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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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96.♡.♡.163)ㆍ2017-08-10 11:2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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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교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태복음 6:9-11]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으로
‘구원의 언약’을 성령님으로 인치 심을 받는 자들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 주님의 계명을 갖고 지키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Teaching them to observe all things whatsoever
I have commanded you]
하나님의 의, 공의를 갖고 지키지 않음과 같다.
왜, 같을 까.
왜, 의문을 갖지 못하는가.
믿음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신앙인 이라면서
세상 사상에 기울어진 경향(傾向)에
시대의 이념인 이데 오르기에 빠져서 함몰(陷沒) 당하여
무디어진 분별은 시대를 분별하기커녕
이미 믿음과 멀어진 자신의 의로 벽을 쌓고도 믿음이라 우기는 현상이
일상화된 오늘날의 상태는
귀가 있어도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여
눈을 뜨고도 형제자매를 바라보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와 ‘하나님께 영광’을 노래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형제자매와 이웃의 사랑임을 알지 못하는 무지로
교인은 군중 속에 같이 길을 잃고도 자기도취의 믿음에 취해서
자기를 자랑하는 자화자찬의 신앙에 머물면서
수없이 많은 탓의 변명이 습성이 되어 습관이 되고도
세상의 인식(認識)과 종교 의식의 전통(傳統)을 답습(踏襲)하여
자기 위안도 못되는 믿음으로 자기를 합리화 한 신앙으로
남을 재단하고 재판하는 외식을 한다.
보라,
의(義)를 잃은 믿음
의를 잃은 사랑, 의를 잃은 순종, 의를 잃은 성찬식...
그런 의를 잃은 믿음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그리스도의 거짓 사도들로
믿음을 자기의 의로 가장한 사탄의 일꾼들로
믿음을 진리와 다르게 곡해(曲解)하여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삼은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인도하는 거짓 선생들과
그런 거짓 선생이나 그들을 따르는 자나 똑같아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 머문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머문 자들은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린도 후서 11:13-15]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의(義)와 공의(righteousness)로 정의(正義)이며
하나님의 ‘정의’ 는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 진실 된 관계를 말하기에
하나님은 정의롭고 공평하게 공정(公正)한 행동을 요구하셨고
이 기본이 사회와 나라를 세우는 기초가 되기에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사회와 국가에 공정이 실종되었음은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졌기 때문이라 외쳤고
이는 먼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주(主)이시기에
인간이 주로 믿으면 정의(righteousness)로 인도하시고
믿지 않으면 정의(judgment)로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의 ‘정의’는 ‘구원’과 ‘심판’ 으로 같으며, 나뉘며
하나님은 언제나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모든 일과 인간관계에 공정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따라서 ‘정의’ 는 불의에 눈감고 침묵하거나 이래도 저래도 흥이 아니라
정의(judgment)에서 정의(righteousness)로 이끌음이
복음이요 전도라 할 수 있음은,
전에는 무지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죄 인줄 몰랐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에
다시 무지하여 죄를 짓고 초보에 머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자비를 받은 자로 자비를 베풂이
믿음에 믿음을 더하는 믿음이며 마땅한 도리이기에
악을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자비는 하나님의 공의 이라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본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Ye that love the LORD, hate evil:
he preserveth the souls of his saints;
he delivereth them out of the hand of the wicked.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 도다
Light is sown for the righteous, and gladness for the upright in heart.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Rejoice in the LORD, ye righteous;
and give thanks at the remembrance of his holiness. 시편 97:10-12]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는
하나님의 공의로 더 큰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라.
예수님의 계명도 하나님의 의와 같아
그리스도를 본받은 그리스도인 인 성도는
계명을 갖고(하나님의 공의를 갖고) 지키는 자,
행위로 이 믿음을 증명하는 자 는
‘신약’ 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언약’ 으로
성령님께 인침은 받은 자는
의 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며
하나 되는 복음의 소명을 받은 자이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Who hath saved us, and called us with an holy calling,
not according to our works, but according to his own purpose
and grace, which was given us
in Christ Jesus before the world began, 디모데후서 1:9]
거룩하신 부르심의 소명은
이제는 예전의 자기 뜻과 행위를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부르심 이다.
그래서 사도된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였듯이
이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의의 선포자로
그리스도의 사도로
복음의 교사로 세움을 받았는데,
전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이제도 행함이 어린 아이와 같아
자신의 구원에 머물러 자신의 평안만을 생각하는
자신의 처지에서 안주(安住)하여 구원의 초보에 머물면
그 누구더라도 그 어떠한 직분을 가진 자라도
타락한다고 성경은 경고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Therefore leaving the principles of the doctrine of Christ,
let us go on unto perfection;
not laying again the foundation of repentance from dead works,
and of faith toward God,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갈지니라
Of the doctrine of baptisms,
and of laying on of hands, and of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of eternal judgment. 히브리서 6:1-2]
왜 새롭게 회개할 수 없이 타락했을까?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Therefore leaving the principles of the doctrine of Christ”
그리스도 도의 원칙과 원칙을 버렸기에,
어떻게?
“죽은 행실로(dead works)”
행위가 없는 믿음으로 말 뿐인
종교적인 의식으로 외식을 하기에
이 기본적인 죽은 행실에 대한 회개를 하지하지 않고
초보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자들의 상투적인 말은
세례와 안수와 부활과 심판을 계속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그 허다한 말들은 기초적인 믿음에 머물러
어떻게 구원을 받는 다는 구원론에 벗어나지 못하여
(보라, 오늘날의 대부분의 설교가 그렇다.)
구원받은 자로 신앙의 삶을 이야기 하지 못하고
맹신자를 양산(量産, 대량 생산의 준말)하고
열심 있는 광신자를 양산 하여 타락하게 한다.
그래서 한 번 빛을 받고
한 번 그리스도의 도를 깨닫고,
그리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성령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알고도,
타락한 자는 새롭게 회개할 수 없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If they shall fall away, to renew them again unto repentance;
seeing they crucify to themselves the Son of God afresh,
and put him to an open shame. :6]
왜 그럴까.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고 슬프게 함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패역이며
그리스도 주 예수님의 고귀한 사랑 ‘charity’ 의 배반이기에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자신의 평안과 자신의 만족에 머물러
성령님께서 그의 영혼의 마음에 꺼져가는 불꽃처럼 멀어져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시지 못하기에
종당에는 회개할 수 없어 타락한 자가 된다.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나니
to renew them again unto repentance”
그래서 그런 자들, 무늬만 신앙인 인 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국민의 10%, 80%, 100% 가 교인이라 하더라도
국가커녕 사회도 바꾸지 못하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 자기들 끼리 다투다 힘을 잃고 동력을 잃어
퇴보하다 사라짐을 성경이 증명하기에,
세상은 어두운 까닭은 빛이 없음이며
세상은 부패함은 소금이 없기 때문이라
허다(許多)한 욕심은 욕망을 낳고
욕망의 의로 신정국가(神政國家)를 세운 들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있어 정의로우며 공정한 국가가 될 것이며
그런 국가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셨을까.
그 어리석음은 시초는 이스라엘의 백성이 하나님께 왕을 청했고
어떻게 되었는지 망각했으며
예수님 당시도 거의 신정국가 수준이 아니었던가.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와 국가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정신적인 문화와 외적인 형태의 문화의 틀을
그리스도인이 만들어야 하는 사명이며 하나님의 의라 복음이며
지켜야 할 계명이라 언약이며 믿음의 근본이기에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이는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는
세상을 구원하는 힘, 동력이라
내 자신만의 내 가족만의 구원의 초보가 아니라,
음모 탓, 이단 탓, 귀신 탓, 사단 탓, 누구 탓, 으로
결론은 세상 탓, 으로 탓을 변명으로 삼은 초보가 아니라,
위대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이며 힘이기에,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복음의 언약은
세상을 구원하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 'charity' 의 약속이라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을 소유한 자로
세상을 구원하는 위대한 복음에 참여한 자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을 하나님 앞에 이끄는 복음의 혁명가로
위대한 일꾼이어야 하는데
교회생활을 오래 하고도
신학을 하고도
아직도 초보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된 오늘날의 현실은
바울 당시도 그런 자들이 많아 탄식을 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을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히브리서 5:12]
교회에 오래 출석하여 직분을 받고도
신학을 한지도 오래되어 선생이 되고도
아직도 온전한 선생이 못되어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의 처지는
그런 자들은 성령님을 슬프게 하고
그런 자들이 혼란한 세상을 만들기에
예수님은 이러한 혼란한 세상에 화평이 아니라
불화케 하는 세상에 검을 주러 오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Think not that I am come to send peace on earth:
I came not to send peace, but a sword. 마태복음 10:34]
예수님은 세상에 검을 주러 오셨다 하시며
아들과 아버지가, 딸과 어머니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함이라
하시며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And a man's foes shall be they of his own household.” 하셨다.
이 말씀은 검을 주러 오신 예수님의 화평과
세상의 안락은 평안과 즐거움의 의가 없는 화평은 같지 않으며,
검은 성령의 검(the sword of the Spirit)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의를 갖고 의로 행하는
성령님의 인도로 분별된 가치관의 능력 곧 성령님의 권능이라
검이 되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 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여 분별하는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살아있고 활력 있는 행함이기에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합당하지 않고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고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신다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누가복음8:12]
그리고 말씀으로 평안과 위안을 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unto you:
not as the world giveth, give I unto you.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neither let it be afraid. 요한복음 14:27]
다시 검은
에베소서 6:16-17을 보면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서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Above all, taking the shield of faith,
wherewith ye shall be able to quench all the fiery darts of the wicked.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And take the helmet of salvation, and 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 검으로
능히 악한 모든 것을 소멸하고 세상을 구하는 일,
복음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지키라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0:34 과 요한복음 14:27 의 공통된 점은
성령님의 사역이 대한 설명이라
예수님은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And when he is come,
he will reprove the world of sin,
and of righteousness, and of judgment: 요한복음 16:8]
“죄에 대하여 꾸짖고 책망하시며”
우선은, 세상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 말씀의 초보적인 자들이 아는 것처럼, 심판(judgment)하시고,
하나님의 의(義)의 정의(righteousness)에 대하여 심판(judgment) 받게 된
세상의 세상 사람들로 인해
그 후 그리스도인들을 꾸짖고 책망하시고 문책(問責)하시며
책임을 물으신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더 설명을 하시며
초보 들이 알아듣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Of sin, because they believe not on me;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Of righteousness, because I go to my Father, and ye see me no more;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Of judgment, because the prince of this world is judged. :9-11]
죄에 대하여 말씀하심은,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함으로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심은,
세상이 그리스도를 배척하여 그리스도는 하늘로 가셨고
이제 대신 성령님이 세상에 계심은 이미 세상 죄를 증명하시기에
이미 세상의 임금(the prince of this world), 세상의 사상, 사조(思潮) 등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았고
의에 대하여 말씀하심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셔서
다시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함이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인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함이라
그래서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성령님으로 약속의 인침을 받아 성령님과 동행함은,
너 자신과 가족만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부르심의 소명에
마땅한 계명을 갖고 행하여 그리스도 주님 대신에
세상을 구원하고 있느냐 는,
세상의 죄의 결과인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구원 할 의(義)에 대하여,
복음을 전 하는 전도에 실종(失踪)된 의(義)에 대하여,
그래서 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義)가 실종된 공동체와
세상의 죄가 만연한 현상에 대하여,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오늘, 지금 묻고 계시다는 말씀이다.
너희가 장성한 그리스도인 이든
아직 초보이든.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태복음 6:9-11]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으로
‘구원의 언약’을 성령님으로 인치 심을 받는 자들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 주님의 계명을 갖고 지키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Teaching them to observe all things whatsoever
I have commanded you]
하나님의 의, 공의를 갖고 지키지 않음과 같다.
왜, 같을 까.
왜, 의문을 갖지 못하는가.
믿음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신앙인 이라면서
세상 사상에 기울어진 경향(傾向)에
시대의 이념인 이데 오르기에 빠져서 함몰(陷沒) 당하여
무디어진 분별은 시대를 분별하기커녕
이미 믿음과 멀어진 자신의 의로 벽을 쌓고도 믿음이라 우기는 현상이
일상화된 오늘날의 상태는
귀가 있어도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여
눈을 뜨고도 형제자매를 바라보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와 ‘하나님께 영광’을 노래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형제자매와 이웃의 사랑임을 알지 못하는 무지로
교인은 군중 속에 같이 길을 잃고도 자기도취의 믿음에 취해서
자기를 자랑하는 자화자찬의 신앙에 머물면서
수없이 많은 탓의 변명이 습성이 되어 습관이 되고도
세상의 인식(認識)과 종교 의식의 전통(傳統)을 답습(踏襲)하여
자기 위안도 못되는 믿음으로 자기를 합리화 한 신앙으로
남을 재단하고 재판하는 외식을 한다.
보라,
의(義)를 잃은 믿음
의를 잃은 사랑, 의를 잃은 순종, 의를 잃은 성찬식...
그런 의를 잃은 믿음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그리스도의 거짓 사도들로
믿음을 자기의 의로 가장한 사탄의 일꾼들로
믿음을 진리와 다르게 곡해(曲解)하여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삼은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인도하는 거짓 선생들과
그런 거짓 선생이나 그들을 따르는 자나 똑같아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 머문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머문 자들은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린도 후서 11:13-15]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의(義)와 공의(righteousness)로 정의(正義)이며
하나님의 ‘정의’ 는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 진실 된 관계를 말하기에
하나님은 정의롭고 공평하게 공정(公正)한 행동을 요구하셨고
이 기본이 사회와 나라를 세우는 기초가 되기에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사회와 국가에 공정이 실종되었음은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졌기 때문이라 외쳤고
이는 먼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주(主)이시기에
인간이 주로 믿으면 정의(righteousness)로 인도하시고
믿지 않으면 정의(judgment)로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의 ‘정의’는 ‘구원’과 ‘심판’ 으로 같으며, 나뉘며
하나님은 언제나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모든 일과 인간관계에 공정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따라서 ‘정의’ 는 불의에 눈감고 침묵하거나 이래도 저래도 흥이 아니라
정의(judgment)에서 정의(righteousness)로 이끌음이
복음이요 전도라 할 수 있음은,
전에는 무지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죄 인줄 몰랐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에
다시 무지하여 죄를 짓고 초보에 머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자비를 받은 자로 자비를 베풂이
믿음에 믿음을 더하는 믿음이며 마땅한 도리이기에
악을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자비는 하나님의 공의 이라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본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Ye that love the LORD, hate evil:
he preserveth the souls of his saints;
he delivereth them out of the hand of the wicked.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 도다
Light is sown for the righteous, and gladness for the upright in heart.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Rejoice in the LORD, ye righteous;
and give thanks at the remembrance of his holiness. 시편 97:10-12]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는
하나님의 공의로 더 큰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라.
예수님의 계명도 하나님의 의와 같아
그리스도를 본받은 그리스도인 인 성도는
계명을 갖고(하나님의 공의를 갖고) 지키는 자,
행위로 이 믿음을 증명하는 자 는
‘신약’ 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언약’ 으로
성령님께 인침은 받은 자는
의 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며
하나 되는 복음의 소명을 받은 자이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Who hath saved us, and called us with an holy calling,
not according to our works, but according to his own purpose
and grace, which was given us
in Christ Jesus before the world began, 디모데후서 1:9]
거룩하신 부르심의 소명은
이제는 예전의 자기 뜻과 행위를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부르심 이다.
그래서 사도된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였듯이
이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의의 선포자로
그리스도의 사도로
복음의 교사로 세움을 받았는데,
전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이제도 행함이 어린 아이와 같아
자신의 구원에 머물러 자신의 평안만을 생각하는
자신의 처지에서 안주(安住)하여 구원의 초보에 머물면
그 누구더라도 그 어떠한 직분을 가진 자라도
타락한다고 성경은 경고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Therefore leaving the principles of the doctrine of Christ,
let us go on unto perfection;
not laying again the foundation of repentance from dead works,
and of faith toward God,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갈지니라
Of the doctrine of baptisms,
and of laying on of hands, and of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of eternal judgment. 히브리서 6:1-2]
왜 새롭게 회개할 수 없이 타락했을까?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Therefore leaving the principles of the doctrine of Christ”
그리스도 도의 원칙과 원칙을 버렸기에,
어떻게?
“죽은 행실로(dead works)”
행위가 없는 믿음으로 말 뿐인
종교적인 의식으로 외식을 하기에
이 기본적인 죽은 행실에 대한 회개를 하지하지 않고
초보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자들의 상투적인 말은
세례와 안수와 부활과 심판을 계속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그 허다한 말들은 기초적인 믿음에 머물러
어떻게 구원을 받는 다는 구원론에 벗어나지 못하여
(보라, 오늘날의 대부분의 설교가 그렇다.)
구원받은 자로 신앙의 삶을 이야기 하지 못하고
맹신자를 양산(量産, 대량 생산의 준말)하고
열심 있는 광신자를 양산 하여 타락하게 한다.
그래서 한 번 빛을 받고
한 번 그리스도의 도를 깨닫고,
그리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성령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알고도,
타락한 자는 새롭게 회개할 수 없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If they shall fall away, to renew them again unto repentance;
seeing they crucify to themselves the Son of God afresh,
and put him to an open shame. :6]
왜 그럴까.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고 슬프게 함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패역이며
그리스도 주 예수님의 고귀한 사랑 ‘charity’ 의 배반이기에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자신의 평안과 자신의 만족에 머물러
성령님께서 그의 영혼의 마음에 꺼져가는 불꽃처럼 멀어져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시지 못하기에
종당에는 회개할 수 없어 타락한 자가 된다.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나니
to renew them again unto repentance”
그래서 그런 자들, 무늬만 신앙인 인 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국민의 10%, 80%, 100% 가 교인이라 하더라도
국가커녕 사회도 바꾸지 못하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 자기들 끼리 다투다 힘을 잃고 동력을 잃어
퇴보하다 사라짐을 성경이 증명하기에,
세상은 어두운 까닭은 빛이 없음이며
세상은 부패함은 소금이 없기 때문이라
허다(許多)한 욕심은 욕망을 낳고
욕망의 의로 신정국가(神政國家)를 세운 들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있어 정의로우며 공정한 국가가 될 것이며
그런 국가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셨을까.
그 어리석음은 시초는 이스라엘의 백성이 하나님께 왕을 청했고
어떻게 되었는지 망각했으며
예수님 당시도 거의 신정국가 수준이 아니었던가.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와 국가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정신적인 문화와 외적인 형태의 문화의 틀을
그리스도인이 만들어야 하는 사명이며 하나님의 의라 복음이며
지켜야 할 계명이라 언약이며 믿음의 근본이기에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이는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는
세상을 구원하는 힘, 동력이라
내 자신만의 내 가족만의 구원의 초보가 아니라,
음모 탓, 이단 탓, 귀신 탓, 사단 탓, 누구 탓, 으로
결론은 세상 탓, 으로 탓을 변명으로 삼은 초보가 아니라,
위대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이며 힘이기에,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복음의 언약은
세상을 구원하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 'charity' 의 약속이라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을 소유한 자로
세상을 구원하는 위대한 복음에 참여한 자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을 하나님 앞에 이끄는 복음의 혁명가로
위대한 일꾼이어야 하는데
교회생활을 오래 하고도
신학을 하고도
아직도 초보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된 오늘날의 현실은
바울 당시도 그런 자들이 많아 탄식을 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을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히브리서 5:12]
교회에 오래 출석하여 직분을 받고도
신학을 한지도 오래되어 선생이 되고도
아직도 온전한 선생이 못되어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의 처지는
그런 자들은 성령님을 슬프게 하고
그런 자들이 혼란한 세상을 만들기에
예수님은 이러한 혼란한 세상에 화평이 아니라
불화케 하는 세상에 검을 주러 오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Think not that I am come to send peace on earth:
I came not to send peace, but a sword. 마태복음 10:34]
예수님은 세상에 검을 주러 오셨다 하시며
아들과 아버지가, 딸과 어머니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함이라
하시며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And a man's foes shall be they of his own household.” 하셨다.
이 말씀은 검을 주러 오신 예수님의 화평과
세상의 안락은 평안과 즐거움의 의가 없는 화평은 같지 않으며,
검은 성령의 검(the sword of the Spirit)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의를 갖고 의로 행하는
성령님의 인도로 분별된 가치관의 능력 곧 성령님의 권능이라
검이 되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 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여 분별하는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살아있고 활력 있는 행함이기에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합당하지 않고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고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신다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누가복음8:12]
그리고 말씀으로 평안과 위안을 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unto you:
not as the world giveth, give I unto you.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neither let it be afraid. 요한복음 14:27]
다시 검은
에베소서 6:16-17을 보면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서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Above all, taking the shield of faith,
wherewith ye shall be able to quench all the fiery darts of the wicked.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And take the helmet of salvation, and 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 검으로
능히 악한 모든 것을 소멸하고 세상을 구하는 일,
복음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지키라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0:34 과 요한복음 14:27 의 공통된 점은
성령님의 사역이 대한 설명이라
예수님은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And when he is come,
he will reprove the world of sin,
and of righteousness, and of judgment: 요한복음 16:8]
“죄에 대하여 꾸짖고 책망하시며”
우선은, 세상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 말씀의 초보적인 자들이 아는 것처럼, 심판(judgment)하시고,
하나님의 의(義)의 정의(righteousness)에 대하여 심판(judgment) 받게 된
세상의 세상 사람들로 인해
그 후 그리스도인들을 꾸짖고 책망하시고 문책(問責)하시며
책임을 물으신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더 설명을 하시며
초보 들이 알아듣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Of sin, because they believe not on me;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Of righteousness, because I go to my Father, and ye see me no more;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Of judgment, because the prince of this world is judged. :9-11]
죄에 대하여 말씀하심은,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함으로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심은,
세상이 그리스도를 배척하여 그리스도는 하늘로 가셨고
이제 대신 성령님이 세상에 계심은 이미 세상 죄를 증명하시기에
이미 세상의 임금(the prince of this world), 세상의 사상, 사조(思潮) 등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았고
의에 대하여 말씀하심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셔서
다시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함이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인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함이라
그래서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성령님으로 약속의 인침을 받아 성령님과 동행함은,
너 자신과 가족만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부르심의 소명에
마땅한 계명을 갖고 행하여 그리스도 주님 대신에
세상을 구원하고 있느냐 는,
세상의 죄의 결과인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구원 할 의(義)에 대하여,
복음을 전 하는 전도에 실종(失踪)된 의(義)에 대하여,
그래서 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義)가 실종된 공동체와
세상의 죄가 만연한 현상에 대하여,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오늘, 지금 묻고 계시다는 말씀이다.
너희가 장성한 그리스도인 이든
아직 초보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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