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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삼 목사 ① 옛사람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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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 201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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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9.jpg뉴저지초대교회(한규삼 목사)는 서울광염교회 조현삼 목사(54세)를 초청하여 "신앙은 생활이다"라는 주제로 8월 17일(금)부터 3일간 성회를 열었다. 조 목사는 둘째날 로마서 15장 13절을 본문으로 "너를 도우리라"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조현삼 목사는 2003년 "감자탕교회 이야기"를 통해 서울광염교회의 신선한 목회를 알려 한국교회에 큰 충격을 주고 주목받는 목회자가 되었다. 서울광염교회는 헌금은 잔고 100만원 정도만 남기고 구제와 전도를 위해 사용한다. 이날 설교를 통해 조현삼 목사는 어릴때의 고생을 통해 구제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가진 목회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조현삼 목사는 많은 저서를 발간했는데 가장 최근인 지난 7월에 "너를 도우리라"를 발간했다. 책의 내용은 "하나님의 우울 처방전"이라는 부제에 잘나타나 있다. 갓피플몰에서 나온지 한달이 채 안되어 상담/내적치유 부문 1위를 차지하여 한국교회에서 조 목사의 영향력을 잘나타냈다. 그 책 내용의 핵심이 저자의 이번 설교이다. 설교제목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조현삼 목사는 목회를 통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우울증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우울증을 성경의 지혜를 통한 저자의 경험으로 쉽게 풀어나가고 있다. 조 목사의 설교를 통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가 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 자신의 이야기임에 놀라게 될 것이다.

아멘넷은 2시간여 진행된 설교를 3번에 걸쳐 소개할 예정이다.

"너를 도우리라" 책이 나왔는데 우리교회에서도 나누기 전이다. 먼저 나눈다. "너를 도우리라"에 '하나님의 우울 처방전'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몇년에 한번 꼴로 유명한 분들이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일로 인해 사람들에게 이슈가 된다. 그런일이 있을때 마다 목사가 무엇을 해야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부담을 가졌다.

우울은 두려움을 주는 단어이다. 병원에서 진단받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는 중한 병이 나올까봐 두려워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우울증에 대해 상식적으로 안다. 그리고 우을증의 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안다. 그래서 우울증이라는 말자체가 두려움을 주는 부분이 있다. 저 개인적으로 성격이나 기질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지냈기에 우울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 책을 쓰는 가운데 우울에 대한 책을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작년에는 '최고의 삶을 살고 싶은 그대에게'라는 가제목으로 책을 쓰고 있었다. 글을 쓰다가 최고의 삶은 아니어도 좋으니 그저 살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리고 '최고의 사람'을 떠어내니 '살고 싶은 그대에게'이 되었다. 너무 비장하게 보인다. 출판사와 협의하는 가운데 "너를 도우리라"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상심, 낙심, 근심, 두려움, 분노

우울은 사회에 굉장한 이슈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로 힘들어 하면서 사회적으로 받게되는 어려움때문에 바깥에서는 미소를 지으며 연기를 하지만 저녁에 집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울에 빠지는 분들도 있다. '우울'이라는 단어는 성경에는 없다. 단어자체가 없지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우울하다. 왜 성경에도 없는 우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어려워 할까. '우울(憂鬱)'이라는 단어로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근심할 우(憂) 막힐 울(鬱)이다. 근심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나온다. 성경에서 우울이라는 상태를 묘사하는 내용들이 어떤 것이 있는가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상심'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는데 마음이 상했다는 의미이다. 상심한 상태는 우울을 의미하는 성경의 표현이다. 그리고 하나는 '낙심'이다. 낙심한 상태가 우울이라는 의미이다. 또 '분노'이다. 분노상태가 우울상태이다. 성경에서는 두려움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두려움도 넓은 의미에서 우울에 속한다. 정신건강 전문인에서는 세분화되는 추세이다. 전에는 우울안에 두려움이 같이 들어갔는데 이제는 기분장애 불안장애등으로 해서 나누어져 있다. 그 안에 공포증에 분류되기도 한다. 광의적으로 보면 성경에 나타나는 두려움도 우울한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다. 상심 상태가 우울, 근심 상태도 우울. 낙심 상태도 우울, 두려운 상태도 우울, 분노 상태도 우울이다.

성경은 우울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다. 위의 5가지 관점에서 우울하게 되면 마음이 상하면 우울한것이다. 우울하지 않으려면 마음이 상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상하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마음이 상하면 그것이 내가 우울해 상태이다.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실망하는 것의 깊은 낙심 상태이다. 사람에 대해 실망하면 심하면 낙심한다. 낙심하면 우울해진다. 또 상심하면 우울해 지고, 근심하면 우울해진다. 근심이 잠깐 하다말면 '우울감'이라고 하지만 근심이 깊어지면 증으로 바귀어 '우울증'이라고 한다. 우울감과 우울증을 정신 전문가들은 구분한다. 여러분은 근심없이 살기를 축원한다.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는 상태를 정신의학에서는 공황장애나 불안장애로 구분하지만 예전에는 이부분도 우울한것이다. 분노상태도 우울이다. 우리는 우울에 대해 막연하게 기분이 안좋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성경을 보면 우리가 익히 아는 5가지 정도를 말하는데 상심, 낙심, 근심, 두려움, 분노이다. 이런 상태에 있을때 그 상태를 우울하다고 말한다. 조금 깊어지면 우울감 더 깊어지면 우울증이 된다.

성경이 말하는 상심, 낙심, 근심, 두려움, 분노

성경은 상심하지 말라고 가르쳐 준다. 그래서 마음이 상한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이 상했을때 상한 마음인채로 살도록 하나님은 두지 않으시고 상한마음을 싸매시고 치료하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본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낙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해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르쳐 주신다.

너무나 잘아는대로 하나님은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고,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해가 지기전에 분을 풀라고 하신다. 5가지를 통해 알수있는 것은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우울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우울하게 살지 않는 것이다. 만약 우울하게 산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울하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우울증과 상실

책은 처음에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을 간단히 다루었다. 분명한것은 우울증의 원인은 현대의학에서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답이다. 원인을 학자마다 다 다르게 말한다. 우울증 원인을 생화학적으로 찾는 의사는 약을 중심으로 처방하고, 인지치료로 생각하는 의사는 약처방 대신에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정신분석 관점의 의사는 정신분석을 하는 쪽으로 우울증을 다룬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증을 공부하기 위해 책도 살피고 공부했다. 학자들이 우울증을 묘사하면서 사용한 단어들을 무작위로 옮겨 보았다.

"슬픔, 절망, 의기소침, 불만, 불면증, 초조, 성욕감퇴, 죄책감, 식욕상실, 무관심, 자기비판, 흥분, 동요, 울음, 분노, 공포심, 자기비하, 집중력약화, 무관심, 의욕상실, 의미상실, 체중감소, 만성피로, 관계어려움, 죄의식, 자살, 타살, 침울, 자기포기, 고립, 짜증, 외로움, 게으름, 실패에 대한 두려움, 피해의식, 평가절하, 고립, 게으름, 포기, 실패 두려움..."

이것이 우울증에 설명하는데 동원된 단어들이다. 이것을 들으면서 이들중 몇몇은 나도 있는데 하고 느끼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적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100여개 되는 단어들 전체를 한단어로 묘사하는 것을 떠 올리게 하셨다. 그것이 '상실'이라는 것이다. 모든 단어를 상실이라는 그릇에 담으니 다 담겨진다. 믿음을 상실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한다.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 공포는 다 우울증을 묘사하는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것은 믿음을 상실할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소망을 상실하면 의기소침하고 희망을 잃고 좌절감에 밀려온다. 사랑을 상실하면 적의를 품고 공격적이 되고 냉담하고 슬픔과 우울감속에 지내게 된다. 상실에 분류되어 담으니 다 담겨진다.

우울은 상실이다. 상실하면 우울하고, 우울하면 상실한다. 우울증에 걸리는 때를 살펴보면 상실할 때이다. 가족을, 직장을, 자녀를, 건강을 상실할때 우울증에 걸린다. 주변에 있는 사람중 상실감이 있는 사람을 보면 지금 이 사람은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있구나 하고 각별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울증의 원인이자 결과는 상실이다. 상실감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우울한 가운데 떨어지게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과 상실

그러면 사람을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상실의 뿌리는 무엇인가를 성경을 통해 찾아보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때 사람외에 생물체를 만드셨다. 둘은 같으면서도 다른게 하나있다.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고, 다른 생명체에는 생명이 없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명이 있으면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성경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만 생기를 주신것이다.

이 부분이 생소하게 들릴수 있다. 요한일서(5장 12절)를 보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나온다. 두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둘 다 살아있지만 한 종류 사람은 생명이 있고 다른 종류 사람은 생명이 없다. 세상에 있는 사람가운데 생명이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때 사람안에 생명을 주셨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상실했다.

생명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살아있다. 그 상태가 아담과 하와이고 가인과 아벨이다. 살아있지만 생명은 없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사람의 상태이다. 생명을 상실했다. 그러다 보니 형제를 죽이는 안타까운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이 태어날때 살아있는 존재로는 태어나지만 생명은 없다. 이 상태를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죽음은 영의 죽음, 육의 죽음, 영원한 죽음이 있는데 생명을 상실한 그 상태를 영적인 죽음이러고 표현한다.

생명을 잃고 살아있는 상태가 타락한 인간의 상태이다. 그렇게 계속 태어나고 살고 죽고한다. 사람이 그 상태가 되어 생명을 상실하니 본성이 죄악에 물들어 있고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변질된 상태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는데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 예수님이 세상이 오셔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스스로 생명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생명을 주려함이라고 하셨다.

생명은 살아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이해가 안되는 말씀이다. 이미 살아있는데 이미 생명이 있는데 무슨 생명을 주러오신다는 말씀인가 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생명을 상실했다. 생명의 의미는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주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죄로 인해 생명을 상실했다. 즉 하나님을 상실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인데 죄로 말미암아 분리됐다. 사람안에서 하나님이 떠난 상태가 생명을 상실한 상태이다.

그래서 인간이 비참하고 불행해지는 상태가 될 때 사람은 우울해 진다.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고, 예수님을 믿을때 생명이신 하나님이 들어와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하게 하신다. 생명이 예수님이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생명을 상실했다. 상실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아들 생명이신 예수님을 보내시고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우리안에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는 안믿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다. 그 생명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그때부터 새사람이 된다. 새생명이 들어오면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생명을 상실함으로 본성이 변질됐다. 성경은 옛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옛사람의 상태는 우울하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우울하다. 가만히 있으면 우울해진다. 생명이 있었던 원래 본성은 그것이 아닌데 생명을 상실한 이후는 본성적으로 우울하다. 이것을 인정하면 우울안해지는 방법을 알게 된다.

우울하지 않는 방법

정신과 의사들이 사람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을 8-25%로 본다. 평생살면서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 한국에서 사회적인 이슈가 된다. 소득이 늘어나고 살기 좋아지는데 사람은 본성적으로 우울하기 때문에 우울증은 계속 늘어날수 밖에 없다.

여러분들의 본성적으로 우울했던 본성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받으면 그 본성이 바뀌는가 안바뀌는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예수믿기전에 여러분에게 있었던 성깔이 나타난적이 없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에 회의가 올때가 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가 예수믿는 사람이 맞는가 라고 회의가 올 때가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저사람이 과연 예수믿는 것이 맞는가 하는 마음이 든 적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런 회의를 해보았을 것이다.

그때는 옛날 본성이 나타날때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옛날의 어두운 옛사람은 다른 새사람으로 바뀌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옛사람이 나올때가 있다. 그럴때 많이 놀라는 것이 본인이다. 왜냐하면 예수믿고 옛사람이 변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에 튀어나온다. 그렇게 될때 고민을 한다. 내가 과연 예수님을 믿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가짜인가에 대한 회의가 생긴다.

예수님을 믿어도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본성이 세상에서 숨이 끓어지는 날까지 우리안에 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인정하면 길이 보이고 자유함이 있다. 제 안에 탐욕, 음욕, 이승의 자랑등 죄악된 본성이 있다. 이런것들이 없어지고 오직 세계선교와 민족복음화 그리고 구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상심함으로 변질되었던 본성이 우리안에 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로마서에 바울이 날마다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이중성으로 탄식하며 외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날마다 무엇이 죽어야 하는가. 옛 본성이 날마다 죽어야 한다. 날마다 다시 살아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러분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도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생명을 상실하고 죄로 말미암아 변질된 본성이 있음을 인정하라. 그러면 이 부분에 대해 길이 나온다.

옛사람의 본성이 나타나면 우울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옛사람 죄악의 본성은 없앨수 없다. 아무리해도 없앨수 없다. 목사가 된지 30년이 지나도 장로가 되어도 우리속에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가지 방법이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새사람으로 옛사람을 덮어야 한다. 옛사람을 덮으면 온유하고 인자하고 사려깊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하신다. 여러분들과 저의 본성을 예수로 덮고 성령으로 덮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그 길밖에는 없다. 죄악된 본성이 들어나지 않는 오직 한 길은 성령으로 본성을 덮는 것이다. 죄악된 본성을 성령으로 덮고 살면 죄악된 본성은 힘을 쓰지못하고 성령만 나타난다. 내 힘으로 내 인격으로 본성을 덮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를 통해 그것을 덮는 길밖에 없다.

옛본성이 나타나면 신앙에 대해 회의하지 말고 내가 예수를 먹어야 하고, 성령을 받아야 겠구나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과 성령을 생명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먹으라 하셨다. 예수그리스도로 본성을 덮고 살며 날마나 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문제는 성령이 소멸되면 나의 옛 모습은 언제든지 드러난다. 현재있는 예배당의 안의 상태의 본질은 어둠이다. 불을 끄면 어둡다. 이것이 본질이다. 불을 켜고 빛이 있는 동안은 예배당은 밝은 상태가 된다. 예수님이 오셔서 나는 빛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여러분 상태가 빛이다. 여러분의 얼굴 상태가 밝은 것은 여러분 얼굴자체가 원래 밝은 것이 아니라 빛이신 에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제라도 예수그리스도의 빛이 사라지면 나의 본성이 드러난다.

예수님과 성령으로 옛사람을 가리우라

그래서 우울과 상관없이 사는 오직 한 길은 날마다 예수그리스도로 여러분의 속을 밝게 비추는 것이다. 불을 꺼뜨리지 말라. 빛이 사라지면 본래의 모습이 나온다. 지금 내 모습은 본 모습이 아니다. 성령이 덮고 있는 상태이다. 내속을 본다면 은혜받을 사람은 없다. 우리는 평생 예수그리스도로 덮고 살면, 성령으로 덮고 살면 밝게 맑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수 있다. 예수님이 없고 성령충만하지 못하면 우울해질수 밖에 없다. 예수님을 믿는데 왜 우울해 지는가 하는데 가능하다. 성령이 옛사람을 감싸 덮은 것이 소멸되면 본성이 드러나는데 나의 본성은 우울이다. 그렇기에 본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날마다 예수로 성령으로 덮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집회에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세상을 얻는것 같지만 몇일안지나 옛날로 돌아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주야로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먹고 성령을 받아야 한다. 내가 성령을 받아 본성을 덮든지 아니면 우울하게 살던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받음으로 예수를 먹음으로 본성을 덮고 나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우리의 본성은 우울이다. 우울하지 않게 본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과 성령님이 필요하다. 날마다 예수님과 성령님 충만하기를 바란다. 본성을 드러내며 두려워하고 근심 낙심 상심한채 살아갈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성경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기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이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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