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주 교수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365 말씀 묵상”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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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2ㆍ2025-01-27 03:0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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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조모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책 한 권을 펼쳐 들었다. 50년 전 일이니, 제목은 정확히 기억을 못 하지만, “365일 오늘의 운세”가 아니었을까 한다.
한 해 매일의 “운세”를 알려주는 책으로 주로 버스 안 또는 리어카 책 행상들이 팔았다. 시골을 떠나 잠시 도시의 딸 집에 머무를 때면 외조모는 아침에 학교로 향하는 외손주를 붙잡아 세우셨다. 오늘은 평소대로 개천 따라 난 지름길로 가지 말고 신작로로 가라며 꼭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으셨다. 할머니의 아침 필독서 “365일 오늘의 운세”가 이날은 水, 즉 물가를 피하라고 조언(?)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빨리 학교에 가기 위해 평소처럼 개천을 따라 잰걸음으로 걸었다.
그날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할머니 덕에 큰길로 학교에 가서 시험을 잘 봤다”는 백색 거짓말로 하루 종일 마음 조였을 외조모를 달래 드렸다. “365일 오늘의 운세” 때문에 나는 악의는 없었지만, 어쨌든 거짓말 솜씨는 늘었다.
세모에 책 한 권을 접했다. 김정호 목사 (후러싱 제일교회 담임)가 지은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365 말씀 묵상 (신앙과 지성 刊)”이다. 저자에게 결례가 됨을 알지만, 마음속에 이 책에 별칭을 달았다. “365일 오늘의 은혜.”
한 페이지를 채우는 저자의 매일 묵상이 은혜인 이유는 하루하루 내 삶의 의미와 기도할 이유, 감사의 소재, 또 방향성과 소망을 생각할 수 있게 인도하기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내일을 기다리는…”으로 시작한다. 은혜는 내일의 삶이 어떠할지라도 하나님이 같이하심을 믿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받자마자 두 딸아이의 생일로 달려갔다. 4월에 태어난 큰 아이의 생일에는 이런 글이 있다. 제목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39~43”이다. 이 글이 아이가 태어난 그날 밤의 기억을 되살렸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걱정이 많았다. 누가 아이를 볼 것인가? 침실이 하나인 작은 아파트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나? 이제 아이가 태어났으니 흔히 “저소득층이 밀집한 우범지역”이라 불리는 동네를 떠나야 하지 않나?
하지만,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내가 하나님이 허락한 “낙원”에 있음을 알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이의 삶을 지켜주실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저자의 글을 통해 오래 잊고 산 그날의 감격을 다시 찾았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것은 낙원입니다. 낙원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그 완전한 세상을 의미합니다. ‘생명이 완성된 세계’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있다는 것은 생명이 완성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낙원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믿고 영접할 때 지금도 우리가 믿음 안에서 누리는 현실입니다.”
성장한 아이의 삶에 지금 도전이 많다. 하지만, 이날의 묵상 말씀은 나에게 평화를 주었다. “지금 이 땅에 살면서도 예수님이 내 주님이 되시기에 내 삶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은혜, 구원의 확신, 세상이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그 평화를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이미 낙원을,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이 힘들지만, 아이에게 믿음이 있으니 지금 낙원에 있다고 믿는다.
6월의 하루. 둘째 아이의 생일로 갔다. 이런 글을 만난다.
“얼마 전에 40살 초반의 미국 여성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세 명의 아이를 중국에서 입양했는데 모두 십 대들입니다. 어떻게 다 큰 아이들을 입양했냐고 했더니 사람들이 나이 든 아이들은 입양을 꺼리기에 아무래도 자기가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아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정신적, 문화적으로 적응이 어렵다고 합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쳤는데 문제 많다는 아이만을 위해 다시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아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겨우 10살 넘은 아이가 얼굴에 그늘이 있고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것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 그 아이를 안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환하게 웃는 것입니다. 중국 고아원에 있다가 11살에 입양되어 미국에 왔는데 어린것이 얼마나 마음고생했을지, 이 아이 마음속에 맺힌 것들을 하나님이 사랑으로 품어달라고 기도하고는 어린 심령이 가여워서 안아준 것입니다. 그 아이 얼굴이 활짝 웃음으로 열리는데 가슴이 찡했습니다.”
나는 회개의 기도를 했다. 20여 년 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후 교직에 있는 대학으로부터 인문계 학장 (Dean)의 제안을 받았다. 승진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학교 상황이 소란스러우니 안정을 찾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시간을 달라. 잘 생각해 보겠다” 따위의 예를 갖추지 않았다. “고맙지만 사양한다”는 단호한 직답에 대학 당국자들 놀랐다.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하기에 또 한 번 한마디 단답을 주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학교 당국자에게서 섭섭하다는 표정을 읽었지만, 나의 눈에는 내 아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이 생일에 쓰인 저자의 글을 읽고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자식 사랑이 삶이 평탄치 않기에 더욱 많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나와 피와 살을 나누지 않은 아이들에게 까지 닿을 수 있을까? 동정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 가능할까?
저자가 말한다.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사랑에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우리 뱃속 샘물과 같은 생명수가 생수의 강이 되어 흘러 나게 되면…죽은 것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죽음과도 같은 힘든 삶을 사는 “어린아이나 어른이” 다시 살아나게 하는 폭 넓고 깊이 있는 사랑의 강이 될 수 있는 용기를 위해 기도한다.
물론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365 말씀 묵상”이 독자의 삶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묵상에서 내 존재의 의미, 일그러진 모습에 대한 반성, 은혜와 기쁨의 재발견, 또 앞날에 대한 희망 등 삶의 하루하루를 새롭게 대하도록 인도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것이 아니다. 독자가 저자의 묵상을 내면화했으면 이제는 독자의 것이 된다. 찬송가를 누가 작시하고 곡을 붙였나 중요하게 따지지 않는 이유다. 찬송은 부르는 이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찬송이 불린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숲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하나님 지으신 우주에는 어두운 밤을 밝히는 별도 있고, 세상을 숨 쉬게 하는 숲도 있다. 목청 놓아 지저귀는 새도 있고, 시냇물의 고요한 흐름의 소리도 들린다. 동시에 세상을 뒤흔드는 뇌성도 있다. 이 모두가 창조의 권능을 찬양케 한다.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365 말씀 묵상”도 다르지 않다. 속삭임의 글, 아름다운 글도 있다. 동시에 독자의 뇌리와 가슴을 흔드는 묵상도 있다. 이들이 합력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소중함을 말해준다.
책 앞에 저자가 말한다. “목사의 역할을 설교자(Preacher), 목회자(Pastor), 예언자(Prophet)로 봅니다. 이 말씀 묵상집에는 성경 말씀을 통해 이 세 역할을 조화있게 담아내려 했습니다.” 44년 목회자로 살아온 저자의 고백이다.
나는 여기에 또 하나의 “P”를 더한다. “Protector,” 보호자이다. 목자, 양치기는 365일 낮과 밤 한 쪽 끝이 갈고리처럼 굽어 있는 지팡이를 놓지 않는다. 양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 김정호 목사가 써 내려간 매일의 묵상은 양을 지키기 위해 그가 기도 속에서 깎아 만들고 손에서 놓지 않는 말씀의 지팡이다. 부드럽게 보이지만 쉽게 부러지지 않는 강한 지팡이, 양을 해치려는 짐승을 쫓기 위해 휘두르는 담대한 지팡이를 통해 독자는 오늘 하루도 자신을 지켜주는 은혜의 말씀을 만난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 고백게 하는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365 말씀 묵상”의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의 출판 기념 예배는 2월 2일 (일요일) 오후 5시 후러싱제일교회 (38-24 149th St, Flushing, NY 11354, 718-939-8599)에서 열린다.
이길주 (버겐커뮤니티 칼리지 역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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