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할까, 남아야 할까: 교회 옮김에 대한 신중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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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3ㆍ2025-03-30 07:1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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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다른 교회를 찾는 것을 고려해야 할 때”라는 글을 읽으면서, 특히 그동안 취재현장에서 만났던 교인 수가 많지 않은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애정을 쏟았던 교인을 떠나보내는 깊은 아픔과 상실감이 다시 느껴지기도 했고, 반대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신앙적 고민이나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눈물로 하소연하는 성도들의 목소리도 떠 올랐다.
이처럼 서로 다른 입장에서 들려오는 절절한 이야기들을 접하며, 교회를 떠나고 남는 문제에 있어 어느 한쪽의 입장만이 절대적인 선(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한 것은, 한 사람의 신앙 여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결정은 그만큼 무겁고 복잡한 문제이기에, 정말 깊은 고민과 기도 속에서 신중하게 내려져야 한다는 점이다. 위 글의 내용을 중심으로 그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교회를 옮기는 결정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AI 생성사진)
교회를 정하는 것만큼이나 떠나는 것도 참으로 무겁고 신중해야 할 일이다. 목회자에게 "목사님, 저희 가정의 신앙생활과 관련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성도의 말은 목사의 마음을 어렵게 한다. 자연스레 "왜 떠나려 하시는지요?"라고 묻게 되고, 그 대답은 참으로 다양했다.
어떤 이들은 "길 건너 교회가 우리 아이들 신앙 교육에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서"라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이곳에서는 더 이상 신앙의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라고 답하기도 했다. 어느 목사의 가장 마음 아픈 대답 중 하나는 "목사님과 설교는 참 좋지만, 이 교회 자체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라는 말이었다. 물론, 교회를 떠나야 하는 정당한 이유도 분명히 존재하며, 때로는 더 성경적으로 신실한 공동체를 찾는 것이 필요하거나 의무가 되기도 한다.
원래 교회를 떠나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할 일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하며 개혁을 위해 힘쓰는 것이 더 권장되곤 했다. 하지만, 때로는 교회가 신학적으로 성경의 근본적인 진리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거나, 공동체 전체가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져 도저히 건강한 신앙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처음에는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거나 떠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 건강한 신앙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의 대화나 개선의 노력이 무의미하고 오히려 깊은 갈등과 분쟁만 야기하는 상황이라면, 그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단순히 문제를 회피하는 소극적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 건강을 지키고 불필요한 상처를 피하기 위한 불가피하고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시각도 생겨났다. 즉, 심각하게 병든 공동체에서 떠나는 것은 때로 신앙적 양심을 지키며 더 큰 파국을 막는, 어쩔 수 없는 결단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복음주의 문화 속에서는 마치 유행처럼 교회를 옮겨 다니는 '교회 호핑(church hopping)' 현상이 두드러지는 듯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성경에 대한 이해 부족, 교회에 대한 건강한 관점(교회론)의 상실, 권위에 대한 반감, 교회 내에서의 건강한 바로잡음(권징)의 부재, 의미 있는 교인 관계의 약화 등 여러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1.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될까?
다년간 신앙 공동체 안에서 들어왔던 몇 가지 타당하지 않은 이유들을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가족 구성원 중 영적으로 가장 미숙할 수 있는 자녀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교회를 옮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의외로 흔하게 듣는 이유 중 하나인데, 가정의 중요한 신앙적 결정을 이런 식으로 내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이 교회에는 제 나이 또래 사람이 별로 없어요"라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며,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는 세상의 사교 클럽과는 다르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이들이 깊은 사랑의 끈으로 연결된 모습, 그것이 교회의 본질에 가깝다. 또한, "자녀 양육 프로그램이 부족해서"라는 이유도 부모가 자녀의 신앙 교육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일 수 있다. 교회는 가정을 돕는 역할이지, 책임을 대신 지는 곳이 아니다.
예배나 설교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도 역시 교회를 떠나는 충분한 이유가 되기 어렵다. "찬양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목사님 설교가 너무 길어요", "예배가 지루해요" 같은 불만은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잊게 만들기 쉽다. 예배는 우리의 즐거움을 위한 시간이 아니다. 찬양의 신학적 내용이 건전한지, 설교가 성경에 충실한지가 훨씬 중요한 문제다. 곡조와 가사는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음악 스타일에 대한 논쟁은 종종 세대 간의 취향 차이로 귀결되곤 했다.
교회 안에 여전히 죄와 씨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나, 목회 방식이 과거의 특정 방식과 다르다는 점도 교회를 떠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루터가 말했듯, 그리스도인은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다. 교회는 영적인 병원이지, 이미 모든 과정을 마친 완벽한 졸업생들의 전시장이 아니다. 물론, 공공연한 죄악을 방치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지만, 단순히 성도들의 불완전함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는 '전통주의' 역시 교회를 서서히 병들게 할 수 있다.
▲교회를 옮기는 결정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AI 생성사진)
2.
하지만 교회를 떠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타당한 이유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존 맥아더 목사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는 우리가 교회를 옮겨야 할 때를 분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강단에서 복음의 핵심 진리를 왜곡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이 선포될 때,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심각하게 잘못된 교리를 퍼뜨리는 것을 교회가 용납할 때, 명백한 죄를 짓는 교인에 대한 권징을 거부하는 등 성경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때가 그렇다.
또한, 교회 공동체 내에서 거룩하지 못한 삶의 방식이 용납될 때,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에서 심각하게 벗어나 있을 때, 혹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신앙의 능력을 부인하는 위선적인 모습이 만연할 때도 교회를 떠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런 상황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불편함이나 선호의 문제를 넘어, 신앙의 본질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년간 교회를 떠나는 문제로 상담해 온 성도나 지인들에게 보통 성급히 떠나기보다는 교회에 남아 은혜롭고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역할을 감당해 보라고 조언하곤 했다. 교회를 옮기는 결정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만약 여러 상황을 신중히 고려하고 기도한 끝에 떠나는 것이 우리 자신이나 가정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는 확신이 들더라도, 떠나는 과정에서의 우리의 태도는 절제되고 겸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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