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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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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42.♡.♡.150)2024-05-24 07:13

본문

<갈 2:19-21>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앞 뒤, 19절 22절을 함께 적었습니다. 20절만 쏙 뽑아서 읽지 마시라고......)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라고 합니다.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으로 유명한 이용규 선교사도 자신의 가장 좋아하는 성구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애창하는 복음성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도 이 성경구절로 만든 노래입니다.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널리 암송되고 묵상되고 사랑 받는 성구 갈라디아서 2장 20절, 왜 그럴까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그리고 거기에 함께 못 박힌 나의 모습.......,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고, 슬프면서도 위로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치유가 되는, 주님의 지고한 사랑과 나의 부족하고 추악한 모습이 겹쳐져서 함께 투영됨으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성구입니다.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 그리고 주님과 함께 못 박혀 죽은 나, 그 비통하고 애절하고 처참하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정경은 우리의 마음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이요 멜로디요 시(詩)이기도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에 비추어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서 죽지 아니한 자신의 죄성, 예수를 믿고서도 아직도 변화되지 못 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십자가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정욕과 욕망을 버리고,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며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는 그래서 더욱 은혜가 되고 사랑받는가 봅니다. 그런데 이 복음성가 가사는 살짝 고쳐져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앞은 같은데 뒷부분이 약간 다릅니다. 끝부분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가 “예수 위해 사는 것이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 보다야 주를 위해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보람 있고 멋지겠지요. 그러나 이 약간의 차이가 우리의 믿음의 차이를 만든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묵상하거나 해석할 때, 그 구절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뒤 문맥과 전체를 함께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그 구절의 참뜻과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지난 시간에 읽었던 갈라디아서 1, 2장을 전체적으로 다시 봅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율법을 지켜라, 할례를 받으라 하는 자들은 거짓형제들이라, 너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라.”, “예루살렘 회의의 결과 구원은 율법이 아닌 믿음이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 일어난 사건을 인하여 내가 게바의 적절치 못 한 행동을 꾸중하노라...”, 사도바울이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사도바울은 15절에서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죄인이 아닌 우리라 할지라도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를 믿나니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예수 안에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의 죽으심을 헛된 일로 만드는 것이요 예수를 죄인 만드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기껏 구원해 놓았더니 너를 죽이는 율법을 다시 세운단 말이냐?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주었더니 다시 세운단 말이냐?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으니 율법과 관계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살았으니 나는 오직 이 믿음으로 사노라.” 하는 고백이요 선언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읽으며 크리스천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의지로’ 또 죽으려 하는 것입니다. “내가” 또다시 죽고, “내가”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 하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래야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 신앙인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죽고 못 박힐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려면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이라야 다시 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인간은, 죄인들은 죽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다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대로 심판과 멸망일 뿐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분은 오직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들을 우리가 죽어야 할 자리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죽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우리 안에 영접하였고 주님은 우리를 품으셨으며 주님이 죽으실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죽었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발견한 것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보니, 주와 연합하여 주 안에서 보니, 바울이,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어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다시 살아나서, 거듭나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지금 있는 생명은 예수 믿는 믿음으로 얻은 새 생명이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어졌다는 것입니다(요 5:24). 바람이 부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부는 것처럼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그 엄청난 영적사건이 성령님의 역사로 일어난 것입니다(요한복음 3장 3-8절). 그러므로 “내가” 또다시 죽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어리석은 새로운 율법입니다. 당신은 이미 물과 성령으로 죽었고 다시 태어났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다시금 19절과 20절, 그리고 21절을 함께 읽어 보십시오. 그 뜻이 명확하니 그것은 "우리는 이제 율법과 상관이 없다, 아니라면 그리스도께서 헛 죽으신 것이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복음성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의 가사는 사도바울의 고백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를 “예수 위해 사는 것이라”로 고친 것입니다. “주를 위해 살리라,”는 다짐과 결단, 새로운 삶의 목표, 좋습니다. “이제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요 오직 주님 위해 살리라,”는 각오, 좋습니다. 그러나 "아, 내가 이미 주와 함께 죽었고 새 생명을 얻었구나!"라는 사도바울의 벅찬 감동과 환희의 문구를 다른 뜻으로 바꾸어서야 되겠습니까? 그 놀라운 구원의 감격이 무거운 짐, 율법으로 도로 바뀔까 두렵습니다.

참고: NIV영어성경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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