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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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cho (118.♡.♡.212)ㆍ2019-06-24 23:5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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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신학(Theology for daily life or things)
나는 미국 유학 후 귀국(두 달 전)해서 지금은 심적으로 약간 불안하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기까지 요즘 일상의 고단한 삶을 체험하고 있다. 미국에 가기 전에도 약 3개월간 일상적 힘든 일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 경험으로 나는 다시 보통사람들이 하는 일상적 일을 빡세게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나의 어린 시절에 그런 경험이 있었으며, 또한 미국에서 일하던 습관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의 삶에 재정적 필요(텐트 메이커라 하던가?)를 채우기 위해서다.
귀국해서 한 달을 허송세월 하다 보니 삶이 매마르고 재정적 압박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해서 나는 인터넷을 통해 찾은 일이 가구(office furnitures)배송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을 얻기까지 인내(나이때문에 일자리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음)를 가지고 찾아낼 수 있었다. 처음에 이 일이 단순히 사무용가구를 공장에서 일정한 장소까지 배송하는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은 아주 빗나갔다.
나는 가구를 탑재한 후 나의 사부(선임)와 함께 현장에 나갔을 때, 나는 다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을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첫째는 능숙한 운전을 하여야 하고, 둘째는 젊은이와 비숫한 근육과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마지막은 가구를 조립할 수 있는 약간의 손기능이 필요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세 가지를 나는 충족되어서 그 일에 적응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약 1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나 혼자 가구 배송을 나갈 수 있었다. 배송지는 서울 중심과 서울인근의 사무실이 밀접한 지역은 어디든 갔었다. 나는 이 일을 약 한 달 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는데, 첫째는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mental condition)를 배울 수 있었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그들의 매너,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태도에 따라 대우를 받는다는 것. 만일 내가 친절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그들도 그렇게 나를 대해 주었다. 그러나 그 반대이면 어김없이 나는 싸구려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둘째는 육체적 일상의 일(daily things)은 어느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으나 정신적으로 건강함을 유지시켜 준다는 것이다. 일을 마치는 시간에는 최상의 정신상태를 보상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배고픔의 의미가 뭔지를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시간이 되어서 밥을 먹었지만 말이다. 물론 육체적으로도 더 단단하게 나를 단련시켜 주었다. 그런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지나친 육체적 활동으로 육체적 피로를 풀 수 없는 한계상황까지 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어떤 보람과 삶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나는 일상의 현장에서 사는 사람들의 거치름(rough words and actions)을 목격하였다.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몸이 힘들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거칠다. 내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입만 열면 욕설을 하였고, 그들은 대부분 담배를 입에 달고 일했으며, 사람들을 인격적이 아닌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에 화가 났다. 그가운데 하나는 일하다 어디 다치면 그것은 무조건 본인이 책임을 지어야 했다. 해서 다쳐도 다쳤다는 말을 하면 안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책임은 본인의 몫이 된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이것을 일상신학(Theology for daily things)과 연결을 시켜 생각해 봤다. 우리가 말하고 배우는 신학은 일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근본적인 혹은 이론적인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 밖에서 일상의 삶(가정, 직장, 그리고 사회)의 관계로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론적 신학이 아니라 실천적 관계이다. 여기서 나는 이론신학이 아닌 실천신학 혹은 일상신학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면, “신앙과 삶의 관계” “직장(일터)에서 신앙 지키기” “사회에서의 일상적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와 가치 그리고 비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현장” “예수와 삶의 현장(일터)” 등등.
사실, 일상신학은 일찌기 한국 신학교와 교회에서 이미 대두되었었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선두 주자는 직장사역연구소를 1991년 창립했던 방선기일 것이다. 그는 일상(직장)의 신앙의 중요성에 대해서 당시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했다. 요사이도 한국에서도 어떤 연구소(일일생활사역연구소/ 대표 지성근)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를 통해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론적인 교육이나 가르침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교인들(특히 젊은이들)의 삶의 현장을 경험할 필요를 느낀다. 그들이 경험하는 현장은 정말 실감나는 황무지와 같은 곳이다. 젊은이들이 그러한 황무지와 같은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들이 살아내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곳이기에 나는 교회의 무책임한 신앙지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서 필자는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기관들이나 사역자들이 있다면, 1)먼저 이론적인 단단한 신학을 바탕으로 2)일터에서 현장실습을 통해 실험적인 경험을 하게 한 후 3)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젊은이들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를 소개했으면 좋겠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나가야 할 현장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는 매우 열악한 환경(육체적 노동현장이 그 대표적인 곳)도 있다. 그리고 정치현장을 비롯한 문화현장도 있다. 이 모든 현장을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될 곳임을 기억하여야 하겠다.
미국에서도 알바를 하면서 느낀 점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전혀 준비없이 세상에 나가 일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과연 그곳에서 그곳의 사람들과 당당하게 맞짱을 뜰 수 있을까? 만일 나의 자식이 그런 환경에서 그 일을 해야 한다면 그는 과연 세상과 타협치 않고 신앙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을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일하면서 욕설과 담배, 그리고 비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가? 이는 나에게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세상은 마치 전쟁터와 같은 곳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 있기도 할 것이다. 이런 곳에서 젊은이들이 과연 빛과 소금(light and salt)과 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교회들이여, 다시 한 번 교회 안에서의 신앙교육을 점검하자. 그리고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나가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그들이 있는 곳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적전사(전도자)로 거듭나도록 양육시키도록 하자.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약간의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이 나와 우리의 문제임을 간과하지 말자.(*)
keywords/ 일상신학, 젊은 그리스도인, 일터
나는 미국 유학 후 귀국(두 달 전)해서 지금은 심적으로 약간 불안하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기까지 요즘 일상의 고단한 삶을 체험하고 있다. 미국에 가기 전에도 약 3개월간 일상적 힘든 일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 경험으로 나는 다시 보통사람들이 하는 일상적 일을 빡세게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나의 어린 시절에 그런 경험이 있었으며, 또한 미국에서 일하던 습관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의 삶에 재정적 필요(텐트 메이커라 하던가?)를 채우기 위해서다.
귀국해서 한 달을 허송세월 하다 보니 삶이 매마르고 재정적 압박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해서 나는 인터넷을 통해 찾은 일이 가구(office furnitures)배송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을 얻기까지 인내(나이때문에 일자리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음)를 가지고 찾아낼 수 있었다. 처음에 이 일이 단순히 사무용가구를 공장에서 일정한 장소까지 배송하는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은 아주 빗나갔다.
나는 가구를 탑재한 후 나의 사부(선임)와 함께 현장에 나갔을 때, 나는 다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을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첫째는 능숙한 운전을 하여야 하고, 둘째는 젊은이와 비숫한 근육과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마지막은 가구를 조립할 수 있는 약간의 손기능이 필요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세 가지를 나는 충족되어서 그 일에 적응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약 1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나 혼자 가구 배송을 나갈 수 있었다. 배송지는 서울 중심과 서울인근의 사무실이 밀접한 지역은 어디든 갔었다. 나는 이 일을 약 한 달 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는데, 첫째는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mental condition)를 배울 수 있었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그들의 매너,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태도에 따라 대우를 받는다는 것. 만일 내가 친절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그들도 그렇게 나를 대해 주었다. 그러나 그 반대이면 어김없이 나는 싸구려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둘째는 육체적 일상의 일(daily things)은 어느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으나 정신적으로 건강함을 유지시켜 준다는 것이다. 일을 마치는 시간에는 최상의 정신상태를 보상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배고픔의 의미가 뭔지를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시간이 되어서 밥을 먹었지만 말이다. 물론 육체적으로도 더 단단하게 나를 단련시켜 주었다. 그런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지나친 육체적 활동으로 육체적 피로를 풀 수 없는 한계상황까지 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어떤 보람과 삶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나는 일상의 현장에서 사는 사람들의 거치름(rough words and actions)을 목격하였다.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몸이 힘들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거칠다. 내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입만 열면 욕설을 하였고, 그들은 대부분 담배를 입에 달고 일했으며, 사람들을 인격적이 아닌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에 화가 났다. 그가운데 하나는 일하다 어디 다치면 그것은 무조건 본인이 책임을 지어야 했다. 해서 다쳐도 다쳤다는 말을 하면 안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책임은 본인의 몫이 된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이것을 일상신학(Theology for daily things)과 연결을 시켜 생각해 봤다. 우리가 말하고 배우는 신학은 일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근본적인 혹은 이론적인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 밖에서 일상의 삶(가정, 직장, 그리고 사회)의 관계로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론적 신학이 아니라 실천적 관계이다. 여기서 나는 이론신학이 아닌 실천신학 혹은 일상신학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면, “신앙과 삶의 관계” “직장(일터)에서 신앙 지키기” “사회에서의 일상적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와 가치 그리고 비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현장” “예수와 삶의 현장(일터)” 등등.
사실, 일상신학은 일찌기 한국 신학교와 교회에서 이미 대두되었었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선두 주자는 직장사역연구소를 1991년 창립했던 방선기일 것이다. 그는 일상(직장)의 신앙의 중요성에 대해서 당시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했다. 요사이도 한국에서도 어떤 연구소(일일생활사역연구소/ 대표 지성근)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를 통해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론적인 교육이나 가르침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교인들(특히 젊은이들)의 삶의 현장을 경험할 필요를 느낀다. 그들이 경험하는 현장은 정말 실감나는 황무지와 같은 곳이다. 젊은이들이 그러한 황무지와 같은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들이 살아내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곳이기에 나는 교회의 무책임한 신앙지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서 필자는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기관들이나 사역자들이 있다면, 1)먼저 이론적인 단단한 신학을 바탕으로 2)일터에서 현장실습을 통해 실험적인 경험을 하게 한 후 3)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젊은이들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를 소개했으면 좋겠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나가야 할 현장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는 매우 열악한 환경(육체적 노동현장이 그 대표적인 곳)도 있다. 그리고 정치현장을 비롯한 문화현장도 있다. 이 모든 현장을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될 곳임을 기억하여야 하겠다.
미국에서도 알바를 하면서 느낀 점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전혀 준비없이 세상에 나가 일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과연 그곳에서 그곳의 사람들과 당당하게 맞짱을 뜰 수 있을까? 만일 나의 자식이 그런 환경에서 그 일을 해야 한다면 그는 과연 세상과 타협치 않고 신앙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을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일하면서 욕설과 담배, 그리고 비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가? 이는 나에게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세상은 마치 전쟁터와 같은 곳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 있기도 할 것이다. 이런 곳에서 젊은이들이 과연 빛과 소금(light and salt)과 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교회들이여, 다시 한 번 교회 안에서의 신앙교육을 점검하자. 그리고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나가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그들이 있는 곳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적전사(전도자)로 거듭나도록 양육시키도록 하자.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약간의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이 나와 우리의 문제임을 간과하지 말자.(*)
keywords/ 일상신학, 젊은 그리스도인,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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