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 목회자들의 릴레이 "나는 이렇게 가정교회를 정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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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9-04-22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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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구원에 헌신한 140여명이 참가하는 제35차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가 4월 20일(월) 부터 23일(목)까지 뉴욕베데스다교회 (김원기 목사) 에서 열렸다.
셋째날인 22일(수) 저녁에 열린 심포지움에는 가정교회 1-3년차 강원용 목사(세인트루이스 소망장로교회)와 김성수 목사(시애틀지구촌교회), 유학생교회 이소영 사모(콜롬비아한인침례교회)등이 사례를 발표했다.
'가정교회 360' 소개
또 가정교회 사역원팀장등이 나와 가정교회 사역을 지원하는 웹프로그램인 '가정교회 360'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정교회 사역원은 한국 미래나야와 손을 잡고 60만불을 투자하여 가정교회들이 인터넷에서 이용할수 있는 프로그램(가정교회 360)을 만들었다. 목장의 갯수에 따라 사용비가 다르다.
정영민 목사(LA포도원교회)는 "유익한점은 인터넷으로 어디서나 엑세스가 가능하다. 홈페이지가 같이 사용할수도 있다. 불신자를 전도하고 목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프로그램화 했다. 가정교회의 사정을 다 반영하는 결정판이다. 불신자가 왔을때 첫날 대화부터 목장에 참여하며 영적성장하는 과정까지 누적데이타를 가지고 확인할수 있다"고 설명했다.
1-3년: 강원용 목사(세인트루이스 소망장로교회)
40여년 역사의 교회에 17년전 부임했다. 11년전에는 이민교회증 가장 오래된 한인교회와 연합하기도 했다. 가정교회를 시작하니 목회가 견고하고 재미있고 행복하다. 오래된 교회이다 보니 교인들의 나이는 다양하다. 25개 목장을 운영한다.
구역예배를 살리려고 셀교회도 해았다. 연초에는 잘나가지만 여름 50% 연말 30%로 줄어드는 일이 해마다 반복됐다. 겉으로 교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수평이동으로 교인들도 매년 10% 이상씩 늘었다. 하지만 영혼구원의 역사가 거의 없어 죄의식때문에 흑인 빈민선교를 15년동안 하기도 했다.
15년을 목회하니 위기의식과 매너리즘에 빠졌다. 처음보다 교회가 부흥했지만 갈증을 느꼈다. 2007년 여름에 제직회에서 교인들의 제의로 구역장 세미나를 하는데 유학동기인 원종훈 목사를 초청했다. 원 목사는 장로들에게 가정교회를 소개했다. 제직세미나를 하는데 계속 가정교회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그런교회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전력투구 하고 싶었다. 당회에서 장로들이 가정교회를 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세미나에 참가했다. 교인들도 무료로 세미나를 보냈다. 담임목사도 교회비용으로 가는데 목자도 목회이므로 무료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일예배때 가정교회 세미나에 다녀온 장로 2분을 간증시켰다. 장로는 가정교회가 교회생활이라면 얼마든지 교회생활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비록 장로이지만 와이프를 구타하기도 했다며 회개도 했다. 웬만한 장로교회는 장로가 목자로 있는 목장이 안되는데 우리교회는 장로 목장이 잘된다. 작전상 장로들을 초원지기(목자를 관리)로 세웠다.
가정교회를 시작하며 어렵고 힘든부분은 반대자가 많았다. 한 장로는 "왜 장로교가 침례교 것을 가져오는가"라고 불만을 표했다. 나이가 많은 분들을 위한 노년목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재미있게 잘한다.
다른 어려운 점은 목장에서 서로 사람을 나누어야 하는데 자신을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또 권위적이며 잘못된 목회고나을 가지고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목자도 문제가 된다. 목장을 옮기겠다고 하거나 불신자가 한명도 없는 목장운영은 힘들다.
가정교회만 하면 천국이라 생각했는데 하니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다. 내가 젊어졌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힘들어 차라리 설교준비가 쉽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어려움의 극복은 기도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잘나가는 목장이 시간이 지나자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목원들은 교회는 나오는데 목장은 안모였다. 목자를 찾아가서 위로만 했다. 시간이 지나자 불신자를 중심으로 목장이 새로 구성되고 잘하고 있다.
문제가 일어날때 마다 가정교회 원칙을 충실하자고 말한다. 그 원칙은 가정교회를 앞서간 교회들이 시행착오 끝에 만든것이다. 그대로 하려고 애를 쓴다. 가정교회를 시작해도 3-5년까지는 갈고 닦아야 한다. 할말이 있으면 목회자 칼럼을 이용하는데 굉장히 효과가 있다.
가정교회를 시작한 첫해 불신자 9명이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줄때마다 울었다. 다음주에는 6명의 불신자를 세례한다. 가정교회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나니 추수가 된다. 청년부와 대학부 들은 가정교회를 잘한다. 가정교회가 청년들에게 맞는 것 같다. 가정교회에 남은 목회10년을 바칠려고 한다.
1-3년: 김성수 목사(시애틀지구촌교회)
아버지가 목사였지만 목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방황끝에 하나님을 만나고 헌신하기로 했지만 음악외도를 하고 미국에 유학을 왔다. 청소년 사역자로 들어간 교회의 분열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큰교회에 조용히 살자고 간곳이 지구촌 교회이다. 찬양지휘자로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셀교회를 경험하게 되었다. 담이목사는 셀교회를 가정교회라고 불렀다. 셀교회를 통해 청년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신학교로 가고 졸업후 2002년 개척을 위해 아는 사람없는 시애틀에 왔다.
그동안 경험했던 교회에 대한 아픔때문에 신약교회를 향한 꿈이 있다. 청년이 모이기 시작하고 1년내 백여명으로 교인이 늘었다. 청년을 위한 사역에 집중하다 보니 기성교인이 불만을 가졌다. 교회가 시험에 들고 12명이 남았다. 엄청난 실패감으로 절망했다. 한국에 들어갔다 와도 그 12명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개척멤버라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목회준비가 잘된 사람으로 보았다. 개척훈련을 2년을 받았으며 마케팅 기술도 배웠다. 하지만 철저한 패배후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패를 통해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소명의식도 흔들렸다. 그러다 후배의 소개로 가정교회를 만났다.
유학생교회 이소영 사모(콜롬비아한인침례교회)
25년된 콜롬비아 한인침례교회 3대담임으로 7년째 사역하고 있는 이창열목사의 부인이다. 남편은 강도에게 총을 맞고 38살에 신학을 시작했으며 이곳이 첫 목회지이다.
교회가 있는 미조리주 한가운데 콜롬비아는 대학이 많은 교육도시이다. 10만 인구로 소도시이다. 교인은 20-30개 가정이며 대부분 대학과 연결되어 있어 젊다.
부임후 분열의 상처회복과 연합에 힘을 썼다. 기존의 구역모임 중심으로 운영했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섬기려고 노력했다. 사모인 나는 먹는 사역을 많이 했다. 그러다 일대일 성경공부, 성경일독학교등도 인도했다.
1년정도 목회하니 1년에 50명의 침례열매가 나왔다. 한번도 교회에 안나온 사람이 교회와서 변하는 것을 보고 감사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나다 보니 해마다 점점 침례자가 줄어들었다.
부임 4년만에 분명한 노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역초기에는 열심히 영혼구원에 관심을 두었는데 4년이 지나니 매너리즘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에 미주리 지방회 모임에서 가정교회를 처음 소개받았다. 지인에 의해 강제로 등록을 당하고 2007년 10월에 40차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고 가정교회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울었다.
그후 제직수련회에서 1년후 가정교회로 전환할것을 밝혔다. 최영기 목사의 두권의 책을 대량구입해서 교인들에게 읽히기도 했다. 감사한 것은 단기간 거주하는 사람이 많아 심하게 반대하는 성도가 없었다. 정작 문제는 우리부부였다. 마음가운데 이정도면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이 공부를 마치고 계속 떠나는데 목자를 계속 세울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단기간 체류가 많아 일꾼을 세우는 것이 문제이다. 2007년 12월 시범목장을 운영하며 꿈을 꾸게 됐다. 교인들을 세미나에 보내고 내가 교인들의 자녀를 보는 베이비시터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세미나후 주일예배에서 간증을 통해 분위기가 업데이트 됐다.
2008년 8월 23개의 목장으로 가정교회를 시작했다. 지난 2월에 목자 5명이 한국으로 귀국했다. 유학생교회의 어려운 점은 단기간 거쳐가는 성도가 많아 내교회라는 헌신이 약하다. 단기간내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갑작스럽게 목자가 이동하므로 목장의 존재자체가 어렵다.
목자 가정 외에 믿음이 있는 가정이 한가정도 없는 경우가 있어 어렵다. 바로 우리교회안의 50%가 불신자이다. 밖으로 나갈필요가 없다. 1년도 안된 미숙한 가정교회이지만 가정교회 정신이 너무 좋고 하나님이 좋아하실 일이라고 믿는다.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셋째날인 22일(수) 저녁에 열린 심포지움에는 가정교회 1-3년차 강원용 목사(세인트루이스 소망장로교회)와 김성수 목사(시애틀지구촌교회), 유학생교회 이소영 사모(콜롬비아한인침례교회)등이 사례를 발표했다.
'가정교회 360' 소개
또 가정교회 사역원팀장등이 나와 가정교회 사역을 지원하는 웹프로그램인 '가정교회 360'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정교회 사역원은 한국 미래나야와 손을 잡고 60만불을 투자하여 가정교회들이 인터넷에서 이용할수 있는 프로그램(가정교회 360)을 만들었다. 목장의 갯수에 따라 사용비가 다르다.
정영민 목사(LA포도원교회)는 "유익한점은 인터넷으로 어디서나 엑세스가 가능하다. 홈페이지가 같이 사용할수도 있다. 불신자를 전도하고 목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프로그램화 했다. 가정교회의 사정을 다 반영하는 결정판이다. 불신자가 왔을때 첫날 대화부터 목장에 참여하며 영적성장하는 과정까지 누적데이타를 가지고 확인할수 있다"고 설명했다.
1-3년: 강원용 목사(세인트루이스 소망장로교회)
40여년 역사의 교회에 17년전 부임했다. 11년전에는 이민교회증 가장 오래된 한인교회와 연합하기도 했다. 가정교회를 시작하니 목회가 견고하고 재미있고 행복하다. 오래된 교회이다 보니 교인들의 나이는 다양하다. 25개 목장을 운영한다.
구역예배를 살리려고 셀교회도 해았다. 연초에는 잘나가지만 여름 50% 연말 30%로 줄어드는 일이 해마다 반복됐다. 겉으로 교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수평이동으로 교인들도 매년 10% 이상씩 늘었다. 하지만 영혼구원의 역사가 거의 없어 죄의식때문에 흑인 빈민선교를 15년동안 하기도 했다.
15년을 목회하니 위기의식과 매너리즘에 빠졌다. 처음보다 교회가 부흥했지만 갈증을 느꼈다. 2007년 여름에 제직회에서 교인들의 제의로 구역장 세미나를 하는데 유학동기인 원종훈 목사를 초청했다. 원 목사는 장로들에게 가정교회를 소개했다. 제직세미나를 하는데 계속 가정교회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그런교회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전력투구 하고 싶었다. 당회에서 장로들이 가정교회를 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세미나에 참가했다. 교인들도 무료로 세미나를 보냈다. 담임목사도 교회비용으로 가는데 목자도 목회이므로 무료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일예배때 가정교회 세미나에 다녀온 장로 2분을 간증시켰다. 장로는 가정교회가 교회생활이라면 얼마든지 교회생활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비록 장로이지만 와이프를 구타하기도 했다며 회개도 했다. 웬만한 장로교회는 장로가 목자로 있는 목장이 안되는데 우리교회는 장로 목장이 잘된다. 작전상 장로들을 초원지기(목자를 관리)로 세웠다.
가정교회를 시작하며 어렵고 힘든부분은 반대자가 많았다. 한 장로는 "왜 장로교가 침례교 것을 가져오는가"라고 불만을 표했다. 나이가 많은 분들을 위한 노년목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재미있게 잘한다.
다른 어려운 점은 목장에서 서로 사람을 나누어야 하는데 자신을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또 권위적이며 잘못된 목회고나을 가지고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목자도 문제가 된다. 목장을 옮기겠다고 하거나 불신자가 한명도 없는 목장운영은 힘들다.
가정교회만 하면 천국이라 생각했는데 하니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다. 내가 젊어졌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힘들어 차라리 설교준비가 쉽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어려움의 극복은 기도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잘나가는 목장이 시간이 지나자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목원들은 교회는 나오는데 목장은 안모였다. 목자를 찾아가서 위로만 했다. 시간이 지나자 불신자를 중심으로 목장이 새로 구성되고 잘하고 있다.
문제가 일어날때 마다 가정교회 원칙을 충실하자고 말한다. 그 원칙은 가정교회를 앞서간 교회들이 시행착오 끝에 만든것이다. 그대로 하려고 애를 쓴다. 가정교회를 시작해도 3-5년까지는 갈고 닦아야 한다. 할말이 있으면 목회자 칼럼을 이용하는데 굉장히 효과가 있다.
가정교회를 시작한 첫해 불신자 9명이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줄때마다 울었다. 다음주에는 6명의 불신자를 세례한다. 가정교회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나니 추수가 된다. 청년부와 대학부 들은 가정교회를 잘한다. 가정교회가 청년들에게 맞는 것 같다. 가정교회에 남은 목회10년을 바칠려고 한다.
1-3년: 김성수 목사(시애틀지구촌교회)
아버지가 목사였지만 목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방황끝에 하나님을 만나고 헌신하기로 했지만 음악외도를 하고 미국에 유학을 왔다. 청소년 사역자로 들어간 교회의 분열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큰교회에 조용히 살자고 간곳이 지구촌 교회이다. 찬양지휘자로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셀교회를 경험하게 되었다. 담이목사는 셀교회를 가정교회라고 불렀다. 셀교회를 통해 청년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신학교로 가고 졸업후 2002년 개척을 위해 아는 사람없는 시애틀에 왔다.
그동안 경험했던 교회에 대한 아픔때문에 신약교회를 향한 꿈이 있다. 청년이 모이기 시작하고 1년내 백여명으로 교인이 늘었다. 청년을 위한 사역에 집중하다 보니 기성교인이 불만을 가졌다. 교회가 시험에 들고 12명이 남았다. 엄청난 실패감으로 절망했다. 한국에 들어갔다 와도 그 12명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개척멤버라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목회준비가 잘된 사람으로 보았다. 개척훈련을 2년을 받았으며 마케팅 기술도 배웠다. 하지만 철저한 패배후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패를 통해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소명의식도 흔들렸다. 그러다 후배의 소개로 가정교회를 만났다.
유학생교회 이소영 사모(콜롬비아한인침례교회)
25년된 콜롬비아 한인침례교회 3대담임으로 7년째 사역하고 있는 이창열목사의 부인이다. 남편은 강도에게 총을 맞고 38살에 신학을 시작했으며 이곳이 첫 목회지이다.
교회가 있는 미조리주 한가운데 콜롬비아는 대학이 많은 교육도시이다. 10만 인구로 소도시이다. 교인은 20-30개 가정이며 대부분 대학과 연결되어 있어 젊다.
부임후 분열의 상처회복과 연합에 힘을 썼다. 기존의 구역모임 중심으로 운영했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섬기려고 노력했다. 사모인 나는 먹는 사역을 많이 했다. 그러다 일대일 성경공부, 성경일독학교등도 인도했다.
1년정도 목회하니 1년에 50명의 침례열매가 나왔다. 한번도 교회에 안나온 사람이 교회와서 변하는 것을 보고 감사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나다 보니 해마다 점점 침례자가 줄어들었다.
부임 4년만에 분명한 노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역초기에는 열심히 영혼구원에 관심을 두었는데 4년이 지나니 매너리즘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에 미주리 지방회 모임에서 가정교회를 처음 소개받았다. 지인에 의해 강제로 등록을 당하고 2007년 10월에 40차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고 가정교회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울었다.
그후 제직수련회에서 1년후 가정교회로 전환할것을 밝혔다. 최영기 목사의 두권의 책을 대량구입해서 교인들에게 읽히기도 했다. 감사한 것은 단기간 거주하는 사람이 많아 심하게 반대하는 성도가 없었다. 정작 문제는 우리부부였다. 마음가운데 이정도면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이 공부를 마치고 계속 떠나는데 목자를 계속 세울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단기간 체류가 많아 일꾼을 세우는 것이 문제이다. 2007년 12월 시범목장을 운영하며 꿈을 꾸게 됐다. 교인들을 세미나에 보내고 내가 교인들의 자녀를 보는 베이비시터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세미나후 주일예배에서 간증을 통해 분위기가 업데이트 됐다.
2008년 8월 23개의 목장으로 가정교회를 시작했다. 지난 2월에 목자 5명이 한국으로 귀국했다. 유학생교회의 어려운 점은 단기간 거쳐가는 성도가 많아 내교회라는 헌신이 약하다. 단기간내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갑작스럽게 목자가 이동하므로 목장의 존재자체가 어렵다.
목자 가정 외에 믿음이 있는 가정이 한가정도 없는 경우가 있어 어렵다. 바로 우리교회안의 50%가 불신자이다. 밖으로 나갈필요가 없다. 1년도 안된 미숙한 가정교회이지만 가정교회 정신이 너무 좋고 하나님이 좋아하실 일이라고 믿는다.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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