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시면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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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42.♡.♡.150)ㆍ2024-07-30 11:2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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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시면 믿겠습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아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20:28)
60년대 초반, 그 때엔 시외버스가 비포장도로에 먼지를 풀풀 날리며 달리다가 손을 들면 버스를 세워 태워주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녹전국민학교 교감으로 계실 때 토요일에 안동 집으로 오셨다가 주일 오후에 시외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가셨습니다. 중학생이던 저는 여러 번 아버지를 따라 버스가 올 때까지 신작로를 함께 걸었습니다. 한 번은 아버지와 함께 거의 이십 리나 걸어서 제비원까지 간 적 있습니다. “너무 멀리 왔다. 그만 돌아가거라.” “아부지 버스 타고 가시는 거 보고 갈께요.” 버스를 몇 대나 지나쳐보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자가 거기까지 걸어간 것입니다.
제비원 미륵은 거대한 석상(石像)인데 일반적인 부처상의 머리가 아니고 특이하게 사모관대 같이 생긴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1993년엔가 어떤 분이 제비원 석상은 불교의 부처상이 아니라 기원후 48년 가락국에 시집온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 일행과 함께 왔던 도마사도의 석상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그 뿐 아니라 학가산 암벽에서 히브리 문자와 함께 새겨진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상을 발견하였고 또 영주에서는 ‘분처바위’라고 불리는 석상이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상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제 이럴 적 기억도 그렇지만 경상북도 북부지역에서는 부처를 분처라고 부릅니다. 안동뿐만 아니라 고령에서 발견된 제사기구 등이 도마사도와 함께 한반도에 들어왔던 기독교의 흔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분의 발견과 주장은 한국 기독교계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서는 도마사도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두려워서 방문을 잠그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신 주님은 도마의 손으로 주님의 못 박혔던 손과 창으로 찔렸던 옆구리를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도마는 주님께 외쳤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예수님을 향하여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주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주님은 도마의 이 고백을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니, 이 사람아, 큰일 날 소리 말게. 나는 주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닐세.” 하셨어야 합니다. 고백과 찬양은 오직 하나님만이 받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그러나 보지 못 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보지 못 하고 믿는 자들이 복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보여 주시면 믿겠다고 합니다. 기적을 보여주시고, 체험하게 하시고, 병이 낫게 하시고, 대학에 합격하거나, 복권에 당첨되거나, 바라는 무슨 일이 이루어지면 믿겠노라고 하나님과 Deal을 합니다. 그러나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판단입니다. 판단은 다른 말로 Judgement, 심판입니다. 인간이 심판주이신 하나님께 당신이 진짜 하나님인가 아닌가 심판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듣고 믿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된 책입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증거하는 예수님에 대한 책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라는 것,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 그 분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하여 읽고 듣는 자로 하여금 보지 않고 믿게 하려는 책인 것입니다.
신약성경 여러 곳에 기록된 사도들의 증거와 고백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기록한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결정적인 증거의 기록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1:17-19)
“처음이요 나중(알파요 오메가)”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전에 죽었다가 다시 산 자가 누구입니까?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누구이시겠습니까? 보지 않고 믿으시는 당신이 복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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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가 대답하여 아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20:28)
60년대 초반, 그 때엔 시외버스가 비포장도로에 먼지를 풀풀 날리며 달리다가 손을 들면 버스를 세워 태워주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녹전국민학교 교감으로 계실 때 토요일에 안동 집으로 오셨다가 주일 오후에 시외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가셨습니다. 중학생이던 저는 여러 번 아버지를 따라 버스가 올 때까지 신작로를 함께 걸었습니다. 한 번은 아버지와 함께 거의 이십 리나 걸어서 제비원까지 간 적 있습니다. “너무 멀리 왔다. 그만 돌아가거라.” “아부지 버스 타고 가시는 거 보고 갈께요.” 버스를 몇 대나 지나쳐보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자가 거기까지 걸어간 것입니다.
제비원 미륵은 거대한 석상(石像)인데 일반적인 부처상의 머리가 아니고 특이하게 사모관대 같이 생긴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1993년엔가 어떤 분이 제비원 석상은 불교의 부처상이 아니라 기원후 48년 가락국에 시집온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 일행과 함께 왔던 도마사도의 석상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그 뿐 아니라 학가산 암벽에서 히브리 문자와 함께 새겨진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상을 발견하였고 또 영주에서는 ‘분처바위’라고 불리는 석상이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상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제 이럴 적 기억도 그렇지만 경상북도 북부지역에서는 부처를 분처라고 부릅니다. 안동뿐만 아니라 고령에서 발견된 제사기구 등이 도마사도와 함께 한반도에 들어왔던 기독교의 흔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분의 발견과 주장은 한국 기독교계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서는 도마사도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두려워서 방문을 잠그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신 주님은 도마의 손으로 주님의 못 박혔던 손과 창으로 찔렸던 옆구리를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도마는 주님께 외쳤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예수님을 향하여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주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주님은 도마의 이 고백을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니, 이 사람아, 큰일 날 소리 말게. 나는 주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닐세.” 하셨어야 합니다. 고백과 찬양은 오직 하나님만이 받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그러나 보지 못 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보지 못 하고 믿는 자들이 복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보여 주시면 믿겠다고 합니다. 기적을 보여주시고, 체험하게 하시고, 병이 낫게 하시고, 대학에 합격하거나, 복권에 당첨되거나, 바라는 무슨 일이 이루어지면 믿겠노라고 하나님과 Deal을 합니다. 그러나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판단입니다. 판단은 다른 말로 Judgement, 심판입니다. 인간이 심판주이신 하나님께 당신이 진짜 하나님인가 아닌가 심판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듣고 믿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된 책입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증거하는 예수님에 대한 책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라는 것,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 그 분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하여 읽고 듣는 자로 하여금 보지 않고 믿게 하려는 책인 것입니다.
신약성경 여러 곳에 기록된 사도들의 증거와 고백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기록한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결정적인 증거의 기록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1:17-19)
“처음이요 나중(알파요 오메가)”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전에 죽었다가 다시 산 자가 누구입니까?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누구이시겠습니까? 보지 않고 믿으시는 당신이 복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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