이란 사람은 아들을 기다렸던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이라 금이냐 옥이냐 하면서 자라났고 40세 때 결혼하여 20년이 지난 육십이 돼서야 아들을 낳았는데 쌍둥이였습니다.
1. 그러면 이삭은 언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가 시작되었느냐? 다시 말씀드리면 임마누엘 사건이 언제 어떤 사건을 통해서 있었느냐는 것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이삭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가정에서 기도 중에 태어난 모태신앙인이었습니다. 난지 팔일 만에 하나님의 속한 자라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랬지만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실감하게 체험한 것은 아들을 낳지 못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일이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 나를 만나고 싶다고 구하지 않았느냐?” 전심으로 나를 찾으라. 내가 말하면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자세를 가지고 나를 찾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이 잘 풀리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을 것 같습니까? 지금 힘들어도 안 찾는데. 이삭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이삭은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갔습니다.
이삭은 금 수저 출신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에다가 거부인데 백세에 얻은 아들이니 얼마나 귀하게 자라나겠냐.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예쁜 부인을 얻었는데 예쁠 뿐 아니라 살림도 잘하고 믿음도 좋은지 정말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겁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필요 없어요. 그러니 하나님 편에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이삭이란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 계획을 이루겠다고 했는데 이삭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이삭에게 가장 중요한 아킬레스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찾도록 한 것입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아들이 생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 갖춰져 있는데 이삭에게 단 한 가지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다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가슴앓이 하나씩은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도바울 같은 위대한 주님의 종에게도 사단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사도바울을 겸손케 하셨고 사도바울에게 권능을 주시는 통로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여러분에게 주어진 고통을 하나님 만나는 기회로 하나님은혜를 받는 통로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건으로 만들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이삭의 마라나타, 소망하는 것이 무엇이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씀한 후손이 태어나 하나님께서 약속한 모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뿐 아니라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인 야곱 그리고 손자인 요셉에게 한 약속이 무엇이었느냐면 그들이 가나안 땅에 나그네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주인이 되고 그 땅에 주인이 되는 날 세상 모든 민족보다 뛰어나고 복 받는 나라가 되고 제사장나라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은 바로 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을 바라보며 믿음생활을 해나갔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과 같은가 하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내가 홍수심판을 내릴 테니 너는 홍수 심판에서 살아남을 방주를 만들라는 말씀을 듣고 방주를 만드는 것에 모든 것을 걸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 그것은 마치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약속 “나를 믿고 따르는 모든 예수 믿는 자들아. 너희들이 땅에서는 나그네 생활을 하지만 너희들의 본향인 천국에서는 너희들이 천국의 주인공들이 되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란” 약속을 믿고 주님께서 지시한 말씀을 따라 사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지시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나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이 지시한 말씀 그것을 법이라고 하는데 그걸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이삭의 코람데오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1) 첫 번째는 기도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요?)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흉년이 들자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애급에 내려가지 않고 어떻게 할까요? 기도하다가 애급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말에 순종하여 흉년 때인데도 백배나 거두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 아브라함은 두 가지 삶을 살았다고 했는데 기억하시는 분계십니까?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믿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순종이 따르지 않으면 여러분의 믿음은 그림의 떡입니다. 알면 뭐합니까? 행해야 내 것이 되는 것이지. 너는 네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떠나라 예, 할례를 행하라 예, 아들을 잡아 번제로 바치라 예.
여러분은 뭣을 순종하고 계십니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러고 있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거기까지 가지 말고 같은 교회 교인들이 기분 나쁘게 감정을 거슬린 사람을 용서했느냐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 순종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 결점을 빼내려고 하는 대신 먼저 자기 자신의 들보를 빼내는 일부터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뭐라고 했는지 성경을 읽지도 않으려고 하고 있으니 예수님 지시한 것조차 관심이 없으니 순종할 때 오는 놀라운 은총을 경험해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해 주신다. (시 19: 7-8)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런 설교말씀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목사님이 나를 까려고 작정하셨나보다 그런 생각 드십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런 분은 아주 잘못된 생각에 잡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살리려고 여러분의 심령상태를 말해주며 해결책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삭은 기도생활을 시작했는데 중간에 기도생활을 하지 않고 자기생각대로 내가 가장이 아니냐 하고 중대사를 결정했다가 코피 터지고, 코피 터질 정도가 아니지요. 가정이 깨지고 부인에게 죽는 날까지 날 잡어잡수! 하고 기피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게 뭔 일이냐면 그것은 자기 집안의 장자 권, 다시 말하면 신앙의 계승권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이런 중대사를 별미를 만들어 오면 큰 아들에게 주겠다고 혼자 결정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큰 아들 에서가 아니라 작은 아들 야곱이 장자 권을 이어받을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그 구절이 22절 23절의 말씀입니다. 같이 읽읍시다.
< 그 아들들이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졌지요? 큰 아들이 사냥나간 틈을 따 부인과 작은 아들이 짜고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가서 장자 권을 받아버린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장자 권을 빼 겼다고 생각하는 에서가 아버지가 죽기만 해봐라 야곱 너 이놈 내가 가만 둘 줄 아느냐? 라고 이를 갈고 있으니 부인인 리브가가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야곱을 자기 친정에 보낸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아니라 살벌한 가정이 되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고 중대사를 자기 권위 가장이란 위신, 남자라는 위신을 내세워 하나님 뜻을 따르지 않고 결정해 버린 결과였던 것입니다.
2) 두 번째 이삭이 이런 실수만 저 지른 것이 아니라 그는 남과는 평생 다투지 않고 양보하며 화평을 택하며 살았습니다. 그 내용이 26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물 하나 파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었는데도 이웃들이 시비를 걸자 세 번씩이라 양보를 하고 또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다툼이 없는 넓은 장소인 르호봇도 주시고 브엘 세바라는 곳도 주셨습니다.
이렇게 양보한 것은 첫째는 자기가 본토박이가 아닌 떠돌이라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도 그랬을 것입니다만 아직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 땅을 주신다는 구체적인 약속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과 화평을 취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도 이 땅에서 추호도 양보가 없는 싸움닭처럼 살지 말고 양보하며 화평을 쫓으며 그렇게 살면 언젠가는 복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26장 26절부터 읽읍시다. 그땅의 왕이 찾아와서 화친조약을 맺었습니다. “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뭣을 분명히 봤다고요?)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그 땅의 왕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이삭을 겁내서 찾아와 계약을 맺자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삭이란 사람의 생애를 살펴봤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여 기도하였을 때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기도생활을 했으나 중간에 기도생활을 중단하고 중대사를 권위를 내세워 결정하다 가정이 깨지고 믿음의 가정이 행복하고 오순도순하게 살지를 못하고 평생을 평화롭게 살지를 못한 것을 봤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하며 주위 사람들과 화평한 삶을 살아 마침내는 주위 사람도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야. 저 사람 건들면 재미없어 하며 하나님 이름을 들어내며 산 것도 있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 지난 시간 아브라함도 소돔 왕에게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살지 네 것을 받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살았던 것을 기억합시다.
오늘도 마찬가집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 주시는 복으로 살아야지 하면서 정직과 성실로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지난 주일에는 임마누엘, 마라나타, 코람데오란 세 가지 각도에서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을 아브라함을 살펴봤던 세 가지 각도에서 살펴보도록 하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적인 관점으로 사람을 평가하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생을 평가합니다. 여러분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육신적으로 평가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평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을 얼마나 확실하게 믿느냐에 따라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영원한 결과가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영웅호걸들, 뛰어난 재주와 보통사람들이 살지 못한 특별하게 살아 이름을 남긴 사람을 위인이라 생각하고 자기 자녀들이 그런 위인을 닮도록 하려고 수십만 원도 넘는 위인전을 사서 읽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성경을 읽고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며 살았는지를 살펴서 배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위인전을 읽어도 그 위인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거부한 위인들은 사람들은 위인이라고 할지라도 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란 것을 자녀들에게 알려줘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아담의 10대손까지 역사를 기록하면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에녹이란 사람에 대하여 에녹이 므두셀라는 낳은 후 300년을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이 있지 않더라. 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6장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는데 오직 노아 가족만이 홍수심판에서 살아남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수백만 수천만 명이 등장하는데 단 한 가지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관계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았는지 그게 평가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계획 때문에 나를 창조했고, 내가 얼마나 하나님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았느냐를 평가하시고 그들에게 걸 맞는 기업을 주시며 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인생 길에서 나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형편없이 사는 나에게 영생의 나라에서 살도록 하기 나를 용서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구나. 라는 사실이 믿어지며 이제부터는 내 마음 내 기분 내 감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구나.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삭이란 사람을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삭이란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성경 읽으란 숙제를 했으면 오늘 내 이야기가 뭔 말인 줄 쉽게 알아들을 것이나 하지 않은 사람은 이삭이 뭐여? 벼이삭이여 보리이삭이여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삭이란 사람은 아들을 기다렸던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이라 금이냐 옥이냐 하면서 자라났고 40세 때 결혼하여 20년이 지난 육십이 돼서야 아들을 낳았는데 쌍둥이였습니다.
1. 그러면 이삭은 언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가 시작되었느냐? 다시 말씀드리면 임마누엘 사건이 언제 어떤 사건을 통해서 있었느냐는 것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이삭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가정에서 기도 중에 태어난 모태신앙인이었습니다. 난지 팔일 만에 하나님의 속한 자라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랬지만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실감하게 체험한 것은 아들을 낳지 못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일이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 나를 만나고 싶다고 구하지 않았느냐?” 전심으로 나를 찾으라. 내가 말하면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자세를 가지고 나를 찾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이 잘 풀리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을 것 같습니까? 지금 힘들어도 안 찾는데. 이삭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이삭은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갔습니다.
이삭은 금 수저 출신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에다가 거부인데 백세에 얻은 아들이니 얼마나 귀하게 자라나겠냐.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예쁜 부인을 얻었는데 예쁠 뿐 아니라 살림도 잘하고 믿음도 좋은지 정말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겁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필요 없어요. 그러니 하나님 편에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이삭이란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 계획을 이루겠다고 했는데 이삭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이삭에게 가장 중요한 아킬레스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찾도록 한 것입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아들이 생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 갖춰져 있는데 이삭에게 단 한 가지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다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가슴앓이 하나씩은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도바울 같은 위대한 주님의 종에게도 사단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사도바울을 겸손케 하셨고 사도바울에게 권능을 주시는 통로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여러분에게 주어진 고통을 하나님 만나는 기회로 하나님은혜를 받는 통로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건으로 만들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이삭의 마라나타, 소망하는 것이 무엇이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씀한 후손이 태어나 하나님께서 약속한 모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뿐 아니라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인 야곱 그리고 손자인 요셉에게 한 약속이 무엇이었느냐면 그들이 가나안 땅에 나그네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주인이 되고 그 땅에 주인이 되는 날 세상 모든 민족보다 뛰어나고 복 받는 나라가 되고 제사장나라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은 바로 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을 바라보며 믿음생활을 해나갔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과 같은가 하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내가 홍수심판을 내릴 테니 너는 홍수 심판에서 살아남을 방주를 만들라는 말씀을 듣고 방주를 만드는 것에 모든 것을 걸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 그것은 마치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약속 “나를 믿고 따르는 모든 예수 믿는 자들아. 너희들이 땅에서는 나그네 생활을 하지만 너희들의 본향인 천국에서는 너희들이 천국의 주인공들이 되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란” 약속을 믿고 주님께서 지시한 말씀을 따라 사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지시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나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이 지시한 말씀 그것을 법이라고 하는데 그걸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이삭의 코람데오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1) 첫 번째는 기도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요?)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흉년이 들자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애급에 내려가지 않고 어떻게 할까요? 기도하다가 애급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말에 순종하여 흉년 때인데도 백배나 거두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 아브라함은 두 가지 삶을 살았다고 했는데 기억하시는 분계십니까?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믿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순종이 따르지 않으면 여러분의 믿음은 그림의 떡입니다. 알면 뭐합니까? 행해야 내 것이 되는 것이지. 너는 네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떠나라 예, 할례를 행하라 예, 아들을 잡아 번제로 바치라 예.
여러분은 뭣을 순종하고 계십니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러고 있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거기까지 가지 말고 같은 교회 교인들이 기분 나쁘게 감정을 거슬린 사람을 용서했느냐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 순종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 결점을 빼내려고 하는 대신 먼저 자기 자신의 들보를 빼내는 일부터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뭐라고 했는지 성경을 읽지도 않으려고 하고 있으니 예수님 지시한 것조차 관심이 없으니 순종할 때 오는 놀라운 은총을 경험해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해 주신다. (시 19: 7-8)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런 설교말씀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목사님이 나를 까려고 작정하셨나보다 그런 생각 드십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런 분은 아주 잘못된 생각에 잡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살리려고 여러분의 심령상태를 말해주며 해결책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삭은 기도생활을 시작했는데 중간에 기도생활을 하지 않고 자기생각대로 내가 가장이 아니냐 하고 중대사를 결정했다가 코피 터지고, 코피 터질 정도가 아니지요. 가정이 깨지고 부인에게 죽는 날까지 날 잡어잡수! 하고 기피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게 뭔 일이냐면 그것은 자기 집안의 장자 권, 다시 말하면 신앙의 계승권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이런 중대사를 별미를 만들어 오면 큰 아들에게 주겠다고 혼자 결정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큰 아들 에서가 아니라 작은 아들 야곱이 장자 권을 이어받을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그 구절이 22절 23절의 말씀입니다. 같이 읽읍시다.
< 그 아들들이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졌지요? 큰 아들이 사냥나간 틈을 따 부인과 작은 아들이 짜고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가서 장자 권을 받아버린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장자 권을 빼 겼다고 생각하는 에서가 아버지가 죽기만 해봐라 야곱 너 이놈 내가 가만 둘 줄 아느냐? 라고 이를 갈고 있으니 부인인 리브가가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야곱을 자기 친정에 보낸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아니라 살벌한 가정이 되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고 중대사를 자기 권위 가장이란 위신, 남자라는 위신을 내세워 하나님 뜻을 따르지 않고 결정해 버린 결과였던 것입니다.
2) 두 번째 이삭이 이런 실수만 저 지른 것이 아니라 그는 남과는 평생 다투지 않고 양보하며 화평을 택하며 살았습니다. 그 내용이 26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물 하나 파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었는데도 이웃들이 시비를 걸자 세 번씩이라 양보를 하고 또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다툼이 없는 넓은 장소인 르호봇도 주시고 브엘 세바라는 곳도 주셨습니다.
이렇게 양보한 것은 첫째는 자기가 본토박이가 아닌 떠돌이라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도 그랬을 것입니다만 아직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 땅을 주신다는 구체적인 약속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과 화평을 취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도 이 땅에서 추호도 양보가 없는 싸움닭처럼 살지 말고 양보하며 화평을 쫓으며 그렇게 살면 언젠가는 복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26장 26절부터 읽읍시다. 그땅의 왕이 찾아와서 화친조약을 맺었습니다. “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뭣을 분명히 봤다고요?)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그 땅의 왕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이삭을 겁내서 찾아와 계약을 맺자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삭이란 사람의 생애를 살펴봤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여 기도하였을 때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기도생활을 했으나 중간에 기도생활을 중단하고 중대사를 권위를 내세워 결정하다 가정이 깨지고 믿음의 가정이 행복하고 오순도순하게 살지를 못하고 평생을 평화롭게 살지를 못한 것을 봤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하며 주위 사람들과 화평한 삶을 살아 마침내는 주위 사람도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야. 저 사람 건들면 재미없어 하며 하나님 이름을 들어내며 산 것도 있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 지난 시간 아브라함도 소돔 왕에게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살지 네 것을 받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살았던 것을 기억합시다.
오늘도 마찬가집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 주시는 복으로 살아야지 하면서 정직과 성실로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합시다.
댓글목록
바나바님의 댓글
바나바 50.♡.♡.148이삭과 같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살기를 소원 합니다 김정한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오직예수! 주께영광! 성령충만! 살롬! 셀라!
김정한님의 댓글
김정한 114.♡.♡.146아멘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