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떨기나무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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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00.♡.♡.223)ㆍ2018-04-12 00:3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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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1-5]
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40년 동안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면서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왕자시절의 화려한 생활도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었고, 아무도 기억해 주는 이도 없이 잊혀졌고, 아무런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도다.”라고 짓고 탄식하며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세상이 잊어버리고 모두가 버렸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 미국 땅에 살아가는 많은 이민자들도 그럴 것입니다. 고국을 떠나온 지 너무나 오래 되어 잊힌 사람처럼 낯선 땅에서 외로운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잊어버렸다 해도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광야의 떨기나무는 가시나무, 아카시아, 싯딤나무, 조각목 등으로 불리는, 작고, 뒤틀리고, 가시까지 달린, 그야말로 불쏘시개 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나무입니다. 성경은 가시떨기나무를 징벌과 저주받은 죄인의 상징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가시떨기나무 가운데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불이 붙으면 메마른 땅의 가시떨기나무는 금방 타서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가시떨기나무는 사라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모세는 그것이 너무나 기이하여 구경하겠다고 가까이 다가간 것입니다.
죄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신다는 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죄인은 죽고 소멸되어야 맞습니다. 아무도 그 영광 앞에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시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으로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기이한 일입니다.
심판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누구실까요? 가시떨기나무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바로 성자 하나님, 곧 예수님이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들은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간음한 여인도 심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마지막 날에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성부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면 모세는 절대로 온전치 못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떨기나무를 소멸하지 않고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가시떨기나무가 불타지 아니한 것은 성자 하나님이 가시떨기나무 대신 불타고 계셨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성경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2:49). 그러나 그 불로 심판하시지 아니하시고 대신 죄를 태워 죄인을 정결케 하여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속죄제물로 태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은 악한 죄인들입니다. 주님은 그 가시에 찔리며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시떨기 같은 죄인들, 가시 같은 죄악으로 찌르는 죄인들이 원래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이사야 43:21, 엡 1:13). 주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신 것은 “너희가 나를 떠나 죄인이 되었을지라도 너희는 나의 흘리는 피로 죄를 벗고 다시 나의 영광이요 찬송, 곧 나의 면류관이 되라. 너희는 영원히 나의 면류관이다.” 하신 것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에게 보이신 가시떨기나무 불꽃은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실 주님이셨습니다. 잃어버리고 잊혀져버린 광야의 악한 가시떨기나무 같은 죄인, 나를 찾아오신 주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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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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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면서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왕자시절의 화려한 생활도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었고, 아무도 기억해 주는 이도 없이 잊혀졌고, 아무런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도다.”라고 짓고 탄식하며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세상이 잊어버리고 모두가 버렸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 미국 땅에 살아가는 많은 이민자들도 그럴 것입니다. 고국을 떠나온 지 너무나 오래 되어 잊힌 사람처럼 낯선 땅에서 외로운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잊어버렸다 해도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광야의 떨기나무는 가시나무, 아카시아, 싯딤나무, 조각목 등으로 불리는, 작고, 뒤틀리고, 가시까지 달린, 그야말로 불쏘시개 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나무입니다. 성경은 가시떨기나무를 징벌과 저주받은 죄인의 상징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가시떨기나무 가운데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불이 붙으면 메마른 땅의 가시떨기나무는 금방 타서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가시떨기나무는 사라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모세는 그것이 너무나 기이하여 구경하겠다고 가까이 다가간 것입니다.
죄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신다는 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죄인은 죽고 소멸되어야 맞습니다. 아무도 그 영광 앞에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시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으로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기이한 일입니다.
심판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누구실까요? 가시떨기나무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바로 성자 하나님, 곧 예수님이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들은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간음한 여인도 심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마지막 날에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성부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면 모세는 절대로 온전치 못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떨기나무를 소멸하지 않고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가시떨기나무가 불타지 아니한 것은 성자 하나님이 가시떨기나무 대신 불타고 계셨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성경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2:49). 그러나 그 불로 심판하시지 아니하시고 대신 죄를 태워 죄인을 정결케 하여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속죄제물로 태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은 악한 죄인들입니다. 주님은 그 가시에 찔리며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시떨기 같은 죄인들, 가시 같은 죄악으로 찌르는 죄인들이 원래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이사야 43:21, 엡 1:13). 주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신 것은 “너희가 나를 떠나 죄인이 되었을지라도 너희는 나의 흘리는 피로 죄를 벗고 다시 나의 영광이요 찬송, 곧 나의 면류관이 되라. 너희는 영원히 나의 면류관이다.” 하신 것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에게 보이신 가시떨기나무 불꽃은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실 주님이셨습니다. 잃어버리고 잊혀져버린 광야의 악한 가시떨기나무 같은 죄인, 나를 찾아오신 주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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