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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96.♡.♡.163)2017-03-09 10:05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요청을 받고 가르쳐 주신 짧은 기도문 인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에는 완벽한 그리스도인의 함축된 정의와
기도의 본을 알려주셨기에 데살로니가 교회와 모든 초대 교회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였고
주기도는 마 6:9-13, 눅 11:2-4]에 있으며
초대 교회는 마태복음의 기도문을 표준으로 받아드렸다 전해지며
(이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마태복음은 구약과 신약성경을 잇는 신약의 첫 번째 성경으로
서두는 이스라엘의 구약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의 첫 번째
왕 다윗을 언급하며 히브리어 성경을 많이 인용했고
둘째 복음의 전파는 당연히 그 당시의 이스라엘의 백성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이 기에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나중에 헬라어 판이 나왔기에
먼저는 유대인이요 다음은 모든 민족을 향한 복음의 전파는
당연하였으리라 본다.)
주기도문을 1세기 사도들은 교훈 집으로 디다케(Didache, 12사도의 가르침)를 만들어 교회의 정회원들에게 하루에 세 번씩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것을 권면하였고 이는 유대인의 하루 세 번의 기도에서 유례 되었을 것이다.

당시 유대인은 두 가지 기도문은 카디쉬(kaddish)와
하루 세 번의 축복기도문(세모네 에스레, Shemone Esre)은
18 가지로 18번의 기도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12번의 기도문은

‘그리고 배교자들에게는 소망이 없게 하시고
교만한 나라는 빨리 우리의 생애에 뿌리를 뽑히게 하소서.
그리고 나사렛 당원들과 이단자들을 빨리 망하게 하시고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워지게 하시며
그들이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게 하지 마소서.
교만한 자들은 겸손케 하시는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로 기독교인들을 저주하였기에
당시 유대 회당과 교회의 분리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는데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며
아직도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자초하여 복음의 의를 비틀고
복음의 능력을 감소시키며 한 사건이 아닌 ‘장소’ 적인 개념으로
예루살렘을 예수님이 재림하실 장소로 여김은
이 땅의 하늘나라와 다가올 완벽한 하늘나라를 ‘장소’로 제한하는
심각한 오류이며 사이비적인 믿음이며 자기모순인 자가당착(自家撞着)적
신학임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은 세대주의자 이거나 그와 비슷한 자들이
선생(목사)이라니 온누리 교회의 송만석 장로 같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며 ‘이스라엘 회복의 중요성을 알리는 성령집회’
라는 엉터리 성령집회를 하는 교회를 보면
그런 교회들은 은사주의에 몰락한 교회들이라 아직도 직통계시와 예언,
신유에 목메 성경을 자신들의 조잡한 안목으로 조작, 변개 한 자들 이라
그리고도 시끄럽고 예배로 소란한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이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면서
재림의 선동과 거짓 예언의 미혹으로 어리석은 자들을 유혹한다.
사실 이스라엘이 성지라는 ‘장소’ 의 잘못된 개념의 선동은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유례 되어 왔고 세대주의와 더불어 뼈 속까지 침투한
사상은 분리주의 로 변질되어 설교자와 예배 자를 분리하였기에
설교자의 강단과 예배 자의 위치를 성지(聖地)의 개념으로 분리하였고
양반과 천민을 가르듯 성직자와 평민을 가르는 중세(中世)기 적
타락한 신앙으로 종교개혁이전으로 돌아가
이제는 목사와 평신도를 가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되었으며
그 역사는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가 분리주의 자들이었기에
영지주의 자들로부터 교회를 지키려는 싸웠던 교회사처럼
한국 개신교의 정착도 토착(土着)문화인 샤머니즘과 싸웠지만
이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여 샤머니즘과 혼합된 세대주의에
매몰(埋沒)되었음을 아는 자가 드물고 그런 자들이 선생이었고
이제 선생이라니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둡고 깜깜한 길로 가고 있으니
이런 분리주의가 신앙의 일치를 저해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제약(制約) 시켜 불경이 됨을 모른다.

주기도문을 주석을 첫 번째로 쓴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으로
그는 주기도문을 ‘모든 복음의 요약’ 이라 했고
교회사에 주기도문은 기도의 모델로 신앙인의 간구의 본이었으며
그러기에 신앙인이 추구해야 할 복음의 의가 담겨있기에
개인적으로 단지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음이라는 편협한 개념에서
구체적이고 광의(廣義)의 하나님의 뜻(공의)을 보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정의’를 찾았기에 편협한 신앙에서
심오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된 창조와 세상의 심판으로 끝을 내는
참혹(慘酷)한 심판이 아니라 참으시고 더 기다려 주시는 사랑(愛)으로
선하신 하나님의 의(義)가, 뜻하시는 의(意)가, 계획하신 의지(意志)가
공의로 나타나서 공정(公正)으로 행하시기에
예수님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나서
그리스도 주님으로 말미암은 믿음에서 믿음의 의(義)로
성령님께서 이루게 인도하시기에
성도와 성도를 하나 되게 한 믿음에는 하나님의 정의(正義)와 함께 하기에
믿음에서 믿음을 이루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에서 실현하고자 하기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은
하나님의 의(義)의 자녀로
예수님의 복음의 의(義)의 제자로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의(義)로
교통하고 교제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케 여김을 받게 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뜻이 담겨 있기에
먼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하늘나라
이 뜻이, 이 소명이 나의 가치관이라 인생관이 되었으며
이 기도로 말미암아 나는 성경과 성경이 장과 구절이 연결되었고
여기에서 근본적인 신앙인의 정의를 깨닫게 하신 성령님께 감사하며
자신 나름의 신앙의 언어로
*공의,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뜻, 의(義), 뜻하시는 의(意),
계획하신 의지(意志) = 공의(Righteousness) = 심판(Judgment)
=세부적인 공의(Righteousness) 공정, 공평, 정의 등 공의의 공법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 = 지식(acknowledge)
*능력(power of charity) = 그리스도의 사랑(charity)
*성령의 인침(sealed me) = 공동체의 보호, 인침(sealed us),하늘나라
*성도(Saints) = 교회(Church) =신앙의 공동체(Saints of God, Saints of Places, Saints of things)-->하늘나라(kingdom) = 천국(Heaven) 등으로
고백하며 자신 나름의 신앙언어의 고백하는 이유는 조금 더 하나님의
뜻하시는 의를 이해하기 위함도 있어 앞으로 조금 색다른 단어를
성경에서 취하여 다른 장의 단어와 연결하여 같은 의미의 뜻임을 성경으로
입증하려 하며 무엇보다도 복음의 의는 성경전체에 녹아 있기에 부족하나마
자신의 신앙 언어로 가능하면 쉽고 간단하게 하려 하지만
의미와 뜻의 인지(認知, 인정하고 앎)를 전달하려는 적절한 언어의 한계와
믿음의 넓이와 깊이의 지경(地境)의 형편이 초라하나
가능하면 신학적인 용어를 배제하고 성경의 단어로 고백하려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After this manner therefore pray ye: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 마태복음 6:9-1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After this manner therefore pray ye]
그러므로... 기도를 알려주시기 전에 하신 말씀대로,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기도하지 말고
그런 위선자들은 이미 자기상을 이미 받았다 하시며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으시며
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 것은 말이 많아야 들으실 줄
생각하지 말며 외식하는 자들과 이방인을 본받지 말고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이미 아신다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After this manner therefore pray ye]
After this manner, 매너, 태도와, 예절, 방법으로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태도로, 예절로, 그 방법으로 기도하라.
믿음을 종교적인 위선으로 외식으로 자신의 경건을 내세우는 태도로
기도 하지 말며,
이 말씀은 이전의 구절 이방인, 외식하는 자들, 그들이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임을 밝히시며 그들의 태도, 외식하는, 이방인 같은 종교적인
형식의 의식은 이미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버렸기에
화가 있음을 이어서 말씀하신다.
[화 있을 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화 있을 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을 받는 것을 기뻐하는 도다. 화가 있을 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니라
But woe unto you, Pharisees!
for ye tithe mint and rue and all manner of herbs,
and pass over judgment and the love of God:
these ought ye to have done, and not to leave the other undone.
Woe unto you, Pharisees!
for ye love the uppermost seats in the synagogues,
and greetings in the markets.
Woe un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e are as graves which appear not,
and the men that walk over them are not aware of them.
누가복음 11:42-44]
그런 자들에게는,
for ye tithe mint and rue and all manner of herbs,
그런 태도와 예절 방법은 (this manner)
바리새인이 예수님과 함께 점심을 하기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심을 보고
이상히 여기나 예수님은 그들 속의 탐욕과 악독함이 가득함을 보시고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하시며
그들의 외식과 위선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셨듯이
그들은 회당의 높은 자리에서, 여러 사람이 모인 시장에서 종교적인 외식과
위선으로 가장한 거룩한 믿음으로 문안을 받는 자들이라
십일조를 채소의 십분의 일로 세밀하게 계산하면서
의식적인 율법의 세부 조항에 철두철미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버렸기에
가난한 자들의 압제하였기에
십일조의 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
레위인과 구제, 이것과 저것의 의를 버리고 말아야 하는데 화가, 재난이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며 ‘무덤의 비유’ 로 외형주의와 교만이
화가 됨을 말씀하셨다.
이는 민수기 19:16 의 모세의 율법을 가리키며
표시 없는 평탄하게 된 무덤을 밟는 자가 알지 못하더라도 무덤을 만진 자는
7일 동안 부정했기에 경고문을 부착하고 다녀야 했다.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며
이래 동안 부정하리니 ]
청결 예식의 율법을
율법의 의를 버리고 율법을 엄격히 지킴으로 부정치 않은 자신들의 예식을
여러 사람 앞에 보이는 거룩한 종교적인 외식의 겉치레는
내면의 속마음에는 무덤과 같아 썩음과 더러움이 가득하면서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음을 자신들이 변개한 율법의 의로
예수님을 부정하게 바라보았다.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가는 자들은
이 장과 마태복음 23:23 의 같은 말씀의 기록을
십일조를 마땅히 해야 할 당위성으로 해석하여
자신들이 이방인, 외식하는 자들, 바리새인들, 율법교사임을 스스로 밝히며
그들의 외식하는 행위를 비웃으며 자신들은 영적 이스라엘의 지도자임을
자백하여 스스로 복음의 이방인임을 밝힌다.
[화가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도다]
이 말씀은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이를 KJV 로 보면
[have omitted the weightier matters of the law,
judgment, mercy, and faith:]
더 중요한 율법의 의와 정의, 긍휼이 생략된 믿음을 말씀하신다.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은 더불어
말라기 3:10을 인용하여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강요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리고 이 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는 십일조’ 로 변개시킨다.
그러나 8절을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또 말라기 2장을 보면 십일조를 도둑질한 제사장들에 대한 경고며
눈 먼 희생제물과 병든 것을 드리는 백성들에 대한 경고이다.
그래서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0]
하나님은 제사장과 백성들의 온전치 못한 십일조와 봉헌 물을
받지 않으시고 그들 중에 누가 성전 문을 닫기를 원하셨을 만큼
그들이 가증스러웠으며 받지도 않겠다 말씀하셨다.
이 말씀과 누가복음 마태복음의 십일조를 변개한
70, 80년대 엉터리 부흥사들은 십일조를 복의 근원으로 회칠하여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 열변을 토하며 호통 쳤고 이런 부흥사를 불러 모은
목사는 교회의 건물을 짓기 위하여 ‘성전 건축 헌금’ 이라는 미명(美名)아래
교회를 성전을 부르기 시작했으며
성전의 목사는 제사장으로 하나님과 교인의 중보자로 ‘하나님의 거룩한 종’으로 둔갑하였고 온갖 헌금의 종류가 생기는 원인이 되었으며 둔갑술은 더하여
‘성령을 받으라’ 는 성령님을 호령하는 명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으며
이런 부흥이라는 명목의 은사주의의 거대한 사이비 물결은 진리를 변절시켜
왜곡한 선동의 부흥회가 유행처럼 번졌으며 자칭 사도, 예언자, 선지자 등이
등장하여 예수님의 직계 사도, 중보자를 자청하고 방언을 받고 예언을
받으라는 한국판 고린도 교회 화 하여
경건의 모습이 사라져 갔고 엄숙했던 예배는 고성과 고함인지 기도인지
찬송인지 소란한 시장 통으로 변하여 감성의 자극이 성령 충만의 증거인양
손을 들고 발을 구르며 ‘할렐루야’ ‘아멘’ 고래고함을 질렀고
교회는 서서히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정의가 사라진 교인은 공평이 않아 교인이 정직하고 솔직하다는
성품은 예전의 말이 되어 갔다.
이 거대한 물결은 전국을 돌고 돌아 교회는 세속화 되어 갔고
세속화된 종교는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 갔다.
그 당시 지도자들은 은퇴를 하였지만 그 영향으로 아직도 엉터리 부흥회에
중독된 자극적인 신앙의 맛에 물든 자들이 많아 그들은 말은 진실이 없어
허공을 치고 거짓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기도취의 믿음은
진리를 말하면서 진리를 자신의 언행을 합리화한 종교의 도구로 이용하기에
수치를 모른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재물을 탐하면
교회의 본이 되어 가르쳐야 할 선생들이 특별히 택함 받은 성직자로
지배자가 되어 재물을 탐하면서
피지배자인 교인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고
소망이라는 허황된 이데올로기를 믿음이라는 미명으로 주입하면
성직은 권력이 되어 세상의 위정자와 담합(談合)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아 없어지지 아니할 상급을 쌓으라 면서
하늘의 상(賞)을 강요하면 교인들은 그 감언에 속아
이 세상 삶은 단지 하늘나라를 들어가기 위한 시험대라 세뇌당해
수많은 명목의 헌금을 감수하고도
복음의 의에서 멀어져 하나님의 공의를 떠나 세속화 된다.
그러기에 말라기의 경고와 예수님의 ‘화가 있다’ 는 말씀은
오늘도 여전하며
복음의 의와 정의, 긍휼이 생략된 믿음은
믿음을 가장한 사교(邪敎)일 뿐이다.

예수님의 말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After this manner therefore pray ye]
After this manner, 태도와, 예절, 방법으로
이방인, 외식하는 자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같이, 율법교사와 같이
하나님의 공의의 사랑을 버리지 말고
공의의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은 사랑의 태도로
하나님 이름을 거룩하게 여김을 받는 자녀의 예절로
그 방법(매너)으로 기도하라 하셨다.

댓글목록

별똥별님의 댓글

별똥별 24.♡.♡.43

역사적으로 꼼꼼하게 살펴보시고
연구를 많이 하신 후 정리하신 것 같습니다.
수고하신만큼 열매가 맺혀지기를 기도합니다!
안타깝게도...
모든 교회가 다 그렇다고는 못하겠지만...
"아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네요.

짐보님의 댓글

짐보 댓글의 댓글 96.♡.♡.163

이제는 별로 읽지 않지만 예전에는 잡동사니 책과 더불어 교회사는 나름 멸공했고 의문도 많았습니다.
요세푸스 같이 유대인(군)의 지휘관이 로마군에 포로가 되어
나중에 투항한 자의 글 '유대 전쟁사' 를 자신의 처지와 입장이 있었을 텐데 얼마만큼 믿어야 하나는.

교회로 교회를 비교하기 보단
(그런 의도는 아니시겠지만)
초대교회를 본받고 버려야 할 교훈에서 오래동안 머물렀는데,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을 다시 성경을 통하여
조명(묵상)하면서, 오래동안 의문같은 뚜렷하게 연결되지 못했던
성경의 책과 책의 헝클어진 체제의 실마리가 '하나님 나라'로
가깝고 선명하게 풀리는 계기(사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글은 제 믿음의 색깔(신앙)의 글이기에
전부 혹은 일부를 이해 하지 못 할
시대적 환경과 여러 한계적인 상황이 저와 교통의 걸림돌이 될 것 이다는 추측도 하기에 누군가 또 다른 색깔의 글을 써주셨으면 좋겠는데, 글, 특히 자기 신앙의 글로 자신의 체계적인 신앙의 고백을
성경에 의하여 쓰는 신앙이 정립된 글은 학수고대하였는데,
이제 온전하지 못하지만 이제 제가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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