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8(끝).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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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42.♡.♡.150)ㆍ2024-11-19 00:0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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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끝). 임마누엘
(욥기 42: 12-15)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세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42장을 18편으로 ‘주마간산’식으로 살펴본 욥기강해를 마치고자 합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욥기는 다만 고난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욥과 친구들의 우정이나 하나님을 놓고 벌인 토론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욥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거나 성도가 고난을 당하였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이겨나가야 할지에 관한 교훈을 주고 욥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본으로 제시하려는 책도 아닙니다. 욥기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찾아오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 곧 ‘임마누엘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야만 해결되는 인간의 죄, 하나님을 만나야만 이루어지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욥은 동방 제일의 의인이었습니다. 경건하고 신실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자랑하시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참소하는 자’ 사단의 참소를 벗어나지 못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욥을 향한 사랑도 자식들이 부지중에 지었을지 모를 죄를 위하여 번제를 드린 욥의 지극한 경건함도 욥과 자식들을 지켜내지 못 하였고, 욥과 친구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토론은 헛바퀴를 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사단의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단의 요구를 물리치지 못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욥이 그 시험을 이겨낼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도 아닙니다. 혹은 사단으로 하여금 욥을 시험토록 하여야만 욥의 순전함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 고난을 통하여 욥을 연단한 다음 상 주시려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욥기를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은 인간은 인간의 어떠한 의로도, 인간의 어떠한 공로로도 구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한다는 것을 욥의 고난과 논쟁을 통하여 보여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고난을 당한 욥과 친구들의 난상토론을 통하여 인간의 경건과 의는 아무것도 아니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한갓 벌레요 바람에 날아가는 잎사귀 같으며(사64:6) 인간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티끌만도 못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폭풍우를 뚫고 오신 하나님 앞에서 욥은 입을 막고 단 한 마디도 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죄인일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욥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경건과 지식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 합니다. 어떠한 인간도 스스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인간의 편에서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는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해결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욥과 친구들은 토론만 하고 싸움만 하다가 끝내 하나님을 알지 못 하는 죄 가운데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폭풍우를 뚫고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아니 오셨더라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더라면, 모든 육신,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죄 가운데서 영원히 멸망하였을 것입니다(요 8:21). 그래서 오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생명의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보고 믿고 함께 하며 동행하며 사귈 수 있도록 임마누엘로 오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은 말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욥기에서는 하나님이 폭풍우를 뚫고 욥에게 찾아오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죄악과 죽음과 어둠을 뚫고 이 낮은 땅에 오시어 참혹한 십자가를 지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친히 자신의 몸을 드려 우리의 모든 죄를 구속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빛으로, 생명으로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시어 누구든지 믿고 영접하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이제 누구나 십자가 앞에 엎드려 그 살과 피를 먹으면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임마누엘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알 수 있으며, 영생을 누리며 동행하며 사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만나지 못 하고 알지 못 하는 죄는 핑계할 수 없는 죄가 되었습니다.
욥기 말미에서 하나님은 욥을 친구들을 위한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의 은혜를 친구들에게도 허락하셨습니다. 마치 욥을 사도로, 복음 전하는 자로 세우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욥에게 곱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일곱 아들과 세 딸, 그리고 양이며, 소며, 나귀, 약대를 곱절로 주셨으며, 회복시키셨으며, 자손 4대를 보는 140년을 더한 장수, 하나님과의 동거와 동행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신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들입니다. 생명과 복음의 증인들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여러분이 이제 곱절의 복을 받을, 하나님과 함께 하며 사귀며 동행하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그 놀라운 소식을 세상에 전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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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42: 12-15)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세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42장을 18편으로 ‘주마간산’식으로 살펴본 욥기강해를 마치고자 합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욥기는 다만 고난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욥과 친구들의 우정이나 하나님을 놓고 벌인 토론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욥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거나 성도가 고난을 당하였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이겨나가야 할지에 관한 교훈을 주고 욥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본으로 제시하려는 책도 아닙니다. 욥기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찾아오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 곧 ‘임마누엘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야만 해결되는 인간의 죄, 하나님을 만나야만 이루어지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욥은 동방 제일의 의인이었습니다. 경건하고 신실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자랑하시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참소하는 자’ 사단의 참소를 벗어나지 못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욥을 향한 사랑도 자식들이 부지중에 지었을지 모를 죄를 위하여 번제를 드린 욥의 지극한 경건함도 욥과 자식들을 지켜내지 못 하였고, 욥과 친구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토론은 헛바퀴를 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사단의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단의 요구를 물리치지 못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욥이 그 시험을 이겨낼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도 아닙니다. 혹은 사단으로 하여금 욥을 시험토록 하여야만 욥의 순전함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 고난을 통하여 욥을 연단한 다음 상 주시려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욥기를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은 인간은 인간의 어떠한 의로도, 인간의 어떠한 공로로도 구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한다는 것을 욥의 고난과 논쟁을 통하여 보여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고난을 당한 욥과 친구들의 난상토론을 통하여 인간의 경건과 의는 아무것도 아니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한갓 벌레요 바람에 날아가는 잎사귀 같으며(사64:6) 인간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티끌만도 못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폭풍우를 뚫고 오신 하나님 앞에서 욥은 입을 막고 단 한 마디도 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죄인일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욥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경건과 지식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 합니다. 어떠한 인간도 스스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인간의 편에서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는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해결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욥과 친구들은 토론만 하고 싸움만 하다가 끝내 하나님을 알지 못 하는 죄 가운데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폭풍우를 뚫고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아니 오셨더라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더라면, 모든 육신,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죄 가운데서 영원히 멸망하였을 것입니다(요 8:21). 그래서 오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생명의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보고 믿고 함께 하며 동행하며 사귈 수 있도록 임마누엘로 오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은 말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욥기에서는 하나님이 폭풍우를 뚫고 욥에게 찾아오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죄악과 죽음과 어둠을 뚫고 이 낮은 땅에 오시어 참혹한 십자가를 지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친히 자신의 몸을 드려 우리의 모든 죄를 구속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빛으로, 생명으로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시어 누구든지 믿고 영접하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이제 누구나 십자가 앞에 엎드려 그 살과 피를 먹으면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임마누엘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알 수 있으며, 영생을 누리며 동행하며 사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만나지 못 하고 알지 못 하는 죄는 핑계할 수 없는 죄가 되었습니다.
욥기 말미에서 하나님은 욥을 친구들을 위한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의 은혜를 친구들에게도 허락하셨습니다. 마치 욥을 사도로, 복음 전하는 자로 세우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욥에게 곱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일곱 아들과 세 딸, 그리고 양이며, 소며, 나귀, 약대를 곱절로 주셨으며, 회복시키셨으며, 자손 4대를 보는 140년을 더한 장수, 하나님과의 동거와 동행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신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들입니다. 생명과 복음의 증인들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여러분이 이제 곱절의 복을 받을, 하나님과 함께 하며 사귀며 동행하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그 놀라운 소식을 세상에 전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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