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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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108.♡.♡.226)ㆍ2018-04-16 10:3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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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교회
[이것이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For this is my blood of the new testament,
which is shed for many for the remission of sins. 마태복음 26:28]
성경을 읽고 성경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또 다시 성경을 읽어 장과 구절이 다른 성경의 장과 구절로 연결되고
그래서 전체의 윤곽이 뚜렷이 떠오르고
이러한 깨달음이 반복되다 보면 진리가 더 가슴에 다가와
예전의 분별의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변화된 사실을 알게 되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섬김이 가슴을 울림은
아는 만큼 행함이 없는, 아직도 현실에 집착하여 현실에 매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보이고 느껴서 체감하는 현실의 세계는 그리스도 복음의 세계와 일치를
향함이 신앙이라서 현실을 떠난 허황된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몽상(夢想)이지만
현실에 매여 현실에 안주한
하나님 나라와 단절된 모든 마음의 행위가 위선이라
외식이라서 이를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 뿐 이시다.
그래서 성령님께 순종한다면 성령님께서 가르치신다는 진리는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친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린도후서 2:13]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셔서 지혜로 알고 행함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라
믿음은 분별이라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들에게 판단을 받지 아니하듯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초보 자된 자들에게 판단 받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룸이 믿음이며 소망임을 알기에
허물없이 그리스도 주님을 닮으려는 선은 이미 분별력의 믿음으로 되었기에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선이 소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That ye may approve things that are excellent;
that ye may be sincere and without offence till the day of Christ.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Being filled with the fruits of righteousness, which are by Jesus Christ,
unto the glory and praise of God. 빌립보서 1:10-11]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the fruits of righteousness)로 채워지고
성령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짐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의 삶이 예배라
삶으로서 그리스도의 의를 증명함이 복음이라
성경을 깊이 묵상하여 성경으로 성경을 이해하시게 이끄신 성령님의 역사는
왜 ‘복음의 비밀’ 이라 하는지 가슴으로 이해가 된다.
더 깊이 이 말씀을 나름 해석하고 나누자면,
많은 사람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피,
여기서 “많은 사람, for many for the remission of sins”
엄격히 모든 사람, 인류를 의미하나 개역개정과 KJV 는 ‘많은 사람으로’
NIN 와 NASB 도 ‘for many for the forgiveness of sins’ 으로
‘많은 사람’ 으로 쓴다.
또 개역한글, 공동번역, 표준 새 번역, 우리말 성경 등 에서도
‘많은 사람’ 으로 쓴다.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위하여 오셨는데
왜 온 인류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 기록하지 않았는가?
마가복음 10:45를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For even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ministered unto, but to minister,
and to give his life a ransom for many.]
여기서도 ‘많은 사람’ 으로 온 인류를 가리키지 않는다.
두 가지 견해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헬라어는 ‘많은’ 은 ‘전체’를 뜻하는 의미로
변역 상, 원 단어의 뜻이 잘못 해석되었다는 주장과
둘째 문자 그대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지만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어 상반(相反)된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고 살인 떡을 먹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언약으로 인 치신 성령님과 동행하며
이미 구원받은 자라 하나님 나라에 속하며
하나님 나라는 하나 되는 나라이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20-22]
여기서 예수님의 기도로 ‘많은’ 과 ‘온 인류’의 뜻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Neither pray I for these alone,
but for them also which shall believe on me through their word;”
그 당시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말(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을 사람들을 포함하며 기도하셨고,
이 기도는 그 당시의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말을 통하여 믿게 될 미래의 성도들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를 믿기를 원하셨으며
이 믿음의 순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당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들과 이들이 전도한 다른 사람들
그리고 복음의 1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게다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다음 세대로, 시대로 세대로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기에
오늘날 이 예수님의 기도는 성경을 읽는 모든 성도들을 포함하기에
오늘날 ‘나’ 와 ‘너’를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이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기도는
과거와 현제와 미래를 초월한 온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이라
그리스도 주님의 고난과 부활이 시간을 초월한 사건처럼
오늘날 그리스도를 본 받은 그리스도인의 사건이 됨은
하나님 나라를 먼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것이라
먼저 믿는 자의 연합을 위함이면서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불신자를 위한 구원이 포함된 기도였기에
우선이 ‘믿는 자의 연합’ 인 것은
믿는 자로 인하여 불신자로 복음이 전파되기에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얼마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였고
인류를 사랑하셨는지 그 깊고 넓은 사랑을 어찌 이루 글로 쓰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A new commandment I give unto you, That ye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By this shall all men know that ye are my disciples,
if ye have love one to another. 요한복음 13:34-35]
이 장을 보면 주님은 유월절 전에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 돌아가실 줄 아시고
저녁 드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으셨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본을 보이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 :15]
어떠한 본을 보여주셨나.
그래서 오늘날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취하여 ‘세족식’을 하며 이를 행사로 치루는 자들의
말처럼 서로 섬기는 본이었나?
아니면 서로 사랑하는 행위였나?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초보에 머문 자들의 주장이며 외식이라.
주님의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시는 말씀은
새 계명(new commandment)이라 명령을 하셨다.
입술에 머문 사랑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의 깊으신 의미처럼
믿는 자들만이 아니라 그들로 말미암아 주님을 믿는 사람들로 위함이라
그리스도인 이라면 주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로 거룩한 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인 정의(正義)로 서로 사랑하라 시는 말씀이라
사랑은 진리와 함께 하기에
사랑은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이라
사랑은 세상에 비추는 그리스도인의 정의의 빛이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 빛으로 인도함이 복음의 전파라 천국 복음이라 하며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이라
이처럼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 본이 되어
그리스도의 도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변화 산의 ‘변화’ 같이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시게 그리고 영광이 되게
바울의 ‘변화’처럼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하여 세대와 세대를 잇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도(道)로, 마땅히 지켜야할 그리스도인의 도리로
그리스도 주님을 사랑을 받은 자들로 그 사랑을 전하여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시게 다음 세대를 위하여,
부패하여진 세상의 정신의식, 사상에 썩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그리스도의 세계를 세우겠다는 주님의 계명의 실천이라
주님은 천국을 겨자씨 한 알 같다 하셨으며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은 한 누룩과 같다는 말씀의 뜻과 의미를
헤아리지 못한 다면 아직 그리스도의 초보라.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도 천국은 마지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31-33]
겨자씨 한 알 같고 누룩과 같은 천국의 비유도
이를 자라게 하고 부풀게 하는 일은 사람을 쓰시지만
그 사람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태복음 5:13]
사랑은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 주님의 정의가 사라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서
서로 사랑하여,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인이 됨이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ye are my disciples,
if ye have love one to another.]
그래서 서로 사랑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제자들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의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시킴이 전도이며
이로서 제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 하는 영광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그 맛을 잃으면
그리스도인이라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잃으면
사랑을 잃은 섬김과 사랑을 잃은 예배 의식을 봉사라 한다면
무엇으로 사랑이라 할 것이요
무엇으로 복음이라 할 것이요
허울만 번드르르한 그리스도인 이라면, 이것이 외식이라
그래서 겉 겁 떼기만 교회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무엇으로 그리스도인이라 하리요.
아무 쓸 데 없어, 아무 힘도 성령님께 공급받을 수 없어서
밖에 버려져 밟힐 뿐이라.
세상에서도 버려져 비웃음거리가 되며 비난의 대상이 되리라.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하나 되는,
성도가 하나 되기 위하여 ‘우리 안에 있게 하사’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속하여 하나 되는 연합은
외적인 교회의 연합이라기보다 내적인 연합이라
자기를 부인한 변화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정의로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는데 있어 하나 되기를 원하셨고
이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시길 기도하였으며
이는 온 세상이 믿기를, 온 인류를 위한 기도를 하셨고
이 하나 되는 연합과
하나님께서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믿는 역사는
성령님의 역사라
그 역사는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신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And the glory which thou gavest me I have given them;
that they may be one, even as we are one:”
하나 되는 연합은 교제의 연합으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데 있어서 연합이라
모두가 하나 되는 영광의 연합이 된다.
그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그리스도의 ‘영광’ 은 부활과 승천의 영광으로
‘부활’ 은 세상을 이기신, 죽음을 이기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며
‘승천’ 은 부활하시고 재림하신 영광이면서 이미 변화 산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라 이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성도가 받은 영광은 아버지의 영광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이라
영광으로 하나 되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받았기에
아직은 이 땅의 삶에서 온전한 영광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때에
온전한 영광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과 하나 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된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께서 한 분이시듯이
“이는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even as we are one”
우리가 하나 되는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that they may be one”
하나 되게 함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함이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임은
하나님 나라로 하나 된 나라이기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의(義)라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도라
예수님은 이렇게 간절히 진실로 진리로 기도하셨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Sanctify them through thy truth: thy word is truth. 요한복음 17:17]
진리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가 거룩하게 되기를(Sanctify them)
그래서 복음으로 하나 되는 역사는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세상의 정의라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till he have set judgment in the earth”
하나님의 의는 공의이며
그리스도의 도는 정의라
성령님이 하시는 역사(役事)이며
인류의 구원의 역사(歷史)이기에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 질 때까지
모든 이들이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the isles shall wait for his law”
이를 이사야는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의 위로를 전했다.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Hearken unto me, my people; and give ear unto me,
O my nation: for a law shall proceed from me,
and I will make my judgment to rest for a light of the people.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My righteousness is near;
my salvation is gone forth, and mine arms shall judge the people;
the isles shall wait upon me,
and on mine arm shall they trust. 이사야 51:4-5]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Hearken unto me, my people; and give ear unto me,
O my nation: for a law shall proceed from me,”
내 백성이여, 내 자녀야, 내 나라야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Hearken unto me 귀를 기울이라”
이를 예수님은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하셨고
바울은 로마서 10:17-18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렀고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퍼졌다 하였고
이미 이루었고 이제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정의는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My righteousness is near, my salvation is gone forth,”
하나님의 공의는 구원을 이룸이며
또한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심판에 이룸이라.
그래서 바울의 마지막 편지로 알려진 디모데 후서는
그가 사랑하던 젊은 동역 자 디모데에게 보내 편지를 보면
주께서 악에서 건져내시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였음을 찬양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Notwithstanding the Lord stood with me, and strengthened me;
that by me the preaching might be fully known,
and that all the Gentiles might hear:
and I was delivered out of the mouth of the lion.
And the Lord shall deliver me from every evil work,
and will preserve me unto his heavenly kingdom:
to whom be glory for ever and ever. Amen. 디모데후서 4:17-18]
바울은 그 당시 재판을 받고 있어 바울과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이
바울을 버렸으나 그들에게 원망은커녕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6]
그러기에 ‘Notwithstanding’ 불구하고
주님께서 내 곁에 서서 힘을 주심으로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고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 건져내시고,
Lord shall deliver me from every evil work”
이는 바울의 재판이 잘 해결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며 그는 죽을 때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6-7]
바울은 복음의 증인으로서 인생을 마무리 짓는 이 순간까지 어떤 형태로든
악에서 타락하지 않도록 흠 없이 살았기에
주님께서 모든 악한 일에 건져내어 주셨다고 고백하며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구원 하셨다 했다.
개인적으로 이 바울의 고백을 읽을 때 마다 가슴이 뭉클하여 가슴에 응어리진
나의 수많은 죄가 떠오르는 바울의 고백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 건져내시고” 로 고백하는
그 고백이 얼마나 가슴깊이 다가오는지 모른다.
사실 언제나 구원을 받았다는 사람은 많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은 쓰여 있지 않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간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며 좁은 문으로 들어간 성도들로 복음의 소식이 이어져 왔기에
오늘날의 복음의 역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간 성도들의 피와 땀의 수고로 인하여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졌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순교하기 까지 지켰다고 전해지며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으로 생명을 생명으로 잇고 전한 구원의 증인이라
좁은 문을 선택한 자들이었기에,
좁은 문과 넓은 문의 선택은 세상 사람들의 선택이라 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예수님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그 당시 하나님을 섬긴다는 유대인들로
또 오늘날 신자라는 자들, 교인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Enter ye in at the strait gate: for wide is the gate, and broad is the way,
that leadeth to destruction, and many there be which go in thereat:
Because strait is the gate, and narrow is the way, which leadeth unto life,
and few there be that find it. 마태복음 7:31-14]
좁은 문과 넓은 문의 선택
그 선택의 의미는
교회에 출석하고 직분을 받았더라도 모두가 성도가 아니며
모두가 성도가 아니라는 말은,
모든 믿음의 공동체라 부르는 교회가
모두 신앙의 진정한 공동체가 아니란 말씀이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이신가.
그러나 주님은 연약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떨어지더라도 돌이켜 뉘우치고서 형제를 굳게 하시기를 원하심은
믿음은 ‘나’에서 ‘너’로 ‘우리’ 라는 공동체로 많은 사람과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았기에
주님은 우리의 교제가 회복되고 더 깊은 사랑의 교제를 원하시기에,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아시면서
후에 돌이켜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형제자매를 굳게 할 것을 아셨기에
이 말씀을 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And the Lord said, Simon, Simon, behold, Satan hath desired to have you,
that he may sift you as wheat:
But I have prayed for thee, that thy faith fail not:
and when thou art converted, strengthen thy brethren. 누가복음 22:31-32]
[이것이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For this is my blood of the new testament,
which is shed for many for the remission of sins. 마태복음 26:28]
성경을 읽고 성경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또 다시 성경을 읽어 장과 구절이 다른 성경의 장과 구절로 연결되고
그래서 전체의 윤곽이 뚜렷이 떠오르고
이러한 깨달음이 반복되다 보면 진리가 더 가슴에 다가와
예전의 분별의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변화된 사실을 알게 되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섬김이 가슴을 울림은
아는 만큼 행함이 없는, 아직도 현실에 집착하여 현실에 매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보이고 느껴서 체감하는 현실의 세계는 그리스도 복음의 세계와 일치를
향함이 신앙이라서 현실을 떠난 허황된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몽상(夢想)이지만
현실에 매여 현실에 안주한
하나님 나라와 단절된 모든 마음의 행위가 위선이라
외식이라서 이를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 뿐 이시다.
그래서 성령님께 순종한다면 성령님께서 가르치신다는 진리는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친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린도후서 2:13]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셔서 지혜로 알고 행함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라
믿음은 분별이라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들에게 판단을 받지 아니하듯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초보 자된 자들에게 판단 받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룸이 믿음이며 소망임을 알기에
허물없이 그리스도 주님을 닮으려는 선은 이미 분별력의 믿음으로 되었기에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선이 소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That ye may approve things that are excellent;
that ye may be sincere and without offence till the day of Christ.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Being filled with the fruits of righteousness, which are by Jesus Christ,
unto the glory and praise of God. 빌립보서 1:10-11]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the fruits of righteousness)로 채워지고
성령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짐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의 삶이 예배라
삶으로서 그리스도의 의를 증명함이 복음이라
성경을 깊이 묵상하여 성경으로 성경을 이해하시게 이끄신 성령님의 역사는
왜 ‘복음의 비밀’ 이라 하는지 가슴으로 이해가 된다.
더 깊이 이 말씀을 나름 해석하고 나누자면,
많은 사람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피,
여기서 “많은 사람, for many for the remission of sins”
엄격히 모든 사람, 인류를 의미하나 개역개정과 KJV 는 ‘많은 사람으로’
NIN 와 NASB 도 ‘for many for the forgiveness of sins’ 으로
‘많은 사람’ 으로 쓴다.
또 개역한글, 공동번역, 표준 새 번역, 우리말 성경 등 에서도
‘많은 사람’ 으로 쓴다.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위하여 오셨는데
왜 온 인류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 기록하지 않았는가?
마가복음 10:45를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For even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ministered unto, but to minister,
and to give his life a ransom for many.]
여기서도 ‘많은 사람’ 으로 온 인류를 가리키지 않는다.
두 가지 견해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헬라어는 ‘많은’ 은 ‘전체’를 뜻하는 의미로
변역 상, 원 단어의 뜻이 잘못 해석되었다는 주장과
둘째 문자 그대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지만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어 상반(相反)된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고 살인 떡을 먹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언약으로 인 치신 성령님과 동행하며
이미 구원받은 자라 하나님 나라에 속하며
하나님 나라는 하나 되는 나라이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20-22]
여기서 예수님의 기도로 ‘많은’ 과 ‘온 인류’의 뜻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Neither pray I for these alone,
but for them also which shall believe on me through their word;”
그 당시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말(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을 사람들을 포함하며 기도하셨고,
이 기도는 그 당시의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말을 통하여 믿게 될 미래의 성도들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를 믿기를 원하셨으며
이 믿음의 순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당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들과 이들이 전도한 다른 사람들
그리고 복음의 1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게다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다음 세대로, 시대로 세대로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기에
오늘날 이 예수님의 기도는 성경을 읽는 모든 성도들을 포함하기에
오늘날 ‘나’ 와 ‘너’를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이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기도는
과거와 현제와 미래를 초월한 온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이라
그리스도 주님의 고난과 부활이 시간을 초월한 사건처럼
오늘날 그리스도를 본 받은 그리스도인의 사건이 됨은
하나님 나라를 먼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것이라
먼저 믿는 자의 연합을 위함이면서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불신자를 위한 구원이 포함된 기도였기에
우선이 ‘믿는 자의 연합’ 인 것은
믿는 자로 인하여 불신자로 복음이 전파되기에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얼마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였고
인류를 사랑하셨는지 그 깊고 넓은 사랑을 어찌 이루 글로 쓰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A new commandment I give unto you, That ye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By this shall all men know that ye are my disciples,
if ye have love one to another. 요한복음 13:34-35]
이 장을 보면 주님은 유월절 전에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 돌아가실 줄 아시고
저녁 드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으셨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본을 보이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 :15]
어떠한 본을 보여주셨나.
그래서 오늘날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취하여 ‘세족식’을 하며 이를 행사로 치루는 자들의
말처럼 서로 섬기는 본이었나?
아니면 서로 사랑하는 행위였나?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초보에 머문 자들의 주장이며 외식이라.
주님의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시는 말씀은
새 계명(new commandment)이라 명령을 하셨다.
입술에 머문 사랑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의 깊으신 의미처럼
믿는 자들만이 아니라 그들로 말미암아 주님을 믿는 사람들로 위함이라
그리스도인 이라면 주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로 거룩한 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인 정의(正義)로 서로 사랑하라 시는 말씀이라
사랑은 진리와 함께 하기에
사랑은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이라
사랑은 세상에 비추는 그리스도인의 정의의 빛이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 빛으로 인도함이 복음의 전파라 천국 복음이라 하며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이라
이처럼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 본이 되어
그리스도의 도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변화 산의 ‘변화’ 같이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시게 그리고 영광이 되게
바울의 ‘변화’처럼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하여 세대와 세대를 잇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도(道)로, 마땅히 지켜야할 그리스도인의 도리로
그리스도 주님을 사랑을 받은 자들로 그 사랑을 전하여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시게 다음 세대를 위하여,
부패하여진 세상의 정신의식, 사상에 썩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그리스도의 세계를 세우겠다는 주님의 계명의 실천이라
주님은 천국을 겨자씨 한 알 같다 하셨으며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은 한 누룩과 같다는 말씀의 뜻과 의미를
헤아리지 못한 다면 아직 그리스도의 초보라.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도 천국은 마지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31-33]
겨자씨 한 알 같고 누룩과 같은 천국의 비유도
이를 자라게 하고 부풀게 하는 일은 사람을 쓰시지만
그 사람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태복음 5:13]
사랑은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 주님의 정의가 사라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서
서로 사랑하여,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인이 됨이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ye are my disciples,
if ye have love one to another.]
그래서 서로 사랑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제자들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의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시킴이 전도이며
이로서 제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 하는 영광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그 맛을 잃으면
그리스도인이라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잃으면
사랑을 잃은 섬김과 사랑을 잃은 예배 의식을 봉사라 한다면
무엇으로 사랑이라 할 것이요
무엇으로 복음이라 할 것이요
허울만 번드르르한 그리스도인 이라면, 이것이 외식이라
그래서 겉 겁 떼기만 교회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무엇으로 그리스도인이라 하리요.
아무 쓸 데 없어, 아무 힘도 성령님께 공급받을 수 없어서
밖에 버려져 밟힐 뿐이라.
세상에서도 버려져 비웃음거리가 되며 비난의 대상이 되리라.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하나 되는,
성도가 하나 되기 위하여 ‘우리 안에 있게 하사’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속하여 하나 되는 연합은
외적인 교회의 연합이라기보다 내적인 연합이라
자기를 부인한 변화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정의로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는데 있어 하나 되기를 원하셨고
이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시길 기도하였으며
이는 온 세상이 믿기를, 온 인류를 위한 기도를 하셨고
이 하나 되는 연합과
하나님께서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믿는 역사는
성령님의 역사라
그 역사는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신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And the glory which thou gavest me I have given them;
that they may be one, even as we are one:”
하나 되는 연합은 교제의 연합으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데 있어서 연합이라
모두가 하나 되는 영광의 연합이 된다.
그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그리스도의 ‘영광’ 은 부활과 승천의 영광으로
‘부활’ 은 세상을 이기신, 죽음을 이기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며
‘승천’ 은 부활하시고 재림하신 영광이면서 이미 변화 산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라 이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성도가 받은 영광은 아버지의 영광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이라
영광으로 하나 되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받았기에
아직은 이 땅의 삶에서 온전한 영광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때에
온전한 영광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과 하나 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된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께서 한 분이시듯이
“이는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even as we are one”
우리가 하나 되는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that they may be one”
하나 되게 함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함이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임은
하나님 나라로 하나 된 나라이기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의(義)라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도라
예수님은 이렇게 간절히 진실로 진리로 기도하셨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Sanctify them through thy truth: thy word is truth. 요한복음 17:17]
진리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가 거룩하게 되기를(Sanctify them)
그래서 복음으로 하나 되는 역사는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세상의 정의라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till he have set judgment in the earth”
하나님의 의는 공의이며
그리스도의 도는 정의라
성령님이 하시는 역사(役事)이며
인류의 구원의 역사(歷史)이기에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 질 때까지
모든 이들이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the isles shall wait for his law”
이를 이사야는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의 위로를 전했다.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Hearken unto me, my people; and give ear unto me,
O my nation: for a law shall proceed from me,
and I will make my judgment to rest for a light of the people.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My righteousness is near;
my salvation is gone forth, and mine arms shall judge the people;
the isles shall wait upon me,
and on mine arm shall they trust. 이사야 51:4-5]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Hearken unto me, my people; and give ear unto me,
O my nation: for a law shall proceed from me,”
내 백성이여, 내 자녀야, 내 나라야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Hearken unto me 귀를 기울이라”
이를 예수님은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하셨고
바울은 로마서 10:17-18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렀고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퍼졌다 하였고
이미 이루었고 이제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정의는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My righteousness is near, my salvation is gone forth,”
하나님의 공의는 구원을 이룸이며
또한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심판에 이룸이라.
그래서 바울의 마지막 편지로 알려진 디모데 후서는
그가 사랑하던 젊은 동역 자 디모데에게 보내 편지를 보면
주께서 악에서 건져내시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였음을 찬양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Notwithstanding the Lord stood with me, and strengthened me;
that by me the preaching might be fully known,
and that all the Gentiles might hear:
and I was delivered out of the mouth of the lion.
And the Lord shall deliver me from every evil work,
and will preserve me unto his heavenly kingdom:
to whom be glory for ever and ever. Amen. 디모데후서 4:17-18]
바울은 그 당시 재판을 받고 있어 바울과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이
바울을 버렸으나 그들에게 원망은커녕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6]
그러기에 ‘Notwithstanding’ 불구하고
주님께서 내 곁에 서서 힘을 주심으로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고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 건져내시고,
Lord shall deliver me from every evil work”
이는 바울의 재판이 잘 해결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며 그는 죽을 때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6-7]
바울은 복음의 증인으로서 인생을 마무리 짓는 이 순간까지 어떤 형태로든
악에서 타락하지 않도록 흠 없이 살았기에
주님께서 모든 악한 일에 건져내어 주셨다고 고백하며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구원 하셨다 했다.
개인적으로 이 바울의 고백을 읽을 때 마다 가슴이 뭉클하여 가슴에 응어리진
나의 수많은 죄가 떠오르는 바울의 고백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 건져내시고” 로 고백하는
그 고백이 얼마나 가슴깊이 다가오는지 모른다.
사실 언제나 구원을 받았다는 사람은 많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은 쓰여 있지 않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간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며 좁은 문으로 들어간 성도들로 복음의 소식이 이어져 왔기에
오늘날의 복음의 역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간 성도들의 피와 땀의 수고로 인하여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졌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순교하기 까지 지켰다고 전해지며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으로 생명을 생명으로 잇고 전한 구원의 증인이라
좁은 문을 선택한 자들이었기에,
좁은 문과 넓은 문의 선택은 세상 사람들의 선택이라 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예수님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그 당시 하나님을 섬긴다는 유대인들로
또 오늘날 신자라는 자들, 교인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Enter ye in at the strait gate: for wide is the gate, and broad is the way,
that leadeth to destruction, and many there be which go in thereat:
Because strait is the gate, and narrow is the way, which leadeth unto life,
and few there be that find it. 마태복음 7:31-14]
좁은 문과 넓은 문의 선택
그 선택의 의미는
교회에 출석하고 직분을 받았더라도 모두가 성도가 아니며
모두가 성도가 아니라는 말은,
모든 믿음의 공동체라 부르는 교회가
모두 신앙의 진정한 공동체가 아니란 말씀이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이신가.
그러나 주님은 연약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떨어지더라도 돌이켜 뉘우치고서 형제를 굳게 하시기를 원하심은
믿음은 ‘나’에서 ‘너’로 ‘우리’ 라는 공동체로 많은 사람과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았기에
주님은 우리의 교제가 회복되고 더 깊은 사랑의 교제를 원하시기에,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아시면서
후에 돌이켜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형제자매를 굳게 할 것을 아셨기에
이 말씀을 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And the Lord said, Simon, Simon, behold, Satan hath desired to have you,
that he may sift you as wheat:
But I have prayed for thee, that thy faith fail not:
and when thou art converted, strengthen thy brethren. 누가복음 22: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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