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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6)2018-06-07 10:03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He that hath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ith unto the churches”

주님의 에베소 교회에 대한 책망의 말씀을 적용하면
오늘날 정통 신학이라는 자부심으로 정통 교리로 무장한 정통교회라 주장하는
자들은 무엇이 정통인지 다시 돌아보아서
처음 사랑을 버렸음을 회개해야 한다.
정통이란 말은 사이비나 이단만의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며
에베소 교회를 보면 온전한 것 같은 교회가 왜 책망을 받았는지
또 열심히 수고하고 인내하고 올바른 믿음의 가치관을 가졌다 확신했기에
헌신적으로 일하는 자라도 마찬가지라 바리새인과 서기관 등을 보라.
이들이 열정과 열심히 없었나.
그들은 경건주의를 표방하였고 로마의 시대에 이방문화의 영향을 받은 헬레니즘의
문화로부터 이스라엘 고유의 신앙을 지키려고 오경(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려 했으며
나름 정통 교리를 갖추었다.
그러나 주님은 외식하는 자들로 간주했다.
오늘날도 수많은 선생들은 자신들이 만든 교리와 예식에 스스로 갇혔으면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 는 주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열심과 열정을 버렸다고 설교로 질타하지만
의(義)를 떠난 믿음이라는 행위
진리를 떠난 종교의식 적인 행위가 외식임을 모른다.

에베소 교회가 행위의 수고와 인내가 있고
분별력이 있어 거짓 선생을 용납하지 않았지만
그 분별력이 복음의 의(義)에 합당하지 않기에
신앙이 종교화가 되어 주님을 따르는 열심히 있을 지라도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하셨기에
오늘 날 어느 교회가 교회에 대한 가치관의 자부심을 갖고 있어
교회의 일에 열정이 있어 열심히 수고하고 전도하며 인내하여 자랑으로 여기더라도
자칭 사도라 하는 거짓 목사를 거부하였더라도,
처음 사랑을 버렸기에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셨는지
돌아보지 못한다면 그 교회도 똑같이 책망을 받을 것이다.

유대 시인이며 사상가인 아브라함 헤셀(A.Heschel)은
‘하나의 제도로서 종교
하나의 궁극적 목적으로서의 성전은
종교 자체를 위한 종교로 우상 숭배’ 라며 비판했다.
신앙을 제도로 규범이나 조직의 구조의 체제로
관습과 전통으로 굳어지면 이미 그 시대와 사회의 체제를 닮아서
그 결집력의 중심인 신앙이 세속화하여 외적인 건물이 성전이 되면
이미 신앙은 종교화 되었고 그 종교화한 문화를 경건으로 여기는 인식의 오류는
신앙의 겉치레라 외식이 됨은 교회사가 반면교사(反面敎師)이며
가까이는 한국의 대형교회의 태동(胎動)에서 대형교회의 출현이 그러했으니
그런 대형교회를 따라 유행이 된 세속화한 교회들이
그리스도 주님의 복음의 의(義)를 버렸기에
교회의 어떤 직분을 가졌냐가 중히 여김을 받았고
직분에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없어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가 공의롭지 않아 정의와 정직에 멀어져
스스로 벽을 쌓고 스스로 만든 벽에 갇혔다.

그러기에 신약학자 알란 쿨페퍼(A.Culpepper)는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본을 따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인간 사회의 전통이나 규칙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복음의 의를 보여주신 예수님은
그 시대의 전통이나 외식에서 벗어나기를 수 없이 말씀하셨다.
신앙의 본질을 율법 이전에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의 의(義)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이것이 하나님의 의(義)이며
복음의 정의라 진리라서 진리가 인간사회의 전통이나 규칙에 매일수도 없을 분더러
역으로 진리를 가진 자들이 그리스도의 문화를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어 능력이 되어야 하는데
예를 들면 세상의 시대적인 정신문화보다 그리스도인의 문화가 정의롭지 못해
정직하지 않다면 이건 복음의 정신이 아니라서
세상의 사상에 휩쓸리고 유행의 사조에 파묻혀
그리스도인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 불가 하다.

초기 예수님의 제자들은 외적인 율법의 전통에 물든 변절된 율법에 벗어나
인간의 영혼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랐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는 외적인 종교 제도에 집착하여 율법과 같은 규칙,
예식, 재물, 건물, 권력에 빠져서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전통을 맹종하면서도 열심히 있어 잘 믿는다고 착각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같이
외식의 길을 걸으면서 복음을 외쳤고 외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주님은 인간의 종교 전통을 거부하셨고
그 길이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참 길이 아니라서 회개하라고 하셨으며
장로의 유전을 비판하셨지만 오늘날 장로의 유전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기에 주님의 길을 예배한 세례요한 또한 회개하라 했으며
독사의 자식들이라 외친 그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면
성령님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그 죄의 몫은 믿는 다는 사람들 각자의 몫이면서
공동체인 교회의 몫이라는
일곱 교회를 향한 계시록의 주님의 말씀이다.

* 서머나 교회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2:9]
서머나 도시는 매우 번창하고 부요한 도시였으나
서머나 교회는 가난하였다.
성경은(계시록은) 성도들이 불신자들과 악한 자들로부터 박해를 받기에
“네 환난과 궁핍” 이란 의미는
그런 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을 따르기에 환난을 당하고
궁핍한 경제적인 박해를 받아 세상 기준으로는 궁핍하나
실상은 부요한 교회라,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첫 말씀을 보면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2:8] 라 말씀하시며
주님께서 스스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하시며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 자신을 밝히시며
화난과 궁핍을 당하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각별히 위로하심은
자기의 자녀들에게 당하는 어려움과 위험을 이미 모두 알고 계셨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이라
유대인들이 주님의 복음에 비방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성모독이라는 명목으로
주님을 박해하였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사단의 회당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선민이란 유대인들이 주님을 반대하였듯이
자칭 하나님을 믿는 다 하는 자들은 오늘날도 순수한 복음을 비방하고
순결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 반대하여 중상모략하고 박해를 하기에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위로를 하시면서
박해를 허락하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계시록은 하나님과 사탄이 대조를 이루는 장으로 이원론적인
믿음으로 비롯된 행위,
믿음과 행위가 정반대되는 대척점(對蹠點)에서
믿음과 행위의 일치를
하나님이 계시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의인 진리를 알게 해 주는 계시라
그 형태나 표현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 위한 묵시문학이라
단지 믿는다는 믿음을 따로 보시지 않으시고
그 열매인 행위로 심판을 받고 받지 않음을 기록하였기에
박해의 허락은
더 좋은 것을 주기위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주리라. 2:10]
주님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하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허락하사
고난을 받게 하셨다.
아직 이 허락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주님의 고난을 보라.
고난이 없는 믿음을 가진 자가 세상 어느 누구에게 있겠는가.
주님도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다.
시험을 당하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ye may be tried; and ye shall have tribulation ten days”

이 ‘십 일 동안’ 은
문자 그대로 십일 일수도 있고,
콘스탄티누스 이전 로마의 여러 황제들의 지배의 아래 받은
열 번의 주목할 만한 박해에 대한 언급일 수도 있으며,
디오클레시안 황제치하에서 이루어진 차기 콘스탄티누스 황제 전 10년
A.D. 303~313년 사이의 10년의 박해가 가장 극심하였던 시기 일 수도 있으며,
요한의 시대에 서머나 에서 일어난 10일 동안의 박해인지
10이 완전한 수로 단순히 박해가 일어난 모든 기간을 뜻하는지 알 수 없으나
박해는 그 시간이 지나면 끝나는 한계가 있기에
시험으로 표현하셨으리라.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믿음은 시험으로 연단되어 소망을 이루기에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4]
감당할 시험 밖에 없고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그래서 시험은 믿음을 확증하기에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이른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흔히들 구원의 확신을 물어보고 대답하지만
확신은 시험을 받고 연단된 확증이라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시험에 들어
소망을 바라보지 못했기에 종당에는 버림받은 자가 된다.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마태복음 13:42,50]
기억하라.
예수님도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러기에 요한계시록 1:15에서 주님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시험을 당하는 믿음의 연단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를 준비하기 위함이라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7]
그러기에 확실한 것은
죽음에 처하더라도 믿음을 유지하도록 충성을 말씀하셨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시는 권면은
충성이냐 육체의 유혹의 죽음이냐는 한 쪽을 택하라는 말씀으로
충성을 간곡히 강조하셨다.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하셨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1]
“이기는 자” 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선택된 자로
믿음의 진실성을 행위로 실증하는 사람이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음은
믿음과 함께 한 행위로 이 땅에서 구원의 판단을 받았기에
다시 하나님의 심판이 없는 자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자라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라는 말씀이라

주님은
서머나 교회를 박해 받은 교회로 판단 하셨다.

댓글목록

유월님의 댓글

유월 98.♡.♡.207

아멘넷에 들어 왔을때 자유게시판에 새 글이 올려져 있지
않으면 왠지 활력이 없는 사이트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리
많지는 않더라도 새 글이 계속 올려져 있으면 적어도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런 면에서 주기적으로 신앙적인 글을 계속 올려 주시는
자유게시판 일등 활용가 짐보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짐보님의 댓글

짐보 108.♡.♡.226

유월님을 처음 뵙습니다.
게시판에 세월이라 할 정도로 오래 머물고
수많은 시간을 내서 글을 쓰고 있으니 활용가라 할 수도 있겠지요.
감사 하시니 제가 고맙고,
신앙의 글이란 어줍잖은 글을 쓰지만
우선은 글이 고백이 되여 신앙의 실토가 되고
때로는 아니 수없이 칼이 되어
제 자신을 먼저 찌릅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으로서 저를 보고 게시판을 판단하고
저를 보고 아멘넷을 판단하시는 주님이심을 알기에
아픔도 있고 슬픔도 있지만 평안도 있고 기쁨도 있어
한 편의 글을 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성령님께서 인도하심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복음을 '정의' 라
할 수 밖에  어찌 다른 의미를 둘 수 없기에 감사함이 넘쳐서 힘이 되고
또 제 어리석움을 찔러 인도하심을 감사할 따름입니다.
평안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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