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히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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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00.♡.♡.125)ㆍ2018-08-22 17:41관련링크
본문
“너희 목이 곧은 백성과는 함께 할 수 없다. 잠시라도 너희들과 함께 했다가는 내가 너희를 진멸할 것 같다. 그러니 너희들만 올라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을 했으니 천사를 너희 앞서 보내서 가나안 백성을 쫓아내고 가나안 땅을 빼앗아 너희에게 주겠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절교선언입니다.
모세가 금송아지 우상을 불에 태우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물에 타서 백성들에게 먹이고, 이스라엘 백성 3,000 명이 죽임 당했어도, 모세가 간절히 기도했어도 하나님의 진노는 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 백성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했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하고 한심스럽겠습니까?
모세의 가슴은 얼마나 많은 생각과 회한이 소용돌이 하였겠습니까?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애굽에서 바로공주의 아들로 영화를 누리다가 이스라엘 백성 편을 들었다가 졸지에 살인자가 되어 도망하고,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며 40년 세월 죽은 것 같이 살다가 80세나 되어 뒤늦게 부름 받았는데,
아,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네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 하고 부르신 하나님, 말을 잘 못 한다고 안 가겠다는 나를 지팡이 달랑 하나 쥐어주시고 보내시더니........
나는 바로에게 열 번이나 가서 말했지, 내 백성을 보내라,
나는 가고 가고, 또 가서 말했지,
하나님은 그 때마다 얼마나 놀랍게 역사하셨는지.
마지막 재앙, 장자를 죽이고 바로의 항복을 받아내던 그 유월절 사건은 정말 통쾌하고 엄청났었지. 뒤따라오는 애굽군대, 앞에는 홍해. 그 두려운 순간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시고......,
그 말할 수 없는 놀라움이란!
그리고 그 뒤에 좀 힘들긴 했었지. 목마르던 사흘 길, 마라의 쓴물, 그러나 칠십 종려나무 오아시스의 그 기쁨,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 물을 내시고.......,
그리고 이곳 시내산에서 나를 불러 올리셔서 그 엄청난 말씀 돌판을 직접 새겨 주시고, 자, 이제 우리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구나, 했는데, 희망에 부풀었는데.......
그런데 형 아론이 한심하게도 금송아지를 만들고 백성들은 절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이게 무슨 꼴인가?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셨을까? 금송아지를 갈아 마시우고 3,000명을 죽였는데도. 차라리 저의 이름을 지워주십시오, 하고 간구했는데도 하나님의 진노는 풀리지 않는구나.
천사만 보내 가나안 족속 쫓아내면 무슨 소용인가?
하나님 없이 가나안 땅 차지하면 뭣 하나? 그 다음은 다시 이방민족들의 밥이 될 텐데.
하나님 없는 삶이라면 애굽 종살이보다 나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아, 어쩌나? 아, 나의 사명은 여기까지란 말인가? 나의 인생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인가?
모세의 심경은 막막하고 답답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사랑하시고 모세를 사랑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렙산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의 이름을 부르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단장품을 제하라 하시면서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진 밖 멀리 회막, ‘만남의 장막’을 만듭니다.
모든 백성들이 단장품을 제하고 장막에 서서 모세를 바라봅니다.
회막에서 하나님의 구름기둥이 선 것을 봅니다.
모세는 간구합니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저희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저희는 죽습니다. 저를 이름으로도 아시고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 함께 하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천하만민 중에 구별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주의 백성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겠습니까?”
모세는 오직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함께 하심, 하나님의 동행을 간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시고 모세를 이름으로도 아시는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이 말씀에 모세는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하나님 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부귀영화는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는 결코 평안과 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없으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라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우리의 축복은 형통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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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하나님의 절교선언입니다.
모세가 금송아지 우상을 불에 태우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물에 타서 백성들에게 먹이고, 이스라엘 백성 3,000 명이 죽임 당했어도, 모세가 간절히 기도했어도 하나님의 진노는 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 백성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했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하고 한심스럽겠습니까?
모세의 가슴은 얼마나 많은 생각과 회한이 소용돌이 하였겠습니까?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애굽에서 바로공주의 아들로 영화를 누리다가 이스라엘 백성 편을 들었다가 졸지에 살인자가 되어 도망하고,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며 40년 세월 죽은 것 같이 살다가 80세나 되어 뒤늦게 부름 받았는데,
아,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네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 하고 부르신 하나님, 말을 잘 못 한다고 안 가겠다는 나를 지팡이 달랑 하나 쥐어주시고 보내시더니........
나는 바로에게 열 번이나 가서 말했지, 내 백성을 보내라,
나는 가고 가고, 또 가서 말했지,
하나님은 그 때마다 얼마나 놀랍게 역사하셨는지.
마지막 재앙, 장자를 죽이고 바로의 항복을 받아내던 그 유월절 사건은 정말 통쾌하고 엄청났었지. 뒤따라오는 애굽군대, 앞에는 홍해. 그 두려운 순간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시고......,
그 말할 수 없는 놀라움이란!
그리고 그 뒤에 좀 힘들긴 했었지. 목마르던 사흘 길, 마라의 쓴물, 그러나 칠십 종려나무 오아시스의 그 기쁨,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 물을 내시고.......,
그리고 이곳 시내산에서 나를 불러 올리셔서 그 엄청난 말씀 돌판을 직접 새겨 주시고, 자, 이제 우리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구나, 했는데, 희망에 부풀었는데.......
그런데 형 아론이 한심하게도 금송아지를 만들고 백성들은 절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이게 무슨 꼴인가?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셨을까? 금송아지를 갈아 마시우고 3,000명을 죽였는데도. 차라리 저의 이름을 지워주십시오, 하고 간구했는데도 하나님의 진노는 풀리지 않는구나.
천사만 보내 가나안 족속 쫓아내면 무슨 소용인가?
하나님 없이 가나안 땅 차지하면 뭣 하나? 그 다음은 다시 이방민족들의 밥이 될 텐데.
하나님 없는 삶이라면 애굽 종살이보다 나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아, 어쩌나? 아, 나의 사명은 여기까지란 말인가? 나의 인생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인가?
모세의 심경은 막막하고 답답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사랑하시고 모세를 사랑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렙산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의 이름을 부르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단장품을 제하라 하시면서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진 밖 멀리 회막, ‘만남의 장막’을 만듭니다.
모든 백성들이 단장품을 제하고 장막에 서서 모세를 바라봅니다.
회막에서 하나님의 구름기둥이 선 것을 봅니다.
모세는 간구합니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저희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저희는 죽습니다. 저를 이름으로도 아시고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 함께 하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천하만민 중에 구별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주의 백성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겠습니까?”
모세는 오직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함께 하심, 하나님의 동행을 간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시고 모세를 이름으로도 아시는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이 말씀에 모세는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하나님 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부귀영화는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는 결코 평안과 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없으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라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우리의 축복은 형통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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