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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라 선교사 "원수를 갚을 나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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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GMA 전인치유학교가 5월 13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뉴욕새천년교회(석문상목사)에서 열리고 있다. 강사는 이사라 선교사(GMA, 세계선교나눔회 대표)이다.

이사라 선교사는 8번의 강의를 통해 전인치유와 아버지의 사랑, 상한감정의 치유, 태아기 유아기 치유, 성장기 치유, 우울증과 중독, 세대치유, 나라와 민족의 치유등의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다음은 5월 27일목) 저녁에 열린 강의중 '용서'에 대한 강의내용이다.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잘못이며 실패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상처를 처리해서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막힌것을 허무는 것을 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는 하나님이 나를 용서했기에 우리도 서로 용서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8장에 일만 달란트를 빚진자의 비유가 나온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주인에게 간청하여 빚을 모두 탕감 받았는데 자신은 빚 탕감을 받았으면서 자기에게 100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가 나중에 갚겠다고 사정하자 옥에 가둔다.

이 같은 사실을 들은 주인은 크게 노하여 빚 탕감을 취소하고 그 사람을 옥에 가둔다. 1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이다. 주인은 일만 달란트를 빚졌지만 탕감해주었다. 은혜이다. 그런데 그는 은혜를 받았지만 자기가 탕감을 받은 돈에 비해 엄청나게 적은 100 데나리온 빚진자를 용납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이다.

힘들게 한 사람 하나를 용서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용서를 순종해야 한다. 불순종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가 관계가 깨진다.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시면서 가슴 아파하신다. 용서하지 않고 화해를 하지 않으면 옥에 갖힌 것이다.

하나님은 아들을 희생시키고 우리를 용서했다. 잘못한 친구를 용서하며, 하나님에 받은 은혜를 되갚아주어야 한다. 용서함으로 자신과 상대가 같이 옥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능력받는 것을 애쓰는 것을 아니라 내면을 살펴서 용서를 못하고 있는 것을 고백하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 시니라 (로마서 12장 19절)"

내가 갚으려 애를 쓰지 말라. 하나님은 내가 갚아 주리라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이 없어서 그것을 믿지 못하고 내가 직접가서 갚는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우리가 깨닫아야 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으면 상대에 앞서 내가 문제라는 것이다. 내자신을 위해서 용서해야 한다.

하나님과 나사이에 벽으로 막혀서 신령한것을 못받는다. 상처를 받아 힘든데 은혜의 통로까지 막히면 안된다.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갚겠다는 자기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희생이다. 십자가의 사랑을 행하는 진정한 용서이다.

왜 용서를 못하는가. 용서는 복음을 통해 용서를 경험한 사람이 할수 있다. 복음의 원리는 용서와 은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지만 우리를 용서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사망에서 구해 생명으로 옮기셨다. 복음의 원리이다. 우리는 이미 용서를 받았다.

복음을 통해 내가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첫번째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이다. 자신을 존귀하게 보지 못하고, 판단하고 허물과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는 집사 한 분은 굉장히 기도를 많이하고 은혜가 깊은 분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허물들 앞에서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이 싫다. 그러면 예수님의 용서가 경험되지 못한다.

둘째 하나님을 용서하지 않아서이다. 예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용서할수 있는가. 하나님은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희생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받는 고통에 대해 아파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힘들때 하나님에 대해 섭섭함과 원망이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 고난과 연단의 시간이 많았다. 당시에는 왜 하나님이 나를 힘들게 하시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깨닫아 지는 것은 고난이 축복이라는 것이다. 그런 연단의 시간이 아니면 지금과 같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관계를 가질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난 가운데 있을때는 "하나님, 도대체 사랑의 하나님이십니까?"라고 반문했다.

분쟁으로 어려운 교회에 10년이상 붙드셨다. 다른교회에 가면 가시에 찔리는듯했다. 어느날 "내 딸아, 내가 그런 연약한 곳에 있기에 너를 더 잘안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들었다. 그러자 기쁨의 눈물이 났다. 그 말을 듣고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이 떠났다.

고난받을때 하나님이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어려울때는 예수님의 용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을 용서할수 없었다. 자신은 용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상처가 치유가 안되면 의지적으로 하는 용서는 한계가 있다. 상처난 감정의 치유를 통해 용서를 경험한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장 9절)"

나에게 아픔을 준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느냐. 하나님은 복을 받으려면 용서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복을 주실때 조건을 주신다. 용서할수 없는 것이 댓가이다. 자신은 포기하는 것이다. 미국이 2차대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했다. 미국은 전쟁에서 이긴후에 용서하고 동맹국으로 받아들였기에 경제적인 복을 받았다는 내용을 책으로 읽은적이 있다.

용서하는 것은 두배의 결실을 얻는 통로이다. 요셉은 악을 행한 형들을 용서했다. 축복이다. 하나님은 죽음가운데서 살아나고 갇힌데서 해방된자를 사용하기 원하신다. 너무 힘들어서 죽어가는 것을 느낀적이 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세상가운데 죽음가운데 있는 사람을 살리기위해 너에게 먼저 죽음을 경험시키는 것이다." 갖힌 가운데 해방을 경험하기 위해 핍박을 받는것을 경험한다.

목회자 치유스쿨도 많이 하는데 목사님과 신학생등 부르심이 강한분들에게 핍박이 많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핍박은 당연하다. 억울해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신 길이다. 예수님이 가신길을 우리가 거절할수 없다. 오해받고 억울해 하는 일을 많이 있지만, 어떻게 이해를 하고 도와줄수 있는가. 아무일도 불가능하다. 억울한 곳으로 가라. 그것이 십자가이다. 그런 과정을 통과한 사람이 영적인 힘으로 받는다. 핍박하는 사람을 용서할때 하나님의 권세를 얻는다.

성경을 보면 예수의 사람, 요셉이 억울하고 핍박을 받았지만 온유함으로 용서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었다. 핍박을 이기는 힘은 온유이다. 개인적으로 짓밟히고 핍박당하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핍박을 받을때 마다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는 말이 듣기가 싫다.

고통받을때 그런소리가 들리지만, 어떻게 기뻐하고 즐거워 하느냐. 불가능하다. 초기, 영적으로 어릴때는 투덜거렸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이 나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십자가 밑에서 안올라갈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을. 결국 삶이 바뀌어졌다. 다음에는 억울한 일이 생겨도 용서한다.

십자가를 통과한 자를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느냐 아니면 나를 앞세우느냐는 테스트를 주신다. 그것에 걸려서 권세를 받을 자가 동네반장이나 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의 욕심을 쳐서 나갈때 테스트에서 통과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눈감아 준다거나, 상대방의 행동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탓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가해자에게 결코 좋은 감정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의지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성령이 용서하라고 하신다. 명령할때는 선택하는 것이다.

용서의 단계는 상처를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정하기 싫으면 사탄이 좋아한다. 상처에 귀신이 역사한다.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도 인정하라. 마음과 아픔을 정직하게 하나님앞에 고백하라. 아직도 힘들다고 문제를 하나님에 고백하고 맡겨야 한다. 이런일을 힘들지만 주님에게 맡기겠습니다 고백해야 한다. 더 이상 적개심이나 분노에 집착하지 않는다. 상처를 준 자를 용서한다. 이것이 용서의 단계이다.

"주님 저는 XX이 내게 행한 이런 일들에 대해서 주님께 다 맡기고 원수를 갚을 나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나는 더이상 적개심과 분노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XX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주님께서 상처입은 나의 마음을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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