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들이 십자가 精兵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동성애자들의 간병인(Hospice)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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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그림 (114.♡.♡.146)ㆍ2017-06-07 23:1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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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시는가?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들, 배고픈 자들, 아픈 자들, 그리고 갇혀 있는 자들 가운데 계신다. 이 땅의 버림받은 자들을 돕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돕는 것이다.(마 25:31 이하) 우리는 성서적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입각하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반하는 내용의 종교적 교리를 거부한다.
2. 우리는 반사회적, 비이성적인 신앙과 신학을 거부한다.
우리는 며칠 동안 우리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을 경험했다. 신학00 114호에 게시된 성소수자 관련 인터뷰 내용을 비판하며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과 SNS에 성소수자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글이 난무했다. 뿐만 아니라 6월 2일 본교의 S교수는 주간예배가 있는 한경직 기념관 1층과 2층에 동성애를 반대(심지어 혐오하는)하는 편협한 내용의 책자를 대량으로 비치하고 학우들에게 나눠주었다. 책을 옮기면서 S교수는 교내에도 동성애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돌발행동을 하면 사진을 찍으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우리는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기 위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비판, 혐오하는 반사회적, 비이성적인 태도를 거부한다.
3. Sola Scriptura
종교개혁의 정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교리보다 성서가 더 우위에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시대에 맞지 않는 교회의 전통과 교단의 입장 우위에 성서가 있음을 주장한다.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필수적인 해석학적 맥락은 사회의 가난한 자들, 갇혀있는 자들, 무시당하는 자들과의 연대함이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과의 연대 가운데 계셨음은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가리킨다. 우리는 동성애를 비난, 정죄하기 위한 근본주의 문자적 성서해석을 거부한다.
4. 우리는 실천하는 신학생이다.
신학은 기독교신앙을 변증함과 동시에 교회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잘못된 교리와 맹목적인 신앙을 비판하고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을 설명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가장 적합한 설명은 실천(praxis)이다. 선악을 결정하는 교만한 태도를 잠재우고 성소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실천은 시작된다. 우리의 신학을 선포해야 한다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와 맥을 같이 해야 한다.
5. 우리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척을 거부한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오해와 왜곡은 인권의 역사에 있어서 장애인, 여성에 이어 이 시대가 풀어야 할 마지막 과제이다. 사회적, 종교적인 억압과 눈초리가 성소수자들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 성소수자들은 더욱 자극적인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사회가 아직 성소수자들을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해도 우리는 훗날 성소수자들을 정죄했던 사람들이 역사의 냉혹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옳음을 정당화하고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종교생활을 했던 바리새인보다는 매시간 죄책감과 고립감, 차별대우를 받으며 주님께 부르짖은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셨기 때문이다.(눅 18:9-14)
하나님의 나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연대하는 가운데, 정의를 향하여 헌신하는 가운데,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의 애타는 열망에 새로운 민감성을 회복하려는 노력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위에 주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내 생각을 써 보았다.
신학생들이 십자가 精兵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동성애자들의 간병인(Hospice)가 될 것인가?
필자는 신학교를 졸업한지 수십 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곳 게시판에 들어와 동문들과 신학생들의 글을 통해서 접한 지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가 잘못 진단할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말한다.
글을 올린 이유는 신학교에 대한 그간의 풍문과 이곳 학생들의 주장, 예를 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글을 통해서 진단하여 보는 것이니 바르게 진단하였다면 돌이켰으면 좋겠고 잘못된 것이라면 무지한 동문이 모교를 아끼는 마음으로 썼구나. 했으면 좋겠다.
박00군과 여러 학생들이 연대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올린 글을 통해서 성소수자(동성애)에 대해서 주장한 것을 읽어보면서 장신대 신학생들이 십자가 精兵(정병)이 아닌 간병인(Hospice)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것은 먼저 제목을 보면서였다.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신학생으로서의 제목은 너무 유약한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신학생이 그리스도인인 것은 맞는 말이지만 신학생은 목사후보생이고 장교가 되기 위한 사관학교의 학생의 신분이란 정체성을 가진 제목이 나오고 그리스도(복음진리)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것이 나와야 할 터인데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학생들은 반사회적, 비이성적인 신앙과 신학을 거부한다고 하였다. 신학생들이 그리스도를 위한 소명을 받고 신학교육을 받고 있다면 기독교 신앙(신학)은 사회를 바르게 하는 것이고(정의) 비이성적이 아니라 이성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말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조와 문화와 법과 기타의 사건을 사회적인가 혹은 이성적인가를 뛰어넘어 성경의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여야 하는 것이 신학생들이 배워야할 것이고 그걸 견지하여야 할 것이다.
이 말은 이번 신학00사건과 S교수의 건과 학생들의 주장과 필자의 글을 성경이란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 나가 지금의 신학 사조들, 세계적이라고 평가 받는 석학들의 주장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세 번째 Sola Scriptura의 주장을 들어보면 학생들이 정말 중대한 착오를 하고 있구나. 는 생각이 든다. 성경의 핵심의 맥락은 소외 자들과 약자들과의 연대가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려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개혁신학의 신앙인 그리스도의 구속사와 하나님나라 라는 핵심 맥락으로 사회 현상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사회구원 중심의 민중 신학 영향을 받은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네 번째 우리는 실천하는 신학생이다. 라는 대목에서 다른 성소수자(동성애)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은 성소수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실천의 시작이라고 하면서 그 정당성을 예수님의 말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 속에서 찾고 있다.
죄인을 대할 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백 번 맞는 말이다. 왜냐 우리 그리스도인들 목회자 역시 용서받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도 상기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의롭게 하려고 온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목회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자들은 바로 이 죄인을 불러 의롭게 되는 길을 말하고 전하는 자들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과 예수님과 사도들은 회개하라고 했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사도들의 첫 번째 설교는 예수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의 무지와 잘못인 것이라고 말 했을때 모인자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자가 3천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
우리 총회 헌법의 목사에 대한 의의를 규정하기를 목사는 1. 목자이며 2. 그리스도의 종이며 3. 장로이며 4. 교사이며 5. 전도인이며 6. 청지기이라고 하고 있다
학생들은 목양차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접근을 말하고 있으나 그 접근의 목표는 저들의 구원에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척을 거부한다는 주장함에 대해, 성소수자는 예수님의 언급한 (마25:31) 자 중에 들어있지 않음을 모르고 성소수자에 대해 변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소수자는 돌봄이 없이는 안 될 무리(群 )에 속해 있지 않다. 저들은 자신의 변태적인 성욕을 추구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런 성향을 축구하는 자들이 어느 사회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에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중독자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에 중독되게 하는 상황이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우리 기독자들은 그런 중독자를 이해하며 예수님처럼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끌려왔던 여인을 대하듯 하여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다르다. 그들에 대한 현 사회 그리고 정치권에서 하는 것을 보라. 국가 인권위원회와 국회의원들은 동성애 차별금지 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고, 변태 성욕 후에 발생하고 있는 질병을 전액 국가에서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교육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동성애는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는 무서운 죄가 당연한 것이라고 하며 남녀를 가정을 이루게 했던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진리를 위해 목사가 되겠다고 훈련 받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성애자를 위한 변호자가 되고 간병인이 되려는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바나바님의 댓글
바나바 50.♡.♡.106드디어 필그림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타픽의 하나를(동성애문제) 잘 골라서 쉽게(어렵지 않게) 헷갈리지않게(혼돈시켜 정신사낮지 않게 그럴듯하지않게) 너무신학적으로 치우치지않게(성경적으로)글을 주시니 너무나 후련합니다. 진리는 성령으로 확실하게 하십니다. 사실(진리)은 너무나 학문적이면 접근이 어렵습니다. 필그림님 이단과 싸우는 칼 사용을 잘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이팅! 필그림님!
김정한님의 댓글
김정한 114.♡.♡.146
인류공영, 차별없는 세상
New World Order의 슬로건이지요.
차별은 안되나 구별은 필수적인 것인데
동성애자를 차별치 말라는
세상의 외침과 법 제정에
일부의 목사들과 신학생들이 동참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바나바님의 댓글
바나바 50.♡.♡.235"인류공영 차별없는세상 new world order" 이런 단어는 필그림님이 사용하는 사전에 별로 적합지 않은것 같습니다 성경적인 단어가 훨씬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